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사 걷기 - 한민족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임경근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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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부활 주일에 여기에 왔습니다. 이날에 죽음의 철장을 부순 주님이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줄을 끊고 그들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는 빛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아펜젤러, 82)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150년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역사이지만, 기독교 2천 년 역사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다 겪었다고 합니다. 복음의 확장과 복음과 함께하는 고난, 부흥, 선교의 열정이 그것입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그 짧은 역사 동안, 어떤 역사를 찾아봐도 유례가 없는 영적 축복을 다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딱 하나,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개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때, 한국 교회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일은 그 의미가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지만, 미래의 소망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한국 교회사 걷기>는 이러한 소망을 가진 독자들을 안내하는 친절한 교회사 가이드입니다. (다만, 저자의 신앙의 뿌리가 장로교라는 것을 참고로 알아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국 교회사 걷기>는 한국 교회사 전반을 다루고 있는데, 무엇보다 한국 교회사만의 특징, 즉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가 무엇이었는지를 통찰하게 해줍니다. "초기 해외 선교사들은 한반도에 들어올 때 다시 살아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각오를 해야"(91) 했을 정도로, 복음에 척박한 땅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놀랍게 역사하고 있었는지 뜨겁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사 걷기>가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중 하나는, "한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준 국가와 한민족을 식민지화한 나라가 달랐다"(29)는 것입니다. "근세 식민 역사를 보면, 식민지 개척국가와 기독교 선교사가 함께 들어왔기 때문에 정치적 이해관계와 교회 정착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데, 한국은 그 반대였던 것입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식민 지배와 무관한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출신이었고, 그래서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데만 전념할 수 있었던 덕분에, 개신교는 옥토에 뿌려진 씨처럼 한반도에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29-31).

또 하나 주목해볼 만한 한국 교회사의 특징 중 하나는, "선교사들의 의료와 교육 사역은 불안한 조선인의 마음에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었다"(95)는 것입니다. 교육선교와 의료선교는 한국 선교의 발판을 놓는 쌍두마차와 같은 역할을 했는데, 이는 한국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좋은 토양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의료선교는 조선 사회의 신분제도를 허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됩니다.

"한국은 자국에 처음 온 선교사들의 자질과 관련하여 볼 때 특별한 은총을 받은 나라다. 언더우드는 대단히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었고, 모펫은 전도자로서 그 열정이 충만했으며, 에비슨은 의료 분야의 지도적 인사였고 의과대학을 설립했다. 베어드는 인문대학의 설립자였고, 게일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탁월한 번역가이자 학자다. 선교 초기에 이와 같이 재능 있는 인적 자원으로 시작된 선교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110).

한국 교회사의 가장 큰 특징으로,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번역된 한글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꼽습니다. <한국 교회사 걷기>는 이 외에도 이 한반도 땅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얼마나 크고 놀랍고 위대한 은총이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치밀하고 뜨거운 것이었는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셨는지, 그리고 직분자도 없고 조직과 제도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말씀의 통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강력하게 한반도 땅에서 역사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깨달으며, 선교는 역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연구를 거듭한 결과, 한굴에 띄어쓰기를 도입해서 가독성이 훨씬 좋아졌다는 역사적 사실도 흥미롭게 읽으며, 우리 민족이 교회사에 참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아졌습니다.

"'부흥'에 아무리 거룩한 뜻이 있더라도 인간의 기대, 바람, 욕망, 욕심, 탐욕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이다. 인위적 부흥은 애초에 없다. 그런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탄의 졸개인 거짓 영들의 역사인 경우도 있다"(188).

<한국 교회사 걷기>를 읽으며, 가장 유익했던 부분은, 평양 대부흥 이후에 나타난 반응이었습니다. 평양 대부흥의 물결은 4-6개월이 지나면서 식어 가기 시작했는데, 그 열기가 식어가자 성령님의 일하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불안을 느꼈던 선교사님들이 부흥의 열기를 일으키려 애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그 열매는 초라했고, 이는 "부흥을 인간이 만들고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191)는 것입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이다. 1909년 시작된 '백만인구령운동'은 하나님의 주권보다는 인간의 열심이 더 많이 보인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이든지 과장하거나 부풀리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열심과 열정이 귀하지만 인간 자신의 주권이 앞서고 하나님을 들러리 세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191).

국 교회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교훈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가 고난을 피하려고 했을 때, 빠르게 타락했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살기보다 서슬 퍼런 일제의 칼 앞에서 생명을 구걸하는 비굴한 삶을 선택했다. … 그런 곳에서 일제 천황의 통치 아래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267).

