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 (인삼밭에그아낙네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casket</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my private own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07 Apr 2026 17:32:00 +0900</lastBuildDate><image><title>인삼밭에그아낙네</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82941751225780.gif</url><link>https://blog.aladin.co.kr/casket</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인삼밭에그아낙네</description></image><item><author>인삼밭에그아낙네</author><category>text</category><title>詩와 시의 간극 - [이십억 광년의 고독 (리커버)]</title><link>https://blog.aladin.co.kr/casket/17149332</link><pubDate>Sat, 14 Mar 2026 06: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asket/171493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724&TPaperId=17149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53/13/coveroff/89320387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724&TPaperId=171493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십억 광년의 고독 (리커버)</a><br/>다니카와 슈운타로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06월<br/></td></tr></table><br/>슌타로의 시집 『이십 억 광년의 고독』은 인터뷰 한 편과 산문도 세 편 실었다.&nbsp;이 시집은 통쇄 10쇄다. 놀랍다. 더 놀라운 건 나는 시인과 시인의 시집과 이제 처음 안면을 텄다는 사실이다.<br>시를 번역하면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詩』다. 시를 번역해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lt;시&gt;다. 같은 단어지만, 품은 뜻은 미묘하게 다른 『시』와 &lt;시&gt; 사이에서, 모국어에서 떨어져 자립하려는 시 작품은 괴로워하고 있다.<br>p.5'詩'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새삼 '시'에 대해 생각한다.&nbsp;한 걸음 멈추고, 다시 한 걸음 멈추고, 시인의 언어와 교감한다.<br>나는 활자와 언어에 민감한 작가를 좋아한다. 그런 작가는 글을 함부로 취급하지 않는다. 글을 존중하기 때문이다.<br>시인이 읊어주는 미묘하고 섬세한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돌 하나를 놓는 마음, 마음이 떠난 자리에 사무치는 슬픔. 그 슬픔이 자박자박 마음을 밟으며 걸어들어오는 순간 시인의 슬픔은 독자의 슬픔이 된다.&nbsp;공감하는 언어. 그것이 시인의 말글이다.<br>인간이 문자로 지어낼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순간은 '시詩'가 아닐까, 그런 생각.<br>보드라운 진흙이 먼저 내 입술에, 다음에는 점점 큰 흙덩이가 내 두 다리 사이에 내 배 위에. 둥지가 무너져버린 개미 한 마리 순간 묶여 있는 내 감은 눈 위를 기어간다.<br>p.68 '빌리 더 키드'산문시 '빌리 더 키드'에 이르렀을 때 슌타로의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기시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았다. 바로 앨런 긴즈버그다. 'Howl(울부짖음)'이 아니라 '한 때 네가 사랑했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고 낭독하던 영화 『킬링 유어 달링』의 그 앨런 긴즈버그다.<br>하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시인이 부르는 '사랑'이다. 이 어르신은 특히 내로남불하는 불륜詩가 좋다. 불륜도 싫고 불륜 드라마도 불륜 소설도 싫은데 불륜 시는 좋으니 동그란네모인가 싶지만... 어쩌라고, 좋은데...<br>소설은 그렇지 않은데 마음에 드는 시집을 만나면 여러 권 사서 쟁이고 싶다. 침실에, 거실 소파에, 식탁에, 서재 책상 위에, 차 글로브박스에 한 권씩 던져 놓고 눈에 띌 때마다 읽는 거지.<br>사랑에 빠진 남자<br>연인이 얄궂게 웃는 얼굴의 뜻을 읽어낼 수 없어서그는 연애론을 읽는다펼쳐든 페이지 위의 사랑은향내도 감촉도 없지만의미들로 넘쳐난다<br>p.183<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53/13/cover150/89320387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531394</link></image></item><item><author>인삼밭에그아낙네</author><category>subtext</category><title>개와 늑대의 역설 &amp;lt;28년 후&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casket/17149306</link><pubDate>Sat, 14 Mar 2026 05: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asket/17149306</guid><description><![CDATA[「28년 후 : 뼈의 사원」은 3부작 중 1부이며 전작 '28일 후'를 제작, 감독했던 스탭이 다시 뭉쳤다고 한다.