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3부작을 다 읽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책들을 손에 든 순간부터 책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니만 결국 3000페이지 가량 되는 이 분량을 일주일 만에 다 해치운 듯 하다. 덕분에 다른 독서도 많이 못 했고 일은..으윽. 생각하지 말자. 암튼, 이 시리즈, 대단한 흡인력이 있다.

<밀레니엄> 잡지의 미카엘 블룸크비스트 기자와 천재적인 해커이자 암울한 과거를 가진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축으로 하여 30년을 아우르는 역사를 한 편 완성했다고 보면 된다. 방예르 가문의 잃어버린 손녀를 찾는 일로 만나게 된 이 둘이 이루어내는 스펙터클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와 그 배경을 이루는 정치와 금융계의 부패, 여성에 대한 폭력, 인권유린, 비밀 결사조직, 공권력의 잘못된 사용 등에 대한 뛰어난 사회의식들이 잘 어울려 있다. 마치 이것이 실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현실감있고 잘 짜여진 구도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원래 10부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하니 3부에서 대단락을 이룬 이야기 이후에 리스베트의 동생인 카밀라의 이야기도 나왔을 것 같고 미카엘과 모니카의 사랑이 어떻게 진전되었는 지도 나왔을 것 같고 <밀레니엄> 잡지가 어떻게 발전해나가지는 지도 나왔을 것 같고... 아니 도대체,  스티그 라르손, 왜 가버리신 건가요. 아직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남았는데...;;;; 돌아와줘요 돌아와줘요.

제일 맘에 드는 장면은 역시 3부의 마지막. 스포일의 위험이 있어서 말은 못 하겠지만, 그 장면, 맘에 든다. 이 소설은 리스베트가 많은 상처들을 딛고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 방법을 알아나가는 과정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읽어볼 만 하다고 본다. 왜 사람들이 그리도 열광하며 이 책을 좋아라 했는 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은 무궁무진하지만.

3부까지 다 읽고 나니 뭐랄까. 허탈하다. 더 많은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인생을 알고 싶은데, 그 끈이 툭 끊어져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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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8-10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까와서 3부 하나 남겨두고 있는데 흑 ㅡㅜ 스티그 라르손 부인이 쓴 책이라도 사서 읽어야 할까요?

비연 2011-08-1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저도 참다가 참다가 봤는데 정말 다 읽고 나니 허탈요. 예전 말로 시리즈 마지막권 읽고 나서의 느낌과 비슷하다는ㅠ 작가의 부인이 쓴 책이 있었다니. 저도 읽어볼까...요...?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다. 발견하고보니 신형철이라는 평론가에 대한 좋은 평가들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표지가 마음에 들고 제목이 마음에 들고 해서 8월의 첫 책으로 골라보았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즐겨 마시는 커피의 종류를 알고, 네가 하루에 몇 시간을 자야 개운함을 느끼는지 알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와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인가?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첫 장을 펼치자 이 글이 나온다. 아뜩하다. <몰락의 에티카>.. 평론가의 첫 평론집에 나온 글을 뽑아 다듬어 옮긴 글이라 한다. 나는 이 책을 보관함에 얼른 담았다. 이런 글이라니.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라니.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

느낌의 공동체. 산문집 제목이 나온다. 그리고 사랑은 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느낌의 공동체,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이 '느낌'이라는 말이 사무치게 좋다.

사랑할수록 문학과 더 많이 싸우게 된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다. 나는 계속 질 것이다.

책머리의 글. 사랑을 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이 느낌. 싸우고 미워하고 뒤돌아섰다가도 그의 안위가 걱정되고 그의 생활이 궁금해져서 참다가 참다가 자존심이라는 것을 뒤로 한 채 먼저 말을 걸게 되는 사람이, 더 많이 그리워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사랑하면 사람은 바보가 되는 것이겠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감정, 관심, 그리고 사랑. 첫 몇 장에서부터 신형철이라는 평론가, 나를 사로잡고 있다.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미망을 오래전에 버린 것처럼,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허망도 이제는 내려놓고, 그저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 나 자신을 더 삼엄하게 학대하려고 한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나는 이 책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강렬한 '느낌'에 8월의 첫날부터 들떠있다. 누군가를 들뜨게 한다는 것. 누군가로 인해 들뜰 수 있다는 것. 이 여름날, 참으로 신묘스러운 감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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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06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신형철님은 좋겠어요 :D

알라딘에서만 벌써 몇명째인지..^^ 비연님 쫌만 지나면 가을입니다~

비연 2011-08-06 13:32   좋아요 0 | URL
이 분의 글, 마음에 사무치는 글들이에요..
이 무더운 8월이 지나면 어느새 가을이겠죠. 기대되요.
 