<한국 교회사 걷기>를 읽으며, 우리가 가진 '역사' 자체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어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한국 교회사 걷기>는 선교는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한국 교회사를 주권하고 계셨고, 주관하고 계시며, 주관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부흥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뜨겁게 고백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싶다면,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국 교회사 걷기>를 통해 교회 안에서 교회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불꽃처럼 일어나기를 소원해봅니다. 모든 목회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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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기초 히브리어 - 이스라엘 언어와 문화를 한 권에 쏙! 샬롬! 히브리어
임채의 지음, 이나현 감수 / 시원스쿨닷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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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문장을 만들어, 읽고, 말하는 연습!

히브리어를 처음 배울 때 목표는 구약성경을 원어로 직접 읽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언어라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신비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히브리어를 배우던 학생들 사이에서는 "고전어 때문에 고전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습니다. 그만큼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는 탄식이었습니다. 한 학기가 다 끝나갈 무렵까지도, (히브리어 문장으로도 된) 알파벳조차 '읽지' 못하는 학생들도 속출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낯설다'는 것이 가장 큰 장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때 저는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히브리어 '회화'를 배운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어는 제게 죽은 언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히브리어로 시편 23편을 멋지게 암송하는 '소리'를 들은 후로는 히브리어를 '말'로 배워보면 좋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접근이 어렵다는 것이었지요. 히브리 '말'을 가르쳐주는 곳을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원스쿨닷컴에서 나온 <샬롬! 기초 히브리어>는 굉장히 반가운 책입니다! 이렇게 히브리어 기초 회화를 가르쳐주는 교재가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샬롬! 기초 히브리어>는 생소한 히브리어와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구성된 교재입니다. 먼저, 단어를 익히고, 그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반복해서 말하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히브리어 따라쓰기 무료강의'는 아직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이왕이면 연습하는 문장의 음원까지 제공해주시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부탁드려 보고 싶습니다. 문장은 단순하고 쉽지만, 발음이 정확한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요.

<샬롬! 기초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생생한 표현"을 담았습니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성지순례나 이스라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이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짧은 문장이라도, 히브리인에게 히브리어로 말을 건낼 수 있는 여행자의 예의를 보여주는 것도 멋진 일일 것 같습니다. 깜짝 놀라는 현지인들과 금방 친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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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진리 -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세계관 전쟁에 관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
리처드 마우 지음, 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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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위해

어떻게 싸울 것인가

"세상은 영적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다. 이 전쟁터에서 다양한 영적 세력들이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데, 이 세력들이 바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의'들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싸움의 본질은 하나님과 사탄의 대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38).

누군가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왜곡된 진리>를 읽으며 깨닫게 된 사실은, 우리의 '생각'(마음)이 바로 세계관 전쟁이 일어나는 전쟁터라는 것입니다. 삶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했듯이, 우리 삶은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선택'들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과 결정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지요.

(기독교적 관점에서 크게 보면) 세계관 전쟁은 하나님의 철학과 사탄의 철학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각각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데, 한마디로 하나님의 철학은 하나님이 온 우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세계관이고, 사탄의 철학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주인이 되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39).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온 시험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계의 중심이냐,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냐, 그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 책, <왜곡된 진리>의 저자 '리처드 마우'는, 세상을 바라보는 궁극적인 기준은 바로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이거나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라고 단언하며,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세계관 전쟁, 즉 하나님이 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뒤흔들고 있는 다섯 가지 '세속 사상'을 추적합니다. 인간을 찬양하는 '인본주의, 우주적 통합을 열망하는 '일원론', 이 세계를 다시 주술에 걸려고 하는 '오컬티즘', 스스로 의미와 목적을 창조하여 혼돈에서 벗어나려는 '허무주의',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상대주의'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속 사상'입니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알게 모르게 이 '세속 사상'의 세레를 받고 살고 있는 셈인 것이지요.

"이 책은 사람들의 희망과 두려움을 다룬다. 물론 희망과 두려움 자체를 말하기보다는, 이것이 오늘날 우리 문화의 주요 경향 - 몇 가지 주요 사상, 즉 많은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주의(ism) -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불안'과 그들이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상'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26).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들었던 어떤 '강의'보다 유익하고 감명 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단순히 현대의 주요 사상들을 개론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사상들에 숨어 있는 우리의 '불안'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상들이 진리를 노골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 진리를 살짝 왜곡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참 좋았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희망과 두려움을 노리며,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 왜곡시키는 방식으로 도전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하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서 '두려움'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다며 '희망'을 불어넣었다"(74).

"사도 바울에게서 진리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세대의 희망과 두려움'을 발견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음을 전하기 전에 마음과 생각을 열어 그들의 영적 갈망에 눈과 귀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지름길이다"(60-61).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탄의 거짓은 <왜곡된 진리>임을 밝히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세상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고 경고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편이고 무엇이 사탄의 편인지 분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저자의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의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주의'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함입니다. 저자는 이 '세속 사상'들을 상대로 그리스도인이 지성의 전투에 임할 때, 기독교가 우월한다는 신념 때문에 잘못된 방식으로 싸우고 있음을 매우 안타가워합니다. "진리를 위한 전투에서 승리하는 최고의 방법은 승리 그 자체보다는 '진리'에 집중하는 것이다"(104).

