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맘때 나는 무척이나 지쳐있었다. 같은 이야길 반복하는 것도, 같은 이야길 반복해서 듣는 것도, 숨쉬기도 어려울만큼 갑갑한 거리에도, 변하지 않는 창을 계속해서 새로고침 하는 것에도, 모두 질려버렸었다. 떠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달라질게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그 사람이 받았던 고통에 비하면 하잘것 없을 것 같았고,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나의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기 위해 나는 길을 나섰다. 

속초는 내게 많은 의미가 있는 도시다. 이제 볼 수 없음에도, 아직도 마음 속 가장 큰 방 하나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짧은 이별과 만남을 수도 없이 반복했었기에, 버스를 타기도 전부터 나는 그를 떠올리며 젖은 상념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잘해줄걸, 지금은 뭘 하고 지낼까 등등등 아쉬운 마음은 금세 지워버리고서는 앞으로 만날 친구를 떠올리며 설레는 마음을 그리기 시작했다. 종내에는 내게 아직도 로맨스가 남아있다면 바로 이 사람이다! 라고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참고로 내게 로맨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랄까. 뭐, 그런거다. 

그렇게 가는 길 내내 내 마음 속에는 여러가지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는 길을 함께해준 동반자이자, 가장 위대한 연애소설이라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불타는 연애가 아닌, 레빈의 노동에 대한 예찬이었다.  

   
 

레빈은 그들 사이에서 나아갔다. 한낮의 더위에도 풀베기는 이제 그다지 힘든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온몸을 적신 땀은 그를 시원하게 해주었고, 등과 머리와 팔꿈치까지 소매를 걷어올린 팔에 내리쬐는 태양은 노동에 필요한 힘과 끈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게 하는 그 무아의 순간이 더욱 자주 찾아왔다. 낫이 저절로 풀을 베었다. 그것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즐거운 순간은 두둑들이 맞닿아 있는 강가까지 베어나간 다음 영감이 축축하게 젖은 풀로 낫을 닦고 맑은 강물에 그 날을 씻고 나서 생철통에 물을 떠서 레빈에게 건네준 때였다.
"어떻습니까, 내 크바스가! 그래, 좋죠?" 그는 눈짓을 하면서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레빈은 풀잎으 동동 뜬, 생철통의 녹슨 맛이 나는 이 미적지근한 물처럼 맛난 음료를 아직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곧 낫을 손에 든 채 유유히 움직이는 행복한 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에는 흐르는 땀을 닦는 것도, 가슴 가득히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도, 풀 베는 일꾼들의 긴 행렬이며 주위의 숲이며 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는 것도 자유였다.

 
   

나는 풀을 베어본 적도,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지만 땅과 농사에 대한 이야기에는 맥을 못추고 홀려버린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수려한 문장으로 묘사된 무아의 경지의 풀베기라니! 안나와 브론스키의 절망적인 연애이야기는 이제 그만 좀 나오고 레빈의 농사이야기나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흥미롭게 읽어내려갔다. 레빈의 생동적인 에너지가 흘러넘쳐 나에게까지 전해져왔고, 나는 이 에너지를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들떴다. 

하지만 붕붕 뜨고, 따뜻해진 마음은 차갑고 썰렁한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가라앉고 말았다. 야위어서는 환자복을 입고, 참외와 키위를 깎아주는 친구에게 난 뒤늦게,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는 말을 너무 잘 들었던걸 후회했고, 실은 내가 생각보다 밝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뜨거운 속초의 햇살을 받으며 우린 해변의 공원을 걸었고, 친구는 무심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용기가 되는 한 마디를 무척이나 해주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난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린 백로와 날치로 화제를 전환했다.  

처음 먹어보는 막국수를 엄청 맛있게 먹고, 볕을 피해 그늘 아래 앉아 시원해진 바람을 쏘이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참외와 키위를 깎아 먹고, 음악을 듣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애초에 계획했던 밝은 에너지 전달은 물론이거니와 약간 기대하고 있었던 나의 기분전환. 두마리 토끼 다 잡지 못했다. 집으로 오는 길은 쓸쓸했고, 외로웠다. 게다가 노동의 기쁨에 전율하던 레빈은 키티와의 사랑에 푹 빠져 농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랑 따위,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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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6-14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사랑이나 로맨스 "따윈" 곡괭이질을 하다가도 눈이 맞으면 순식간에 파파박...하는 것...ㅋㅋ

Forgettable. 2011-06-14 21:57   좋아요 0 | URL
메피님.. 요즘은 그런 사랑 할 수 있을까 자꾸 의심이 나는데, 그 의심을 가라앉혀줄만한 로맨스 하나 나타나지 않는 나이인가봐 ㅠㅠㅠㅠㅠ 하며 자꾸 슬퍼져요!! 할 수 있겠죠??!!!

