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발터 벤야민 지음, 김남시 옮김 / 그린비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후줄근하고 언제나 지쳐보이던 선생님이 있었다. 정교수도 아니고 부교수도 아니고, 시간강사의 이미지에 걸맞는 사람이라 항상 안쓰러워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BMW를 끌고 다니고, 옷이 모두 명품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는 안도감이 든 건 왜였을까. 언제나 무기력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휴강도 밥먹듯이 했고, 나 역시 선생님의 목소리가 붕붕 허공에 뜬 것만 같은 수업시간에 졸기 일쑤였지만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고, 수업도 참 좋아했다. 

매 학기 선생님의 수업을 신청했고, 벤야민과 료따르, 아도르노, 라깡의 이름을 수도 없이 들어서 난 그들의 철학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세의 미학, 르네상스의 매너리즘, 해골과 썩은 사과, 시든 장미의 미학,대중문화의 복제에 대한 회의감 등 나의 미학적인 관점은 물론, 인생관도 선생님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개인적으로 밥 한번 함께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이게 판타지의 완성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도서관에서 책등을 쓸며 부유하다가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발견했을 때, 스트레스에 절어 잔뜩 찌푸리고 있던 나는 갑자기 선생님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대충 보니 무난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는데, 문장 하나 하나가 웃기고, 슬프고, 설레이고, 너무 좋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에게서 긍정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부분이 몇몇 엿보이고(이것은 대중문화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 아샤에 대한 애정, 러시아 말을 못해서 오는 고립감, 러시아의 대단한 추위, 미술관, 영화관, 연극에 대한 감상, 장난감 가게로의 매일같은 출근, 무기력감 등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고,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꼭꼭 씹고싶은 문장들이 많아서 페이퍼도 몇번 썼었는데, 그렇게 쓰다가는 책 한권을 서재에 다 옮겨놓을 것만 같아서 자제했다. 

벤야민의 일생은 왜인지 무력한 지식인의 표상으로 박혀 있는데, [모스크바 일기]는 내가 상상하던 벤야민의 모습과 일치하는 동시에 리뷰 서두에서 언급했던 선생님의 모습과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우울하고 약간 히스테리적이어서 무척 귀여운데다가 지적인 자극을 콕콕 주는 이 사람들. 벤야민의 말대로 우리는 그림이나 책, 영화 등 영감을 주는 대상에 감정이입하는 것이 아니다. 벤야민의 담백하고 솔직한 문장들이 눈을 통해 들어와서 가장 알맞는 기억의 문을 찾아 '똑똑' 두들긴다. 대부분 다 읽고 반납했지만 소장할 예정이다.

+ 옮긴이의 말 중 로쟈님의 닉이 언급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 러시아에 대한 자문을 해주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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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8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하 2009-12-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당 번역자도 알라딘서재에 둥지(역자명으로 검색하면 나와요. 이미 알고 계시려나?^^;)를 틀고 계실 거에요. 이전에는 페이퍼를 가끔 올리셨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무력한 지식인의 매력이라 흠... 많이 삶에 대해 알수록 철저히 알수록 지식인이 되기도 하고 현실의 거대한 모습에 무력해지기도 하는 걸까요.

Forgettable. 2009-12-10 11:1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찾아봤더니 검은 바탕에 흰글씨라 읽기가 힘들;;
이시대는 행동하는 지식인이 필요한 시대이긴 하죠 ㅎㅎ

새벽 2009-12-1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우울한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현실에 너무 짓눌려 버린 사람.
그래도 그 속에서도 참 값진 사유를 많이 해냈으니 대단한 사람이죠..

Forgettable. 2009-12-1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인에게 벤야민 선집중 한권을 선물받아서 얼른 읽어보려구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04-08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래 선집 1권 [일방통행로]를 읽고 기대보다 못해 실망 가운데 있었는데요...... 아포리즘은 잘 다가오지 않더라구요. 문학론과 비평이 좀 더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벤야민에 대한 전기를 먼저 접하니 기대감만 잔뜩 생기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의 인생이 드라마틱 하잖아요? 리뷰를 보니 [모스크바 일기]가 또 기대되는데요^^

Forgettable. 2010-04-08 18:08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님 서재에서 벤야민에 대한 실망을 엿보았어요. ㅎㅎㅎ
저는 선집중 2권,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아주아주아주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인데요 ㅎㅎ
어렵습니다..
전 어려운 책을 손에서 놓은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요. 학생 때 그나마 있던 인내심이 아예 바닥난듯..
어쩌면 읽지도 않아놓고 읽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고요;

