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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평점 :
제목이 참 강렬하다.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은 책일까?
부제가 책의 소재와 내용을 알려준다.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그런데 이상하다.
이 책,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렸다는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 굽쇼?>를 열심히 읽었는데,
내 안에 피 끓는 애국심이 물결친다.
이 책을 읽으며 난데없이 난 애국자로 거듭나고 있다!
저자 홍동원.
이분 ’구랏발’(이분 표현을 빌자면)이 장난이 아니다.
1961년생이신데 패기는 청춘을 부끄럽게 하고,
포스는 웬만한 독설가 저리 가라이다.
미적 감각과 창의력은 디자인의 기본 중의 기본이니
두말 하면 입만 아플 뿐이고,
디자인과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체력인가보다.
저자와 그 일당들은 밤 새우는 것을 일반인 잠자듯 하시는 것 같다.
TV에서 세계의 디자인에 관한 무슨 다큐를 보고 난 뒤,
이제 디자인이 권력인 시대이구나 생각했는데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 굽쇼?>를 읽으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인가 보다.
저자 홍동원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디자인이라는 작업은 노가다를 방풀케 한다.
이 책은 다지인에 디자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디자인에 경제가 있고, 경제의 또다른 이름인 자본주의가 있고,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고, 환경이 있고, 사람이 있고, 생활이 있고, 또 정치가 있다.
그리고 이 책만의, 그리고 홍동원 선생님만의 독보적인 애국심이 있다.
선생님의 공짜 달력을 좋아하고,
얼마전 우리나라 자동차 번호판 디자인이 새로 나왔을 때
저게 뭐냐고 다짜고짜 비난했던 일이 죄송스러워진다.
선생님의 공짜 달력이 그렇게 단가가 쎈 줄 몰랐고,
자동차 번호판 디자인을 할 때
1자를 4자로 쉽게 만들 수 있다든지, 3자를 8자로 쉽게 만드는 범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디자인까지 요구받는 줄 몰랐다.
(이것 말고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지만.)
노느니 그냥 글을 쓰자고, 그래서 썼다는 글인데
신은 공평하지 않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디자이너의 감각만 아니라, 글발까지,
그보다 더 중요한 철학과 깨어있는 의식과 박학다식한 예리함까지,
거기에 인맥 네트워크와 체력과 말발까지,
그리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무대포 정신까지,
너무했다.
디자인 세계에 작동하는 역학이 재밌다.
유명 디자인 뒤에 숨은 어떤 에피소드들은 신기하고 재밌고 신선하다.
어떤 에피소드들은 눈물 날만큼 감동적이고 또 뜨겁다.
나는 조직의 <교육>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
교육 교재를 기획하고 발간하는 일을 해오면서
오랫동안 출판사와 북디자이너들과 인쇄업체 사람들과 작업을 함께했다.
디자인 일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내가 아는 디자이너들은 모두가 고집불통인데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매일 새롭고 참신한 작품을 요구받지만,
자신의 틀과 색깔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을 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디자이너부터 해고 대상이 된다고 들었다.
인쇄는 유난히 사고가 많은 곳이라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다.
나는 매일 디자이너들과 싸운다.
좀 더 새롭고, 좀 더 참신하게, 좀 더 획기적으로, 좀 더 빠르게,
좀 더 윗분들 마음에 들게, 그리고 좀 더 싸게! 해달라고 말이다.
모든 기획과 상품의 가치가 최종적으로 디자인에서 판가름이 나기 때문에
최대한 기를 쓰고 좋은 디자인을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들과의 작업은 늘 피 튀기는 전쟁이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디자이너들에게 많이 미안해진다.
며칠 일하고 표지 한 장 디자인비로 몇 백씩 챙긴다고 부러워했는데,
보이지 않는 그들의 땀을 알고 나니 앞으로는 디자인비를 많이 깎지 못할 것 같다.
어느 분야이든 전문가를 만나면 늘 숙연해진다.
<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 굽쇼?>를 읽으면서 나는 숙연해진다.
이런 열정으로, 이런 성실함으로, 실력을 갖춘 전문가가,
게다가 한국적인 것,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이 배출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이 한층 아름다워지리라.
그런데 내가 크게 할 일은 없을 것 같고,
그저 진심을 담아 열렬히 응원합니다, 홍동원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