Mephistopheles 2011-06-16 12:51   좋아요 0 | URL
의심이라기 보단 두려움이 아닐까? 라는 생각...^^

Forgettable. 2011-06-19 19:51   좋아요 0 | URL
문장이 좀 이상하다 했는데 단어선택의 문제였군요.......
인정하기 싫지만... ㅠㅠㅠㅠㅠㅠㅠ

2011-06-14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4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1-06-14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랬어요. 이 풀베기 장면에서 완전히 압도당해서 줄 계속 치면서 나는 왜 이렇게 큰 관련 없는 노동의 묘사에 감동받을까 자문했었어요. 그래서 이 페이퍼에 엄청 공감합니다.

Forgettable. 2011-06-14 22:03   좋아요 0 | URL
아ㅏ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정말요?????????? 기뻐라!
저 이 풀베기 장면 정말 엄청나게 환희에 몸을 떨며(아직 읽고 있어서 문장에 여파가 ㅋㅋㅋ) 읽었거든요. 신나네요, 괜히.

다른 이야기들도 물론 좋지만 전 러시아의 예술과 문화와 정치와 토지개혁과 사상에 관한 것들을 읽는 것이 참 좋더라구요.

Joule 2011-06-17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나 카레니나에서 최고로 치는 두 장면 중 하나예요. 다른 하나는 푸르푸르가 브론스키를 태우고 달리는 장면. 무려 두 사람에게(두 사람이 제 인맥의 전부라서 쩝) 그 장면을 읽어 줬다는.

Forgettable. 2011-06-19 19:5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저도요!! ㅠㅠ 그 장면도 읽으면서 어찌나 흥분을 했는지 -_-;;;
정말 대단했어요. 두근두근하면서 읽었어요 ㅋ

근데 역시 좋은 문장은 많은 사람의 동의를 불러일으키는군요. (쥴님과 같은 부분을 꼽은)저의 안목에 감탄을 ㅋㅋㅋㅋ
 

 

블로그를 친목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 지양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이려고 해보았지만, 어쩌다보니 또 지인 블로거의 요청에 의해 페이퍼를 작성하기로 마음먹었기에 딱히 지양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다. 하루 평균 소주 1병반 가량의 술로 2주를 연속으로 보내다보니 속이 많이 상해서 위염이 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술을 먹다가 어제오늘은 못견디겠어서 밥 잘 챙겨먹고 술은 멀리했더니 조금 괜찮아져서 또 막걸리를 2잔 마셨다. 아,, 술.. 술!  

오늘 드디어 매일같이 이메일로 날아오는 에드먼튼 쿠폰을 수신거부 신청했다. 사실은 아직 그곳을 떠나온게 그리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적응하도록 노력은 해야지 싶다. 일주일에 3번, 1시간 반씩 하는 학원 아르바이트도 구하고, 친구들에게도 전화해서 돌아왔다고 소식도 전하고, 토익 공부도 시작하고, 내일부터는 헬스도 다닐 예정이다. 마음 급하게 먹고 안달복달하다가는 이도저도 안되겠다 싶어서, 호흡을 길게 내쉬어볼 참이다.  

밤엔 술 마시고, 낮에는 책을 읽거나 TV를 본다. TV프로그램의 최고는 역시나 [최고의 사랑]!!!!!! 

아, 정말 한국 드라마에 몰입 잘 못하는데 [최고의 사랑]만큼은 몰입도 120%!!!!!! 울다가 웃다가 하며 보고 있다. 차승원의 매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아베 히로시를 한 때 무척 좋아했었는데, 둘이 비슷한 이미지이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이 기요미라면 독고진은 단연코 갖고싶은 남자!!!!!!!!!!!!!!!!!!!! 목요일 방영분을 질질 짜면서 봤는데, 마지막 장면의 '충.전.'에서는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내가 다 한숨을!

최근 여러가지 책을 읽고 있는데 최고는 쑤퉁의 [마씨집안 자녀교육기]이다. 아직 뭐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복잡한 심경이다. 유쾌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오만가지 감정을 단편 하나를 읽으며 다 느낄 수 있기에 말로 설명이 안된다. 조만간 생각 정리해서 리뷰를 써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다. 

실연의 아픔을 이렇게 견디고 있다. 현실적으로 닥친 문제들을 조금씩 조금씩 해결하고, 술을 마시고, 많이 마시고, 책을 읽거나 순정만화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예전처럼 가슴아파하거나 하루 종일 울면서 잠만 자거나 하지는 않지만, 좋았던 추억들이 엄습해오는걸 막을 수 있는 경지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지 못하고, 관계를 정리할 때마다 양껏 슬퍼할 수 있는 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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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 2011-06-06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ㅋㅋㅋㅋㅋ나 마씨집안자녀기보다 뒤집어짐
근데 쑤퉁은 그것외에도
모든소설 다 최고 ㅋㅋㅋㅋㅋ단편이건 장편이건 진짜 유머감각하나만큼은 중국최고!!

