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점을 뺐다.
평범한 피부과에서 뺄까, 입소문이 났다고 하는 신빙성 없는 병원에서 뺄까,
고민하다가 결국 가까운 신빙성없는 병원에서 뺐다. 3일짼데 아직 아물지 않는다. 이대로 빨갛게 패여있을까봐 극도의 공포심에 사로잡히는 순간들만 빼면 견딜만 하다. 이제 나이가 있어서 피부 재생속도가 늦는 거라고 위안하고 있다.
2. 내시경을 했다.
일반 내시경을 할까, 수면 내시경을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일반내시경을 했다. 엄마가 마취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다고 해서, 난 엄마 차를 타고 집으로 가야 했기에 그냥 일반 내시경을 했다. 2~3분만 견디면 되니까 뭐. 한 번 해봤으니까 더 무서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했다. 딱히 수면 내시경을 포기한 걸 후회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괴롭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아주 힘들었다.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물이 나오는 걸 모를 정도로 목구멍의 이물감이 괴로웠다.
3년 전에 그랬듯이, 아무 이상 없다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씁쓸해했다.
3. 운전 면허증을 땄다.
도로주행 시험을 보고 있는데 경찰차가 삐용삐용 싸이렌을 울리며 우측으로 차를 대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난 차를 아주 잘 댔다. 조금 전 우회전을 할 때 보행자가 없어서 보행자신호를 위반한게 신호위반이었던가, 운이 나쁜 예로 들던 실격자들의 사연의 주인공이 되는 건가, 덜덜 떨었다.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 차에 달고 하던 번쩍거리는 경조등(?)이 문제였다.
살면서 가끔 운이 나쁠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지금이 아니어서 무척 다행이었다.
4. 사람들을 만난다.
군산에 갔다가 군산에 있는 친구와 함께 전주에 가서 영화를 봤다.
영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내가 경주 여행을 할 때의 메이트가 저질체력이라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투덜댄 것에 대해서 한참 불평을 해대서, 이 친구는 힘든데도 힘든단 말을 하지 못하고 참았다고 해서 무척 미안했다. 요즘 나는 다리만 튼튼해져서인지 걷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졌는데, 이게 메이트들을 힘들게할 수도 있다는걸 알았다. 문제는 저질체력인 친구들에게 있었던 게 아니라 나이에 걸맞지 않게 미친듯이 걷는 버릇이 들어버린 내 습관에 있었다.
난 걸음이 느리고 뭘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서 오히려 '뭔가를 해야한다.'는 여행자들과 트러블이 있으면 있었지 한가로운 여행자들과 트러블이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사람이 변하긴 변하는 것인지 어째 난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로 계속 변모해가는가보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요즘 계속해서 상처주는 나의 '말'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다. 고치고 싶은데, 언제나 그렇듯 입에 체를 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계속 노력해왔던 일이었는데 잠시 수수방관 했다고 다시금 지적을 받다니!
취향은 변하지만 타고난 성정은 변하지 않는것인가.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술과 책과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두고, [신데렐라 언니]를 함께 보고, 촛불과 음악을 아낌없이 주며 나를 사랑해 마지 않는 까칠한 나의 친구에게 무한한 감사와 애정을 전한다.
P.S 이 페이퍼를 쓰게끔 한 충격!내시경체험기!를 기대해 주신 분께도 애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