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의 대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공부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가끔 우리나라 어떤 소설들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건 개인적인 경험을 너무도 많이 써먹어서 이 책이 저 책 같고 저 책이 이 책 같은 느낌이 들 때이다. 비슷한 배경, 비슷한 사유, 비슷한 인물들...그리고 비슷한 문체. 처음에 작가로 데뷔할 때는 누구나 자신의 지난 경험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처녀작을 내기가 쉽다. 한동안은 그럴 수도 있겠다. 경험에서 느꼈던 숱한 상념들을글로 다 풀어내어야 끝내는 자신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어느 순간은 도약이 필요하다. 그 때부터는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폭넓은 정보수집과 독서, 연구, 생각 등이 덧붙여져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사설이 길었지만,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일견 흡족함을 느꼈었다. 작가는 스페인의 19세기 말의 시대적 배경과 정통 검술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토대로 한 편의 멋진 추리극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은 1860년대 후반, 이사벨 2세 여왕의 치세하에 있던 스페인이다. 왕정에 대한 반감들, 공화정을 지지하는 움직임들이 끓어오르는 남비뚜껑처럼 덜그럭대던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작가는 정통 검술이라는 분야를 파고든다.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진부함이라던가 골동품처럼 기억되어가고 있는 정통 검술을 직업으로 삼아 한 때는 영광스런 시절을 지냈으나 지금은 초로의 검술교사일 뿐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와 전통을 지키고자 애쓰는 한 인물,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음모와 야욕, 배신, 그리고 사랑을 참으로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평온하게 여생을 보내며 최고의 검술 공격법에 대한 고민만이 일상을 지배하는 그에게 우연히 나타난 한 여자가 있었고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생활에 출렁임이 일어난다. 그리고 뒤이어 일어나는 끔찍한 살인사건, 비밀 문건, 뒤이어 밝혀지는 진실들이 박진감있게 펼쳐진다.

이 책은 많은 얘기들을 담고 있다. 우선, 민중이 힘이 되는 세상의 목전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일상들,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야기되는 대립들이 매우 리얼하고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당시 스페인이 어떠했겠는가를 그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여서 그 어수선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어찌 보면 매우 촌스럽고 어찌 보면 매우 순수한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정치적인 정세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검술에만 몰두하고, 없이 살지만 품위와 명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올곧은 사람이다.  "권총은 무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뻔뻔한 도구일 뿐이지요. 만일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그리고 인간이라면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합니다. 저만치 떨어져서, 마치 골목길에서 툭 튀어나온 불량배가 하듯이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칼에는 다른 어떤 무기에도 없는 칼만의 윤리가 존재합니다...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글쎄, <신비>라고 해야 할까요...검술은 기사들의 신비 철학입니다. 오늘과 같은 시대에는 더욱더 그럴 겁니다" 이 말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숨겨져 있지 않나 싶다. 작가는 아마도 정체성이 점점 없어져 가는 오늘날 무언가 지켜야 할 것들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말들을 해주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고집스런 노인네의 자존심이라기보다는 누군가는 고수해야 할 그 무엇 말이다.

아름다운 한 여인의 등장으로 돈 하이메의 고뇌는 시작된다. 이제 그런 '사랑' 같은 건 다 잊어버리고 늙어가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했던 그에게도 가슴 한 구석 꺼지지 않은 열정이 있음에 놀라한다. 나이듦에 대한 쓸쓸한 감회가 곳곳에 잘 살아난다. 여성 고객인 아델라 데 오테로의 젊음과 아름다움 덕분에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하루하루 건강한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어느새 그녀가 자기 집 문 앞에 나타나는 시간을 갈수록 조바심을 내며 학수고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녀의 시신 앞에서 그 여자를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에서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이, 고뇌가 느껴져왔다. 하지만 반역의 소동 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은 그를 혼비백산하게 하고 결국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의 검술 대련에 대한 묘사는 완벽했다. 그건 단순한 진검승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돈 하이메가 자신이 그리도 추구하는 것을 찾는 과정임과 동시에 일순 일어났던 뜨거움을 식히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었다.

