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호, 
내용이 상당히 불온하다 : 볼온(不穩)서적, 불온한 사상을 내용으로 하는 책.

이 책은 상당히 불온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었는데, 책의 끝에 소설가 이인화 선생님이 이 책을 읽고 쓴 글에 "배명훈의 <타워>는 날카롭고 불온하다>라고 첫 문장을 날려주시어 적잖이 실망했다. 내가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 말의 요지는, 내가 이인화 선생님의 표현을 빌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권력층이나 여러 기득권층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책이 불온서적이 맞다면, 이 책은 상당히 불온한 책이다. 2008년도에 국방부가 군인들 읽지 말라고 불온서적 23권을 지정해서 시끌시끌 했다는데, 내가 읽기에 이 책이 그렇게 불온하다.

674층 높이에 인구 50만을 수용하는 거대한 '타워'가 있다. 이 지상 최대의 건축물, 타워의 이름은 '빈스토크'(Beanstalk), 동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하늘까지 치솟은 그 콩줄기를 닮은 이름이다. 이 빈스토크는 어느 나라의 수도에 위치해 있는데, 특별 투자구역 지위에서 특별 자치구역 지위로 격상, 이듬해 역사상 최초의 타워 도시국가로서 대내외적인 주권을 인정받은 독립 정치제이다. 독자적인 군대도 있고, 의회도 있다. 부동산 가격과 물가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인공위성 사업을 중심으로 우주 관련 첨단 서비스의 메카로 군림하고 있다.

<타워>는 이 빈스토크 안에서 일어나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이다. 여섯 가지의 단편은 서로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빈스토크 안에서 서로 맞물려 있다.

1978년생 저자 배명훈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정도 학력이면 빈스타워에서 적어도 30층 이내 구간을 오가는 단거리 엘리베이터를 탑승할 수 있는 승차권 한 장, 즉 수직상승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왜 이런 불온한 책을 썼을까? 이제는 서울대 학벌만으로는 빈스타워 입국 자체도 어려워질 정도로 대한민국 빈스타워의 국경이 견고해졌는가? 사상 검증 없이, 빈스타워 부동산을 매입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 책 한 권으로 그는 단 번에 고층으로 수직상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주변국가의 땅에 서 있으면서도, 주변국가와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주제에, 언어와 민족 구성이 똑같은 주변국 사람들에게 비자 면제 혜택조차 주지 않는 '빈스타워', 이곳은 기득권을 가진 그들만의 공화국이다. 이 <타워>의 이야기가 대한민국의 실제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하게 그렇게 글을 썼다.

'미세권력연구소'는 현 시장 체제의 권력 구조를 파악한 다음 선거전 막바지에 그 결과를 적극 활용하려는 계획을 가진 야당 선거사무소측의 의뢰로, 빈스토크 내의 권력장, 즉 권력 분포 지도를 그리기 위해 실험을 한다. 그런데 권력의 정점에 있는 영화배우 P의 정체가 네 발로 걷는 '개'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연구는 길을 잃고 헤매는데, '미세권력연구소'의 실세인 정 교수의 두 번째 아내가 '시장 닮은 아이를 덜컥 해산한 날 밤에'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첫 번째 이야기이다.

"공권력이 불러온 냉혹한 겨울은, 겨우 목숨 하나 진실 하나 짓이긴 것에 불과하다고 해서 결코 차갑지 않은 것이 아니다"(70). 눈 뜨고 코 베임을 당해도 "악" 소리 한 번 제대로 내보지 못하는 세상이다. 모르고도 당하고, 알고도 당하는 세상이다. 알아도 말 못하고, 말해도 소용없는 세상이다. 기득권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 하나 진실 하나 쯤 짓이겨져도 괜찮은 세상이다. 

지금 <타워>는 저항보다 로망이 되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 살지 못해 모두 안달을 하고. 어디선가 '연대'만이 살 길이라는 외침이 들려오는데, 마음은 회의로 가득찬다.

