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있는 글 : 개발자란 직업은 잘 먹고 잘 살수 없는 직업인가?
에 달린 댓글 입니다.
이 글 역시 가슴에 새겨두어야겠다는 생각에 퍼왔습니다.
http://www.borlandforum.com/impboard/impboard.dll?action=read&db=free&no=11468
글쓴분 :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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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입니다. 섣불리 사족을 달아 너무나 좋은 글의 의미를 깎는 것이 아닌가 해서 좀 고민했습니다만, 뭐 덜렁거리기 일쑤인 제가 언제는 그렇게 신중했나 싶어서 저도 몇가지 보충적인 의견을 몇자 끄적여봅니다.
요즘 신출내기 개발자들중 다수가 개발자의 현실을 비판하고 열악하다고 말하는데요. 물론 먼저 개발업계가 시작되고 앞서가고 있는 미국과 비교한다면 열악한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SW개발이라는 업계가 생긴 것이 길게 잡아봤자 25년 정도이기 때문에 아직은 대안없는 비판보다는 희망을 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참 재미있는 것이, 2000년 이전에 개발을 시작했던 개발자들의 다수는 더 열악한 상황에서 더 힘들게 시작했는데도 오히려 불평은 훨씬 적습니다. 물론 이들 선배 개발자들은(물론 주정섭님이나 저도 포함해서) 이전에는 더 열악했고 지금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있는 국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정섭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개발이라는 일 자체에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가장 클 것입니다.
개발자들이 돈벌기 힘들다, 라고 말하는 개발자는 대체 어떤 다른 업계와 비교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됩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와 비슷한 인력규모, 비슷한 매출을 가진 비IT 회사의 영업직이나 사무직, 생산직들이 얼마나 받는지 알고나 하는 말들일까요. 다른 업계에 비해서는 개발자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고 실무경력도 짧은 것이 사실인데도 말입니다. 비IT 기업인 저희 회사의 경우 개발자들의 연봉이 썩 높은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전산및개발을 담당하는 저희 팀의 연봉은 다른 팀의 연봉보다 높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개발자는 돈벌기 힘들다, 라고 말하는 개발자들이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규모나 매출도 아니고, 자신의 사회생활 경력년수도 아니고, 아마도 자신이 일하는 양 혹은 시간일 것입니다. 맞습니다. 개발자들은 다른 업계의 종사자들보다 근무 시간이 대체로 깁니다. 야근은 필수, 밤샘은 선택이라는 것이 실제로 많은 경우 현실이니까요. 더 많이 일하니까 더 많이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라는 얘긴데...
그런데, 기업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앉아있는 시간이 아니라 성과입니다. 기업의 매출과 수익이 되는 것은 성과이지 직원들을 오랫동안 앉혀놓는 것이 아니니까요. 개발자 자신이 그럴만한 실력이 있고 노력을 한다면 야근도 줄일 수 있고 적어도 밤샘은 피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6개월동안 일했던 것이 초기에 업무 분석을 잘못해서 물거품이 되었다면, 당사자로서는 무지하게 억울하겠지만 결국은 자신의 잘못입니다. 그에 대해서도 일한 시간이 길었으니까 기업에 보상을 하라고 한다면, 정상참작은 되겠지만 결과로서 기업에게는 오히려 월급만 허공에 날아간 셈이 되는 겁니다.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기본은 프로페셔널리즘입니다. '근무시간이 길다' = '그만큼 높은 보수' 라고 생각한다면 아마추어이고 스스로 아르바이트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입니다. 자본주의하의 우리 사회에서는 성과만이 보수와 맞교환이 가능한 가치이며, 그것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 프로페셔널리즘입니다. 단 몇시간동안 작업해서 코딩 몇줄로 수백만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다른 개발자들이 몇개월에 걸쳐서 겨우 할 정도의 작업이라면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개발자는 돈 못번다는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개발자들은 자신이 아직 아마추어에 머물러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냉정한 얘기지만 사회생활에서 아마추어는 아르바이트라는 얘기와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 주면 주는 대로 받고 결코 주역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마추어, 아르바이트입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연봉협상 대상자 자체가 극소수이고 대부분 저희 팀이며 나머지는 모두 호봉제입니다. 저는 저희 팀원들이 연봉협상을 할 때 매번 조언하기를, 딴 얘기는 전혀 필요없고 성과로 밀어붙여 승부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먹힙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돈이 엮인 문제에서 개발자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단 하나, 성과 뿐이며, 그걸로 충분합니다.
