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은 아마 제갈량도 별 도리가 없을 거야. 넌 이번에 세 가지 큰 공을 세웠는데 난 하나도 포상해주지 못했어. 첫 번째는 모동주를 잡아온 공로고, 두 번째는 몽골과 서장의 병마를 설복한 것이고, 좀 전에 사람을 시켜 역도들을 처단하고 태후마마를 위기에서 구해준 것이 세 번째 공로지. 넌 어린 나이에 이미 백작에 봉해졌으니 그 이상, 왕에 봉할 수는 없잖아?"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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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본과 서천천은 노인과 노부인을 향해 덮쳐갔다. 그러자 노부인은 왼손을 흔들면서 오른손으로는 병약한 사내를 가리켰다.
"너희들도 내 아들이랑 놀아봐!"
그러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마치 전노본과 서천천이 자기 아들에게 얻어맞는 것을 지켜보며 즐기겠다는 심보같았다. - P38

"한데 어르신과 노마님은 존성대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노부인이 대답했다.
"우린 귀가네."
위소보는 속으로 투덜댔다.
‘하고많은 성 중에서 하필이면 귀가냐? 거북이 ‘귀‘ 자라, 정말 웃기는구나‘
그는 무식해서 돌아갈 ‘귀‘자를 거북이 ‘귀‘자로 생각한 것이다. - P55

여인들은 한바탕 울고 나서 위소보에게 무릎을 꿇고 원수를 잡아와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위소보도 얼른 절을 올려 답례했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만약 또 무슨 원수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다 잡아오겠습니다.
셋째 마님이 말했다.
"간신 오배도 위 공자가 죽여줬고, 이번에 오지영까지 잡아와 원수를 갚게 해줬어요. 이제 원수를 다 갚았으니 더 이상 원수는 없어요."
여인들은 서둘러 영위를 치우고 영패를 불태웠다. - P70

내가 뺨을 때려야겠다고 한 것은 네가 너무 겁 없이 설쳤기 때문이야. 상대방은 천하가 다 아는 대명이 쟁쟁한 ‘신권무적神拳無敵‘ 귀신수, 귀 어른이야. 공력이 얼마나 심후한지 아니? 네가 갖고 있는 그 개똥 같은 몽한약 따위는 저 어르신에겐 그저 후춧가루에 불과해 먹어봤자 끄떡도 안 할 거야. - P72

그러고는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 수급의 변발을 잡고 들어올려 탁자에 내려놓았다. 촛불의 빛을 빌려 자세히 보니, 수급은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있는데 텁석부리였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위소보는 기절초풍하며 뒤로 두세 걸음 물러났다. 절로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 이 사람은.… 오대형이야!"
하척수도 약간 놀란 모양이었다.
"아는 사람이냐?"
위소보가 대답했다.
"그는..… 우리 회의 형제예요. 오육기 대형이라고…." - P79

진근남이 귀신수에게 말했다.
"영랑은 재미있다고 하는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귀신수는 풀이 팍 죽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귀이랑에게 말했다.
"사람을 잘못 죽였어."
귀이랑도 안색이 변했다.
"네, 사람을 잘못 죽였어요. 오삼계 그놈한테 당한 거예요!" - P94

귀신수는 아들이 자꾸 민망한 꼴을 보이자 손목을 잡고 성큼 밖으로 걸어나갔다.
군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육기는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호걸인데 얼토당토않게 한 백치의 손에 죽었으니 이보다 원통한 일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너무나 억울했다. - P100

지난날 청량사에서 승려생활을 할 때, 강희가 그림 성지를 보낸 적이 있다. 위소보는 그 그림을 보고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지금 상황이 긴박해지자 그도 그림으로 상소문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 P135