님하....실연의 아픔..
내가 소개팅 백개시켜줄게요 :D

Forgettable. 2011-06-06 23:08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리뷰 비슷한거 님 블로그에서 본 것 같아서 아까 찾아봤는데 못찾았어요. 아 완전 재밌어요 진짜. 웬만한 추리소설보다 더 흥미진진!

소개팅 백개 좋다 ㅋㅋㅋ 사랑해 ㅋㅋㅋ

Mephistopheles 2011-06-0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씨집안자녀기....라면 알라딘에선 마태우스님 자녀 교육이면..결국..개교육..??

Joule 2011-06-07 12:10   좋아요 0 | URL
댓글 추천!

Forgettable. 2011-06-07 19:55   좋아요 0 | URL
하하 말교육이 아닐..; 아 넘 썰렁한가 -_-
제가 딱 하나 떨어지는게 유머감각이라.. ㅋㅋ

Joule 2011-06-07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포게터블 님을 위해 외쳐 드릴게요.

극뽁!

Forgettable. 2011-06-07 19:55   좋아요 0 | URL
띵똥♥

2011-06-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블로그의 목적이 그럼 뭘까요? 티스토리 오래 했지만서도 이제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공개된 수첩 같은 느낌으로 썼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아무튼 실연의 아픔은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요즘 제가 정서적으로 불안한터라 그 무지막지한 상실감을 겪으면 어찌 견디나 싶어요; 역시 애초 겪을 일이 없어야 편할지도. 그런 의미에서 오늘 9000 일이네요 ㅠ 포스팅하려다 더 우울해질까봐 관뒀어요 ㅋㅋㅋ 가만 있어도 우울한 시험기간이라 이따 초콜렛이나 좀 먹어야겠네요/

Forgettable. 2011-06-12 18:03   좋아요 0 | URL
저도 목적이 뭔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의무감으로 글 열심히 써서 사소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바람이 있는데 열심히 안쓰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실연은 애초에 겪을 일을 만들지 않는게 좋다는게 저의 지론입니다. 하지만 금사빠인지라.. 빠지면 또 어쩔 수 없는거죠 뭐. 말은 항상 솔로가 좋아~~ 하지만 또 사람 마음이 그게 쉽지도 않고 ㅠㅠ
초콜릿 먹으면 기분좋아지는거 플라시보효과같아요 저한테는.. 우울이 초콜릿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9000일 축하해요 마법사는 만일인가요? ㅋㅋㅋ

기웃 2011-06-13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돌아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온라인에서의 마주침이라 뽀님이 캐나다에 있으나 이 곳에서 있으나 별 상관없겠지만, ^^. 그래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시니 정말 반갑군요.

귀국 전과 후는 어떻게 변하셨나요..? 설마 에셔 작품의 끝없는 이미지의 반복과 순환처럼 (누구나 겪고 있는) 반복된 일상을 보내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조그마한 렌즈로는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저 기막힌 풍경은 눈이 정화되는 라식 그 자체네요. -이런 사진은 인제 어디서 보지요..-

Forgettable. 2011-06-13 22:10   좋아요 0 | URL
기웃님! 항상 오랜만이란 인사로 댓글을 시작하네요. 하하 저도 반가워요 :)

에셔 작품을 알아주셔서 기분 좋은 마음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슬픈 마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단지 위안은 오랜만에 매일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는 것 뿐인데, 요즘은 다른 친구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는 것에 질려버리게 되어서 그마저도............... ㅠㅠㅠㅠㅠㅠ

아직 사진 많이 남아 있으니 종종 올릴게요! 카메라가 고장나서 요즘은 사진찍는 것도 시들해서.. 저도 그저 옛사진이나 보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ㅎㅎ
 
음양사 3 - 부상신편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4년 5월
품절


거미줄로 날뛰는 말을 묶을 수는 있어도
다른 마음을 품은 남자를 붙들 수는 없으니
그런 남자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옛 노래가 있는데
참으로 그 말 그대로구나
남자의 상냥한 말이 곧 거짓이 될 줄도 모르고
인연을 맺은 것은 분하나
그 또한 내가 어리석었던 탓이라 생각할 밖에-.쪽

맛 좋은 포도주에
술잔은 야광배
마시고 취하려 하니
말 위의 비파소리 더욱 재촉하네-.쪽

구름은 그대 치마, 얼굴은 모란인 듯
봄바람은 난간을 스치고 꽃에 맺힌 이슬 짙게 엉켜
만약 군옥산에서 만난 임이 아니라면
필시 달 밝은 요대에서 만난 임이 틀림 없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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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수로 노는 걸 단 한번도 온전히 즐겨본 적이 없다. 친구는 모아 놓은 둔 쓰며 노는게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나는 뭐 모아둔, 쓸 돈도 없거니와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거 그냥 쓰는게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 웬만하면 안 쓰려고 하다가 그래도 술취하면 없는 돈 뿌려대는게 버릇인지라, 이렇게 놀 수만은 없겠어서 어제는 알바사이트를 뒤져서 동네 커피숍에 면접을 보고 왔다.  