<왜곡된 진리>는, 세계관 전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승리에 집착하기 보다,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세속 정신에 내맡기도록 하는 실제적인 불안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 독자들이 더 집중해야 할 것은, "이 세계관들은 어떻게 해서 사람들에게 매력을 얻게 되었나?", "이 세계관들은 어떤 영적 갈망에 응답하고 있는가?", "이 세계관들을 만들어 낸 문화적 배경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곡된 진리>는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세계관 전쟁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도록 이 전투의 본질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무엇보다 열린 지성, 거듭난 지성으로 다양한 세계관들이 제기하는 도전과 진지하게 씨름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무장시켜주는 강력한 영적 무기와 같은 책입니다. 특별히 교회의 모든 청년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 열린 지성, 거듭난 지성으로 잘 무장되어 세속 사상의 세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영혼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진짜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십자군으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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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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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는

하나 되려는 간절함을

잃었을까

2021년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고 하면, 개인적으로 이 책을 1등으로 꼽고 싶습니다. 한 번 읽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이 별로 없는 제가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옆에 두고 반복해서 읽으려고 합니다. 이 책은 통곡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기쁨과 소망 가운데 춤추며 책장을 덮게 되는 책입니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하나 되라'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교회를 떨게 만드는 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 됨을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깨달으며 말씀 앞에 떨게 되는 책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 모이고, 당을 지어 수근수근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감보다는, 교회는 원래 죄인들이 모인 곳이라는 자조 속에 사실상 '연합'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교회도 많을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됨을 꿈꿀 때, '연합'이라는 주제가 이처럼 크고 중하고 무거운 주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과연 몇 교회나 될까 싶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가 교회되어야 한다며 '서로의 옳음'을 주장하다 오히려 분열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입니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교회 안에 '연합'이라는 열매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도 일깨웁니다. 만약 연합이라는 열매가 없다는 이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다는 증거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연합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관심이 없고, 또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든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가? 그렇다며 그것 자체가 진짜 문제가 아니다. 이면에 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바로, 성령이 당신 안에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실제로 구원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31).

교회 공동체가 갈라지고, 깨뜨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용히 교회를 떠나기로 결정한 뒤, 실제로 온 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겪었는데, 아직도 그 아픔이 생생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속에서 통곡이 멈추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책과 회개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를 읽으며, 그것이 성령님의 눈물, 성령님의 애통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프란시스 챈 목사님과 같이, "주님이 느끼시는 것을 저도 느끼게 도와주소서(57)"라는 기도가 터져나왔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고통스럽고 아픈 눈물일 뿐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것이 소망의 눈물로 바뀌는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아파하시는 일이 우리 공동체에서 일어났다는 죄책감과, 교회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상처가 뒤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우리가 하나 되라는 명령에 두려워 떨며 연합을 추구하려고 해도, 절대 연합을 이룰 수 없는 '당연한 충돌'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에 눈 뜨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연합,

'죽어 가는 세상'을

되살리기 위한 것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교회 안에 신자임을 자처하지만 하나님과 깊은 연결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너무도 많으며, 같은 신자를 비판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사랑하기보다 지식을 배우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상태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지금 우리는 심히 교만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미지근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일갈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이라는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스스로는 항복을 한사코 거부하는 자들이 기꺼이 그리스도께 온 삶을 바친 사람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려고 하면"(76)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자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우기는 미지근한 사람들은, 마음을 터놓고 교제하려고 해 봐야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같은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있다면 동행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연합의 문제 앞에 심각하게 질문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내 입맛에 맞는 교회, 내게 맞춤 교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 교회들은 잃은 양들의 울음소리보다 교인들의 불평에 더 귀를 기울인다.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보다 다른 교회로 떠나는 사람들을 더 안타까워 한다. 메시아를 거부하는 사람들보다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속상해한다면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95).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교회가 분열하는 이유의 심각성 뿐 아니라, 교회 연합을 위한 실제적인 면들을 다각도로 다루며,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됨'이라는 위대하고 멋진 꿈을 꾸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과 서로를 향한 사랑에서 이미 성장을 멈추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가슴에 다시 새겨야 합니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모든 사람이 그분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도 합니다. 오직 주님의 양 떼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달려올 수 있는데, 과연 온전히 연합하라는 이 준엄한 명령 앞에 '자기 주장', '자기 기준', '자기 신념'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를 주님의 양들은 누구일지 기대가 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모여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면 과연 우리가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좌절되기도 하고, 낙심되기도 하지만, 프랜시스 챈 목사님은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하나 됨을 주님이 더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와 하나가 되기를 원하셔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의 몸짓을 보여 주신 하나님이 계시다. 그런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의 하나 됨을 위해 역사하리라 믿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37).