위소보는 품속에서 갈이단과 상결이 써준 상서를 꺼내 앞으로 두걸음 나서 강희에게 바쳤다.
"황상, 기뻐하십시오. 서장과 몽골의 병마는 모두 오삼계에게 등을 돌리고 황상께 충성하기로 했습니다."
강희는 그렇지 않아도 연일 군사작전을 구상하며 행여 서장과 몽골이 오삼계에게 호응할까 봐 걱정을 했는데, 지금 위소보의 말을 듣고는 놀라움과 기쁨이 교집됐다.
"그게 사실이냐?"
그는 상서를 펼쳐 읽어보더니 더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손짓으로 시위들로 하여금 모동주를 데리고 나가 있게 하고, 위소보에게 물었다.
"이렇듯 막중한 일을.… 어떻게 이뤄낸 거지? 빌어먹을! 역시 복장이라니까!"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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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소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현자야, 넌 요순어탕이니 절대 그 늙은 개뼈다귀의 마누라를 탐할 리가 없어. 난 지금 벼랑 끝에 서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널 못된 황제로 만든 것이니, 화내지 말고 이해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 - P295

오지영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 대인, 저… 그는・・・ 지금..…."
혀를 깨물었는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한참 있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그 고염무와 사가 그리고 또 여씨 성을 가진 사람을 모두・・・관아에 가둬놨습니다." - P363

오지영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오육기는 암암리에 모반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 서신이 바로 확실한 증거입니다. 절대 발뺌하지 못할 겁니다. 제가 앞서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군정 기밀이라고 한 게 바로 이 일입니다."
위소보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아차! 큰일이 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 P364

쌍아는 훌쩍이며 말했다.
"나한테 잘못한 게 아니라 오지영은 우리 집안의 불구대천의 원수예요. 장씨 문중 어르신들과 도련님들이 다 그놈 때문에 죽었어요."
위소보는 이내 깨달았다. 그날 밤 귀곡산장에는 모두 과부들 뿐이었고, 방 안에 많은 위패가 모셔져 있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그 원흉이 바로 오지영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그날 장씨문중의 셋째 마님이 오지영의 이름을 거론했던 것도 같았다. - P372

"천지회 청목당의 향주 위소보가 형제들과 함께 고 군사와 사 선생, 여 선생께 인사 올립니다."
그날 사이황은 오육기의 밀서를 받고 몹시 기뻐하며 여유량을 양주로 불러 함께 고염무를 찾아가 앞일을 상의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지영이 고염무의 시집을 찾아내 관병들을 이끌고 들이닥쳐서 사이황과 여유량까지 다 잡아들였다. 그리고 사이황의 몸을 뒤져 오육기의 밀서를 찾아낸 것이다. 세 사람은 죽고 싶을 정도로 후회막급이었다. 자신들이 목숨을 잃는 것은 고사하고, 오육기의 밀서가 유출되면 사건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흠차대신이 바로 천지회의 향주일 줄이야! 다들 놀라움과 기쁨이 교집돼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 P379

위소보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 걱정 붙들어매요. 북경에 가면 하녀들이 줄줄이 서서 시중을 들 테니 아무 일 안 해도 돼요. 그리고 평생 쓰고도 남을 돈이 있어요."
위춘방은 연신 고개를 내둘렀다.
"이 썩을 놈아, 아무 일도 않고 가만히 있으니, 이 어미더러 갑갑해 죽으라는 거냐? 하녀들이 줄줄이 서서 시중을 든다고? 내가 무슨 팔자에 그런 호강을 누리겠냐? 아마 사흘도 못 가서 꼴까닥할 거다." - P399

"소보야, 이 많은 돈을 어디서 훔쳐온 건 아니겠지?"
위소보는 품속에서 주사위 네 개를 꺼내 흔들면서 소리쳤다.
"만당홍滿堂紅!"
그러고는 주사위를 탁자 위에 데구루루 던졌다. 놀랍게도 주사위 네 개가 다 4점 향이 나왔다. 최고의 점수 ‘만당홍‘이었다. 위춘방은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웃으며 말했다.
"이 빌어먹을 녀석이 어디서 이런 기술을 배워왔지? 야, 이놈아!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위소보는 어머니가 좋아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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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갑자기 땅굴 위쪽에서 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우린 총독 대인이 야크사(흑룡강 연안)에 온 것을 알고 만나뵙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 말이 귀에 들어오자 위소보는 마치 온몸에 찬물을 끼얹은 듯 등골이 오싹해지고, 청천벽력을 맞은 듯 기절초풍했다. 그 음성의 장본인은 바로 다름 아닌 신룡교의 교주 홍안통이었다. - P27

