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멀리 바닷가 바위더미 위에 키가 훤칠하게 큰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이마에 손을 얹고 자세히 바라보니, 이게 누군가? 금모사왕 사손이 아닌가! . 장취산의 놀라움은 실로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은소소와 그 엄청난 재앙을 겪은 뒤에 이제 이 섬에서 오붓하게 안주하기를 바랐는데, 저 무서운 마두가 또 들이닥칠 줄이야 누가 알았던가? - P108
무인(武人)에 대한 욕설은 멀리 당나라 때부터 송나라를 거쳐서 차츰 남송 말년까지 내려왔다.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 다섯 원로부터 차례차례 욕을 먹더니 그다음에는 곽정 대협, 황용 여협, 신조대협 양과, 소용녀 부부까지 내려갔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무당파 개산조사 장삼봉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 P120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였다. 사손의 칼춤이 흠칫하더니 전극에라도 맞은 듯 몸뚱이가 부르르 떨리면서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응애……! 응애……!" 사손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P124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녀는 사손에게 애절한 말씨로 간청했다. "사선배님, 저희가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무슨 일인지, 말씀해보시게." "이 아기를 선배님 양자로 거두어주세요. 이 아이가 자라서 선배님을 친아버님처럼 봉양해드릴 수 있게 말이에요. 선배님이 돌봐주시면, 이 아이는 일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수모를 당하는 일이 없을 거예요. 어떠신가요?" 장취산은 아내의 애틋한 속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얼른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정말 좋은 생각이오. 사선배님, 저희 부부를 저버리지 않으신다면 제발 수락해주십시오. 이 후배가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P129
"이거야말로 내가 자네들한테 감사드려야겠네. 내 눈을 멀게 한 원한은 우리 이것으로 깨끗이 잊어버리세. 나 사손은 비록 친아들을 잃었으나 이제 아들을 새로 얻었으니, 장차 사무기는 천하에 명성을 떨치게 될 걸세. 앞으로 세상 사람들은 사무기의 부모가 장취산과 은소소요, 양부는 금모사왕 사손이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거야!" - P131
"당시 나는 온몸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써늘해졌지. 손발마저 덜덜 떨렸으니까…… 그 사람의 무공 실력으로 내 한 목숨 끊어버리기는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쉬웠을 것이네. 그가 말한 번뇌의 바다는 끝이 없으나, 마음을 돌이키면 그곳이 피안‘ 이란 말이 순간적으로 귀에 들렸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한 말이었으나, 자비심으로 가득 찬 것임을 나는 똑똑히 들었네…" - P160
당시 사손은 노름판에서 마지막 남은 밑천을 다 걸고 최후의 승부를 건 셈이었다. 천령개를 내리치는 그 손바닥에는 확실히 혼신의 공력이 담겨 있었다. 이제 공견대사가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는 제 손으로 정수리를 박살내고 죽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복수를 못할 바에야 더는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견대사는 일이 심상치 않게 돌변하는 것을 보자 큰 소리로 외쳐대며 사손을 구하러 달려들었다. "안 되오! 어째서 그런 짓을…….." - P179
"무기야, 중원 땅에 돌아가거든 아무쪼록 네 이름을 ‘장무기’ 라고 대야 한다. ‘사무기‘ 란 이름은 네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알겠니?" "큰아버지 큰아버지....." 무기는 두세 번 고함쳐 부르다가 끝내 목을 놓아 대성통곡하기 시각했다. - P195
"소소, 이분이 바로 내가 늘 얘기하던 유연주 둘째 사형이오. 형님, 이쪽은 제 아내와 아들 무기입니다. 형님한테는 제수가 되고 조카뻘이 되는 셈이지요." 장취산의 말에, 유연주와 이천원은 동시에 대경실색했다. 지금까지 천응교와 무당파가 피를 튀기며 목숨 걸고 싸우던 판국이었는데, 이들 양쪽 집안의 두 남녀가 부부가 된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낳았다니 이야말로 놀라 자빠질 노릇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 P205
"악한 짓을 일삼던 살인마 사손은 이미 구 년 전에 죽었습니다." "사손이 죽었다고………?" 깜짝 놀란 유연주와 서화자, 위사랑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은소소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이 아이를 낳던 그날, 악적 사손은 미친병이 발작하여 남편과 저를 죽이려다 별안간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고 심병(心病)이 도졌습니다. 그래서 나쁜 짓을 마구 저지르던 악적 사손은 이미 죽었습니다." - P211
"각원조사께서 임종 직전 《구양진경》을 암송하셨을 당시 그것을 들은 분이 세 분 있었다고 하셨는데, 한 분은 물론 사부님이시고, 또한 분은 소림파 무색대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자 분으로 바로 아미파의 개창조사이신 곽양 여협이었다고 하셨소." - P265
어진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사부님 말씀으로는 당시 곽여협의 마음속에 잊지 못할 남자 한 분이 자리 잡고 있었다더군요. 바로 양양성 공방전이 한창일 무렵, 몽골 황제 몽케 카간(蒙哥可汗)을 바윗돌로 쳐 죽인 신조대협 양과였지요. 그 후 곽여협은 천하를 방방곡곡 다 뒤지고 다녔지만 사모하는 신조대협을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유랑하던 곽여협은 나이 사십 세가 되던 해에 돌연 대오각성하여 속세를 버리고 비구니로 출가하셨다가 훗날 아미파를 창건하신 겁니다. - P267
"무기야, 이 엄마한테 한 가지 약속해다오." "말씀하세요, 엄마." "성급히 복수할 생각은 마라. 천천히 기다려서 네 무공이 강해지거든 그때 가서 저 사람들을 모두 죽여라. 한 사람도 빠뜨려선 안돼." - P432
그녀는 무기를 품에 안고 귓속말로 소곤소곤 얘기했다. "얘야, 네가 자라서 어른이 되거든 여자한테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예쁘게 생긴 여자일수록 남을 더 잘 속인단다." - P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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