&nbsp;전작은 안 봤고, 「28년 후」만 봤음을 미리 밝힌다.<br>갑자기 좀비물 푸쉬가 씨게 와서 이 장르 명작이라는 '28일 후' 시리즈의 최신작 「28년 후」를 봤는데&nbsp;'좀비물'인 걸 빼면 정보 없이 봐서 감독이 대니 보일인 줄 몰랐다. 러닝타임 내내 종종 의심하다 엔딩인 듯 쿠키인 듯 엔딩 장면에서 초기작 '록 스탁 앤 두 스모킹 배럴즈'의 MTV스타일이 확 터지는 걸 보고 대니 보일이 맞구나 했다.<br>엔딩 포함 줄거리<br>28년 전 감염자들을 피해 홀리 아일랜드(섬)으로 피신한 생존자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일군다. 간조가 되면 본토로 바닷길이 열리는데 이날 생존자들은 본토로 건너가서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구해온다.&nbsp;섬의 아이들은 14세가 되면 본토로 가서 첫 사냥을 하는데(성인식) 아들인 스파이크가 열두 살이 되자 제이미는 스파이크를 데리고 본토로 간다. 아빠의 엄호 끝에 스파이크는 첫 사냥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무사히 본토에 귀환하지만 성공 축하 파티가 열린 그 밤에 스파이크는 아빠의 불륜을 목격한다. 뒤이어 본토에 의사가 있다는 정보를 아빠가 숨겼다는 사실을 알자 아빠에게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다.&nbsp;아빠가 아픈 엄마를 버렸다고 판단한 스파이크는 엄마를 데리고 본토로 가서 천신만고 끝에 닥터 켈슨을 만나지만 두 사람이 확인한 건 엄마가 암 말기이며 죽음이 임박했다는 진실이다. 그에 아일라는 안락사를 선택하고 스파이크는 닥터 켈슨의 도움으로 엄마의 제를 치른 후 엄마가 구조한 (감염자가 낳은) 아기를 데리고 홀리 아일랜드로 돌아온다. 아기에게 엄마 이름 '아일라'를 지어준 스파이크는 마을 입구에 아일라와 편지를 담은 바구니를 두고 다시 본토로 간다.&nbsp;<br><br>1. 고립'28년 후'에는 두 개의 공간이 등장한다. 본토에서 탈출한 생존자들이 정착해 터를 일군 안전한 홀리 아일랜드와 감염자들이 장악한 위험한 본토 브리튼이다. 간조기에 생존자의 땅과 죽은자의 땅이 연결되면 생존자들은 죽은자들의 땅으로 가서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구해온다.&nbsp;생존자들의 섬과 감염자들의 섬 중 고립된 섬은 어느 쪽일까.&nbsp;&nbsp;<br>2. 첫 사냥 혹은 첫 살인아내 아일라의 반대에도 제이미는 열두 살이 된 스파이크를 데리고 본토로 간다. 홀리 아일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스파이크에게 본토는 감염자들이 장악한 공포의 땅이기도 하지만 첫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스파이크는 사냥=살인을 배운다. 감염자라고는 해도 일단은 인간의 형상을 한 생명체이므로 소년에게 첫 사냥은 생존과 더불어 첫 살인의 순간이기도 하다. 기억할 것은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미지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생존방식을 배운다는 사실이다.<br><br>3. 오이디푸스서양문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얘기할 때 '오이디푸스 신화'를 빼놓을 수 없다. 첫 사냥에 성공하고 무사히 귀환한 날 밤 아빠의 불륜과 거짓말을 목격한 스파이크는 분노한다. 하지만 제이미는 스파이크가 느낀 절망을 외면하고 이는 스파이크가 아빠에게서 보호와 책임이라는 '가장의 지위'를 뺏는 결심으로 이어진다. 스파이크는 아픈 엄마를 데리고 안전한 아버지의 집을 떠나 본토로 향한다. 야만의 땅에 엄마를 고쳐줄 의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이미를 위해 변명해보자면 제이미가 스파이크를 사랑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신의 방식으로 아일라를 사랑한 것도 어쨌든 사실이고.&nbsp;<br><br>4.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역설메멘토 모리는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인간은 필멸하는 존재)라는 의미의 라틴어다.아픈 엄마를 치료하기 위해 아빠에게 첫 사냥(첫 살인)을 배운 야만의 땅으로 엄마를 데리고 간 스파이크는 그곳에서 엄마에게 예정된 죽음을 확인한다. 이때 닥터 켄슬이 절망하는 두 사람을 위로하며 뼈를 쌓아올린 제단 앞에서 하는 얘기가 '메멘토 모리'인데 「28년 후 : 뼈의 제단」의 주제가 드러난 장면이다.엄마를 살리기 위해 간 땅에 엄마를 묻는 스파이크. 엄마가 구조한 아기에게 엄마의 이름을 지어주고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오는 스파이크. 아버지가 죽음을 가르친 땅에서 어머니가 새 생명을 구조해 스파이크에게 안긴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이다.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난 소년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br>&nbsp;5. 성장과 독립스파이크는 본토에 세 번 가는데 처음은 아빠랑, 두 번째는 엄마랑, 마지막은 혼자 간다.앞선 두 번은 첫 사냥과 엄마의 치료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세 번째는 목적이 없다. 어린 스파이크는 왜 그 위험한 감염자들의 땅으로 갔을까. 