커피숍 경력 하루이틀도 아니고, 게다가 외국유학(?) 바리스타이니 어디서 안뽑아주겠냐 생각했는데, 나이가 걸렸고, 부담스러운 경력도 걸렸다. 파트타이머 마구 부려먹으려면 얕잡아봐야할텐데 난 공부도 좀 했고.... 사회생활 경험도 있고...... 영어도 잘하고.... 인상도 좀 심하게 좋고..... 커피숍 알바하기에 나는 너무 고.급.인력이었던 것이다........................ 너무 재수없나?  

사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유는 다른 거 다 둘째치고서, 나이였던 것 같다. 일단 매니저급의 정직원들부터도 나보다 어리니 아무래도 일하는데 지장이 있을거라 생각하는 것 같더라. 캐나다에선 나이고 매니저고 상관없이 다 똑같은 조건으로 일하고, 3개월, 6개월마다 시급 1달러씩 올려줬었는데 아무리 한국에서 한국인처럼 생각하고 살려고 해도 약간 불합리한 게 많다.  

뽑히지도 않았지만 일단 조건이 그랬다. 8개월 이상 일해야 할것. 처음 1주일치 월급은 8개월을 채워야 그 때 주겠음, 수습기간인 첫 3개월의 시급은 4200원. 그 다음은 4,500원. 하하 이렇게 강조하셔서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아야만 했다. 정직원과의 노동 강도 차이도 은근슬쩍 언급하셨고. 그런 조건 이야기를 들으면서 씁쓸했다. 나 한 시간에 11달러 받고, 팁도 받고, 유급 점심시간도 있는 파트타이머였는데... 지인이 내게 이제 한국에 왔으니 한국에 적응하라고 했지만, 그게 스위치 껐다 키는 것처럼 쉬운 일도 아니고.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씁쓸하다. 심지어 그런 일자리마저 구하지도 못했다니! 웃기기도 하고.

요즘 시간이 많아서 낮에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는데 한 곡에서 단조가 장조로 막 바뀌고 미에 샾 붙고 난리도 아니다. 고작 피아노 칠 때 단조, 장조 바뀌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1년 동안 살던 버릇 스위치 하려니 여간 몸이 쑤신게 아니다. 그래도 아예 잃어버리는게 아니랬으니 그 말 철썩같이 믿고,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지.  

오자마자 책 선물 2번 받았다.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 [안나 까레리나] 1~3권 양.장.본. 맘같아선 선물 받은 책 좀 읽다가, 지겨워지면 피아노 연습좀 하고, 배고파지면 1300원짜리 막걸리 한병 사와서 김치볶음에 밥 먹고, 그러다 밤되면 나가서 친구들이랑 술먹고. 이런 생활 평생 했으면 좋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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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5-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거기에 그렇게 자꾸만 토끼 얘기가 나오는 거였군. 뭔가 이유가 있을 줄 알았어! 흥!!

Forgettable. 2011-05-26 16:51   좋아요 0 | URL
그것의 연관관계는 별로 없는 듯 해요. ㅋㅋ 근데 대체 '흥!!'은 왜 ㅋㅋ 혹시 j...jea.....s? ㅋㅋㅋㅋ

다락방 2011-05-26 16:58   좋아요 0 | URL
어떡해.

'이제 한국에 왔으니 한국에 적응하라고 했지만' 이거 누가 말했는지 알것 같아요. 어쩐지. ㅎㅎㅎㅎㅎ

Forgettable. 2011-05-26 17:00   좋아요 0 | URL
누군데?

2011-05-26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6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5-26 17:12   좋아요 0 | URL
왜 반말해요?
혼날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11-05-26 17:38   좋아요 0 | URL
급한 마음에 그만...
쒀리~
(이거 시가의 현빈흉내입니다. 너무 재수없어하지 말아요. 라고 급 추가)

다락방 2011-05-26 18:19   좋아요 0 | URL
쒀리.....가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벌 2011-05-26 22:01   좋아요 0 | URL
나 정말 여기서도 커피 품고 가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Forgettable. 2011-05-28 11:56   좋아요 0 | URL
영어라면 이 정도는 굴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Mephistopheles 2011-05-2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그게 그나마 나아진 상태잖아요. 몇 달전 패스트푸드 알바 시급이 청소년들 완벽한 노동력 착취라고 언론에 두둘겨 맞고 상태 나아진 것이 그나마 저 모양이니까.