전에는 이런 불온한 서적을 읽으면, 오래도록 분노와 저항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지만, 요즘엔 재밌게 읽고 잠을 잔다. 정리해고된 쌍용자동차 한 노조원의 가족이 항의하다 오열하며 땅바닥에 쓰려져 있는 사진을 보고, <타워>를 빚대어 날카로운 한마디를 하고 싶은데, 생각이 멈춘듯 멍하다. <자연예찬>의 K처럼 공권력이 나의 먼지를 털 것도 아니지만, <타워>를 읽고 날카롭다, 재밌다, 씁쓸하다를 말하는 것이 생각나는 전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안이루, 그대 때문에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 있네.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쉬고 있지만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 위엔 
같은 모습의 바람이 지나네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 가듯이 
멀리서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 거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힘겨워 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이승철이 부른 <네베엔딩스토리>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이렇게 글로 적어놓으면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된다.
글로 적고놓고 읽으며 애절한 노랫말에 담긴 사연을 혼자 상상해본다.
세상 모든 유행가의 가사가 대부분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때 사랑을 하고 있었던가?

인류는 언제부터 ’사랑’을 노래했을까?
천 년 전의 사람들은 ’사랑’을 어떻게 노래했을까?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은 천 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해지는 ’사랑’ 노래이다.
우리는 술 한 잔을 앞에 놓고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블랙 커피를 앞에 놓고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은 진한 향이 퍼지는 쟈스민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첫 만남에서부터 격정적인 사랑이 지난 후의 여운까지를 음미하는 책이다.
손을 데워주는 찻물이 서서히 식어가고, 
콧끝을 자극하는 쟈스민 차 향이 마음에 스며들며 사그라지도록 들도록 말이다.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은 중국의 고전 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음미’하는 책이다.
청량한 고전의 시가 동양의 운치를 그대로 간직한 채 현대어로 새롭게 재생된다.
저자 ’안이루’는 ’고전의 역사를 새롭게 쓴 신세대 여성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태어나면서 뇌성소아마비를 앓아 한때 자폐증을 앓기도 했다는 저자는
고전 시가를 현대적 감각으로 섬세하게 풀이하고 있는데, 
중국인들에게는 이것이 상당히 파격적인가보다.
이 책이 중국에서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며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고르고 풀이한 고전 시의 주제는 ’사랑’이다.
고전의 시에 주석 같은 풀이를 입히며 시를 해석하는 저자의 시각이 상당히 자유롭다.
작가의 사상이나 고전이 담고 있는 원래의 이야기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음미하는 시는 원 저자의 당시 상황과는 어떤 연관도 없게 된다.
옛 시인들과 교감하는 신세대 안이루의 감각으로
첫 만남, 영원을 맹세하는 사랑의 언약, 이별, 배신, 외로움, 그리움, 그리고 한 등
고전의 시가 담고 있는 사랑의 실체를 다각적으로 음미해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쓸 때, 마음이 그윽하고 향기로웠다고 고백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도 그러했다고 알려주고 싶다.
특히 천하를 품에 안고 오직 천하를 위해 춤추며 영웅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남자가
몰래 가슴에 품은 연정을 고백하는 대목에서 사랑을 믿지 않는 내 마음도 잠시 흔들린다.
"그대 때문에 지금까지 생각에 잠겨 있네."
조조도 이런 노래를 할 줄 알았다.

저자 ’안이루’는 컴퓨터가 앞에 있으면 검색창에
"한평생을 살면서 누구를 처음 만났던가?"를 입력하게 된다고 한다.
저자가 사랑의 처음을 묻는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있다고 보기 때문일까?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을 다 읽고 책을 덮을 때쯤이면 우리는 알게 된다.
"뭇 사람들 속에서 수백 수천 번 그대를 찾았네"라고 고백하던 격정도,
영원을 맹세하는 사랑도 결국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우리들이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 
맑은 물과 깊은 산이 서로 어울리듯 서로 천 리를 따라갈 것만 같지만 
엇갈려 지나면서 천천히 세월 따라 잊히는 것처럼" 초연한 향기만 남는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어렸을 때 읽은 어떤 만화책에서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우리가 사랑이 영원하다고 믿는 것은 백 년도 못 살고 죽기 때문이야."

영원을 맹세한 그들의 사랑은 허망하게 끝났을지라도,
영원을 맹세한 그들의 노래는 천 년을 넘어 우리에게 남았으니,
영원은 몰라도 천 년 쯤은 맹세를 하고, 천 년의 맹세는 믿어볼 일이다.