귓전에는 계속 홍 교주와 러시아 총독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리고 통역을 통해 그 내용도 알 수 있었다. 오삼계가 출병을 하면 양쪽에서 만청을 협공하자는 내용이었다. 그 몽골인 털보 한첩마가 한 말과 완전히 일치했다. - P29

소피아는 까르르 웃었다.
"우린 내일 돌아가, 모스크바로."
위소보는 모스크바가 어딘지 몰랐다. 그래도 무조건 엉겨붙었다.
"아름다운 공주님이 모스크바에 가면 이 중국 대관도 모스크바에 간다. 아름다운 공주가 달나라에 가면 이 중국 대관도 따라서 달나라에 간다."
소피아는 영리하고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위소보가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널 데리고 모스크바에 간다." - P41

영장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저 명에 따를 뿐입니다. 황태후께서 공주님더러 이곳에서 편히 지내시랍니다. 표트르 1세 폐하께서 등극 50주년을 맞이하면 공주님도 경축예전에 초대하겠답니다."
소피아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표트르 등극 50주년이라고? 그럼 나더러 여기서 50년이나 기다리란 말이냐?" - P49

"우리 중국에 측천무후則天武后라는 여황제가 있었는데, 그녀는 많은남자 황후들을 거느리고 아주 즐겁게 살았어. 공주, 내가 보니까 공주도 그 측천무후와 비슷해. 자기가 여황제가 되는 게 낫잖아!"
그 말에 소피아는 귀가 번쩍 뜨였다. 여황제가 된다는 것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러시아에는 여태껏 여황제가 없었다. 여자는 사황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 정말 여황제가 있었다면 러시아에도 여사황이 없으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 P52

소피아는 곧 대·소 사황의 이름으로 칙령을 내려 위소보를 타타르 지방을 다스리는 백작에 봉하고, 대신을 시켜 국서를 작성해서 위소보로 하여금 중국 황제에게 전하도록 했다. 그리고 사신 한 명과 카자크 기병대를 시켜 위소보를 호위케 했다. 물론 금은보화를 비롯해 많은 재물을 하사했다. 위소보한테 받았던 은표 10만여 냥도 돌려주었다. 그 외에도 중국 황제에게 보낼 초피를 비롯해 보석 등 러시아의 귀중한 특산을 바리바리 챙겨주었다. - P83

러시아의 사신이 귀국한 후 강희는 위소보의 공을 치하했다. 위소보는 이번에 오삼계의 막강한 후원자인 러시아와 신룡교의 위협을 제거했으니, 그 공을 인정해 삼등충용백에 봉했다. 왕공대신들은 모두 앞다퉈 위소보를 축하해주었다. - P92

강희는 앞으로 몇 걸음 옮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너는 내 명을 받들어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고생이 많았다. 오대산을 비롯해서 운남, 신룡도, 요동, 마지막에 러시아까지 다녀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네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보내줄까 한다."
위소보가 얼른 말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좋은 곳이 바로 황상 곁입니다. 황상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들을 수 있고, 황상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마음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몰라요. 황상, 이 말은 저의 진심이지 절대 아첨을 떠는 게 아닙니다." - P117

위소보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황상, 말씀드리기가 좀 쑥스러운데.. 저희 집은 여춘원이란 기루예요. 양주에서는 그래도 손에 꼽히는 아주 큰 기루죠."
강희는 빙긋이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쩐지 말투가 시정잡배들이나 다름없었어. 선비 집안 출신일 리가 없지. 그래도 나한테 그런 수치스러운 일까지 다 털어놓는 걸 보면 녀석이 나에 대한 충심은 확실해."
사실 위소보가 자기 집이 기루라고 말한 것도 허풍을 세게 친 거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저 기루의 기녀일 뿐이지 주인이 아니니 말이다. - P121

