펨브로크 출판사에 취직하면서 누리게 된 뜻밖의 이점 두개 중 하나가 있었다. 이 회사의 봉급이 워낙 짜고 직업적인 전망도 워낙 형편없기 때문에, 이 직장을 택했다는 것은 곧 그럴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임을 기정사실로 인정해버리는 분위기. - P251

7월 8일 금요일에 나는 한 발은 콘데내스트 문안에, 다른 발은 니커보커 클럽의 문 안에 들여놓고 있었다. 그 뒤 30년 동안 내 삶은 이 직장과 이런 사교클럽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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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 굉장하다." 내가 말했다.
이브는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평가하듯 바라보았다.
"그렇지?"
"팅커가 너한테 잘해주나 봐."
이브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성냥을 어깨 너머로 던졌다. 그리고 벽에 기대서서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빙긋 웃었다.
"팅커가 준 게 아냐."
"그럼 누가 준 건데?"
"내가 협탁에서 찾아낸 거야."
"이런." - P151

팅커와 이브를 지금의 길에서 벗어나게 할 외적인 힘이 등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힘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 P155

시계가 1시를 쳤을 때, 우리는 모두 현관 홀에 있었다. 이브와 팅커는 서로 손가락을 깍지 낀 모습이었다. 애정을 보여주려는 행동인 동시에, 서로 물에 빠진 상대방을 끌어올리려는 행동인 것처럼보였다. - P156

"내 짐작에 댁은 팅커의 형인 것 같네요."
이 말에 행크는 확실히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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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런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있나 보죠."
"아, 그거야 물론 있지, 당연히. 어쩌면 실제로 그런 일을 할 짬을 낼 수도 있을 거야. 사람을 갖고 노는 그 계집만 아니면."
"그쪽도 내 친구예요." - P167

선물이 없는 생일………… 런던 출장……… 침실 개조공사……… 전체적인 그림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서 방금 산 드레스를 입고 샴페인을 마시고 있는 이 아가씨는 곧 레인보룸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이런 겉모습만 보면 이브가 현기증이 날 만큼 행복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브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 P188

타협을 모르고 목표를 추구하는 자세와 영원한 진리를 향한 탐구는 고귀한 이상을 지닌 젊은이들에게 확실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사람이 일상적인 것, 그러니까 현관 앞 계단에서 피우는 담배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먹는 생강 쿠키의 즐거움과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쓸데없는 위험 속에 몸을 담갔다고 보면 된다. - P209

미스 마크햄이 다시 말을 멈췄다.
"캐서린, 캐서린이 퀴긴에 철저히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에요. 그래서 패멀라를 대신해서 수석 사무원으로 승진시킬 사람으로 캐서린을 추천했어요."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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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당신이랑 이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나는 몰라요.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은 힘들었어요. 의사들 말로는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거래요. 그러고 나서야 좋아질 거라고. 의사들 말을 딱히 믿은 건 아니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됐어요. 오늘 밤에는 내가 사무실에 가봐야 하는데, 이브를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요." - P103

이제는 누가 누구 것이고, 극장에서 누가 누구 옆에 앉을 것인지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아니, 이제는 전혀 게임이 아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밤을 견뎌내는 일이었고, 그 일은 말만큼 쉽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항상 아주 개인적인 일이기도 했다. - P108

"너 좋아 보인다." 마침내 내가 말했다.
이브가 뭔가를 참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케이티, 내가 그런 헛소리 싫어하는 거 알지? 특히 네가 하는 건더 싫어."
"그냥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나아 보인다는 뜻이었을 뿐이야." - P113

"적어도 팅커가 널 잘 돌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자기가 깨뜨렸으니까 자기가 산 거지. 안 그래?" - P115

관대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타인에 대한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오. 오히려 책임이 시작되게 만드는 경향이 있지요. 이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래이 씨는 틀림없이 알고 있으리라고 믿소. - P121

토론에서 갖추어야 할 예의 및 품위 있는 행동 규칙
첫째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할 때는 항상 주위 사람들을 존중해야한다.
.
.
. - P120

내가 뒤로 물러섰지만 팅커는 금방 손을 놓지 않았다. 뭔가 말해야 할지를 두고 혼자 씨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을 하는 대신 그는 복도 저편에서 자고 있는 이브를 두고 내게 키스했다.
강압적인 키스는 아니었다. 그것은 내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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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그 얼마나 힘든 시절이었는지.
대공황이 시작됐을 때 나는 열여섯 살이었다. 1920년대의 태평하고 매력적인 분위기에 속아 넘어가 꿈과 기대를 품기에 딱 적당한 나이. 마치 미국이 맨해튼에게 교훈을 가르쳐주기 위해 대공황을 발진시킨 것 같았다. - P14

