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인이 아니고 제가 바로 츠나구, 당신이 찾는 사자(使者)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들을 겁니다." 기가 막혔다. "전, 만나게 해준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걱정 마세요." 소년이 어깨에 멘 가방에다 손에 들고 있던 공책을 집어넣으려 했다. 코트도 그 가방도 소년의 분위기에 딱 맞아떨어지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도회적인 향기가 풍겼다. 손에 든 낡은 공책만 영 어울리지 않았다. 소년이 말했다. 진지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창구, 제가 바로 '츠나구'입니다." -11쪽
"세상이 불공평한 건 당연한 거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불공평하지. 아무한테도 정당한 건 없어."-46~47쪽
"야스히코." 이름을 부르며 내 얼굴을 쓰다듬는 손. 체온을 느낀 순간, 몸이 떨렸다. 이를 악물고 새어나오는 오열을 참았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126~127쪽
"그건 아니지만 여태껏 봐서 알아. 만나서 필요한 말을 하지 않은 탓에 평생 가슴에 짐을 지고 사는 사람도 있어. 그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눈으로 보아왔으니까 여기에 온 거야."-286쪽
"만약에 죽은 사람은 그냥 죽은 사람일 뿐, 영혼 같은 건 없다면요? 아니면 이미 성불해 저세상에서 편히 쉬고 있었다면요? 죽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건 산 사람의 이기심 아닌가요?" . . (중략) . . "죽은 사람은 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건가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점술에 매달리듯 자기 생활에 빛을 되찾고 미련을 털어버린다. 그것은 뻔뻔한 얼굴로 죽은 사람들의 존재를 소비하고 경시하는 행위가 아닐까? 그것은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사고방식이다.-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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