그때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날 시랑 등을 대동해 천진에 가서 당고항을 통해 바다로 나갈 때, 수사 총병 황보는 자기한테 아주 깍듯이 대했는데 유독 텁석부리 무관 한 사람만이 자기한테 눈살을 찌푸리고 입을 삐죽거리며 얕잡아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그 무관의 이름을 잘 기억해두지 않았으니 지금은 당연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처럼 아첨을 떠는 사람은 진짜 실력이 없어. 그 텁석부리는 아침을 하지 않으니 틀림없이 실력이 있을 거야." - P128

"텁석부리가 어떻다는 거요? 지금 우릴 갖고 장난하는 거요?"
목청이 어찌나 큰지 위소보와 명주는 다 깜짝 놀라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지른 사람은 체구가 아주 우람해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그는 만면에 노기가 가득해 수염이 고슴도치처럼 빳빳하게 곤두서 있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처음엔 멍해 있다가 바로 반색을 했다.
"맞아요, 맞아! 저 노형이에요. 내가 찾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오!"
그 텁석부리는 버럭 화를 냈다.
"지난번 천진에서 내가 눈을 좀 부라렸다고, 이제 와서 복수를 하겠다고 불러온 거요? 흥! 난 잘못한 게 없소이다! 무조건 죄명을 뒤집어씌우진 못할 거요!" - P130

조양동은 서재에 책이 잔뜩 진열돼 있는 것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우아, 나이는 어린데 학문은 뛰어난가 보지.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과는 역시 다른 모양이야.‘
위소보는 그가 책을 훑어보자 웃으며 말했다.
"조 대형, 솔직히 말해서 저 책들은 그냥 멋으로 장식해놓은 거요. 내가 아는 글이라곤 다 합쳐봤자 아마 열 글자도 못 될 거요. 이름이 ‘위소보‘인데, 세 글자를 합쳐놓으면 그래도 알아보겠는데, 따로따로 떨어뜨려놓으면 종종 헷갈리는 경우도 있소. 그러니 책은 나하고 친할지 몰라도 난 책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아요."
그 말에 조양동은 하하 크게 웃었다. 그리고 이 어린것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솔직담백한 것 같아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위 대인, 비직이 앞서 무례한 언동을 한 것을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 P133

위소보가 말했다.
"난 전혀 나무랄 생각이 없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이번에 다시 조대형을 찾지도 않았을 거요. 난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있어요. 실력이 없는 사람은 아침을 떨어서 승승장구를 하더군요. 그러니 아첨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실력자죠." - P134

그는 백작부로 돌아와 조양동에게 승진을 약속했다. 아니나다를까, 며칠 후에 병부에서 발령장을 보내 조양동을 총병에 임명하고, 위소보의 지휘를 받게 했다. 조양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격했다. 이 소년 상사를 모시면 아침을 하지 않아도 승진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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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신 좀 봐. 아가의 일 때문에…."
그는 여인을 멍하니 응시하더니 홀연 느껴지는 게 있어 바로 목청을 높였다.
"아가의 어머니군요!"
여인은 나직이 말했다.
"정말 총명하시군요. 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알아차리셨네요."
위소보가 말했다.
"당연히 금방 알아차릴밖에요. 너무 닮았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아가사저는 당신만큼은 아름답지 않아요." - P98

여인은 몸을 일으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천추의 한으로 남을 천 억울함을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정말 고마워요."
위소보는 당황해서 얼른 답례를 하다가 눈이 둥그레졌다.
"아니… 아니… 그럼・・・ 어이구, 맞아요! 내가 왜 이렇게 멍청하지?
바로 진원원이군요! 진원원이 아니라면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이런 미모를 가질 수 있겠어요?" - P99

진원원이 나직이 말했다.
"이자성이 날 빼앗아갔고, 나중에 평서왕이 다시 날 빼앗아갔죠. 난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었어요. 누구든 힘이 세면 빼앗아 갈 수 있었으니까요." - P112

여기까지 듣고 나서 위소보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 대충 윤곽이 잡혔다. 구난은 오삼계를 너무 증오해 단순히 그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한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아 그의 딸을 납치했다. 그리고 무공을 가르쳐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도록 만든 것이다. - P122