[모스크바 일기]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파고세운닥나무님한테는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일방통행로]와 많이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요^^;
 
두 도시 이야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6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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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이란 것은 참으로 폭력적인 것이다. 나치는 무조건 나쁘고, 유태인은 불쌍하다. 조중동의 기사는 헛소리다. 과도한 신자는 나랑 안맞는다. 식민지 시절 때문이다. 유럽의 문화는 빈민층, 흑인노예의 비참한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등등의 수많은 고집스러운 편견으로 나는 견고하게 굳어져있고, 때론 이 단단함때문에 상처를 입는 희생자도 있었다. 

이 중에서 유럽의 문화는 빈민층, 흑인노예의 비참한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라는 고정관념이 [두 도시 이야기]의 독서에 영향을 끼쳤다. 나는 디킨스가 다분히 낭만적인 시선으로 프랑스 혁명을 봤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포도주통이 깨져서 온 거리에 새빨간 포도주가 흐르니, 온갖 사람들이 달겨들어 포도주가 흐르는 바닥을 핥아먹는 장면이나 눈 앞에서 높으신 귀족나으리의 마차에 치어 소중한 자식이 죽는 장면을 봐야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렇게 감상적으로 들렸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레미제라블]의 배경과 흡사하였지만 조금 더 '보여주기'의 느낌이 강했다. 이를테면, '차알스- 당신도 어쩔 수 없는 부르주아야.' 라고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거렸달까. 

물론 내가 읽은 것은 완역판이 아니므로 섣불리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디킨스의 또 다른 작품 [어려운 시절]을 읽으면서는 빈정거릴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이 책은 나의 고정관념의 축에 치명타를 날렸다. 바로 착한 귀족이 있었다는 것이다. 온갖 명성과 부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가문을 버리고 영국으로 망명한 찰스, 숭고한 사랑의 희생자 변호사 시드니, 은행가, 의사인 마르벵과 그의 딸 등,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모두가 빈민과는 거리가 멀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의 피해자들이었다.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나는 혁명의 피해자는 주동자들 자신이면 자신이었지, 멍청한 귀족들은 당해도 싸다고 생각했고, 츠바이크의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으면서도 국왕과 왕비의 어리석음에 통탄하며 안타까워했을 뿐 추호도 빈민층을 비난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디킨스는 반대로 생각해보자며 슬금슬금 고정관념에 톱질을 한다. 나는 흔들리지만 그래도 귀족이 피해자일 수는 없다며 버텨봤다. 그런데 책을 덮은지 2주가 지나도 자꾸 생각이 난다. 신파조의 러브스토리가 떠오르는게 아니라, 귀족층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디킨스의 낭만적인 면모를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에서 본 [바스터즈]의 리뷰에 내가 남긴 댓글에 그 블로거가 글을 남겨두었다. 식민지기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다각도로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 그렇다. 미사리가 내게 책을 많이 읽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싫어할 수 없단 말을 했을 때부터 나는 반성을 했어야 했다. 모두에게 그들 각자의 입장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 당시의 귀족들의 죽음은 처벌의 개념뿐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개념도 있었을 것이었다. 나는 오만하고 멍청해서 나쁜 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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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별한 봄을 즐기는 방법! 예술의 전당 '청소년음악회'에 초대합니다!
    from 한화데이즈 2010-05-27 17:33 
    안녕하세요 한화그룹 홍보팀 사회봉사단 김현 입니다. 이름만 듣고, 청소년들만 가는 음악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가요? No! 그렇지 않습니다. 청소년음악회는 청소년 뿐 아니라 클래식 입문자를 위한 해설이 있는 음악회랍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몰라', '클래식만 들으면 졸려..', '클래식 음악은 너무 어려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바로 그 분들, 그래요.. 바로 당신을 위한 음악회에요. 예술의전당에서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는 청..
 
 
불륜의메카 2009-11-16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름이란 무엇일까?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리뷰 좋네요.

Forgettable. 2009-11-16 14:48   좋아요 0 | URL
혹시 김미사리인가요? ㅎㅎ
멋진 댓글 감사합니다. ^^ 산만한 리뷰가 댓글 덕분에 빛나네요.