Forgettable. 2011-05-26 17:07   좋아요 0 | URL
계산해보니까 일주일에 5일 6시간씩 일하면 한 4~50만원 벌겠더라구요...
100원,200원갖고 이 사람 장난치나 싶던데 ㅋㅋㅋ
애초에 최저시급이 작년엔 4110원이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4320원이더라구요. ^^;;;;;

뭐, 그래도 일할 사람이 있으니 저렇겠죠. 누굴 탓하겠습니까.. -_-;

버벌 2011-05-2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도 좀 심하게 좋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랑 갑인 친구도 이번에 커피전문점에 취직을 했어요. 그 친구는 영어도 못하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없고, 나이는 정말 많고 (저랑 동갑이니.. ㅎㅎ), 인상은 좋긴하지만 심하게 좋지는 않아요. 다행히 여기저기 커피 전문점에서 일한 경력이 꽤~ 되어서 바로 취직이 된 모양인데. 매니저고 정직원이고 모두 훨~~씬 아래의 친구들이라고 하더군요. 웃던데요. 세월만큼 능글함이 더해져서 살랑 살랑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락방님 다음으로 보고 싶은 분. ^^ (정말임)

Forgettable. 2011-05-26 17:42   좋아요 0 | URL
ㅋㅋ 제가 그냥 오바해본거에요. ^^

근데, 그렇다면 나이도 아니군요!!! 도대체 뭐지 그럼???? 왜! 절 안뽑았죠??? (이쯤되면 위에 쓴 글이 절대 오바가 아니었다는 걸 인증하는건가 뭔가..-_-;;)

제가 공부할게 있어서 어쨌든간에 올해 겨울까진 한국에 있어야 하거든요. 그러니 시간은 많아요. 백수라고 칭얼대며 서울와라, 술사달라, 하며 만날 때까지 칭얼댈테니 버벌님껜 빠를 수록 좋겠지만요 ㅋㅋㅋㅋㅋ 흐흐

순오기 2011-05-26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뽀님, 언제 돌아왔어요?
완전 뒷북이지만~~~~~~ 환영해요!^^

Forgettable. 2011-05-28 11:56   좋아요 0 | URL
얼마 안됐어요. ㅋㅋㅋ 고마워요 순오기님!!

2011-05-26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8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b 2011-05-26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악 무슨 첫 1주일 월급을 8개월째 줘요;;미치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알바비 주급으로 받는게 좋던데ㅋㅋ매주매주 돈나오는 기분

Forgettable. 2011-05-28 12:01   좋아요 0 | URL
전 2주에 한번씩 받았었는데 엄청 좋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에도 주급으로 주는데 있나요? 커피숍 막 이런데가??

전 주급으로 받으면 뭐 받는날 다 쓸 것 같아서 그건 좀 별로일 것 같아요ㅠㅠ

pjy 2011-05-2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할수록 그 커피집 조건들....쫌 많이 이상해요! 뽀님~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그런 알바 안된게 다행이예요;
전 최근 규정대로 유급휴가 한번 써볼려고 쌩쇼했거든요~ 뭐 이런 회사에 댕기지만--;
세상엔 이상한 사람이 꽤 있지만, 멀쩡한 사람들도 많아요~ ( '')('' ) 어딘가에는요ㅋ

Forgettable. 2011-05-28 12:03   좋아요 0 | URL
좀 황당하죠? ㅋㅋㅋㅋㅋ 안그런데도 많은데, 동네에서 구하려고 하다보니 한정되 있더라구요.

유급휴가 쓰려면 쌩쇼해야하는 거군요.. 저도 실업급여 받으려고 쌩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놀면서 돈 받으려면 쌩쇼해야 해요. ㅋㅋㅋㅋㅋ

알라딘에 지금 댓글 달아주신 분들만해도 다 좋으신 분들이잖아요. 기운나요 그래서.