해석을 위한 해석을 해보자면,<br>1) 제이미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스파이크(오이디푸스)는 아버지의 땅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다.2) 본토에서 아기의 탄생과 엄마의 죽음을 연이어 목격한 스파이크에게 홀리 아일랜드는 갇힌 세계 즉 멈춘 세계이고, 본토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열린 세계로 인식되었을 수 있다.3) 이솝우화 '개와 늑대' 메타포로 본다면, 안전과 안정된 먹이가 보장되지만 묶여서 사육되는 삶 vs 굶주림과 생존의 위협이 있지만 자유로운 삶 중 후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nbsp;<br>분명한 건 아버지의 부정을 목격했고(낡은 세계의 붕괴), 엄마 아일라의 죽음과 아기 아일라의 탄생을 지켜본(삶과 죽음의 교차) 스파이크가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br><br>6. 후기영국 본토에서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고 28년이 지난 시점, 다른 대륙은 바이러스 진압에 성공했지만 영국은 실패했고 사실상 대륙봉쇄령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견 브렉시트를 연상케하는 상황이다.&nbsp;장르는 B급 좀비물인데 그 안에 담긴 스토리텔링이 생각보다 신화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의외였고 기술적으로는 대니 보일의 MTV 스타일이 2026년에도 여전히 통하는 게 놀랍다.<br>1부 엔딩과 쿠키만으로는 2부와 3부의 스토리 방향이 잘 가늠이 안 되는데 큰 틀은 장르의 전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똥촉 하나 던지자면 1부가 '오이디푸스 신화'를 차용했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리적, 정신적으로 독립한 스파이크가 스스로 고향을 떠나 척박한 땅으로 걸어들어가는 2부는 '오디세이아 신화'의 변형이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알려진대로 '오디세이아'는 오랜 세월 타지를 떠돌며 고난을 극복하고 운명과 맞서 싸우는 오디세우스의 성장기다. 만약 2부가 오디세이아 신화라면 3부는 의외로 홀리 아일랜드로 귀환하는 얘기일 수도?다만 한 가지 궁금한 건 아기 아일라다. 감염자의 태반에서 태어난 아기는 일단 눈동자 감식법에 의하면 비감염자로 보이지만 아빠가 무려 알파 좀비인데 탄생 비화 정도로 소비될 것 같지는 않다.<br>- 등급심의 때문에 국내 개봉이 2월 말로 미뤄진 2부는 시리즈 중 가장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니 나같은 고어 기피자는 눈감고 봐야 할 듯.- 스파이크를 연기한 아역 배우 알피 윌리엄스가 정말 연기를 잘 한다. 어떻고 저떻고 수식 필요 없이 걍 연기를 잘함. 연기천재만재임. 그런만큼 지속적인 심리 케어가 필요해 보인다. 알아서 하겠지만. 영화 초반부터 엔딩까지 내내 아동학대가 걱정될 정도인데 그만큼 영화의 스토리텔링이 잔인하다.]]></description></item><item><author>인삼밭에그아낙네</author><category>text</category><title>버크 리스트의 참을 수 없는 무의미 - [액스 - 박찬욱 감독 영화 &amp;lt;어쩔수가없다&amp;gt; 원작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casket/17052894</link><pubDate>Wed, 28 Jan 2026 1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casket/170528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030951&TPaperId=170528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77/48/coveroff/k7120309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030951&TPaperId=170528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액스 - 박찬욱 감독 영화 &lt;어쩔수가없다&gt; 원작소설</a><br/>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25년 09월<br/></td></tr></table><br/>나는 킬러가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영혼이 없는 킬러. 그건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벌이고 다니는 짓은 사건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주주들의 논리, 임원들의 논리, 시장의 논리, 노동력의 원리, 밀레니엄의 논리, 그리고 나 자신의 논리.대안을 알려주면 살인을 멈출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벌이는 짓은 끔찍하고, 까다롭고, 섬뜩하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중략)이런 생각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무장한 킬러다. 무자비한 괴물. 내 안에는 바로 그 괴물이 담겨 있다.(p.162)'나쁜 짓을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안의 괴물이야'라는 궤변을 어디서 봤더라...