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장량과 한신이 함께 한왕을 찾아왔다.
"대왕, 이제 동쪽으로 밀고 나아갈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항왕은 결국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졌습니다." - P186

진평에게서는 전혀 서생티가 나지 않았다. 또 인간에 대한 지식도 세 사람 모두 남달랐지만, 진평은 특히 탐욕이나 허영 같은 인간의 약점에 밝아 이채로웠다. - P214

그런 생매장이 거지반 패왕의 손아귀에 들어온 천하를 다시 잃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 P224

열흘이 지나도 성양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패왕도 그곳의 싸움을 길게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처음 겪는 어려움이 패왕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초나라의 허술한 보급과 병참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이었다. - P247

장량과 한신, 진평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장수들에게도 의제의 죽음을 크게 내세워 패왕을 치는 대의명분으로 삼는 것이 해볼 만한 일로 보였다. - P256

진평이 무엇 때문인지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안됐지만 상산왕을 닮은 사람의 목을 빌려 진여에게 보내는것입니다. 그렇게 속여 진여를 한 번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놓으면, 나중에 상산왕께서 살아 있음을 알게 되더라도 쉽게 항우에게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 P262

다시 팽월의 군사 3만이 붙자 한왕이 이끄는 제후군의 세력은 56만으로 늘어났다. 한군이 처음 관중에서 나올 때에 비하면 열 배나 부풀어 오른 숫자였다. 하지만 그 엄청난 제후군의 머릿수는 점차 허수가 되어 갔다. - P268

뒷날 돌이켜 보면, 사태를 꿰뚫어 보고 다가올 재난을 방비할 한신과 장량, 진평 모두가 그때 어떤 야릇한 패신에 홀려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보다 눈 밝은 그들이 몇 발자국 앞의 나락도 보지 못하고 바로 앞사람의 발꿈치만 보며 내달은 셈이었다. - P272

"대왕께서 진정으로 천하에 뜻을 두고 계시다면 모진 임금과 못된 법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을 너무 허물해서는 아니 됩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사는 물고기가 없고사람이 너무 따져 살피면 따르는 무리가 없는 법입니다." - P288

그럴듯한 것은 그런 한왕 유방의 군명뿐이었다. 한신은 충실히 한왕의 뜻을 전했으나 팽성 안으로 들어간 여러 갈래의 제후군은 금세 물불 안 가리는 약탈자로 변해 버렸다. - P292

패왕의 도읍인 팽성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 쌓여 있던 재물과 미인까지 마음대로 처분하게 되면서 한왕은 한층 더 자신의 승리를 실감했다. 그러잖아도 잇따른 자잘한 승리로 자랄대로 자라 있던 한왕의 호기는 거기서 갑자기 어이없는 착각과 환상으로 바뀌었다. 자신은 이미 항우를 온전히 쳐부수었으며 그리하여 천하에는 오직 자신만 있다는 착각과 환상이었다. - P2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왕 유방이 한중을 나와 삼진을 노린다는 소식을 처음 패왕 항우에게 전한 것은 옹왕 장함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장함은 한왕이 관중으로 들어선 것을 그리 큰일로 여기지 않았다. - P109

한 하늘에 두 해가 있을 수 없듯이 초나라 땅과 백성들에게도 두 임금이 있을 수 없다. 이 땅과 백성을 내 것으로 하고 나아가 천하를 호령하자면 의제를 없애야 한다. - P110

유방은 아마도 이번에 왕릉을 달래 패현에 있는 부모와 처자를 데려가려는 듯합니다. 그들을 그대로 패현에 둔 채 대왕께 맞서는 것은 그들을 대왕께 볼모로 바치는 것이나다름이 없지 않겠습니까? - P115

자신에게 천하를 다스릴 제도를 고를 기회가 왔을 때, 패왕은 당연한 듯 분권적인 옛 봉건제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한왕은 관중에서 이미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시황제 시절의 군현제를 되살려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의지를 내비쳤다. - P16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젠가 가족 다 같이 깊은 산중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절에 들렀던 우리 가족은 굶주린 늑대 무리에 에워싸인 한 마리 학을 보았다. 늑대 떼가 학을 갈가리 찢어 잡아먹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학은 엄청난 힘으로 내 예상을 깨뜨렸다. 진실은 그날의 학과도 같았다. 그만큼 강력했다. 아무리 흉악한 상대라 해도 맞서 공격할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 P209

대현이 불편한 듯 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여자의 감수성을 잘못 건드렸을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지. - P2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漢) 원년(元年) 4월 하순 서초 패왕(西楚覇王) 항우는 군사들을 이끌고 관중을 떠나 도읍인 팽성(彭城)으로 길을 잡았다. - P11

뜻밖에도 제나라의 사자로부터 장군인을 받은 팽월은 몹시기뻐했다. 천하를 갈라 여럿에게 나눠 주면서 자신만은 빼 버린 패왕에게 무슨 앙갚음이나 하듯, 전영의 장수가 되어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 P29

팽월이 소공 각의 대군을 크게 쳐부숨으로써 항우를 향해 부는 맞바람은 이제 세상에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 P33

번쾌가 숨결조차 제대로 가다듬지 못하고 일러바치듯 한왕을 보고 말했다.
"대왕, 기막힌 일이 터졌습니다. 오늘 아침 소하가 달아났다고 합니다." - P43

소하가 한왕을 지그시 올려보며 무언가를 일깨워 주듯 말했다.
"한신입니다. 다행히 뒤쫓은 지 하루 만에 한신을 붙잡아 되돌아가자고 달래는데, 태복이 빠른 수레를 몰고 뒤따라와 함께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 P47

"이제까지 달아난 그런 장수들은 얼마든지 쉽게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한신처럼 빼어난 인물은 천하를 뒤져 둘을찾아내기 어렵습니다. - P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회왕을 의제로 올려세운 항우는 이어 제후와 장상들에게 천하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이로써 진의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고 시행한 군현제는 10여 년 만에 폐지되고, 천하는 다시하, 은, 주 3대 이래의 봉건제도로 돌아가게 된다. - P279

범증이 또 한번 그렇게 항우를 나무라 놓고 다시 정색을 하며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유방에게 파와 촉을 주어 거기에 묶어 두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 P281

"범증이 항왕을 꼬드겨 나를 파촉에 가둬 두려 한다니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그러나 장량은 크게 걱정하는 낯빛이 아니었다.
"파촉은 감옥이 아니라 패공께서 안전하게 숨을 곳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항왕의 의심을 받지 않고 살아남는 일이 급합니다." - P282

"나는 초나라의 낭중 한신이라는 사람이오. 한왕을 따르고자 왔으니 윗전에 기별해 주시오." - P296

항우와 같은 기력이 없으면 요순처럼 어질거나 세상 보는 눈이라도 밝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유방이란 작자는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거만하고 무례할 뿐이로구나.‘
그런 생각에 한신은 절로 탄식이 나왔다. - P298

"병법도 크게 보면 사람을 부리는 것이라 들었소. 공은 사람을 얼마나 부릴 수 있소?"
"그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요. 만 명이면 나라를 지키고 십만이면 제후를 호령하며 백만이면 천하를 모두 거둬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한신이 그렇게 시원스레 대답했다. - P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