"어떤 사랑은 일생을 통해 잊어야만 하고, 한은 시간을 모호하게 만들 것입니다.
만약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자기 유령 스텔라 1 - 피올라 구출 대소동 보자기 유령 스텔라 1
운니 린델 지음, 손화수 옮김, 프레드릭 스카블란 그림 / 을파소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는 다가올 시간을 살게 될 거야. 시간은 가지 않아. 오는 것이지."


노란 띠지의 광고가 눈에 확 들어온다.
"출간 2주만에 해리 포터를 제친 2009년 최고의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 전 시리즈를 출간되자 마자 모두 읽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북유럽 아동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동화 시리즈"라는 평에 기대를 잔뜩 안고 읽었다.

<보자기 유령 스텔라>의 주인공은 ’천방지축 스텔라’라는 꼬마 유령이다.
천방지축 스텔라는 일곱 명의 꼬마 유령과 여섯 명의 어른과 함께 재봉 공장에서 살고 있다.
그냥 보면 일반 천조각들과 구별하기 힘든 이 유령들의 임무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천방지축 스텔라가 보자기처럼 생겼다고 우습게 보다간 큰 코 다친다.
지금은 비록 천 조각으로 살고 있지만, 위대한 유령이 되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천방지축 스텔라는 야간 학교에 다니면서 무시무시 소피아 선생님으로부터
사람들을 놀려주는 방법과 비행, 그리고 기성복’ 같은 위험한 단어들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깡통’ 같은 일이 벌어진다.
(깡통은 유령들만의 은어이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나 새로운 것, 또는 두려운 것이 있으면 모두들 ’깡통 같다’고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깡통이라고 속삭이면 그것은 최악의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신호이다.)

천방지축 스텔라의 잘못으로 친구 깍쟁이 피올라가 가방이 되어 
어디론가 팔려가 버린 것이다.
<보자기 유령 스텔라>는 10가지 삶의 진실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총10편의 시리즈로 기획되었는데,
그 1편이 바로 "피올라 구출 대소동"이다.
천방지축 스텔라는 유령을 무서워하지 않는 꼬마 피네우스 뮈삭과 함께 
깍쟁이 피올라를 구출하기 위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천방지축 스텔라와 피네우스 뮈삭이 프랑스로 가기 위해
아빠 카드를 훔치고, 비행기 티켓을 몰래 인쇄하고, 다른 꼬마의 여권을 훔치고,
또 프랑스에서도 가방으로 만들어진 깍쟁이 피올라를 가게에서 
무작장 들고 도망치는 부분은 좀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아이들을 위한 동화인데 그 내용과 교훈이 상당히 철학적이다.
"본능적인 직감과 강인한 의지 그리고 기적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60).
"만약 무지개를 보고 싶다면 비에 몸이 젖는 것도 참아야 해요, 그렇죠?"(112)
"네 목숨을 빼앗지 못한 것들은 너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지"(195).

무시무시 소피아 선생님과 천방지축 스텔라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또한 천방지축 스텔라는 여행을 하며 과거 실존했던 인물들의 유령을 만난다.
깍쟁이 피올라를 구출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 간 천방지축 스텔라는
그곳에서 사악한 유령도 꼼짝 못하는 ’빅토르’를 만난다.
빅토르는 천방지축 스텔라에게 첫 번째 진실을 알려주며, 
첫 페이지에 ’팡틴, 제1장 정의로운 남자’라고 적혀있는 가죽 표지의 책을 한 권 선물한다.
이것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 <레 미제라블>의 제1장의 제목이다.
그렇다면, 천방지축 스텔라에게 첫 번째 진실을 가르쳐준 유령은, 그 ’빅토르’? 

천방지축 스텔라가 발견한 첫 번째 진실은 이것이다. 
"시간은 가지 않아. 오는 것이지"(180).

빅토르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의 다른 쪽에는 두 개의 시간이 있단다.
다가올 시간과 지난 시간이 바로 그것이지. 
나도 아주 오래전에는 유령이 아닌 사람이었단다. 
그리고 반대로 너는 어리기 때문에 앞으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이해하지? 너는 다가올 시간에 살게 될 거야. 
사람들은 현재에 살고 있고, 그리고 나는 지난 시간에 살았지" (179).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천방지축 스텔라는 자신이 이해한 시간의 진실을 이렇게 설명한다.
"빅토르는 나이 많은 유령들은 과거에 이미 어떤 존재로 살았고,
어린 유령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어떤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제가 살게 될 시간의 앞에 있는 셈이죠.
저는 기다리고 있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현재를 기다리고 있는 것지요"(197-198).

