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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 마음산책

 

10년 전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지나간다'고 <청춘의 문장들>을 읊조리던 작가가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떨어지는 꽃잎 앞에서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며 <청춘의 문장들 +>로 돌아왔다. 이번 책은 산문과 대담이 이어지는 구성이 눈에 띈다. 불혹이 지난 작가가 돌아보는 청춘은 어떤 울림을 줄런지 기대된다. 김연수는 이름만으로 구입하는 몇 안 되는 국내작가. 그의 신간은 언제나 반갑다. 그의 에세이는 더욱 반갑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 이소영 옮김, 돌베개

 
평화로운 방에서 방만한 자세로 펼치는 것이 미안한 책이 있다. 프리모 레비의 책이 그렇다.
어떤 종류의 타인의 고통은, 그 고통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이에게조차 일종의 원죄의식을 가지게 한다. 수전 손택의 말처럼 나아닌 타자의 고통을 나는 이해할 수 없음으로 해서 위로하는 한 마디조차 오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바라본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한없이 시선을 낮추고, 가슴을 비우고, 판단하지 않고 재단하지 않고 다만 침묵으로 마주 봐야 한다.

그가 부디 평화로운 안식에 들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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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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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인데 무심코 이름을 검색했다가 주루룩 펼쳐지는 목록에 놀랐다. 약력을 보니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라고 한다. 누군가의 일상이 공감을 얻는다는 건 그 누군가의 일상이 소소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진솔하다는 의미일 텐데 더군다나 그 누군가가 이웃나라 작가라니 책을 펼치기도 전에 호기심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고운 연분홍, 반짝반짝 분홍색 가름끈. 보는 순간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아, 이 책은 여자를 위한 책이구나" 다. 첫인상을 배반하지 않는 이 예쁜 책은 책을 펼치면 활자가 말을 걸어온다. 조곤조곤 더 없이 음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일상, 느낌, 생각을 얘기한다.
절반쯤 읽다가 책의 표지를 다시 확인하고 제목을 새삼 눈여겨 보게 된 이유는 독서 도중에 문득 책을 가득 채운 일상의 주인공이 '나이'라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늦게 '아, 그래서 첫 에피소드도 법령선이구나' 했다. '법령선'이라니, 처음 보는 단어라 찾아봤는데 아마 표준국어는 아닌 듯 하다. 동일한 의미의 단어로 '팔자주름'이 있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답게 인물의 나이를 법령선으로 구분하는 작가의 고민은 과연 또래 연령대의 여자들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공감지점이 있다. 마스다 미리의 일상이 공감을 끌어내는 힘은 아마 이런 데 있는 게 아닐까. 일상성의 힘은 '공감'을 끌어는 데서 발휘되는데 마스다 미리의 소박한 일상이 설득력을 가지는 의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건 수다에 추억이 차지하는 양이 많아진다는 의미인 듯. 옛날에 말이야, 내가 **할 때 말이야,... 등등 과거 얘기가 현재를 온통 채운다. 뭐, 꼭 서글픈 일은 아니지 않을까. 정작 중요한 건 이런 것, 마스다 미리가 인용한 영화 대사처럼 '인생은 축복이니 낭비하면 안 되죠.'(p.61) 이니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녀의 얘기에 공감하고 동조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와 친구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한번에 일독하는 것보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시간을 두고 조금씩 읽기를 권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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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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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몇 줄로 요약된 한 인물의 연대기를 읽는 기분은 늘 묘한 감상을 남기는데 이는 결국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임을 확인하는, 자연순응에서 오는 체념 때문인 듯 하다.
인간의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1888년 출생, 1959년 사망은 축복받은 긴 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억울할 것도 없는 나름 선방한 긴 생이다. 또 작가의 입을 빌리면 불혹을 넘겨 탐정소설로 데뷔해 소설작가로, 시나리오작가로 부와 명성을 얻고 자신이 활동하던 장르에 자신의 이름을 딴 '스타일'도 남겼으니 작가로서도 꽤 만족할만한 삶이다. 무엇보다 30년 넘게 친구로 동반자로 사랑하고 의지한 아내가 있었으니 그만하면 남자로서도 제법 축복 받은 삶이지 않는가. 요약하면 레이먼드 챈들러는 누구의 부러움을 사도 당당한, 이만하면 꽤 괜찮은 삶을 살았던 남자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비교하자면 스티븐 킹의『유혹하는 글쓰기』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에세이다. 킹의 에세이는 제목 그대로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노하우를 담은 책이지만 챈들러의 에세이는 지인들과 주고 받은 작가의 편지를 통해 '작가로서의 일상'을 토로하는 책이다.
순전한 챈들러의 육성을 통해 챈들러에 대해 한 자락을 발견하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책, 보다 정확한 의미로 '챈들러의 편지'를 읽으면서 순간 순간 피식 웃는 지점이 있는데 이를 테면 자신의 작품을 칭찬하는 A에게도, 비판하는 B에게도 챈들러는 공평하게 불퉁하다. 그때문인지 전반적인 작가의 인상은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강하고 까칠한 느낌이다. 이는 사실 직업인으로서의 작가에겐 장점이 더 많은 성격이지만 아마 챈들러가 이 글을 본다면 '네가 뭘 모르나 본데(블라블라)' 불만을 토해낼 것 같다.
「필립 말로」제목이 붙은 4장은 작가가 설명하는 필립 말로가 등장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무방할 필립 말로에게서 작가의 자화상을 더듬게 된다. 물론 실제로도 일부는 그런 부분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장르문학, 구체적으로 '탐정소설'에 대한 세간의 비평에 특히 목소리가 올라가고 말 끝이 한층 더 날카로워지는 챈들러는 천생 작가다. 그것도 뛰어난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작가다.
장르소설(구체적으로 탐정소설)을 하위문화로 분류하는 평론에 거세게 반발하는 챈들러의 모습은 호모폴리티쿠스로서의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당연하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정치성을 가지게 마련이고 작가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 문화예술이 다 그렇지만 특히 문학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투영해서 이해하려는 습성이 있는데, 그 연장선에서 최근 궁금한 것은 이런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 추구하고 실현하는 정의를 현실에서도 추구하는가, 라는 부분.
실제 챈들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정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챈들러는 필립 말로에 대해, 어느 누가 경제적 이득 없이 위험에 자신을 던져 정의를 실현하려고 들겠는가, 라고 말로를 지지한다. 탐정소설이 남자들에게 특히 인기를 끄는 건 역시 주인공을 통해 남자들의 로망을 실현하는 대리만족의 의미가 크지 않을까.
역자의 역주에 오랜만에 만족하면서 읽었다. 역자와 편집자의 작가에 대한 애정이 전반에서 느껴지는 한 권이었다.