개발업계의 흐름을 생각할 때 제가 가장 통탄하는 일들 중 하나가 벤처거품 시기에 정부 정책으로 무분별하게 무직자들, 재취업자들을 개발자로 떼거지 양산을 한 것입니다. 이들 다수는 단지 취업을 위해, 혹은 당시 개발자가 잘나간다(?)는 얘기만 듣고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당시의 거품 때문에 IT 인력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필요했던 인력은 주로 중급 이상의 경력자였지 6개월 단기 코스를 속성 마스터한 초급자들이 아니었는데도 정부는 파국이 뻔히 보이는 정책을 고집했었죠.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초급개발자가 아니라, 소수라도 장기적인 프로젝트 교육으로 약간이라도 실무 감각을 익힌 개발자였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나름대로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개발자도 적지 않게 보기도 합니다만 그 숫자는 전체에 비해서는 너무나 극소수입니다. 당시에 집사람이 썬에서 자바 공인교육 과정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몇달씩 수강 대기 인원이 밀려있어 자바 강의의 모든 코스가 30명 정원이 항상 꽉꽉 차는데도, 그 30명중에 진도를 어느정도라도 따라오는, 앞으로 업계에 나가서 제대로 살아남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한둘, 혹은 전혀 없기도 했다는 겁니다.
개발이라는 일 자체에 열정이 있는 개발자는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당장 실무에 쓰이는 것만 구현하고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다른 방법을 모색해보고 시도해봅니다. 개발과정에서 특별한 개선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안주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노력하는 개발자로부터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더 열정을 가진 개발자가 더 인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적어도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다른 개발자에 비해서 보수 등의 인정을 더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다른 개발자보다 더 노력하고 공헌도 많이 했는데도 번번이 인정을 못받고 있다면 회사가 잘못된 것이니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새로운 것이라면 무조건적으로 탐욕을 부리는 것도 경계해야겠지요. 요즘은 개발자를 자사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거대벤더들의 다툼이 치열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자사의 마케팅 정책에 불과한 것을 개발자들에게 그럴듯한 신 기술인 것처럼 포장해서 유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실무에는 제대로 쓰이지도 않고 사장되기도 하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건설현장처럼 이 업계에도 단순인력도 많이 필요한 분야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런 머리는 없고 손만 살아있는 단순인력이 지나치게 많고 국내의 개발업계의 다수가 되어가다보니 '개발자의 현실 자체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고 개선의 여지가 안보인다'라는 대안도 없고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 막연한 비관론이 확산되어가는 것입니다. 또 주정섭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이런 열정과 소양이 부족한 개발자가 분야와 부서의 책임을 맡고 나름대로의 자존심을 외쳐대니, 사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제가 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린지는 거의 선사시대 시절입니다. 매번 헛다리만 짚고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부작용만 잔뜩 일으켜서 이 업계의 체질만 오히려 더 떨어뜨려버리는 주먹구구식 정책들에는 정말 질렸습니다. SW 활성화 정책 어쩌구 하면서 나오면 항상 제일 먼저 거론되는 것이 SI 사업 조기 집행 운운인데, SI 사업 자체는 그 본질상 부가가치가 극도로 낮고 고도의 기술과도 좀 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앞뒤없는 SI 사업 집행 덕분에 개발업계의 외형만 커지고 내실은 거의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우리 볼랜드쪽 커뮤니티들의 개발자들은 최소한의 열정을 갖춘 사람들이 다른쪽보다는 훨씬 많습니다. 뭐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습니다만, 정부의 무분별한 개발자 양성 정책에 같이 편승하지 않았고, 또 예전의 터보파스칼과 터보C 등 볼랜드의 역사를 이룬 개발툴에 향수를 느끼며 개발에 매진해온 개발자들도 많습니다. 경쟁 언어나 기술에 비해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지는 못했지만 상대적으로 내실있고 착실하게 성장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열정으로 노력하고 성과로 승부하는 개발자에게는 미래가 환하게 열려있습니다. 대안없는 비관론만 쏟아내면서 현실에 안주조차도 못하는 개발자들의 미래는 로또에 당첨되지 못하는 한 여전히 오늘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장 편의점에 가서 로또를 사고 불평은 그만합시다. --;; 아니면... 스스로의 문제점을 되짚어보고 마음가짐을 바꿔봅시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