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 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비열하지 않나요?"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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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차이 그거 별거 아냐. 주판 대 전자계산기고, 전보대 휴대폰 메시지야."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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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펄 천 개의 세계 1
이윤하 지음, 송경아 옮김 / 사계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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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소녀, 오빠를 찾아 우주로 향하다

김민은 엄마, 이모들, 그리고 이종사촌 형제들과 함께 진주에 살고 있다. 이 진주는 경남 진주가 아니다. 우주의 어느 한 행성이다. 민에게는 준이라는 자랑스러운 오빠가 있고, 준은 3년 전 우주군에 입대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민의 집으로 우주군의 조사관이 방문한다. 준이 '드래곤 펄'을 찾아 사라졌다고 한다. 탈영병이 된 것이다. 엄마와 민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준이 없어진 것은 사실. 조사관에게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엄마는 음식을 대접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민은 밥상으로 변신했다가 이내 변신이 풀리게 되고 들통이 난다. 민의 가족은 '구미호' 일족으로 정체를 숨기고 살고 있으며,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인 것이다. 정체가 드러나 당황한 엄마는 프라이팬으로 조사관을 내리쳐 기절시키고.. 말썽을 일으킨 벌로 엄마의 처분을 기다리던 민은 오빠를 찾기로 결심한 후 우주로 나가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다.


이윤하 Yoon Ha Lee. 1979 ~ . 한국계 미국 SF소설가.


한국의 정서가 듬뿍 담긴 SF소설

'이윤하'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물론 《나인 폭스 갬빗》 덕분이다. 굉장히 특이한 설정을 가진 SF소설. 구미호가 등장하고 역법을 이용한 무기와 역장에 의해 규정되는 세계. 무려 세차례나 《나인 폭스 갬빗》이 포함된 《제국의 기계》 3부작으로 휴고상 최종후보에 올랐지만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N. K. 제미신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무려 3연속으로 휴고상을 받는 바람에 상을 받지는 못했다. 상복이 없다고 해야할 듯.


이윤하는 《나인 폭스 갬빗》에서도 한국적인 소재를 많이 사용했지만 《드래곤 펄》은 훨씬 더 많은 한국적인 소재가 등장한다. 《나인 폭스 갬빗》의 주인공 중 한 명이 구미호인 것처럼 《드래곤 펄》의 주인공은 구미호 일족의 일원이다. 아직 어려서 꼬리가 하나밖에 없지만 다른 사람을 '홀릴' 수 있고, 다른 사람이나 물건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구미호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용, 무당, 귀신, 도깨비처럼 우리가 어릴 때 들었던 옛날 이야기의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주식은 밥이고 김치도 자주 나오고 해태상도 등장한다.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한국식 이다. 비록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미국 국적을 가진 작가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한국문화가 듬뿍 담긴 SF소설을 쓴다는 것이 참 이채롭다.


구미호는 중국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가장 친숙한 신화적인 존재 중에 하나이다.


뜻하지 않은 모험과 우주군 생활

민이 오빠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처음부터 어그러진다. 경비로 사용하기 위해 집에서 몰래 가지고 온 옥을 잃어 버린다. 타려고 했던 화물우주선의 선장인 혜선장을 찾아 도착한 도박장에서는 예전에 엄마와 도박장 운영을 동업했다는 나리를 만나 반강제적으로 알바를 하게 된다. 겨우 탈출해서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갔다가 용병들의 공격을 받고 오빠가 탔던 '창백한 번개호'에 구조를 받고 전투중 사망한 '장'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우주군 생활을 시작한다. '창백한 번개호'에서 만난 두 친구, 고블린인 수진과 용족인 하늘과 친해지면서 조금씩 우주군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민. 호시탐탐 오빠의 흔적을 찾고 오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밝혀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오빠를 만났을 때는..


비슷한 세계관 다른 느낌

이윤하의 다른 소설 《나인 폭스 갬빗》과는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한국적인 소재를 굉장히 많이 채용한 점은 비슷하다. 누가 읽어도 이건 한국 사람이 쓴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노골적으로 한국 색채를 입혀 놓았다. 그래서 처음에 읽을 때는 《나인 폭스 갬빗》과 같은 세계관이 아닌가 추측을 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나인 폭스 갬빗》 다음 권은 읽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정확히 이해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다른 점들이 많이 보이는데, 우선은 《나인 폭스 갬빗》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역법에 관한 내용을 《드래곤 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약간은 묻어 있는 듯이 사용했던 '구미호'라는 개념을 《드래곤 펄》에서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한다. 게다가 좀 특이한 것은 우주선의 구조에 인간의 혈도 비슷한 개념을 적용시켜서 무협소설로 따지자면 '사혈'같은 장소가 우주선에 존재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비슷한 소재가 많이 사용됐기 때문에 같은 세계관이 아닐까 기대도 했다. 잘 버무려 놓으면 일생을 통해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여 역사를 다루는 멋진 프로젝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나인 폭스 갬빗》에 존재하는 동화책의 내용을 《드래곤 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하고 혼자서 억지로 세계관을 합쳐서 상상하기로 했다.