위소보가 소리쳤다.
"여기서 누가 대역무도한 죄인이란 말이오? 왜 죄 없는 사람을 모함하는 거요?"
오삼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허 웃었다.
"그 늙은 중이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군. 넌 지금 그에게 속고 있는 거야. 대체 누구를 위해 아까운 목숨을 버리겠다는 거지?"
노승이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난 한 번도 나 자신을 숨긴 적이 없다. 봉천왕 이자성이 바로나다!" - P132

구난이 냉소를 날렸다.
"이런 희한한 일이 있다니, 오늘 이 작은 선방에서 고금 천하제일의 역적과 고금 천하제일의 매국노가 한자리에 모였군!"
위소보가 얼른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고급 천하제일의 미인과 고금 천하제일의 무공 고수도 함께 있죠."
그 말에 구난의 차가운 얼굴에도 한가닥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 어찌 천하제일의 고수라 할 수 있겠느냐? 너야말로 천하제일의 익살스러운 땅꼬마지!" - P136

구난은 턱을 치켜들고 하하 웃었다.
"그가 나와 아무 원한이 없다고? 소보야, 내가 누군지 말해줘라. 그래야만 매국노와 역적이 내 손에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지!"
위소보가 말했다.
"나의 사부님은 바로 대명 숭정 황제의 친생 장평 공주요!"
오삼계와 이자성, 진원원은 일제히 놀란 외침을 토했다.
"아!" - P137

아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러고는 이자성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야! 그 여자도 나의 어머니가 아니고!"
이어 구난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 당신도 나의 사부님이 아녜요! 다들..… 다들 나쁜 사람이야!
왜 다들 날 괴롭히는 거야? 다… 다 미워!" - P162

유대홍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위 향주, 누가 먼저 오삼계를 쓰러뜨리느냐를 놓고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해왔는데, 이젠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난 것 같소. 돌아가서 진총타주께 전하시오. 목왕부는 천지회에 승복했소. 위 향주가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아마 평생을 두고도 다 갚지 못할 거요. - P165

위소보는 상대방이 천지회 형제임을 거듭 확인하고 자신을 밝혔다.
"형제는 위소보라 하며 현재 청목당의 향주로 있습니다. 형장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며, 어느 당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습니까?"
비렁뱅이가 대답했다.
"형제는 오육기라 하오. 현재 홍순당의 홍기향주紅旗香主로 있소. 오늘 위 향주와 형제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갑소." - P224

호일지가 그의 말을 받았다.
"죽여도 상관없어요. 그것도 좋은 일이죠. 만약 그녀가 위 형제를 죽였다면 속으로 아무래도 조금은 죄책감을 느낄 거고, 밤에 꿈속에서 위 형제를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낮에 하릴없이 심심할 때도 가끔 생각이 날 테고… 아예 존재 자체도 모르고 무관심한 것보다야 훨씬 낫잖아요?"
오육기와 마초흥은 서로 마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여자한테 미쳐도 어떻게 이 정도로 미칠 수가 있나,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었다. - P248

마초흥은 탄식했다.
"국성야 같은 영웅에게서 어쩌다 이런 못난 후손이 태어났지?"
성질 급한 오육기가 열을 냈다.
"그가 만약 다시 대만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총타주님을 난처하게 만들거야.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여기서 해결해버리지!"
정극상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아… 아녜요! 대만으로 돌아가면 아버님께 말씀드려 진영화, 진선생에게 아주 큰 벼슬을 내리게 할게요" - P261

위소보는 진근남에게 무릎을 꿇고 작별의 인사를 올렸다. 진근남은 그를 부축해 일으키면서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 좋다. 역시 이 진근남의 제자답구나."
위소보가 가까이서 보니, 콧수염이 희끗하고 안색도 초췌해 보였다.
근자에 이모저모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느라 많은 풍상을 겪은 탓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는 사부에게도 뭔가 선물하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었다.
‘사부님은 은자나 금은보화 따위는 드려도 받지 않을 거야. 그리고 무공이 고강하니 비수나 보도 사양하겠지.‘
그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사부님, 한가지 긴요하게 말씀드릴 일이 있어요."
오육기와 마초흥은 그들 사제지간에 따로 할 말이 있을 거라 생각해 바로 자리를 피해주었다. - P283