요즘 들어 이 책 저 책 두서없이 읽고 있다. 경제학 책도 읽었다가 소설도 읽었다가 여행기도 읽었다가.. 왔다리 갔다리. 마음이 허한가. 책에 더 몰입하게 된다. 어제 읽은 두 권의 책은 일본 작가의 글이었다. 오쿠다 히데오와 미야베 미유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제목이 '야구를 부탁해'라서 야구 얘기만 있는 줄 알았더니만 여기저기 출판사 사람들과 다니면서 쓴 칼럼(?) 비스므레한 것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물론, 북경올림픽과 메이저리그를 보러간 얘기도 포함되어 있지만, 록 페스티발도 갔다가 섬의 사찰들도 순례했다가..오쿠다씨 이번엔 매우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려.
큰 기대를 하고 보면 실망일 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개인적인 투덜거림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읽다보면 이거 뭥미? 이런 기분이 들 때도 종종 있었으니까. 다만, 가끔씩 보이는 그의 유머러스한 문장들이 피식 웃게 하는 면이 있어서 나는 볼 만 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심심풀이로 읽기에는 딱인 책이라고나 할까.
그러고보니 요즘 두산이 못해서 야구를 등한시 하고 있다. 그 호쾌한 야구 스타일은 어디로 잡아먹혔는지, 요즘 야구 하는 걸 보면 속이 터져서 말이다. 당연히 야구장 가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어제도 혹시나 싶어 TV를 켰으나 역시나 롯데에게 역전패. 그것도 시시하게 경기 질질 끌다가...으으. 정말 난 잘하는 두산도 좋지만 재미있게 야구하는 두산이 더 좋은데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다. 잘 해야 재미도 나게 하는 거겠지. 공부도 잘 해야 할 맛이 나고 그럴수록 재미도 나겠고 그럴수록 옆에 있는 사람도 시원한 마음으로 앉아 있을 수 있는 법 아니겠는가. 경기가 안 풀리니 지는 것이고 그러니 내용이 재미없을 수 밖에. 어쨌든, 덕분에 인생 재미 반은 사라진 비연이다. 에잉.



미미여사야 내가 제일로 좋아라 하는 작가이고 그래서 그녀가 쓴 책은 이잡듯이 다 읽어대고 있으니 이 책도 내 레이더망에 바로 걸린 게 당연하다. (아. 그러고보니 '낙원'을 안 읽었구나. 으으).. 유령 얘기라고나 할까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얘기라고나 할까 그런 이야기들의 단편모음집이다. 미미여사의 글빨과 상상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겠고, 그래서 이 단편집도 재미나게 다가온다. 물론 전부 다가 괜챦았다는 것은 아니고.
혼령이라는 게 있는 걸까. 육체는 없이 영혼만 떠다니는.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일을 하려거나, 아니면 이승의 사람이 잊어주지 않고 잡고 있어 떠나지 못한 채 부유하거나... 혹은 원한이 깊어 시간을 초월해 원혼으로 존재하며 원수를 갚기 위해 남아 있거나... 그게 살아있는 사람 눈에 보이게 되면 '무서움'이고 '공포'이겠지만, 어쩌면 삶과 죽음이 백짓장 차이인지라 공존하는 게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귀신들, 원령들은.. 때론 무섭게 때론 재미나게 때론 애절하게 다가오지만, 사람의 마음을 저버리지 못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들의 사연은 살아있는 자들과 연결되고 그래서 부득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나라 영화 <헬로우 고스트>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아 그러고보니 한 권 더 읽었구나. 하루 반 만에 세 권씩 읽어대는 이 신공이라니. 아주 침대에 들어붙어서 책만 읽어대는 비연을 상상하면 된다.



아지즈 네신의 책.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표지가 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도대체 체 게바라는 혁명 얘기만 나오면 등장하는 캐릭터다. 그런 일상성 정형성도 싫고 진정한 혁명의 정신을 자꾸만 상품화하는 것 같아서 더 싫다) 아지즈 네신은 터키의 '국민' 작가로 내가 늘 찾는 작가다. 현실의 세태를 이야기하고 그 속의 무지몽매한 대중을 묘사하면서도 늘 유머와 해학을 잃지 않는 글들. 그래서 읽고 나면 아 짜증나 미치겠어 도대체 이 넘의 세상은 왜 이래..라는 생각보다는 (그만큼 답답한 상황임에도) 조금 여유로운 마음을 북돋아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글들. 하지만 본인의 인생은 치열한 투쟁의 역사였고 감옥을 들락날락한 적도 많았던 투사의 인생이었다. 그의 인생과 더불어 그의 글을 함께 좋아한다.
이 책도 비슷한 맥락의 책인데 읽다보면 정말이지 실소가 피식~ 나오는 내용들이다. 그지없이 관료적인 공무원들, 거시적인 대의보다는 개개인의 소소한 이득에 연연하는 소시민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권할 만 하고. 

