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잃고 자신마저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의 뇌는 의외로  허약하다. 한번 심리적 구조가 생기면 잘 바뀌지 않는다.

 

슬픔은 감정이지만 우울은 몸이다. 우울한 눈, 우울한 척추, 우울한 대퇴골········정작 오래된 우울에는 슬픔이 없다. 마른 우물이 그렇듯, 감정이 휘발되고 바래고 건조해져서 차라리 평온하다.

 

'전경린-천사는 여기 머문다:맥도날드 멜랑콜리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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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에 있던 일이래도 나는 느닷없이 슬퍼져서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과 쏟아져 흐르는 눈물을 처리할 방법을 모른다

살아가며 저마다 갖고 있는 정량의 슬픔과 눈물이 있다면

충분히 지나온 것 같은데

단단해지지 않는 가슴이다

끝나지 않는 꾸불꾸불한 통로 어딘가에 또 들어와 앉았다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곳에 놓여 어지럽고, 헤매고, 나는 그만 끝을 내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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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

 

나는 당신의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도는 사람이다 당신 발밑으로 가라앉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다 당신이 눈감으면 사라지는 그런 이름이다 내리던 비가 사라지고 나는 점점 커다란 소실점 복도가 조금씩 차가워진다 거기 당신이 서 있다 당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그것은 모르는 얼굴이다 가시만 남은 숨소리가 있다 오직 한 색만 있다 나는 그 색을 사랑했다 당신은 내 오른쪽의 사람이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도는 사람이다 내 머리 위에 흔들리는 이가 있다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은 그토록 나를 지우는 사람이다

 

너가 오면

 

그렇게, 네가 있구나 하면 나는 빨래를 털어 널고 담배를 피우다 말고 이불 구석구석을 살펴본 그대로 나는 앉아 있고 종일 기우는 해를 따라서 조금씩 고개를 틀고 틀다가 가만히 귀를 기울여 오는 방향으로 발꿈치를 들기도 하고 두 팔을 살짝 들었다가 놓는 너가 아니 너와 비슷한 모양으로라도 오면 나는 펼쳤다가 내려놓는 형편없는 독서 그때 나는 어떤 손짓으로 어떻게 웃어야 슬퍼야 가장 예쁠까 생각하고 그렇게 나, 나, 나를 날개처럼 접어놓는 너 너 너의 짓들 너머로 어깨가 쏟아질 듯 멈춰놓는 모습 그대로 아니 그대로, 멈춰서 멈추길 멈췄으면 다시처럼 떠올려 무수히 많은 다시 다시와 같이 나를 놓고 앉아 있었으면 나를 눕히고 누웠으면 그렇게 가만히 엿보고 만지고 아무것도 없는 세계의 밋밋한 한 곳을 가리키듯 막막함이 그려져 손으로 따라 걸어 들어가면 그대로 너를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숨이 타오름이 재가 된 질식이 딱딱하게 그저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그건 너가 아니고 기실, 나는 네 눈 뒤에 서 있어서 도저히 보이질 않는 너라는 미로를 폭우 쏟아져 내리는 오후처럼 기다려 이를 깨물고 하얗게 질릴 때까지 꽉 물고 어떻게든 그러므로, 너로부터 기어이 너가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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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당신으로부터 사라지려는 수작을 부리는

나는 당신 한 사람으로부터 진동을 배우려는 사람

그리하여 그 자장으로 지구의 벽 하나를 멍들이는 사람

 

'이병률-눈사람 여관 시집<진동하는 사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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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음은 욕심이 커서였겠지

서로에게 돌직구를 던지지 못하는 둘은,

각자 추측하고 오해하고, 그대로 이해해버린다

 

잘 지내냐는 안부가 이리 어렵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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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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