덧1> 책의 만듦새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겉표지를 벗기고 속지를 보는 순간 "아, 예쁘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덧2> 말라르메의 고양이와 챈들러의 고양이가 만나는 상상을 해봤다. 아마도 제 인간주인보다 시니컬하고 삐딱한 대화를 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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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 유예진 옮김, 은행나무

 

잭 매니건의『고전의 유혹』중「마르셀 프루스트」편을 읽다가 박장대소했는데 바로 이 부분, (요약하면)'사람들은『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딱 한 부분만 언급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셀이 마들렌을 차에 적셔 먹으며 과거의 순간을 떠올리는 장면이다.'때문이다. 예전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도 삼순이의 입을 빌어 이 마들렌 얘기가 나왔는데 그때도 딱 이 장면이었다. 고백하건데 내가 이 드라마를 여태 기억하는 건 드라마 자체보다 '저 작가는 정말 저 지루한 소설을 다 읽었단 말인가?' 궁금해했던 기억 때문이다.
이제껏 소설을 읽던 도중에 포기한 작가가 딱 두 명 있는데 M.프루스트와 V.울프 여사다. 두 사람 소설의 공통점은 의식의 흐름기법을 사용한다는 것.『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편『스완네 집 쪽으로』를 초반 50여 페이지 읽다 내팽개쳤을 때만 해도 나는 순진하게도 다시는 이 작가를, 이 소설을 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은 뭐랄까. 프루스트는 어느 길을 가도 버티고 있는 거대한 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문학'이라는 는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되는 관문처럼 보인다. 실제로 책장에 프루스트의 소설은 없지만 프루스트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한 평전은 제법 꽂혀 있다.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그를 이해하는 것부터, 가 나름대로 내 최선인 것. 그러니 프루스트의 미술평론이라는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저자 입문용이라는 이 위대한 생각시리즈는 모두 솔깃한 저자들로 목록이 구성되었다. 