천방지축 스텔라는 시간의 앞에 있다.
천방지축 스텔라는 다가올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빅토르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가지 않아. 오는 것이지."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어린아이들 앞으로, 그리고 내 앞으로
무궁무진한 시간이 다가오는 환상을 본다.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다. 오는 것이다!
가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이 아니라, 
다가오고 있는 시간에 대한, 우리가 살게 될 그 시간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보자기 유령 스텔라>를 읽으면, 우리가 알아야 할 삶의 진실은 물론,
용기, 인내, 도전과 같은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배울 수 있고,
또 "지난 시간을 살았던" 위대한 인물을 만날 수 있고,
1편에서는 덤으로 불어도 배울 수 있다.
천방지축 스텔라와 피네우스 뮈삭은 프랑스 여행을 하며,
불어를 다섯 단어나 배웠다!

천방지축 스텔라가 발견하게 될 나머지 9가지 삶의 진실이 몹시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도로 보는 세계 과학사
쑨자오룬 지음, 심지언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인이 작성한 과학사 족보


<지도로 보는 세계 과학사>는 BC 7000년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과학지식을 총망라한 과학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구조 분석의 방법으로 과학 분야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체계에 대해 서술하고, 동서양의 과학지식 발전 궤도의 탐색을 통해 인류 자신을 포함한 지식 세계의 변천된 역사를 나타내고자 하였다"고 저술 의도를 밝힌다.

이 책의 장점은 첫째, 동양과 서양에서 각기 문명과 함께 인류의 자연과학이 발전되어온 과정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 둘째, 수학, 화학, 물리학, 천문학, 의학, 전기, 광학, 상대성이론, 유전자이론 등 동시대의 서양과 동양에서 이룬 과학 발전의 전체적인 윤곽과 흐름의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셋쩨는 과학사의 거의 모든 내용을 찾을 수 있는 사전과도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시그마북스의 <지도로 보는 세계 OOO> 시리즈는 중국의 것을 번역 출간한 것인가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중국인이고, 저술 관점도 중국 중심이다. 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양인 답게 <지도로 보는 세계 과학사>는 과학사의 ’족보’와 같은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분석보다는 종합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동양적인 색깔도 잘 나타나 있다. 종합적인 시각으로 ’과학사’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중국인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상고시대의 중국 과학기술은 서양이 멀리서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정도로 높은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였으며 과학이 발견과 발명은 같은 시대의 유럽보다 훨씬 앞서 나갔다." 이 뿐 아니다. 중국의 제지술, 화약제조, 연단술, 나침반 등 위대한 발명품이 아라비아인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훗날 서양사회를 움직이고 앞으로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고, 서양문명에서 콜럼버스시대까지 중국의 과학 기술은 유럽인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멀찌감치 떨어져 앞서 달리고 있었다는 자부심은 ’호연지기’라는 단어까지 생각날 정도이다. 시그마북스의 <지도로 보는 세계 OOO> 시리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주체의식과 자부심을 잃지 않는 중국인의 학문 자세가 감탄스럽다. 앞서가는 서양의 학문을 ’절대’적인 것으로 추앙하며 그것을 흡수하기에 급급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인류의 과학사상은 자연에 대한 탐구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과학사의 다른 이름은 문명사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하다. 문명의 발아와 함께 발전되어온 과학사는 인류의 문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과학의 발전은 종교적 가르침(신화)을 역전시키고, 자연과 인간과 우주를 바라보는 시각을 변경시켜왔다. 그리고 그 변경된 시각은 다시 과학의 발전으로 연결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코페루니쿠스의 천문학 혁명은 종교적 가르침을 무너뜨리고, 우주에서 인류의 지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즉,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우주에서 더 이상 절대적인 위치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다시 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과학’은 양날의 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편리와 자유를 선물하기도 하지만, 또 위협과 구속이 되는 측면도 있으니 말이다. 과학은 여전히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과학이 발견한 원칙이 반드시 ’절대’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여지를 남긴다. 과학의 영역은 계속해서 탐구되어지고 있고, 발견되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은 발전 가능성이 더 많은 과학은 여전히 인류의 ’블루 오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클래식을 만나다
정인섭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극장을 자주 안 가는 편인데 선배 언니랑 극장에서 <사랑과 영혼>을 보고는, 거리에서 그 유명한 영화 주제가가 들릴 때마다, 음악이 다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해에 그 영화 음악이 엄청나게 인기여서 나는 길을 가다 멈춰 서는 일이 잦았다. 음악과 함께 기억되는 영화의 감동이 음률을 타고 조용히 마음에 살아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하다 말고 운동장 한 켠에 있는 등나무 아래 벤치에 몰래 모여 수다를 떨고는 했다. 학교 담장 밑으로 레코드 가게가 있었는데, 그 레코드 가게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우리는 미리 약속했다는 듯이 갑자기 수다를 멈추고 함께 그 음악을 들었다. 가로등이 있고, 시원한 바람이 있고, 우정이 있고, 음악이 있고, 사춘기의 고뇌와 눈물이 있었던 그 등나무 벤치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있다. 기타의 선율이 정말 로맨틱하고 낭만적이었던 <로망스>. 