밸과 내가 사귀기 시작한 여름에 우리는 아직 30대였고, 서로 성인이 된 뒤 10여 년의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는 상태였다. 10년이면 충분했다. 인생 전체의 방향이 좋은 쪽, 또는 나쁜쪽으로 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살인을 하거나 창작을 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니, 하다못해 누군가의 앞에 의문을 하나 떨어뜨려놓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 P16

내 생각은 나도 모르게 과거로 향했다. 힘들게 쌓아올린 지금의 완벽한 모습에 등을 돌린 채, 나는 달콤했지만 불확실하던 과거를. 그때의 우연한 만남들을 찾아 헤맸다. 그때는 정말 우연하고 열띤 만남 같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운명 같다는 느낌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 - P18

이브는 첫 봉급을 받자마자 1인용 방을 포기하고, 아버지 계좌의 돈을 쓰는 것도 그만두었다. 이브가 자립하고 몇 달 뒤, 아버지가 딸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내용의 다정한 편지와 10달러 지폐 50장을 함께 봉투에 넣어 보내왔다. 이브는 돈을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다. 마치 결핵균에 감염된 물건을 다루는 것 같은 태도로 이브가 말했다.
"나는 무슨 일이든 겪을 각오가 돼 있어. 남의 명령에 휘둘리는 일만 아니라면." - P29

혼자 온 남자가 예쁜 여자 두 명에게 술을 사면, 그가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든 일단 여자들과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말쑥한 옷차림의 이 사마리아인은 우리에게 전혀 말을 걸지 않았다. 상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하며 우리를 향해 잔을 한 번 들어 보인 뒤에는 자신의 위스키 잔을 만지작거리며 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 P34

팅커가 우리의 빈 잔에 샴페인을 따랐다.
"뭔가 새해의 소원 같은 걸 외쳐야 해요."
"우린 새해의 소원 같은 거 없어요, 선생님."
"더 좋은 생각이 있어요.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새해의 소원을 들어주면 어때요?" 이브가 말했다.
"최고예요! 내가 먼저 할게요. 1938년에는 두 사람이…………."
팅커가 말했다. 그는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수줍음을 덜 타는 사람이 되세요."
우리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요. 이제 당신 차례예요." 팅커가 말했다.
이브가 주저 없이 나섰다.
"당신은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세요." - P40

그는 벤치 뒤에서 소년과 나란히 몸을 웅크리고 남학생회 청년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원군의 도움을 받은 소년은 조금 전보다 더욱 더 단호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팅커는, 북극에 설치된 모든 램프에 환하게 불을 밝힐 수도 있을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P46

젊은 여자들이 사소한 보복의 기술에 숙련되어 있다 해도, 이 우주 또한 나름의 앙갚음 방법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브가 팅커의 귓가에서 키득거리며 웃어대는 동안 나는 그의 양털 외투에 감싸여 있었다. 실제 양가죽처럼 양털이 두툼하게 달린 그 외투에는 아직 그의 체온이 남아 있어 따뜻했다. - P54

그는 고갯짓으로 우리 자리를 가리켰다. 이브가 팅커에게 술을 한 잔 더 하자고 설득하는 데 거의 성공하려는 참인 것 같았다.
"저 젊은이는 누구야? 자네 친구인가, 아니면 친구의 친구인가?"
"둘 다라고 해두죠."
체르노프가 빙긋 웃었다. - P63

이건 자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을 고를 때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은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를 골탕 먹일 의욕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 P66

"난 시간을 완벽하게 지켜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확히 60초 동안 60초를 셀 수 있다는 뜻이에요. 언제나."
"말도 안 돼요." - P76

부인의 짧은 방문이 이브의 케이크에 꽂힌 초에 불을 붙였다면, 팅커의 케이크에는 불을 꺼버린 것 같은 효과를 냈다. 부인의 뜻하지 않은 출현은 오늘 밤 외출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부유한 남자가 두 여자를 멋진 곳으로 데려온‘ 분위기가 ‘어린 공작새가 자기집 뒤뜰에서 깃털을 자랑하는’ 분위기로 눈 깜짝할 새에 바뀌어버린 것이다. - P90

바로 그때 우유 배달트럭이 우리를 덮쳤다. 우리는 그 차를 미처 보지도 못했다. 트럭은 배달할 우유를 잔뜩싣고 시속 80킬로미터의 속도로 파크 애버뉴를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가 속도를 늦출 때 트럭도 정지하려고 했지만 얼음에 미끄러지며 뒤에서 정통으로 우리를 들이받았다. 우리가 탄 쿠페는 마치 로켓처럼 붕 떠올라서 47번가를 뛰어넘어 중앙의 철제 가로등에 처박혔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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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10월 4일 밤, 중년의 끝자락에 이르러 있던 밸과 나는 현대미술관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워커 에번스가 1930년대 말에 뉴욕 지하철에서 몰래카메라로 찍은 인물사진들을 처음으로 전시하는 자리였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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