2009-11-16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6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Forgettable. 2009-11-17 09:1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누가 오프라인으로 신비주의 하래요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11-16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해할 수 있으나, 저는 용서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마음이 손톱만한 인간이라 ㅎ

Forgettable. 2009-11-16 14:51   좋아요 0 | URL
이해하려는 시도가 성공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휘모리님은 저보다 배포가 크십니다. ㅎㅎ
자꾸 이런저런 자극을 받아야 하지 싶어요.

머큐리 2009-11-16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어려운 이야기에요... 문제는 귀족이나 부르조아에서 혁명가가 많이 등장한다는 역사적 사실이죠
사실 빈민들은 스스로 일어나기에도 너무 제한적이에요.... 그러니 착한(?)귀족이나 부르조아가 필요하죠
그래도 그 착한(?) 사람들은 너무나 소수이죠. 대다수는 그렇지 못한 것도 어쩔 수 없는것 같아요
그리고 그건 여전히 마찬가지 같아요... 이해하긴 해도 용납하기 어려운 그런거죠..

Forgettable. 2009-11-17 09:16   좋아요 0 | URL
똑같은 일이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비일비재한다는 게 참 답답해요.
어째 200년 전 글을 읽으며 내가 공감을 해야 하는지, 고전의 힘이라고만 보기에는 산재한 사회적 모순이 걸리적거리고 있죠. ㅎㅎ

[두 도시 이야기]는 귀족들은 해피엔딩, 빈민층은 비참엔딩(언제나 그랬듯)으로 끝맺는답니다.

2009-11-16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7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 Inglourious Basterd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를 보기 전 잠시 [2012]의 대단한 예고편을 넋놓고 감상하다가- 
Forgettable: 야, 저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살아서 뭐해; 
H: 으으, 난 살고 싶어. 아플 것 같아. =ㅁ=

 
 

H는 무척 귀엽다.

 

- 유쾌한 살인
너무 귀여워서 대폭소하게된 친구의 말은 굳이 아직 개봉도 안한 [2012]까지 가지 않더라도 [바스터즈]를 보며 바로 공감하게 된다. 정말이지 아플 것 같은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잔인한 영화일게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 영화를 선택한 것은 그 잔인함이 유쾌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개월 전 [적벽대전2]과 [트랜스포머2] 같은 영화들을 보며 '사람 목숨이 우습냐'며 엄청 불쾌해하던 내가 사람 죽이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릴 줄 누가 알았을까. 그런데 정말 웃기고 유쾌하다. 죽을 각오로 나찌의 머릿가죽을 벗겨내는 장면(어떻게 벗기나 궁금했는데, 헉!), 얼굴에 칼 난도질.. 사타구니에 총 난사..... 야구배트로 머리통을 날리기, 대학살, 헉 소리나게 무섭지만 보는게 괴롭지 않다.  

- 화려한 기교
그 이유는 틀에 박히지 않은 촬영기법과 음악선곡에 있었다고 본다. 칼싸움에 포비아가 있는 내가 [킬빌] 원투를 연달아 보며 신나했던 전적으로 보아 난 타란티노의 영화와 코드가 맞는 것 같다. 슬로우하게 총이 난사되는 장면이 조용한 클래식과 함께 흘러가고, 로맨틱한 음악을 배경으로 피를 흩뿌리며 죽는 빨간 드레스의 여주인공, 이런 장면과 음악이 뇌리에 선명이 박혀있다. 물론 마지막 장면을 빼놓을 수는 없지만 여기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예전에 흥미롭게 봤던 [에릭 니체의 젊은 시절]에서도 등장했던 기법인데, 컷을 잠시 멈추고 코믹한 나레이션이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고, 광각렌즈의 왜곡된 시각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2인자이자 문화장관인 괴벨스와 그의 통역사와의 섹스신을 찍는 카메라의 시선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눈이 즐겁고 귀가 즐거운데 도덕관이나 역사가 대수일까, 마냥 신나게 때려부시고 죽이자! 

- 탄탄한 연기
타란티노와 브래드피트! 라는 조합은 정말이지 매혹적이지 않을 수가 없지만, 조연들도 정말 대단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다 아는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이번에 칸에서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크리스토퍼 왈츠의 연기력에는 기립박스라도 쳐주고 싶다. 이 배우가 맡은 한스 란다는 새로운 캐릭터의 지평을 열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던 캐릭터를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말했는데, 이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생각되는 시대에 타란티노와 크리스토퍼 왈츠는 정말이지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심장을 톡톡톡 건드리며 몸의 곳곳에 숨어있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만 같다.  