 
이번 주말에는 좀 무거운 주제로 골라 읽어보려 한다. '독식비판'이라는 책. 최근에 미국의 금융시장 붕괴와 여러가지 사회현상들에 즈음하여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들을 모색하는 움직임들이 크다. 우선, 소수의 부자들만 계속적으로 세를 불려나갈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따라서 나올 수 밖에 없는 분배에 대한 문제들이 논의되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읽은 '경제학의 배신'도 마찬가지 맥락의 책. 물론 이 책은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고 잘못을 제대로 인지해야 한다고 보며 그 대안으로 시민이 제대로 된 소비자로서, 그리고 제대로 된 공동체를 구성함으로써 현재의 시스템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이 책 '독식비판'은 지식이 너무나 많이 축적된 사회에서 구동해야 할 경제적 시스템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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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왔다는 소식 접하자마자 바로 사버린 심농의 07, 08번째 책들.







 

 

 

 

 



그리고 오늘 일요일 종일 다 읽어버린 심농의 이 책들. 열린책들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기는. 한권한권 재미없는 책이 없구나... 갈수록 심농의 경험 - 배와 선원과 남자와 항해와 외국 - 이 농익어가는 맛이 느껴지는 작품들. 지금까지의 책들이 모두 1931년 한 해에 써졌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는. 덕분에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출판된 심농 책들을 다 읽어버리는 데 쓴 시간들이란...흠...pass. 어쨌거나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하얗고 담백하고 보기만 해도 가벼워보이는 책들의 모양새는 나로 하여금 행복감마저 느끼게 하고.

다음 책들은 언제 나오는 거지? 또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비연..이러다 일 다 못해서 경을 칠 일이 발생하겠구나...싶지만 어쩌랴. 일단 사면 안 읽고는 못 배기니. 그냥 나의 바램에 부응하련다. 큭.

문득, 이 작가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졌다. 구글 검색을 두드려보니..몇 가지 사진들이 뜨네.
 

 


아항. 이런 모습이셨군요. 메그레반장처럼 파이프 담배를 즐기셨나보다.

“나는 언젠가 프랑스 인구의 절반 이상이 600단어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통계를 읽었다. 그러니 내가 추상적인 단어들을 써서 무엇하겠는가? 추상적 단어는 두 명의 독자 머릿속에서 다른 의미를 띠게 마련이다. 결코 같은 식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항상 ‘물질적인’ 단어만 쓰려고 해왔다. 탁자, 의자, 바람, 비 같은. 만일 비가 온다면, 나는 ‘비가 온다’고 쓸 뿐이다. 내 책에서는 물이 진주가 되는 일 따위는 눈을 부릅뜨고도 찾지 못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문장론이다. 조르주 심농이 직접 밝힌 본인의 문장론. '물질적인' 단어들만 쓰려고 한다는. 추상적이고 모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아닌 문장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붉은 색과 검은 색, 노란 색 등의 색감을 교묘하게 배치하고 인물들의 숨가쁜 일상들, 좇고 쫓김들을 그 숨소리까지 느껴질만치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그의 글. 그의 간결하고 담백한 글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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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역시나 책과 음악의 세계로 도피하는 게 최고인 나. 사실 현실회피적인 이러한 패턴이 썩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이렇게 뭐라도 한다는 건 이 상태에서 곧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암튼 주말동안, 정확히 말하자면 토요일 저녁부터 지금 일요일 저녁까지 읽은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우천염천(雨天炎天)>스티그 라르손의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이 책은 사둔 지 꽤 되었던 것 같다.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은 후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하루키의 에세이들은 다 사모았던 기억이. <먼 북소리>의 시기와 겹치는 1988년 어느 즈음,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했던 하루키의 에세이다.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가 좋다. 사실 읽어보면 별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 여행지에 대해서 열심히 파고드는 것도 없다. 요즘 나오는 여행에세이들처럼 그 나라의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풍습까지 공부해서 다 진열하는 류의 에세이가 아니다. 물론 공부는 많이 해서 가지만, 그저 보이는 대로 본인의 사유의 흐름 속에서 써내려가는 에세이다. 그래서 좋다. 보고 있으면 작가의 정신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 지 그 속에서 어떤 작품들이 나올 것인지를 엿보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에세이에서의 그는, 와인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야구와 마라톤을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짜증과 고통을 (여행하는 동안 이국인으로서 느껴야 하는) 여과없이 내비친다. 억지로 각색하려 하지 않는다. 느껴지는 대로 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뭔가 속을 정화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내게는. 솔직히 하루키의 소설들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읽기는 읽지만 뭐랄까 백프로 동의안되는 것이 있어 거북하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그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들, 그가 사용하는 문체들, 그런 것들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매우 빼어난 작가이고 그런 그의 소설들을 읽고 싶기는 하지만, 나의 감정과 정확히 싱크로나이즈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다르다. 신변잡기적인 그 글들이 이상하게 나의 주파수와 잘 공명한다. 그래서 우울해질 때 힘들어질 때 하루키의 글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런 류의 책. 그리스의 수도원들을 빗 속에 돌아다니고 터키의 동쪽 쿠르드족들과 혹은 기타의 나라들과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는 곳을 더운 속에 돌아다니면서 그는 세상을 관조하고 사는 것에 대한 넋두리(?)를 그답게 펼친다. 나는 그를 따라 정말 여행하듯이 (사진이 많아서 그러기에 더 편했다) 그렇게 쭈욱 몰두해서 책을 읽었더랬다.