2011-05-27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모아둔 돈 쓰고만 있는 건 정말 괴롭죠. 그래서 저도 모아둔 지방들을 차마 연소시키지 못 하고 있나 봐요;; 암튼 이번 학기에 음악 과목 들으면서 피아노 키보드 하나 사서 연습할까 했는데, 음악 수업이 장조, 단조, 조표, 음정을 넘어 화성을 향해 다가가면서 외계어로 변함에 따라, 음악에 대한 저의 동경도 점차 경외와 두려움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ㅡㅡ; 라 캄파넬라를 피아노로 치는게 꿈이었는데, 이제 그런거 없고 리코더나 불어야겠단;

Forgettable. 2011-05-28 12:06   좋아요 0 | URL
나.. 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진짜 뭐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데 그래서 뱃살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음악과목에서 이론만이 아니라 실제로 연습할 정도로 해주나봐요??? 전 피아노 치다 보니 신기하게 늘더라구요. 어렸을 때 쳤던게 아직 남아있는지 연습 조금 하니 꽤 괜찮게 연주할 수 있게 되어서 뿌듯해요. 실연의 아픔을 피아노로 승화시키고 있단;;;;; 친구가 저보고 좀 무섭다고 -_-;

여튼 피아노는 연습입니다. 두려워 마세요!!

2011-05-29 11:3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론만 가르치시는데 교재에 예제나 실습이 잘 나와 있어서 연습하면 좋을 것 같더라구요. 피아노 키보드 하나 가지고 있으면 공부하다 스트레스 받을 때 마음 정화하기 좋을 듯 한데, 금방 질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 고민이에요. 사진은 날 잡아서 들고 가야 하니 스트레스 풀기에 미묘하고, 운동은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역시 어렵고... 게임 같은 건 오래 안 해 버릇 했더니, 이제 시들하네요. 사실 피아노보다는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악기-_-인 제 목을 단련하기 위해 보컬 아카데미 같은 데서 배워보고 싶은데 이것도 돈과 시간 문제라서;;

Forgettable. 2011-05-30 22:09   좋아요 0 | URL
피아노는 해봐야,, 어디서 써먹을 데도 없고 좀 그렇긴 해요.
제가 악보를 못외워서 수백번 쳐도 못외우거든요. 그래서 어디 가도 악보 없으면 못치니까 피아노 치긴 잘치는데 악보없어서 못쳐, 이러면 허세밖에;;;;;;;;;;;;;;;

코님도 이래저래 욕심이 많으신듯. ㅋㅋ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봐요!!!! 전 욕심도 없고....... 그렇다고 뭔가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언제나 그렇듯 중간에서 갈팡질팡;

차좋아 2011-05-27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00원 짜리 막걸리는 국순당 생 막걸리? ㅎㅎ
한국 인건비 참....저렴하죠?^^ 알바로 힘든게 번 돈인데 맛 좋고 저렴한 장수 막걸리로 드세요^^ㅎㅎㅎ


Forgettable. 2011-05-28 12:07   좋아요 0 | URL
그냥 동네 슈퍼에서 사먹다보니 장수막걸리도 1300원이더라구요? 전 장수막걸리를 더 좋아해요 ㅋㅋㅋ

잉크냄새 2011-05-2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름이 참 좋네요.
근데 벌써 일년이 지나고 한국에 돌아오신건가요?
시간이 참 화살처럼 빠르네요.

Forgettable. 2011-05-28 12:07   좋아요 0 | URL
믿을 수가 없어요.
1년 동안 10년처럼 무지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또 하루처럼 지나가버린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11-05-28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 가신 한국은 제가 살고 있는 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습니다.
한국에 오셨군요 +_+

Forgettable. 2011-05-28 12:08   좋아요 0 | URL
네 바람결님! 소주 한잔의 약속은 잊지 않고 있어요. 한 잔으로 끝나진 않을테지만!!!! ㅋㅋㅋㅋ
이 한국이 그 한국 맞아요 ㅋㅋ

아이리시스 2011-05-2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지 않아요? 댓글은 이렇게 많은데 추천이 없어서 제가 눌렀어요, 푸하하하하. 저 이런 거 신경 안쓰는 사람인데 너무 신기해서 그만 나도 모르게 왜 이렇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뽀님에게 빙의되어서 다들 추천을 잊었나 봐요,ㅋㅋㅋ

Forgettable. 2011-05-30 22:10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제 글에 추천은 잘 없어요;; 열심히 쓴 글에는 추천이 꽤 붙는 편인데, 열심히 쓰지 않은 글에는 추천 하나도 없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슨 기대치의 문제?? ㅋㅋㅋ 그렇다고 뭐 열심히 쓰는 글도 그렇게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막쓴 글은 티가 나니까^^:;;;;

추천 감사해용ㅋㅋ

2011-06-08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2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zydevil 2011-09-16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득키득 웃다가, 끄덕끄덕 공감하다가, 쩝쩝 끌탕치다가, 다시 키득 웃으며 읽었네요.