브래드피트는 아주 딱 들어맞는 멋쟁이 역할을 맡았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특히나 게임에서나 들어봤음직한 솔져 액센트는 귀에 짝짝 달라붙는다. 아름다운 복수의 화신 쇼사나의 웃음소리를 잊을 수 없을 것이고, 찌질한 나찌들, 얼굴이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총을 쏘는 Bear Jew, 무지 멋진 달리기를 선보여준 누구,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액센트가 특이하지만 3을 잘못 표시하던 누구, 틸 슈바이거.....♡, 누구, 누구, 누구하나 빼면 안될정도로 촘촘하게 잘 짜여진 영화다.  

이 모든 것이 내새끼마냥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은 뭐니뭐니해도 이야기를 끌어가는 타란티노의 연출력이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쌩뚱맞은 2개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다. 클라이막스에 가서 만나긴 만나는데, 계속해서 독자적으로 펼쳐진다. 그렇다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노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양초를 만들 때 2개의 색깔을 넣어서 염색했을 때처럼 조화롭고 화려하지만 각기의 개성이 살아있는 것만 같다. 지적인 욕구에서부터 미적 욕구, 짐승의 욕구까지도 다 충족시켜준다. 요즘 너무 착하게 사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던건지.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신나고 재미있었던 영화였고, 2009년도 이제 2달도 안남았으니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는 이상 아마도 2009년 나의 영화로 남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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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11-0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죽는 건 무섭지 않아요. 고통이 두려울 뿐^^ 유아적이죠 ㅎㅎ
(본편 리뷰는 안읽고 박스 안 예고편 리뷰만 읽었습니다^^; 영화 보고 읽을려구요.)

Forgettable. 2009-11-09 16:57   좋아요 0 | URL
그렇게 생각하는게 유아적인거군요 ^^; 저도 마찬가지로 죽음보단 고통이 무서워요 ㅎㅎ
리뷰는 타란티노 예찬이라 안읽으셔도 무방합니다 ^^

뷰리풀말미잘 2009-11-0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피트.. ㅠ_ㅠ

Forgettable. 2009-11-09 16:58   좋아요 0 | URL
완전 하트 뿅뿅!!!
근데 다른 멋있는 배우들도 엄청 많이 나와서 두각을 나타내진 않아요!

드팀전 2009-11-09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이영화 보고 왔어요.^^ 전 총점 상 그렇게 좋진 않았는데... '폭력은 어디에나'라는 타란티노의 태도가 희극화된 역사적 스크린을 통해-과거 타란티노의 영화들은 역사성이 없잖아요-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좀 다르더군요. 전체적으로 블랙코미디처럼 웃겼어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관 씬이었는데...실재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남는 폭력이 두 번 변주되는 지점이 인상적이더군요. 하나는 이미 간 두명 즉, 독일의 전쟁 영웅의 살육장면과 텅빈 스크린의 연기 속에 흐릿하게 영사되는 쇼사나의 영상. 폭력이란 것이 그 실체와 분절적일 수도 있어보이고,또 의지 자체가 하나의 폭력적 현상일 수도 있어보이고. 악역을 맡은 독일 장교 아저씨의 위악적 캐릭터가 괜찮더군요

Forgettable. 2009-11-09 17:19   좋아요 0 | URL
아,,+_+ 드팀전님, 이렇게 허접한 리뷰에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ㅎㅎ (영광입니다. 팬이에요!)

이 영화 오늘 보셨군요. 전 타란티노의 영화를 볼 때 딱 두개 기대합니다. 몰라서 지나쳐버리는 과거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와 유쾌함이요. 그래서 영화에 무자비하게 난무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평소에는 폭력적인 영상을 즐겨하지 않는데, 이 영화는 폭력을 폭력으로 생각하지 않게끔 하는 능력이 놀라워서 이 부분에 점수를 후하게 준 것 같습니다. ㅎㅎ
실체가 사라지고 나서도 남는 폭력, 의지 자체가 폭력적 현상일 수도 있다는 점, 몇마디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됩니다. 또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지만 ^^;

한스 란다는 악역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였어요. 왠지 신나더라구요 ^^
 
얼음 속의 처녀 캐드펠 시리즈 6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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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시리즈를 읽을 때 좋은 점은 선남선녀가 등장하고, 그들의 로맨스가 이루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고, 귀족들의 생활에 대한 로망을 충족시켜주고, 언제나 해피엔딩이고, 소소한 반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중세시대 수도사의 이야기라지만 은근히 자극적..이고, 정도가 되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풍부한 직관이 독자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그래요, 난 이베스에게 엄청난 짐을 지우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소.