<br>잠재적인 스톡홀름 증후군자인 독자는 소설의 화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동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엑스』는 손에 꼽을 정도로 주인공- 버크 데보레가 역겨웠던 소설이다. 건조한 서술을 보면 작가도 버크에게 동정을 느끼지말라는 것 같고.<br>버크 데보레는 해고된 지 2년 째인 실직자다. 실직 수당은 떨어졌고 아내는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 해고 열풍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따라서 버크의 재취업도 요원해보인다. 그리하여 버크는 결단을 내린다. 미래 경쟁자를 제거하기로.<br>생각해보자.<br>버크의 경쟁자는 중간 관리자다. '중간 관리자'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이는 중년일 것이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큰 실수 없이 성실하게 일했을 것이고, 당연히 가정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버크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평생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다 실직하고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버크의 제거 명단인 것이다.<br>버크와 사적 이해 관계가 전혀 없지만 재취업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버크의 제거 대상 리스트에 오르는 사람들. 이 소설에서 가장 불편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이웃이 영문도 모른 채 살해당하는 것. 연쇄살인마 덱스터는 그나마 살인자를 죽이기라도 했지.<br>집 근처 식당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는 세 번째 대상을 제거하고 모텔로 돌아가는 길에&nbsp; 버크는 흐느껴 우는데(p.110) 그 모습이 너무너무 역겨웠다. 개새끼.&nbsp;세 번째 살인 후 형사가 버크를 찾아오고 연쇄살인의 수법이 총이라는 단서를 흘린다. 형사의 얘기에 버크는 살인을 멈추는 게 아니라 총을 포기한다. 이쯤되면 버크에게 이제 살인은 생존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과시하는' 뭔가를 확인하는 수단인 것처럼 보인다.&nbsp;네 번째 경쟁자는 아직 40대라는 이유로 50대 버크의 분노를 산다. 젊음이 죄인양, 부부사이가 좋은 것이 죄인양 네 번째 경쟁자를 증오하는 버크는 어딘가 정상적이지 않다. 하긴 경쟁자리스트를 들고 살인하러 돌아다니는 놈이 정상이면 안 될 말이지. 버크는 젊고 유능한 네 번째 경쟁자를 쇼핑몰 주차장에서 둔기로 때려죽인다. 개새끼.<br>버크의 범행수법은 점점 대담해진다. 이제 잠긴 문을 열고 타인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킬러 소질을 타고난 것인지, 버크의 믿음처럼 절실한 생존욕구가 만든 당위인지는 버크 본인만이 알 것이다. 어쨌거나 버크는 경쟁자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효율적이며 결과가 확실한 자신의 '노하우'가 아주 마음에 들고, 자신에게 도움을 준 이웃에게 필요하다면 노하우를 알려줄 마음도 있다. 혹시 나중에 또 일이 잘 안 풀린대도 자신에겐 노하우가 있으니 더는 불안하지 않다.<br>버크 리스트엔 모두 일곱 개의 명단이 있지만 못생겨서 이혼당한 덕분에 살아남은 헨리8세의 네 번째 부인처럼 버크가 찾아오기 직전에 구직에 성공한 한 명은 운 좋게 살아남는다.&nbsp;마지막 일곱 번째 대상이 버크 리스트의 하이라이트인데 그는 버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회사에 재직 중인 직원이다. 구직이라는 공동 목적을 가진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기 위해 시작한 살인은 내가 일하고 싶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버크의 눈물이 왜 그토록 역겨웠는지 확인했던 반전이다.<br>'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는 영화'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영화'라는 해설을 봤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영화는 아직 안 봤지만 아마 앞으로도 안 볼 것 같다.<br>책을 덮으며 의문이 남는다. 과연 버크의 살인을, 전국을 휩쓰는 실직 사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존방식의 우화로 봐도 되는가 라는.물론 국가가 돌보지 않는 산업 현장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각자도생하는 야만의 몸부림이라는, 사회소설의 메타포로 읽을 수도 있다.&nbsp;<br>박찬욱 감독은 영화에 원작 제목 대신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을 붙였다. no other choice.&nbsp;과연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그럴리도 없지만 그래서도 안 된다. 이것이 공동체 구성원인 개인의 정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77/48/cover150/k7120309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77480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