스티그 라르손의 이 유명한 밀레니엄 시리즈를 지금에야 읽다니. 사실 난 3부작 중에서 이 1부만을 가지고 있다. 한 부에 1000페이지 가량 되는 이 방대한 소설 앞에서 읽기 시작하면 다 읽어버리기 위해 밤낮을 안 가릴 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사로잡혀서 말이다...그러나 역시 이런 시기에는 이런 두껍고도 재미난 책이 있다는 것은 내게 묘한 위안이다. 2부와 3부도 냉큼 보관함에 다시 담아버렸다.

꽤나 특이한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면서 세상의 인간말종들은 다 모아놓은 듯한 사람들을 상대하게 하면서 그래서 참 암울하다고, 참 세상 더럽다고 느끼게 하면서도 마지막 장을 탁 덮을 때는 '희망'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책이다. 세상에. 그런 책이 어디 있담. 그러니까 미국 추리소설을 읽으면 느낌이 그렇다. 자르고 태우고 별별 성적 변태짓을 다 해대는 사이코패스들의 행각을 읽노라면 그리고 그들을 처단하는 미국식 하드보일드 탐정들을 대하노라면 이상하게 기분이 꿀꿀해지고 밥맛이 뚝 떨어지는데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아니다. 기실 크게 다를 바는 없는데 (더하면 더하더라..ㅜ) 아마도 이 작가는 10부를 계획하면서 끊임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기자(스웨덴 사람들이라 이름이 좀 읽기 어렵다는게, 아니 낯설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와 천재 해커이자 어두운 과거를 지닌 듯한 리스베트 살란데르. 이들이 파헤치는 어느 가문의 흉측하면서도 괴기스러우면서도 잔혹한 사실들도 놀랍지만 나는 스티그 라르손이 창조해낸 이 둘의 캐릭터가 매우 흥미진진하다. 물론 주변인들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리스베트 살란데르라는 여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고 그녀의 변화라든가 그녀의 생각이라든가 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신선한, 아니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10부작을 다 끝냈어야 했는데... 겨우 3부작까지 쓰고 저세상으로 가버린 작가에게 새삼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불행이지 뭔가...

....................... 


암튼 이틀 내내 잠깐 밥먹으러 나간 이외에는 계속 책만 봤더니 목 뒤가 뻣뻣할 정도다. 이제 다시 집어든 책은 (내 침대 머리맡에 잔뜩 쌓인 책들을 잠시 응시하다가 - 대부분 읽다가 만 책들인데 약 10권 정도가..철푸덕 - 그냥 새로운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책장으로 향했다는) 다시금 경제학책. 소설이나 에세이 며칠 동안 진하게 읽었으니 이제 다시 좀 생각하는 책으로 복귀.


요즘 유행하는 '배신' 시리즈가 아닌가. '긍정의 배신', '상식의 배반', '경제학의 배신' 등등.. (다 샀다는..ㅜ) 정통 경제학 이론에 대한 반론이라니 보기만 해도 군침아 싹 도는 주제다. 저자는 현세태의 잘못된 자본주의적 경제학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건설과 희망의 사회를 역설하고 있다니 한번 읽어볼 만 하지 않겠는가. 흠.. 당장 읽기 시작해야겠다.

이렇게 책만 읽어대다가는 할 일을 다 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라는 불안감이 크다. 그렇지만 마음이 닫혀있어 일의 진척은 없고 집중은 안되니 그저 책에라도 몰두하면 손해는 아니겠다 싶은 마음과 에라 모르겠다 라는 자포자기 마음이 공존한다. 며칠 두고보자,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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