 
   
   
  그러나 엘라이어스 수사는 길을 아는 듯했다. 또는 무엇인가가 그를 이끌어 그저 가고 있을 뿐인지도 몰랐다. 그곳에는 엘라이어스 자신만이 아는 끔찍한 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끔 이상형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하기 위한 대답으로 '말끔한 피부, 호리호리한 몸매, 유머감각' 세가지를 본다고 준비해두었다. 왜냐면 느낌이라고 대답했을 때 보통의 사람들은 더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대답을 원하기 때문에 야유하며 더 괜찮은 대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저런 준비된 답변과는 상관 없이 느낌이 좋아야 한다. 
 
캐드펠 시리즈를 계속 읽게 되는 것은 이상형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캐드펠이 범인을 구별해내는 방법은 단서도 단서이지만, 사람을 만났을 때의 인상에 많이 의지한다. 그는 수도사가 되기 전에 대단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에, 사람을 판단하는 데에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 그것이 대부분 맞는다는게 참 따뜻하고 믿음직스럽다. 내가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더라도 캐드펠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좌절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절망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난 이 사람의 이야기를 일요일 저녁에 읽는다. 이 책을 읽으며, 우울한 일요일 저녁 시간을 신나게 보낼 수 있고, 다음 날, 조금 더 열심히 밥벌이를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잠자리에 들게 되는 것이다. 좌절한 청춘에게 듬직한 나무처럼 옆에서 가만히 믿어주고 쓰다듬어 주는 캐드펠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또한 희망의 빛에 감사하며 새 인생을 살아가는 청춘들에 동지감을 느끼며. 아직 12권이나 남아있다는 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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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10-13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드펠이 삶에 위안을 주는군요...ㅎㅎ

Forgettable. 2009-10-13 09:10   좋아요 0 | URL
그런 셈이죠. ㅎㅎ 그러나 역시 월요일은 괴로워요ㅇ_ㅇ

무해한모리군 2009-10-1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금요일 저녁에 추리소설을 맥주랑 읽는데 당신은 일요일에 가장 즐기는 걸 읽는구나..
좋은 생각인듯!!
그러나 일요일은 csi수사대와 함께 하기에 ㅎㅎㅎ

'말끔한 피부, 호리호리한 몸매, 유머감각'
이봐이봐 이건 너무 까다롭잖아 --;;

Forgettable. 2009-10-13 09:12   좋아요 0 | URL
언젠가부터 일요일 저녁에 읽을 캐드펠 시리즈가 없으면 금단증상이 ^^;
CSI 수사대는 너무 많이 봤어요, 진즉에 다 뗐네요. ㅋㅋ

그쵸. 까다롭죠;; 거기에다 느낌까지 좋아야 하니. 그래도 의외로 잘 만납니다 ㅎㅎ

다락방 2009-10-14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게러블님. 퍼스나콘 사진 바뀌었네요?! 머큐리님 서재에 갔다가 사진 바뀐거 보고 자세히 보고 싶어서 또 여기로 후다닥 왔는데 사진 완전 예쁘다요 >.< 분위기 환상이에요. 눈물난다 ㅠㅠㅠㅠㅠㅠㅠㅠ

Forgettable. 2009-10-14 17:2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고맙습니다. ^^ 아 얼마만에 듣는 칭찬인지!!!! +ㅁ+ 뽀게러블리는 칭찬을 먹고 살지요 ㅋㅋㅋㅋㅋ
 
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너무 이른 시각이라 술을 팔지 않는다는 가게의 테라스에 앉아 술 팔기를 기다리며 가벼운 탐색전을 벌인다. 만난지 30분도 안되어 대뜸 빨간 책을 꺼내어 들며 첫문장을 읽어보라고 들이미는데, 이거 참 마음에 안드는 문장이어도 감탄하는 척 해야할까, 란 생각이 드는 이상하고 요상하고 어색한 분위기에서 읽어버린다. 