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의 감동은 삶의 일부로 남아 있고, 음악으로 기억되는 삶의 일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중에 <로망스>는 영화와 추억, 모두를 간직한 가장 막강한 음악이다. <금지된 장난>, 언제 이 영화를 처음 보았는지 기억 나지 않지만 <로망스>라는 음악을 들으면, 흑백 화면과 십자가, 전쟁, 그리고 당돌한 꼬마들의 영상이 당연한 기억이라는 듯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런데 이 흑백 화면 속에 흐르는 <로망스>는 그리 낭만적이지도 않고, 전혀 로맨틱하지도 않다. 잿빛 하늘처럼 우울한 음악이 된다.

그런데 <로망스>가 클래식이었나? <영화, 클래식을 만나다>를 눈으로 읽으며, 또 책과 함께 딸려온 CD를 함께 들으며 한참 감상이 젖어 있다가 정신이 난다. <로망스>가 CD에 수록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로망스>가 클래식이었나? "로망스는 스페인 민요나 나르시소 예페스 작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작은 19세기 후반 스페인 기타리스트 안토니오 르빌러의 연습곡 중 하나인 아프페지오 연습곡으로 추측된다(!)"고 한다(28).

마로니에북스의 <영화, 클래식을 만나다>는 이제는 거의 고전으로 통하는 유명 영화 26편과 영화와 찰떡궁합으로 삽입된 클래식을 음반을 소개해주는 책이다. 26편의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디어 헌터, 아웃 오브 아프리카,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이 인상적이다.

26편의 영화는 내가 거의 장면을 외울 정도로 몇 번을 반복해서 본 영화도 있고, 보지 못한 영화도 있는데, 모두 이름은 들어본 영화이다. <디어 헌터>,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신 영화로 기억되는데 완전 몰입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쇼생크 탈출>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시는 아빠 덕에 몇 번을 봤는지 셀 수도 없고, <작은 신의 아이들>은 포스터로 기억되는 영화인데, 나는 이 영화 포스터 덕분에 친구들로부터 이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별명을 얻었다. 우리는 내용도 모르면서 <작은 신의 아이들>이라는 영화 제목을 좋아했고, 친구들이 내게는 특별한 행운이 늘 따라다닌다고 해서 이때부터 '신의딸'이라고 불렀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내 인생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이고,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이 책에 실린 26편의 영화 중에서 가장 우선으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다. 

<영화, 클래식을 만나다>는 영화에 대한 작가의 짧지만 인상적인 해석과 함께 핵심적인 영화 줄거리와 영화가 일으킨 사회적 파장이나 반응, 또 재밌는 에피소드를 함께 소개해주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사운드트랙과 추천 음반을 소개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추억과 함께,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명작과 명곡이 만나 탄생한 종합예술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영화와 음악이 흔해져서 요즘은 감동이 긴 여운을 남길 새도 없이 금새 잊혀지지만, 여기 있는 영화와 클래식들은 느리게 흐르는 큰 강물처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감동과 선율로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에 흐르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영화를 영화 이상의 무엇으로 만들어준다는 작가의 증언이 '참'인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