우주 만상 속의 당신

내 영혼이
의지할 곳 없어 항간을 떠돌고 있을 때
당신께서는
산간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뱀처럼 배를 깔고 갈밭을 헤맬 때
당신께서는
산마루 헐벗은 바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 영혼이
생사를 넘나드는 미친 바람 속을
질주하며 울부짖었을 때
당신께서는 여전히
풀숲 들꽃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요
진작에 내가 갔어야 했습니다
당신 곁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찔레덩쿨을 헤치고
피 흐르는 맨발로라도 
  

백발이 되어
이제 겨우 겨우 당도하니
당신은 아니 먼 곳에 계십니다
절절히 당신을 바라보면서도
아직
한 발은 사파에 묻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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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어쩌면 달나라에 가는 것과 비슷할 거야. 지구의 중력을 이탈해 별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무한의 우주를 지나 꿈꾸어온 달에 착륙하는 여행 말이야. 그 여행이 엄청난 것은 우주선도 없고 연료도 없이 오직 단둘이 끌어안고 스스로 발사체가 되어 날아간다는 점이지. 그리고 달나라에 갈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사랑 속에 안주해서 살 수도 없단다. 실제로 달은 채석장처럼 끔직하게 척박한 곳이고 인간의 발을 둥둥 뜨게 만드는 곳이지, 단지 지구와 달 사이, 원심분리기같이 광장한 속도로 회전하는 허공만이 사랑의 현장인 거야. 사랑이 끝나고 지상으로 돌아올 때는 우주선을 버리고 각자의 낙하산을 펴야 하지. 이 지상에 따로따로 떨어져 착륙해야 하는 것, 사랑은 그런 거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때 함께 있든, 혹은 헤어져 있든, 무사한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결국 끝이 나. 삶은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로 사는 거거든.

 그리고 평생 계속될 것만 같이 단단하게 뭉쳐서 희끗한 형체의 유령처럼 등 뒤를 따라다닌 감정의 응어리도 때가 되면 결국 재처럼 부서져 흩어지겠지. 단둘만의 달나라를 보았던 동질성조차 겨우 이 년 혹은 삼 년 정도면 무화되고 타인이 되는 것이다......진짜 상실의 아픔은 그것이다. 평생 계속되는 감정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이 좀 흐르니, 나도 그렇고, 네 아빠도 그렇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산 하나처럼 느껴져. 생각해봐. 산 하나의 내부가 품고 잇는 그 많은 생명들과 어찌할 수 없는 인과관계와 진실을. 그게 한 인간이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인 거야. 그러니, 누구도 타인을 구할 만큼 자유로울 수 없어. 제 한 존재를 버티는 일도 참 버거운 거란다."

 

'전경린-엄마의 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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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란 것은 마치 모서리가 세 개인 뾰족한 삼각형처럼 생겼을 것 같다.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 그것은 가슴속에서 빙빙 돌기 때문에 모서리에 찔린 마음이 너무 아프다. 계속 떠올릴수록 그것은 바람개비처럼 더 빠르게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고 마음은 점점 더 아파진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언젠간 모서리가 다 닳아져서 더이상 마음이 아프지 않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그런데 나는 내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인지 아니면 모서리에 찔리고 있는 이 아픈 상태가 나를 깨어 있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나간 일이 비록 오래 전의 것이라고 해도 늘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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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만나지 말지어다, 헤어지는 것이 두렵도다.

오늘도 영등포는 거기에 있다.

영등포 전체가 잃어버린 한 개의 머리핀처럼 내 가슴속에 있다.  


실제로 사막을 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한다.

사막에는 사막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를 정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도피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면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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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 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들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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