"사부님, 사부님께는 따로 드릴 것이 없으니 이 양피지 쇄편을 받아주십시오."
진근남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아니, 이게 뭔데 그러느냐?"
위소보는 그 쇄편에 얽힌 사연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진근남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갈수록 안색이 심각하게 변했다. 태후를 비롯해 황제, 오배, 청해의 대라마, 외팔 여승 구난, 신룡교의 교주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다들 노심초사 이 쇄편을 손에 넣으려 했고, 그 속에 만청의 용맥과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P284

오육기가 말했다.
"위 형제, 이젠 서로 허물이 없으니 말을 놓겠네."
위소보가 얼른 그의 말을 받았다.
"네, 저도 그게 편합니다.
그러자 오육기가 진지하게 말했다.
"위 형제, 난 위 형제가 데리고 있는 쌍아와 결의를 맺어 의남매가 되었네."
그 말에 위소보와 마초흥은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쌍아는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인 채 몹시 겸연쩍어 했다. - P291

도로 엉성했다. 구난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넌 비록 내 문하에 들어왔지만, 성격으로 봐서 도저히 무학을 익힐 재목이 아니야. 이렇게 하자. 우리 철검문에 신행백변이라는 무공이 있다. 지난날 나의 스승이신 목상도인께서 창안한 건데, 경공으로는 아마 천하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경공술은 우선 내공부터 깊이 닦아야 가능한데, 넌 틀린 것 같고.… 나중에 만약 위기에 닥쳤을 때 어떻게 그 위기를 모면할까를 생각해봤다. 결국 그냥 달아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밖에 없을 것 같구나."
위소보는 ‘얼씨구나‘ 좋아했다. - P294

강희는 깔깔 웃었다.
"널 일등자작으로 승진시키고, ‘파도로’라는 칭호를 내리겠다. 봉천에 주둔하고 있는 병마를 이끌고 신룡교의 반도들을 소탕하도록 해라!"
위소보는 무릎을 꿇고 성은에 감사한 다음 말했다.
"소인은 벼슬을 크게 할수록 복도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 P331

위소보는 어쩔 수 없이 강희의 명을 받들게 됐지만 심히 걱정스러웠다. 신룡교의 홍 교주는 무공이 탁월하고, 교내엔 고수들이 구름처럼 깔려 있다. 자기가 그저 궁수들과 창칼을 쓰는 병사들을 이끌고 신룡도로 쳐들어간다면 그 ‘충수무강‘의 주인공은 자기가 되기 십상일 것이었다. - P332

"네, 그렇군요. 그런데 왜 한사코 대만을 치려고 하죠?"
색액도가 다시 설명했다.
"시랑은 원래 정성공 휘하의 대장군이었는데, 나중에 정성공이 그가 모반을 꾀할 기미가 있다고 의심해 체포하려고 하자 달아나버렸네. 그러자 정성공은 홧김에 그의 부모와 처자식을 모두..."
여기까지 말하고는 오른손을 칼처럼 세워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나서 다시 말했다. - P337

문무백관들은 흠차대신을 맞이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다들 아부를 하며 극진히 대접했다. 그런데 유독 무관인 한 텁석부리가 몹시 오만하게 굴었다.
절을 할 때도 대충대충 얼버무리는 등 위소보가 아예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위소보는 그가 눈에 거슬리고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당장 가까이 불러 혼쭐을 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 P358

이번에 붙잡힌 것도 따지고보면 방이 때문이었다.
‘그래! 이번에 만약 여기서 벗어나게 된다면 다시는 상대 안 할 거야! 그 계집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쳐다본다면 내 성을 갈겠다! 이미 두 번이나 속았는데, 또 속을 수는 없지‘
그러나 방이의 요염하고 달덩어리처럼 아름다운 얼굴과 달콤한 미소, 늘씬한 몸매를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답게 바로 생각을 달리했다.
‘그래, 성을 갈면 가는 거지 뭐! 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잖아. 성이 뭐든 무슨 상관이야?‘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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