Forgettable. 2011-09-17 13:24   좋아요 0 | URL
하하 댓글 읽고 저도 제 페이퍼 다시 읽어보니 똑같이 그러고 있네요. ^^
 

어느새 말은 많아졌는데, 키보드 앞에 앉기가 두려운 내가 생겼다. 떠벌떠벌 내가 꽤나 안이 꽉 찬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리가 빈다. 명상을 할 땐 그렇게나 지우고 싶어하는 잡생각들이 지금은 온데 간데 없어서 앞으로 명상 대신 글을 써야 하나 싶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좌우명을 정했을 때, '후회하지 말자.'라고 했다. 별 생각은 없었다. 하도 병신같은 짓을 잘해서, 이미 저지른 일인데 어쩔 수 없으니 괜히 에너지 낭비 말고, 잊고 다른 일 벌이자,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지금껏 후회라고는 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후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살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일을 나의 선택때문에 또 겪어야 했고, 자신감 있었던 나의 선택 덕분에 나는 또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후회를 할까. 하지 않는다면 합리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합리화가 뭐 나쁜건가. 살면서 자기합리화 말고, 자기비하의 길로 빠지지 않는 최선이 무엇이 있겠나. 

작년 4월에 '당신의 표류하는 인생을 응원합니다.'라는 작은 메모가 담긴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친구에게 내가 평생 표류하며 살았으면 좋겠냐는 원망섞인 투정을 했더니,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인생'은 '청춘'의 오타였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 다시 이 글귀를 읽어보니, '인생'이 '청춘'보다 오히려 좋다.  

   
 

 실패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대담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결국 무모하게 살았을 뿐이다. 실패의 가능성을 침착하게 바라보면서 대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청춘을 제대로 산 것이다. 

(중략) 

 이제까지의 경력을 포기하고 새로운 직업을 가진 적이 두 번 있으며, 언제 돌아갈지도 모를 여행길을  나선 적도 두 번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여행지에서 병을 얻어, 돈도 떨어지고 치료할 방법도 없기에, 싸구려 여인숙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안 되겠구나.'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조차 후회하지는 않았다. 인생이 여기서 끝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나도 모르게 묘하고 차가운 체념의 기운이 퍼져나왔다. 이제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기에 여기까지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청춘 표류] 中

작가처럼 나 역시도 후회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뭐가 남았나. 지금 손에 쥔 결과물이라던가, 앞으로의 희망이라던가, 그런것들이 작년 이맘 때보다도 훨씬 더 없다. 하지만 1년 동안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나만 알면 됐다는 마음이다. 지금의 내 상태를 알고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떤 행위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과거 또는 과거의 행위를 수정하는 일이다.  
  [만리장성과 책들] 中

보르헤스의 책을 읽으며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수많은 잡다한 지식을 한 권의 책에서 모두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인데, 위의 인용문은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이다. 요즘 '후회'라는 화두에 대하여 계속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것만 보이나본데, 내가 요즘 하는 생각들과 지금 줄줄 늘여 쓰고 있는 이 글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다.  

벌써 대리가 된 친구, 학위를 딴 친구, 결혼을 하는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며 나는 이미 다른 길목에 놓여있구나. 우리는 이제 같은 길을 갈 수 없겠구나. 라고 느낀다. 나도 그 길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지금 해야하는게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바다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고 해서, 언제 길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삐져나올 것 같다고 해서, 나는 다시 돌아가 나의 선택을 수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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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5-25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듣던 디지털 유목민이 뽀님이셨군요. 뽀님의 이런 글을 보며 우와 난 나이 처먹으며 뭘한거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여기요 여기)

Forgettable. 2011-05-25 14:42   좋아요 0 | URL
전 디지털 유목민이 뭔지도 몰라서 검색해봤네요. ㅋㅋㅋㅋㅋ
응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게요!!!!! ^^

버벌 2011-05-26 15:15   좋아요 0 | URL
어..어떻게 해. 저도 ... 검색을.. 디지털 유목민.--> 웬지 좋아보이는 단어라서. 움 좋네요.

Forgettable. 2011-05-26 16:33   좋아요 0 | URL
ㅋㅋ 그 안에도 뭔가 여러 종류의 디지털 유목민이 있더군요.
신종단어들이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생기는 현상이 전 마냥 신기해요..
(작년까지만 해도 저 얼리어덥터란 소리 들었는데 1년동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변한거죠!!!!)

Joule 2011-05-2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그거 하나는 말할 수 있어요, 전. 1년 전에는 포게터블 님이 이런 글을 쓰지는 못했어요. 사람들은 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상을 얻어야 만족할까요. 직업, 승진, 결혼, 학위, 기타등등 기타등등. 아무렴 그들이 나인투파이브하는 동안 포게커블 님이 내내 잠만 자고 있었다고 해도 그만큼의 숙면으로 인한 기억력 증진과 미모 향상이 있었을 텐데(잠을 잘 자면 머리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진다는 게 저의 오랜 지론이라) 왜 내 손 안에 뭔가 쥐어져 있지 않다고 어깨가 축 쳐져 계세요. 제가 보기에는 한두 뼘은 월등히 키가 자란 포게터블 님이 보이는고만.

