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의 인생 어느 지점에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득함이 절정으로 치솟을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것을 선사하려고 드는 인생이란 놈에게 슬그머니 아부의 악수를 청한 기분이었다. 다 버렸다고 각오한 지금, 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사는 게 다 그렇지요, 뭐.' 나는 가능하면 눈을 감을 때까지 그 말을 무기로도, 방패로도 쓰며 한세상을 살아낼 작정이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윤순례-아주 특별한 저녁밥상中'
나를 이해 못 해주는
너를 이해 못 해줬네
노력이 없는 관계는 유지되지 않지만
노력만 남은 관계도 유지되지 않더라
변해버린 모습이 싫었을까
변해주지 않음이 싫었을까
'하상욱-시밤中 '
볕 아래 둘 수 있는 사랑이었으면
좋은 볕 아래 잘 마른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사랑으로 우는 사람이 없었다면 좋겠다
나 때문에 당신이, 당신 때문에 내가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려령-트렁크中 '
나는 말이다
힘들다 싫다 한번에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쩌다보니 안하는 사람이 되어
혼자 참고 참다 한번에 폭발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자각할 시기도 반성할 시기도 지났다
내가 이렇게 글을 남길 정도면
나를 잘 아는 사람이면
사람이라면
나를 좀 데려가주오
정말 바라옵건대, 나를 데려가주오
그 무엇도 원하지 않기. 기다릴 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기. 늑장 부리기, 잠자기. 인파에, 거리에 휨쓸리게끔 너 자신을 방치하기. 도랑을, 철책을, 배를 따라 물가를 좇기. 강둑을 따라 걷기, 벽에 찰싹 붙어 지나가기. 네 시간을 허비하기, 온갖 계획으로부터, 모든 성급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욕망 없이, 원한 없이, 저항 없이 존재하기.
(조르주 페렉,<잠자는 남자> 조재룡 옮김)
'베수아-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