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가 모든 존재물의 궁극적 요소가 ‘존재‘라고 주장했을 때 그가 이해한 존재의 속성은 ‘불변성‘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불변하는 것만이 존재하며 변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지요. - P104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이 교리를 확정하는 도구로 신플라톤주의 형이상학을 사용한 탓에 기독교 신학은 지난 2,000년 동안 자신 안에 들어와 있는 이질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싸워야 했습니다. - P123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바로 이것이 존재에 대한 그리스적 개념과 히브리적 개념이 상충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인들의 존재개념은 만물을 생성·소멸시키는 역동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 P131

히브리인들에게 ‘존재‘는 영원불변한 것인 동시에 생성 작용하는 실재입니다. - P144

그리스인들은 존재든 존재물이든 모두 탈시간화함으로써 그 변치않는 본질을 통해 ‘개념적으로‘ 파악했고,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든 인간이든 모두 시간 안에서 그 운동과 변화를 통해 ‘실존적으로’ 파악했지요. - P148

존재란 생성과 작용의 ‘탈시간화된 모습이고, 생성과 작용이란 존재의 ‘시간화‘된 모습에 불과합니다. 불변이란 변화의 탈시간화된 현상이고, 변화란 불변의 시간화된 현상일 뿐입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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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정 지역의 나무와 거기서 삶을 영위하는 인간은 서로 닮은 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 P306

‘레인트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밤에 소나기가 내리면 다음 날은 한낮이 지날 때까지 그 우거진 잎사귀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려 주기 때문이에요.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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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죽었다고 외치는 시대를 거쳐 이제 인간이 신이 되리라 자처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신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지식과 소유와 권력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정도로 증대하면 과연 우리가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신의 낙원이 도래한다는 것인가? - P11

"주여, 조그만 연못 안에 거대한 별이 들어 있듯이, 유한한 제 정신 안에 무한한 당신이 계십니다." - P13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앙을 통해서고, 다른 하나는 이성을 통해서다. 전자는 은혜롭지만 자폐적이기 쉽고, 후자는 설득적이지만 자주 은혜롭지 못하다. - P15

이 책의 주된 목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정치한 이해를 통해 서양문명의 심층을 파악하자는 것이다. - P16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에 관한 다른 여느 시빗거리와는 달리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 P27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은 전혀 인간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이지요.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우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하나님이 인간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또는 아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P32

구약성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에게서 인간의 형상을 철저하게 지웠습니다. 유대교는 물론이고,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삼는 모든 종교에서 신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 P53

하나님을 가리키는 어떤 명칭보다 더 근원적 명칭은 ‘있는 자‘다. 이 명칭,즉 ‘있는 자‘는 그 자체 안에 전체를 내포하며 무한하고 무규정적인 실체의 거대한 바다와도 같이 존재 자체를 갖고 있다. - P76

네가 하나님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만일 네가 그분을 파악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 - P86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하나님이 "나는 존재다"라고 한 대답에는 ‘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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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에서 혼자 있을 때, 좀 만화 같기는 하지만 검은색 헝겊으로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어야 한다. 오른쪽 눈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모르나 실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P255

"우리 아들이 최근, 그 영화처럼 괴물에 씌었단 말이지. 그래서 일도 그만두고 칩거 중이란 말일세. 가끔은 밖으로 좀 데리고 나와야겠는데 시중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해. 자네가 그 일을 좀 맡아 줄 수 있겠나?" 은행가는 전혀 웃음기가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 P257

이 남자가 ‘그것‘이라고 부르는 것의 존재를 믿는 척해야 할까. 그는 진짜로 완전히 미쳐 버린 사람일까 아니면 단지 나에게 농담을 걸며 유머를즐기는 포커페이스일까. - P266

그것은 면으로 된 속옷을 입은 굉장히 커다란 아기라고 하더군요. 거기다 거의 캥거루만 한 크기랍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하는 거죠. 그리고 그 괴물 아기는 개와 경찰을 무서워한대요. 이름은 아구이라고 하고. - P271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영혼은 사후 세계에서 어떤 상태가 되는 거야? 어떤 추억을 가지고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거냐고? - P282

"당신은 사람보다 나무가 보고 싶은 거죠?" 독일계 미국인 여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파티 참가자들로 가득 찬 응접실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내어 건물을 잇는 넓은 복도에서 현관을 가로질러 광대한 어둠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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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초입이었다. 이슥한 밤거리에 서 있자니 안개 알갱이가 딱딱한 가루처럼 뺨과 귓불을 때렸다. 나는 가정교사로 가르치는 프랑스어의 초급 교재를 외투 주머니에 찔러 넣고 추위에 맞서 몸을 웅크린 채 교외로 나가는 막차 버스가 안개 속에서 배처럼 흔들리며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P150

절대로 이름을 알려 주어서는 안 된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째서 나는 선생을 따라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이대로 피로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선생의 의지대로 끌려가 버린다면 내가 받은 굴욕을 온 천하에 광고하고 선전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 P168

외국 군인을 태운 지프 한 대가 새벽안개를 헤치고 달려오고 있었다. 올가미에 걸린 새의 날개를 철사에 둥글게 꿰어서 어깨에 메고 산골짜기 외딴곳의 자기 사냥터를 돌아보던 소년은 숨을 죽이고 한동안 지프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 P174

"거짓말하지 마. 내가 속을 줄 알고?" 통역이 막말을 했다. "군대의 물건을 훔친 자식은 총살당해도 하는 수 없어. 그래도 좋단 말이지?" - P182

오늘은 내 생일이다. 나는 열일곱이 되었다, 세븐틴이다. 가족이라는 아버지, 엄마, 형 모두 오늘이 내 생일이란 걸 모르거나 혹은 모른척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잠자코 있었다. - P192

나는 신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심정으로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노려보았다. 얼굴색이 푸르죽죽했다. 이것은 상습적으로 자위를 하는 자의 얼굴색이다. - P196

내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이 짧은 생 다음에 몇억 년도 더 무의식의 제로 상태로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 이 우주, 그리고 또 다른 우주가 몇억년이고 존재하는데 나는 그동안 죽제로 상태다. 영원히 나는 사후의 무한한 시간을 생각할 때마다 공포에 질려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 P211

내가 성실하게 죽을힘을 다해서 꼴사나운 800미터 달리기를 마치고 받은 대접은 이렇게 심한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초라하고 꼴사나운 세븐틴이라고는 하지만 타인의 세계가 나를 대하는 방식은 정말 부당했다. 나에게 너무 심한 짓을 한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타인들의 현실 세계에서 선의를 찾아내기 위해 매달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 P229

나는 사심을 살육한 순간, 나 개인을 지하 감옥에 가둔 순간 새롭게 불안을 모르는 천황의 아들로 태어나며 한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 천황 폐하가 선택해 주시기 때문이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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