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앉혀놓고

시 한 편 조근조근 읽어주었으면.

그 무릎에 누우면 이런 통증, 나아질 것 같은데.

 

가장 깊이 사랑에 빠졌다고 깨달을 즈음에

슈트케이스 끌고 떠나버리는 이상한 습관.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병.

하지만 이렇게 어두운 새벽에는 나가지 말아야지.

안 떼어지는 걸음은 안 가도 되는 거지.

누가 등을 민다고.

 

나는 미련이 많은 여자다. 지워야 할 것들을 잘 지우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미련을 들킨 적이 잘 없는 여자다. 그래서 언제나 잘 지우는 척을 한다.

 

'김서령-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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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정도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각자의 마음이 상하는 깊이도 다르고,

또 상대방이 왜 그토록이나 서운해하는지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다 이해하기 싫은 사람이 되버릴지도 모른다

불혐화음이 일었던 소재앞에서는 고개부터 돌려버릴지도,

내마음에 그런 슬픈 외로움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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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익선이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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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안감, 언제까지 얼마나 더 흔들려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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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차에 올라 앉아 있으면 혼자라는 사실이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온다고 했지. 그러니까 그녀에겐 내가 우연이 아니었던 거야. 일 년에 여덟 번 이상 막차를 탔던 여자. 그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뭐라고 부를까. 나에겐 운명이었고 그녀에겐 생활이었어. 자신의 출현이 누군가에게 필연이 되는 기막힌 감동을 겪으면 삶이 새로워져. 그때 가슴이 얼마나 벅찼는지 몰라.

 

사랑이 예순 번 찾아오면 그중에서 반복되는 사랑은 몇 차례 정도일까. 같은 사랑이 예순 번 모습을 바꿔 나타나는 것일까, 매번 다른 사랑이 다른 강도로 찾아오는 것일까. 그래서 이별하게 되면 어떤 게 더 아플까.

 

접힌 것은 간단히 펼 수 있다. 그러나 접힌 흔적은 지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부채처럼 착! 짧은 소리를 내며 접히는 이별을 생각했다.

반드시 연애를 지속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별이란 이별이 아닌 것처럼 다가왔다.

슬금슬금, 산이 자라는 속도로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찾아오더니 옮길 수 없는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박금산-존재인 척, 아닌 척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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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람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아니었고, 누군가와 소통하면 덜 외롭다는 사실에 무심한 사람이었지요.

아랫목이 따뜻한 집을 짓지 못했고(않았고) 함께 산다고 같이 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썰물 때 드러났다가 밀물 때 가라앉는 '여'처럼, 내가 살아낼 수 없는 곳이 당신이었고 내 안타까운 숨결들이 모여 붉은 기운을 북돋우는 곳이 당신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에겐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어 무엇을 구할 수나 있었겠어요.

 

'어쩌다 당신이 좋아서 / 천양희-추억을 통해 인생은 지나간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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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운명 따위가 결코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을 너는 가지고 있느냐고 운명이 내게 묻는다. 그게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기억을 비로소 견뎌낼 수 있게 되는 일. 지나간 시간을 정독할 마음이 조금쯤 일렁이는 일. 안도와 체념이 뒤섞인 맛의 한숨. 그래서 슬프냐고 누가 묻는다면, 아니라고 이제 답할 수도 있겠다.

 

세상은 내 편이 아니고

사랑도 내 것이 아니므로

내가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그대의 눈부신 빛 속에서

나는 영영 그림자인 거라고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그대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세상도 어찌하지 못했다고

사랑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언젠가.

나에게는 일어났으나 너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 너에게는 희미했으나 나에게는 또렷했던 일. 나에게는 무거웠으나 너에게는 가벼웠던 일. 너에게는 잊혔으나 나에게는 문신으로 새겨진,

언젠가라는 말처럼 슬픈 말도 흔치 않다. 이미 가버린 과거의 언젠가이든, 아직 오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미래의 언젠가이든.

 

너무 빨리 오거나 너무 늦게 온다. 너무 일찍 사라지거나 너무 오래 남는다.

제시간에 제자리를 지킨 것들도 있었을 텐데, 너무 늦게 깨닫는다.

 

'황경신-밤 열한 시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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