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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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 특유의 믿을 수 없는 화자를 감안하고 읽다 보면, 프닌을 희화화하는 태도의 문제점을 자각하게 된다, 반전이 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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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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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시를 하잖아!" 하겐이 외쳤다. "그게 비극이라는 거야! 예를 들어 저 사람"-환한 표정의 프닌을 가리키며-"누가 저 사람의 개성을 원할까? 아무도 원하지 않아! 세상은 티모페이의 원더풀한 개성 따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내팽개치겠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프닌, 248쪽

프닌과 같은 사람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우리가 학생일 때 만났던 선생님 중 한두 명, 반에서 재능 많은 친구가 성대모사를 시도해 박장대소를 유발하는-그의 제스처, 특유의 버릇, 말투의 재현도가 높을수록 높아지는 찬사-특이한 선생님의 기억. 러시아에서 탈출해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수 프닌은 '프닌 연기'가 파티의 흥을 돋구는 역할을 할 만큼 특유의 개성과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건 그의 어색한 영어(그의 러시아어가 음악이었다면, 그의 영어는 살인이었다-98쪽), 번역으로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서툰 영어는 나보코프 특유의 언어유희와 결합되어 프닌어를 형상화한다.

프닌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적인 캐릭터라고, 소설의 화자 '나'가-그의 정체는 소설 마지막 장에 가서야 밝혀진다-앞장서서 그를 놀리는 데 진심으로 임한다. 소설 도입부에서 기차를 잘못 탄 줄도 모르고 행복해 하는 프닌의 외모를 놀리고 프닌의 정형화된 여행 짐 목록을 세세히 열거하며 놀리고 프닌이 기계와 상성이 맞지 않다며 놀리고 프닌의 모든 것을 웃음거리로 알뜰하게 써먹는다.

프닌은 웃음거리의 소재가 될 인물인가? 그는 풍자의 대상이 될 만한 큰 잘못을 지었나? 소설을 읽으며 화자 '나'의 프닌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웃으며 따라가다 어느 순간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잘못 탄 기차에서 내려 심장 통증을 느끼며 과거 러시아의 기억을 떠올리는 프닌, 첫 결혼에 실패하고 전 아내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울음을 터뜨리는 프닌, 러시아에서 어긋났던 약혼과 그 약혼자가 수용소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 뒤 세상에 대한 실망에 짓눌리는 프닌, 그를 존중하지 않는 학교에 실망하고 분노하는 프닌, 그의 고통과 슬픔과 고독과 외로움은 정당하다. 프닌은 함부로 웃음의 소재로 쓰일 인간이 아니다.

잊어야 했던 이유는, 자기기만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미라가 그렇게 죽는 일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세계 안에서는 그 어떤 양심도, 따라서 그 어떤 의식도 계속 유지되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같은 책, 202쪽

"사람들이 자기의 은밀한 슬픔을 그냥 좀 가지고 있게 내버려둘 것이지, 안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진짜로 소유한 것이 슬픔 말고 뭐가 있습니까?"

같은 책, 76쪽

슬픔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이 소설에서 진정 문제적인 존재는 화자 '나', 그가 프닌을 대하는 불합리한 태도가 문제다. '나'는 작가 나보코프 자신이자 나보코프 특유의 '믿을 수 없는 화자'이다. 소설을 끝까지 읽은 뒤 우리는 프닌을 희화화하는 '나'의 목소리를 문제삼을 수 있게 된다.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특이한 버릇이 있다는 이유로, 언어가 서툴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웃음의 소재로 사용하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든다. 한 인간을 웃음거리로 만들 때 그가 가진 슬픔을 생각해 보라, 누구도 함부로 웃음의 소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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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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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가장 아팠던 건 <답신>, 

울었던 건 <이모에게>, 

기억에 남는 대사는 <일 년>, 

밑줄이 많은 건 <몫>, 따뜻함은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반복해서 읽을 작품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하냐며 너만 참으면 된다고 뭉뚱그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서는 아주 희미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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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인생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 디플롯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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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임종 직전 이 말을 하늘 한 점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인생이란,

가령 이슬아의 '끝내주는 인생' 행보를 따라가 본다면


성실히 노동하고(그녀는 글을 쓴다, 마감에 괴로워하며..)

꾸준히 운동하고(태권도장과 요가원을 다니고 달리기를 한다)

가까운 이를 사랑하고, 사랑의 기록을 남기고, 

고양이 탐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살처분되는 돼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고기를 먹지 않고

영어 공부를 하고 영어 선생님과 친해지고 같이 작업을 하고

군부대에서 강연하는 실수(ㅋㅋㅋ)를 하고, 기타 등등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면 나를 둘러싼 세상의 빛이 조금 달라지는데

그 빛은 깊은 밤 적당한 조도의 조명을 켠 책상 위 빛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세상을 조금 더 깊게 볼 수 있는 빛이다.


내 주변의 세상이 나의 인생이다.

그녀의 끝내주는 인생의 여정을 꾸준히 글로 따라잡으며 나 역시 나의 인생을 '끝내준다'는 수식어로 꾸밀 수 있기를 조금은 소망한다. 

살아남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이 든 언니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하곤 한다. 하나의 고생을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삶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어떤 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면 너무 용기가 나서 막 웃는다.
나는 내가 고생 한복판에서도 이렇게 농담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오, 끝내주는데?" 임종 직전에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끝내주는 인생이었어." 그날이 죽는 날임을 미리 알아차릴 행운이 주어진다면 말이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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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밤과 화해하기 원한다 (알라딘 한정판 북커버 에디션) - 엘제 라스커 쉴러 시집
엘제 라스커 쉴러 지음, 배수아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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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가님 번역이라 더 기대되는 시집 새롭게 발견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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