Forgettable. 2011-05-25 14:5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매일 술로 상하는 몸이 매일 잠으로 회복되고 있는 요즘이랄까요. 저도 잠 예찬론자에요! ㅋㅋ

그냥 오자마자 이래저래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받아서 그런가봐요. 원랜 참 씩씩하게 잘 사는데! 가끔 이럴 땐 지푸라기 하나만 잡고 있어도 그걸 위로 삼아 안심이 되는게 사람 마음인데, 저한텐 그 흔한 지푸라기 하나 없다는게 그만 기운빠져버려서. 심지어 노는 동안 블로그에 글도 많이 안써놨더라구요???

쥴님. 항상 고마워요. 힘들 때마다 쥴님이 해주신 말들이 항상 어둠 속의 빛처럼 놓여 있어요.

레이 2011-05-25 22: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오면 온다 알려주면 좋잖아요.
전화라도 한번 안하면 후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 해보는 기회가 생길것으로 사료됨

Forgettable. 2011-05-26 10:19   좋아요 0 | URL
레이님 방가 ㅋㅋㅋ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나은 하루가 되길?!!!

하이드 2011-05-26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놀고 와서 왠 투정이야. 그거, 어디 안 가더라. 계속 남아서 사는 동안 툭툭 튀어나오니깐, 후회 안해도 됨.
그리고 자네의 그 나이도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술이나 한 잔 하자. 연락하삼. (아직 거기 살아? 나는 주거지가 흑석으로 바뀌어서 사당에서 보면 좋겠다! ^^ )

근데 나 청춘표류는 좀 싫음. 일등인생만 모아 놓았잖아. 일등만 표류한건 아닌데, 그건 진정한 표류가 아님.

Mephistopheles 2011-05-26 09:13   좋아요 0 | URL
사당은 제 구역이에요 통행세 내세요.=3=3=3=3

하이드 2011-05-26 09:28   좋아요 0 | URL
방배 아니구 사당이에요? 맛집 좀 알려주세요!!

Mephistopheles 2011-05-26 09:38   좋아요 0 | URL
방배를 포함해 사당 설대입구와 신림까지가 제 구역이에요~맛집...이요? 뭘 드실려고요?

Forgettable. 2011-05-26 10:24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그러더라구요. 한국왔다고 해서 다 없어지는거 아니라고. 다행이에요. 난 벌써 다 잃어버린 것 같아서 전전긍긍했거든요.

언니 폰번호 바뀌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바꼈으면 저한테 연락좀. 전 번호 그대로거든요. 가물가물. 전 사당이 훨씬 좋죠!!

전 처음에 일등인생을 보고 열등인생으로 읽고, 아니 이 언니 뭐????!!!! 막 이랬는데 ㅋㅋㅋ 일등인생이었군요 ㅋㅋㅋㅋㅋ 맞아요.. 저 서문만 읽고 엄청 좋아하다가 괴리감느끼고 있어요 ㅠㅠㅠㅠ

Forgettable. 2011-05-26 10:24   좋아요 0 | URL
메피님, 통행세 받으러 나오세요 ㅋㅋㅋㅋㅋㅋ 이왕 나오시는 김에 맛집도 좀 알려주시구요. 흐흐

Mephistopheles 2011-05-26 10:31   좋아요 0 | URL
그니까..일단 뭘 드시고 싶은지 말씀을 하셔야 범위를 좁혀도....좁히죠...^^

Forgettable. 2011-05-26 10:41   좋아요 0 | URL
하이드 언니랑 말해보고 카톡할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이드 2011-05-29 02:30   좋아요 0 | URL
방배와 사당, 설대와 신림은 잘 안 가고, 별로 가고 싶지도 않구요 ㅎ

맛집... 맛있는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며) 술안주 나오는 집이여-

아이리시스 2011-05-26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님은 노는 동안 친구를 많이 만들었죠. 글은 안썼어두요. 저 포함,ㅋㅋ
어쨌거나 글은 많이 써줘요. 날잡아 뽀님 옛날 글도 읽어야겠다..^^

Forgettable. 2011-05-26 10:26   좋아요 0 | URL
제가 또 친구를 그렇게 많이 만드는 스타일은 아닌데.. 많이 좋은 친구들은 조금 만들긴 했어요 ㅋㅋㅋ

죽이되든 밥이되든 어쨌든 하루에 글 하나씩은 쓰고 싶어요. 옛날 글은 뭐;; 날잡으실 것도 없어요. 별게 없어서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