이 책을 읽으며 뜨거운 기도 제목이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서로에 대한 사랑을 더 키워 주시기를,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연합할 수 있다고 믿는 신자들의 군대를 일으켜 주시기를, 아름다운 다양성이 숨 쉬는 공동체가 되게 해주시기를, 우리의 눈을 멀리 두지 말고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 됨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구하며 성령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며 역사하신다면,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들 가운데에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프랜시스 챈 목사님의 말을 다시 한 번 더 마음에 새겨봅니다. "성화는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다시 말해, 성화는 사랑 위에서 이루어진다"(161).

교회가 연합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떻게 연합해야 할지 막막하셨던 분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교회 공동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을 선물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모이게 해주시고, 짝지워 주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꿈을 같이 꾸자고 요청하고 싶습니다. 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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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다움 -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리처드 코킨 지음, 장성우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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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교회는 새로운 인류가 회집한 모임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며, 영원히 지속될 그분의 작품으로서 천사들이 보기에도 기이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당신의 교회를 기뻐하라(141).

교회의 타락을 비난하고, 모이는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지는 성도를 만나면 늘 '교회론'을 공부해볼 것을 권했고, 특히 <에베소서>를 깊이 묵상해볼 것을 권했습니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인지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나면, 교회의 타락을 비난하기보다 애통해하게 되고, 교회가 교회되기를 갈망하며 '교회다움'을 위해 하나님 앞에 다시 무릎 꿇게 되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론'을 공부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바로 이 책'이라고 추천해줄 만한 책을 만났습니다! 바로 이 책, 리처드 코킨의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교회다움>입니다.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교회다움>은 설교집이나 강해집이라기보다, <에베소서>를 공부하기에 좋은 교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같은 성경 본문이라도 설교하는 목회자나, 강의하는 저자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기도 하고, 유명한 설교자일수록 지은이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기 마련인데, <교회다움>은 그런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원 메시지에만 철저하게 집중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럼 점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이 책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극적인 이슈를 끌어들이지도 않고, 일부러 흥미를 유발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남다르고, 탁월하게 <에베소서>를 풀어내는지 자랑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에베소서> 본문에 집중하며, 그 진리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는 일에 철저히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교회다움>은 <에베소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드러냅니다.




그 주제란 이미 수차례 확인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런데 그 계획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이 에베소서의 핵심 사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연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간관계로서 결혼을 먼저 설명하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290).

교회다운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아마도 많은 성도들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모습을 많이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도행전적 초대교회가 '겉모습'이었다면, (당신을 위한 에베소서) <교회다움>에서 말하는 교회됨은 교회됨의 본질, 교회의 '속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한 저에게는 교회의 교회다움을 위해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을 기도하며,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해주었지만, 그것보다 더 유익했던 것은, 내가 그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영광스러움에 전율하고, 그 교회의 일꾼으로 삼아주신 은혜에 기뻐 뛰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교회다움>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그 계획의 중심에 교회가 있음을 반복해서 일깨워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상에 있는 모든 민족 가운데 사람들을 불러내어 교회를 세우시는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세워진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은혜가 영적 세계 속에 드러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영적 세계 가운데 펼쳐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성장'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족'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계획하셨고, 다양한 사람을 불러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로 세우시기 때문에 교회는 마땅히 숫자적으로도 성장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교회의 각 구성원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살면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따라 부도덕한 삶을 회개할 때 실제로 드러나기 때문에, 교회는 서로 하나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교회다움>은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변화는, 나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인 내가 교회답게 생각하는 방식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사실 대형 교회에서 사역하며, 교회의 조직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여 왔지만, 교회 안의 다툼과 분열이 얼마나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인지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것에 대해 마음과 영으로 반응하는 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또 교회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신비인지 강의를 하기도 했지만, 내 영으로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각 교회는 천상의 교회, 곧 다양한 문화에서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그 장엄하고 눈부신 하늘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하나님 백성으로서 준비하는 장소이다. 또한 악의 권세를 정복하신 하나님의 승리를 영적 세계 가운데 드러내어 만물을 그리스도 아래 복종시키려는 그분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는 장소이기도 하다"(140-141).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세상은 낯설고, 불합리하며, 고통스러운 장소일 뿐인 것처럼, 교회를 교회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의 교회생활은 인간적인 친교의 장소, 습관적인 종교행위의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문화에 의해 빚어지는 인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빚어지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교회다움>은 우리의 교회도 인간에 의해 빚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빚어지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모이는 교회'에 대한 회의와 고민이 깊어지는 지금이 바로 <교회다움>을 읽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 <에베소서>를 통해 하시고자 하셨던 말씀이 모든 믿는 자들의 가슴에 새겨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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