   
  오전 9시의 담배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이건 탁월한 문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전 9시에 공허한 마음으로 담배연기를 내뿜는 나의 절망을 상상케 하기 때문에 괴로운 문장이다. 내가 흡연가였던가는 이미 상관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정말 이 문장이 괜찮은 문장인 이유는 이 문장과 그녀와 나와의 일체감을 이 어색한 순간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느낄 것이라는 걸 암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이해하는 것은 상관 없이 난 그녀를 온마음으로 느낀다.   

작가는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조각조각난 마음들을 주인공이 춤을 추듯 하나씩 주워 올려서 수습해나가는 모습을 아주 무미건조한 문체로 보여주는데, 이런 딱딱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가 되기는 참 쉬웠다. 그리 따뜻한 시선을 갖지도 않은 작가를 따라 난 그녀의 손을 붙잡고 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사건들을 같이 겪는다. 그녀는 내게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믿게 되어버린다, 내가 옆에서 손 꼭 붙잡고 우리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속 힘을 불어 넣어줬으니까. 

그리고 그레이스. 한번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수지의 입장에서만 서술되는 타자. 그러나 수지를 수지이게 한 장본인인 언니이다.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 대사 하나 없이 현실세계에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그 어느 누구보다 서사의 중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소설계의 작은 혁명이 아닐까,  

주인공만 알고 있는 감춰진 과거의 사건들을 감질나게 보여주면서 이미 주인공에 완벽하게 이입을 한 독자들을 약올리고, 알면 괘씸해서라도 책을 탁 덮어버리면 그만이련만, 그러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작가의 마수같은 문장들에 얽혀버려서 책 안으로 끌려들어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내가 누군지, 내 뒷목덜미에 소름이 돋던지 말던지도 신경쓰지 못하게 되버리고 만다. 뭐 하나 같이 공감하는 것 하나 없음에도 그녀를 오롯이 느끼게 되는 전율, 독서를 할 수록 느끼기 힘들어지는 자극을 오랜만에 받았다.  

애국심이나 뭐 인종차별, 마음붙일 데 없는 .(쩜)5세대들, 도덕성과 이기심, 뭐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신문보면서 생각해도 되니까 일단은 딱딱해 보이지만 포근한 담요같은 작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 덫, 그물, 거미줄, whatever.. 에 걸리고 말 것이라는 걸 당신이나 나나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이런 책에 질식사라면 언제든지 두손들고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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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0-07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지금 책 읽다가 갑자기 잊혀지는님이 <통역사>리뷰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알라딘 들어와서 확인했는데, 빙고- ^^ 이 책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작가가 자신의 인생에 그 소재와 주제를 빚지고 있어서, 작가에 대한 평가를 망설이게 하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두번째 작품이 무지 기다려져요. 혜성같이 나타는 젊은 미녀 한국인 교포 작가의 두번째 소설은 왜 안나오는건지. 나오기만 해봐라, 냅다 사버릴테니, 하고 기다리고 있다죠.

Forgettable. 2009-10-07 09:24   좋아요 0 | URL
아.. 책 따라하려고 멋있는척 하다 망한리뷰- 라고 어제 밤에 좌절하며 잠들었는데, 새벽녘에 벌써 보셨군요! 그런데 그 텔레파시는 뭐랍니까; 진짜 신기하네요 ㅋㅋㅋㅋ 제가 이거 쓰면서 계속 하이드님 생각했는데 정말로 전해졌나봐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나니, 아멘-

다음 작품도 괜찮을 것 같다고 믿습니다(!?). 오늘 왜이리 사이비 종교느낌의 댓글일까..
저는 원서가 엄청나게 궁금하네요, 원서를 읽으며 차기작을 기다려볼랍니다.

2009-10-07 0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7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7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7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0-0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집에서 내가 수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했어요.
참 좋았는데 어서 다음 작품이 나왔으면..

Forgettable. 2009-10-08 09:14   좋아요 0 | URL
수지 같은 사람이라니.......... 언니와 오빠들에게 이쁨받는 막내 스타일은 분명 아닌데요;;;;;;;;
자매의 이야기를 참 잘 담아냈죠.

암튼 밑도 끝도 없이 좋다, 읽어라- 라니.. 제 리뷰도 참-_- 자기 반성이 필요할 것 같아요.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10-08 10:47   좋아요 0 | URL
전 집에서 좀 방관자적이거든요.
대충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버리는 것들도 많고..

Forgettable. 2009-10-08 13:36   좋아요 0 | URL
제 동생이랑 비슷하네요 그런건;;;
제가 그레이스를 보며 오오(! 감탄사에 많은 의미가...) 하던 것과 비슷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