SF의 탈을 쓴 판타지 동화

SF 소설이라고 하지만 《드래곤 펄》은 정확히는 SF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다. 상상력도 기발하고 세계관을 만들어낸 논리도 치밀하지만 세계 자체가 현실을 기반으로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홀리기 charm'를 사용해서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마음대로 '변신 shapeshifting'을 할 수 있는 구미호족이 존재한다. 용족은 날씨를 조종할 수 있고 고블린(도깨비)족은 도깨비 방망이를 사용할 수 있는데다가 도깨비 감투까지 가지고 있다. 우주선에는 혈맥이 흐르고 무당이 있으니 당연히 귀신도 있다. 게다가 귀신들이 모여사는 행성이 존재한다. 이쯤되면 우주판 '전설의 고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과학이 상상밖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우주가 이렇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SF라고 하기엔 설정이 도를 지나쳤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설정이 이 작품의 독창성과 재미를 반감시키지는 않는다. 애초에 이 작품은 정밀한 SF소설이라기보다는 《해리 포터》시리즈같은 동화책을 쓰는 마음으로 쓴 책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동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예를 들자면 도박장을 운영하는 나리를 우연히 만났는데, 예전에 엄마와 동업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든지, 민이 구출된 우주선이 오빠인 준이 근무했던 '창백한 번개호'라든지 선장 방에서 1/24인 확률로 비밀번호를 정확하게 찾는다든지 개연성도 없고 우연히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이걸 정밀한 SF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불만스러울 수 있는데, SF소설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동화속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원래 동화는 그런 거니까. 그래서 이 책은 아직은 이윤하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린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슬슬 빠져드는 거지.. 《나인 폭스 갬빗》과 '제국의 기계'의 세계관으로..



★★★★

사실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SF를 기대했다가 판타지로 흐르는 것도 그렇고 개연성이 많이 부족한 것도 그렇다. 그리고 타겟층이 애매한 것도 좀 문제인 것이 아이가 읽기에는 좀 용어라든지 세계관이 어렵고, 어른이 읽기에는 좀 어설프다. 나의 느낌으로는 분명히 동화처럼 쓴 책인데 신나는 모험이 펼쳐지지도 않는다. 도깨비 수진과 용족인 하늘같은 친구들이 종족의 특성을 사용한 활약을 펼쳤으면 훨씬 더 신나지 않았을까? 선장은 호랑이족이었으니 충분히 대악인으로 활약할 수 있었을텐데 인상적이지 못한 것도 많이 아쉽다. 대략 세계관만 툭 던져 놓고 실제 본격적인 이야기는 풀어내지 않은 느낌? 후속작이 계속해서 나오는게 오히려 납득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민의 꼬리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능력이 배가 되고 구미호가 되어 완전체가 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니게 되어 끝판왕과 마지막 승부를 펼친다든지..


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에도 불구하고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짜내서 설득력있게 전개해 나가는 이윤하 작가의 솜씨는 충분하다.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중에 지적인 재미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에서 우리의 소재를 가지고 뚝심있게 소설을 쓰는 이윤하 작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전에 읽었던 《나인 폭스 갬빗》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왠지 앞으로 이윤하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들여다 보면서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 느끼는 즐거움이 생길 것 같다. 아! 그리고 여러가지 소재와 진행으로 볼 때 《드래곤 펄》은 애니메이션화하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인기가 있을 것 같다.


하드 SF를 기대했다면 좀 실망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화자가 아이라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약간은 순하게 표현된 면이 있고, 문득문득 동화같다는 느낌이 든다. 세계관 설정이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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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는 제가 알고 있는 세키네 쇼코 양이 아닙니다. 만난 일도 없어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에요. 당신은 지금까지 저한테 다른 사람 이야기를 했군요."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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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펄이 척박한 세계 전체를탈바꿈시킬 수 있다면, 그 세계에 숲과 바다를 생성해 살기 좋은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말은 즉 그 세계를 파괴해 생명 없는 사막으로 만드는 일도 그만큼이나 쉽다는 의미야.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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