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보다 사진의 호응이 더 좋아, 칭찬 받고 춤추는 나는 오늘도 사진을 올린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안 읽는 건 아니라고 할 수가 있나, 없나. 최근 AMERICAN RUST를 한 백년째 서론만 읽고 있긴 한데.. 실상은 다락방님이 보내주신 추리소설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냥 사진만 올리기 뻘쭘하니 새로 구한 직장 이야기나 해야겠다.
요거트가게를 그만두고 집에서 5분 거리, 시급 1불 더 주고, 팁은 2배로 받고, 무엇보다 가게에서 파는 것은 공짜로 아무 거나 먹을 수 있는 커피숍 Good Earth에서 일한지 한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메뉴도 훨씬 많고 점심시간의 러쉬가 대단하고 바가 커서 커스터머와의 거리가 큰 데에 비해 사람들의 목소리는 작고 요구사항도 많다. 그래서 처음에 못알아먹어서 고생이 많았고,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날 보고 웃긴 웃는데 눈은 웃질 않아서 이게 비웃는 건지 뭔지 잘 모르겠어서 정글에 혼자 뚝 떨어진 기분이라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코워커들은 물론 보스도 날 좋아하기 시작해서 요즘은 같이 떠들기도 많이 떠들고 신참 욕도 하고 보스 욕도 하고 실수해도 너그러이 봐주고 그런다.
우리 가게에는 가끔씩 기분 내킬 때마다 테마를 정해서 유니폼 대신 특별한 옷을 입는 날이 있다. 예전에 한번은 정글데이여서 동생이 클럽갈 때 입으라고 준 호피무늬 원피스를 입었고, 또 며칠 전에는 비치데이여서 주황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었다. 다들 패션감각이 대단해서 나름 문과대 패션리더였던 나는 그냥 큣할 뿐이다. 어떻게 호피무늬 나시 원피스를 입었는데 내게 큐트하다고 할 수 있는지, 나는 그저 18살 아가로 보이는 아시아인일 뿐인지, ㅠㅠ
재미있는 건 내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캐나다에 와서인지 한국인들도 나를 어리게 본다. 웨스턴 애들이야 워낙에 아시아 애들을 어리게 보니까 18~20 언급하는거 그렇다쳐도 처음 보는 한국인들도 내게 22~24 정도를 언급하니.. 난 행복하다. 그래서 요즘은 나이를 잊고 산다. 그러다 친구가 우리도 이제 서른이야, 라고 해서 충격받았는데 우리 친구 중의 몇은 내년에 29살이 되니 그렇다. 정말. 놀랍다.
다시 코워커들 얘기로 돌아와서,
내가 게이라고 단정지었던 친구와 레즈비언이라고 단정지었던 친구가 어느날 내게 인도에 갈 계획을 이야기해 주면서 인도에 함께 가서 둘이 인디안 웨딩을 한다고 해서 깜놀하며 역시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돼 운운했는데, 남자애가 보이프렌드 어쩌고 하고, 여자애가 여자끼리 거의 키스하는 메트로 신문 첫면을 내게 보여주며 뷰리풀이라고 하는 걸 보며 이건 뭔가 이상하다 싶어 다시 물어봤더니, 역시나 그들은 가장 친한 친구로 판명났다. 다른 한 친구는 베지터리안이고 채식을 하는 신념이 동물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고, 또 다른 친구는 쉬는 시간에 카프카를 읽는다.
예전에 일하던 곳이 애들이 좀 유머러스한 애들이라 하루 종일 농담만 하고 웃겨서 재미있었다면, 이곳의 친구들은 한가로울 때 나사에서 녹음한 것이라며 쥬피터, 새턴의 소리를 들려주며 함께 신기해한다거나, 인디아와 타일랜드 이야기를 하며 설레한다거나, 술마시고 취했던 경험으로 서로를 웃음거리로 만든다거나 하며 다양한 화제로 날 재미있게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유로운 영혼들이 모여있다고 해야하나.
일한지 3주만에 당당히 3일 오프 받아서 밴쿠버 다녀왔다. -_- 아.. 월요일부터 열심히 일해야지.
가끔 보스가 단골손님에게 내가 신참이라고 소개를 할 때가 있는데 한 번은 손님이 내게 이 잡 좋냐고 물어서 내가 I love this job! 이라고 대답했더니 Really good to hear you 'love' the job. 이라며 러브를 강조했는데, 그러게. 나 이 직업 정말 사랑한다. 라고 말했던 적이 내게도 처음있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