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안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또 안다, 내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인간이라는 것도. 그래서 그때는 인생이 외로웠다.

 

 매일 그랬다. 아내는 본드에 취해 있었고, 나는 술에 취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도 나도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 어쩌면 그 무언가를 잊기 위해 늘 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도, 잊을 수도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하늘에는 새까만 먹구름뿐이었다. 한 줄기 빛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발목에 벽돌을 매달고 바닷속 깊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구해주세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물어보고 싶었다. 어쩌면 좋죠?

 

'강태식-굿바이 동물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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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먼 곳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큼, 한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옮겨가는 초원

 

그대와 나 사이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치고, 나는 나의 야크를 치고 살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것이 양떼와 야크를 치느라 옮겨다니는 허름한 천막임을 알겠으니

그대는 그대의 양떼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고

나는 나의 야크를 위해 새로운 풀밭을 찾아 천막을 옮기자

오후 세시 지금 이곳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나 되어서

그대와 나도 구름 그림자 같은 천막이나 옮겨가며 살자

그대의 천막은 나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있고

나의 천막은 그대의 천막으로부터 지평선 너머에 두고 살자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

멀고 먼 그대의 천막에서 아스라이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면

나도 그때는 그대의 저녁을 마주 대하고 나의 저녁밥을 지을 것이니

그립고 그리운 날에 내가 그대를 부르고 부르더라도

막막한 초원에 천둥이 구르고 굴러

내가 그대를 길게 호명하는 목소리를 그대는 듣지 못하여도 좋다

그대와 나 사이 옮겨가는 초원이나 하나 펼쳐놓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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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낙천적으로,

때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어쩌다 한 번은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봅시다. 

오늘도 유통기한이 사흘이나 지난 우유를 마셨는데... 멀쩡하네요, 뭐.

 

"그 사람이랑 왜 헤어졌어?"

"뻔하잖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과거는 좋았지만,

그 사람과의 현재는 불편했고,

그 사람과 함께 해야 할 미래는 막막했어."

 

빙빙 돌리지 말고...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라고 말하세요.

단도직입적으로 뚜벅뚜벅 다가가서는 "난 널 사랑해"

그게 사랑을 고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어차피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최갑수-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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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탑방

 

 12개의 사다리를 올라가면 녹슨 열쇠구멍 속에 갇혀 있는 옥탑방이 있지 그 방에는 먼지 쌓인 편지들과 당신이 선물한 액자가 있지 액자 속에선 시간을 잃어버린 여자가 삭발을 하고 녹슨 가위는 액자를 오리고 있지 불면을 앓고 있는 컴퓨터는 반송된 e-메일로 용량이 부족하고 커튼도 없는 창문에선 별도 뜨지 않지 물도 주지 않는 선인장은 뿌리가 썩어가고 있지 옥탑방이 울고 있기 때문이지 잃어버린 시간이 울고 있기 때문이지 울고 있는 옥탑방 낡은 침대에선 곰팡이꽃이 피고 포자처럼 무성생식하는 액자 액자들 12개의 사다리를 올라가면 녹슨 열쇠구멍 속에 갇혀 있는 내가 있지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분열을 앓고 있는 나는 나를 사랑한 당신을 사랑한 나를 증오하지 증오하는 나를 사랑하는 나는 녹슨 가위를 들고 동맥을 오리지 피 흘리는 나를 안아주는 나는 당신이 선물한 액자 속에 있는 당신이 사랑한 삭발한 여자에게 말해주지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건 사랑도 아니었지 그냥 지상에서 가장 높은 방에 서로를 모셔두는 일이었지 그래서 당신과 여자는 울지 못하고 옥탑방만 울고 있는 거지 

 

음악처럼, 비처럼

 

.......

그 마당에 우리의 슬픔처럼 무성한 잡초를 모두 뽑고

당신의 눈썹처럼 가지런하게 싸리비질하고 꼭 한 달만 살아보고 싶었던가

햇빛 좋은 날 햅쌀로 풀을 쑤어 문풍지도 바르고 싶었던가

그렇게 꼭 한 달만 살아보자고 꼬드겨보고 싶었던가

그럴까봐 당신은 이 생에 나를 술래로 세워놓고 돌아오지 않는 기차를 탔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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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풍경들 속에서도

낡아가는 시간의 주름들을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보인다고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세상엔 눈을 부릅뜨고 온 마음을 기울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하면,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을

 

허황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행복한 쪽으로 바꾸기 위한 것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삶의 행복이나, 진실도 우리가 생각하는 먼곳에 있는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가 1할 2푼 5리의 승률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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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난다'를 '우리는 자리를 찾기 위해 떠난다'로 타이핑 했다.

스물아홉.

잘못 쓴 내 인생의 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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