 

 

 서머힐에서 진짜 세상을 배우다

 채은 / 해냄

 

신간코너에서 오랜만에 '서머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유학 시절, 얼굴과 이름만 알고 지내던 한 (여)선배는 기혼이었다. 어느 날 이 선배에게 호감이 확 상승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선배의 결혼에 대한 일화를 듣고서였다. 그러니까 남편이 청혼할 때 서머힐을 다룬 책을 건네면서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다고 했다는 거다. 실제로 선배 부부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은 우리나라 교육풍토를 생각하면 꽤 파격적이다. 일화를 하나 들자면 이 부부는 아이가 공부는 물론이고 숙제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매번 새학년이 되면 담임에게 이런 부분을 얘기하고 미리 이해를 구한다고 한다.
국내에도 어느새 대안학교가 제법 자리를 잡았다. 학교와 교육의 본질에 대해, 처음으로 돌아가서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학교폭력에 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학교가 아이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할 때 부모는 학교에 자신의 아이를 맡겨서는 안 된다. 부모라면 아이를 지키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할 때 아이만 생각해야 한다.

 

 

 유럽 책마을에서

 정진국 / 봄아필

 

'유럽'도 좋은데 '책마을'이라니. 이건 마치 일부러 콕 집은 것 같은 제목이지 않은가 말이지.
농담 삼아 하던 '이민이나 갈까'가 제법 진담이 섞이니 '이민 갈까'가 되었다. 이민 얘기를 할 때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건 이민의 대상국이 언제나 유럽, 그것도 북유럽이라는 것. 결국 내가 살고 싶은 땅의 이상적인 조건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인가 보다. 돈 안 들이고, 기운 안 쓰고 유럽도 보고 책마을 구경도 하고. 여러모로 끌리는 기행에세이.

* 이 책은 개정판인데 구간과 목록을 비교해 보면 내용이 추가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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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 / 문학동네

 

 황현산, 김남주에 이어지는 산문을 읽는 즐거움. 전작들에 대한 만족이 다음 에세이로 이끈다. 그리하여 눈에 띈 신간. 인문학자이면서 문학비평가의 에세이라니 이보다 더 혹하게 하는 키워드가 있을까.

* '인문학의 위기'가 이젠 흔한 유행가 가사가 된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인문학이 주변에 미치는 스펙트럼은 여전히 넓고 그 영향력도 유효하다.

 

 

 나의 인생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 이기숙, 문학동네

 

 전쟁이 낳은 비극 중 하나는 그 후유증이 후대의 몫으로 이어진다는 것에 있다. 이를테면 2차대전과 나치의 인종주의를 피해 국경으로 갔던 스테판 츠바이크와 발터 벤야민은 국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학계는 두 문인을 잃었다. 물론 이 두 사람은 빙산의 일각이다.
그러니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이력은 오히려 신선하다.
작가 약력을 보면 무사히 국경을 넘은 그는 오래토록 문단에서 활동하며 많은 작품과 후학을 남겼다고 한다. 작가들이 싫어하는 비평가는 역설적으로 독자에겐 단비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의 생애가 궁금하다.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레이먼드 챈들러 / 안현주, 북스피어

 

 이건 순전히 나한테 국한된 얘기지만 레이먼드 챈들러, 레이먼드 카버, 존 치버는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늘 헷갈리는 작가들이다. 미국에서 출생했다는 것 외에는 문학적으로 공통점이 전혀 없는 이들이 왜 헷갈리는지 정말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그렇다.

소설은 참 재미있지만 에세이는 별로인 작가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있고, 또 소설도 에세이도 다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도 있다.

이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작가가 스티븐 킹인데 그는 '글은 일단, 무조건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장담을 실천하는, 독자로서는 참 고마운 작가다.

스티븐 킹의 영향인지 추리(스릴러) 장르의 대가는 에세이도 재미있게 쓸 거라는 막연한, 근거 없는 기대감 같은 게 있다. 늘 자자한 명성을 듣지만 막상 챈들러의 소설은 아직 읽은 게 없다. 이번 신간은 그의 편지 68편을 엮은 것이라 엄밀하게는 에세이가 아니지만 그의 육성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지난달에 LOA의 챈들러 전집을 구입했는데 그의 픽션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자연인 챈들러를 먼저 접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 새움

 

3월 신간은 아니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 리스트에 넣어본다.

반갑게도 고마운 지인이 개정판과 초판 두 권을 보내주었다.

내게 이명원으로 가는 키워드는 역시 김윤식이다.
존재 위치로 보면 다윗과 골리앗 쯤일(이 구도는 지금도 여전하다), 이명원이 김윤식의 표절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을 때 김윤식의 방관과 기성문단의 날선 반응은 수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갑갑하다. 강유원이 '너는 틀렸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을 때 유연하고 소탈한, 선배답고 스승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故이윤기의 이른 영면이 새삼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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