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도 119를 부를 수 있어."
그런 말이 저절로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본심은 아니었다. 그래서그렇게 가냘픈 목소리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소리 하는 거냐는표정이 민소림의 얼굴에 잠시 스쳤다.
"미안하다고 사과해. 그러면 119를 부를게."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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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사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고백을 시작하기에도 그보다 더 좋은 문장은 없을 것 같다. - P9

강력범죄수사1계 강력1팀 형사들이 정철희에 대해 험담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경찰청장에서부터 서울청장, 강수대장, 강수계장, 팀장까지 신나게 씹어대다가도 정철희 반장은 건너뛰고 다른 선배나 동료 형사의 흠을 잡는 것으로 넘어간다. 형사들은 정철희를 존경하는 것 같았고, 어느 정도는 분명히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 P15

나는 내가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건 신이나 양심이나 내면의 목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나 경찰 마크나 형사 한두명도 아니었다.
내가 상대해야하는 것은 이 사회의 형사사법시스템이었다. - P23

우리 형사사법시스템은 나쁜 형사에 취약해. 그러니까 이 시스템에 몸담은 사람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나쁜 부품이 되면 안 된다는 거야. 차라리 헐렁하고 게으른 게 나아. - P26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대체로 정의롭고 또 인간의 생명도 중시하는 편이지만, 정의와 인명이 전부인 것은 아니며 늘 그것들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다. - P28

만약 내가 마침내 살인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개발한다면, 그 논리를 믿는다면, 그걸 입증하기 위해 반드시 두 번째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고 스타브로긴은 거듭 주장한다. - P56

"반장님은 이게 면식범 소행일 걸로 보세요?" 연지혜가 물었다.
"아니." 정철희가 짧게 대답했다.
"왜요?" 연지혜가 물었다.
"면식범이면 잡았을 거야." - P75

"기록이 좀 허술하네요."
수사보고서를 한 시간 정도 검토한 뒤 연지혜가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 P89

모순들은 모든 사건의 특징이다. 어떤 모순점은 범인이 잡히고 난 다음에도 해결되지 않는다. 범죄는 인간사이의 상호작용이고, 인간들의 활동은 무엇이건, 언제나, 앞뒤가 잘 안 맞는다. - P103

좋은 인간을 완성하는 것은 고난이다. 좋은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사상가와 작가들이 그린 유토피아에 대해 들으며 우리는 도리어 섬뜩함을느낀다. 그런 곳은 좋은 사회일수 없다고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것이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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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시오리코 씨와 미스터리한 일상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2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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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보다는 낫다. 특히 마지막 애피소드의 반전은 꽤 흥미진진하다.. 다음 권을 계속 읽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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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나쁜 짓을 하는 게 인간적일지도 모른다.
해서는 안 될 일이라도 관심을 가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 P47

"......이 독후감은 엄밀히 말하면 잘못됐어요."
"잘못됐다니, 어디가 말입니까?"
"내용이요."
그녀는 무겁게 말을 이었다.
"이걸 쓴 사람은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었다고 할 수 없어요." - P55

"유이 양은 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끝까지 읽지 않았어요. 완전판과 불완전판의 차이를 몰랐던 것도 읽다가 말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독후감을 쓸 수 있었다면, 설명할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시노카와 씨는 잠깐 숨을 들이마시고 단호하게 말했다.
"남의 감상문을 베낀 거예요." - P87

"유이 양은 예전 졸업생이 쓴 독후감을 자기 것인 양 베꼈어요. 만일 그녀가 알아채지 못했더라도 그 사실 자체는 남아요. 그리고 읽지도 않은 책의 감상을 쓰는 건 지은이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좋아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 P93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아버지가 남긴 고서를 매입해줬으면 좋겠어." - P126

고서에 관해 자신만의 규칙을 가진 사람이 잘 알지도 못하는 가게에 소중한 책을 팔다니, 뭔가 부자연스러워요. - P148

고사카 씨의 아버님이 찾던 건 경력이 얼마 없는 고서점 직원이었어요. 고우라 씨가 혼자 매입하러 오도록 처음부터 계획한 거였죠. 매입 시기를 장례식 직후로 지정한 것도 제가 가게에 복귀하기 전에 일을 끝내고 싶었기 때문일 거예요. - P166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일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비블리아 고서당에 책을 팔러 가셨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랬듯 주소를 중간까지만 쓰고 책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어머님께서 이 집을 찾아내 책을 가져다주셨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군요." - P225

시오리코 씨의 어머니는 딸과 마찬가지로 책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아니, 시오리코 씨가 어머니에게 그 능력을 물려받았다고 해야 할까. - P226

‘최후의 세계대전’이 환상의 작품이 된 건 그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얼마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거든요. - P235

이야기를 들을수록 닮은 모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오리코 씨처럼 내성적이지는 않지만 어머니 역시 딸과 마찬가지로 자기 일에 열심인 책벌레인데다, 책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모녀 사이도 좋았으리라.
어머니 이야기를 불편해하는 건 집을 나갈 때 분명 뭔가 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 P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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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칵,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을 열자 처마 끝에 앉아 있던 참새들이 파드닥 날아올랐다.
참새들은 일직선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역 승강장까지 도망쳤다. 여느 때보다 수가 많은 걸 보니 누가 모이를 준 모양이다. 이 근처에는 잘 가꾼 넓은 정원이 있는 옛날식 개인주택이 많으니, 정원에 날아드는 새들을 돌보는 사람 한둘쯤은 있으리라. - P7

나는 책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다.
그 사실을 새삼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랑스럽게 밝힐 일은 아니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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