한 작품 속에서 이렇게 많은 얘기들을 절묘하게 버무려내는 아르투르 페레스 레베르테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통한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검술 용어의 의미를 알아내고자 뒷부분의 설명을 연신 들춰보아야 했던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긴 하나 그런 낯섬조차도 이 책의 매력을 경감시키는 데 일조를 하진 못했다. 시대와 인생에 대한 회한의 심정으로 대했던 책이 중반 이후로는 살인사건이라는 급박한 계기로 추리소설화되고 있어 한번 들면 놓지 않게 하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돈 하이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과연 정신없이 변해가는 세상의 소용돌이 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미련하리만치 고집스럽게 사수하는 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도한 욕망과 서슴없이 저질러지는 배신행위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그를...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05-01-05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슬비님..꼬옥 읽어보세요..^^ 글고 추천 감사합니다.

 
제제벨의 죽음 동서 미스터리 북스 81
크리스티나 브랜드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대한 평이 매우 좋았기에 표지의 저 기분나쁜 표정을 애써 외면하며 보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나중에 보니 꽤 많은 추리소설을 썼으며 대부분이 수작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주로 읽고 좋아하는 추리소설은 한 사람의 걸출한 탐정이 등장하여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고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며 한 술 더 떠 해박한 지식을 뽐내기까지 하면서 사건을 척척 연역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거기에서 촛점을 맞추는 건, 그 사건을 둘러싼 인간들의 심리, 사람과 사람사이의 미묘한 관계, 애증, 분노, 그리고 이에 대한 철학적 사회적 심리적 분석이다. 읽고 있으면 괜히 나까지 유식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아지기도 하고(좀 우스운 발상이긴 하지만) 범인이 누굴까 요리조리 맞춰보는 재미가 더해져 추리소설 읽는 즐거움도 생기곤 해서이다.

그런데 이 책은 틀리다. 말하자면 그 인과관계가 워낙 뚜렷하고 그래서 누가 범인일 것인가에 대해 단 몇 사람을 놓고서만 추리하면 된다는 것이 일단 특징이다. 밀실추리와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범인은 그 얼마 안되는 시간에 그 공간에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갖가지 가능성들이 도출될 수 있고 그 때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타이밍을 가지는 '그' 사람을 지목하면 되는 상황이 주어진다. 그리고 이 책은 정말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다시 조명해가며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도출해내고 불가능한 이유들을 대응시키면서 점점 추리의 대상을 좁혀가는, 매우 독특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몇 년전, 한 남자가 자살을 한다. 이유는 자신의 애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해서였고 그 애인은 술김에 제제벨이라는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자살한 남자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 공연장에서 만나게 된다. 제제벨과 그 애인을 유혹했던 남자, 그리고 애인.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예전에 그 자살한 남자와 인연이 있었지만 아주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협박편지가 앞의 세 사람에게 전달된 후 실제 공연이 시작되면서 제제벨이 살해당하고 그 애인을 유혹했던 남자는 목이 잘린 채 배달이 된다. 이제, 이들을 죽일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은 그 공연장에 모였던, 그 자살한 남자를 알고 있던 사람들로 압축된다. 아버지일 수도 있고 형일 수도 있고 누나일 수도 있는..그 사람들. 하지만 사건의 상황이 퍼즐처럼 짜맞춰지는 듯 하다가도 어그러지곤 한다..

결말 부분은 의외의 상황이 연출되어져 흥미진진함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여러번 반복되는 반전들이 매번 놀랍고 그 속에서 표출되는 인간들의 허영심들도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내용이었다. 약간 산만해보이기도 하고 논리적인 비약도 없지 않으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는 잘 된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정들의 미사
로렌스 블록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2년 11월
평점 :
절판



물만두님이 가장 좋아하는 탐정이 나온다고 해서 골라본 책이었다. 사실 책 제목이 좀 섬뜩해서(?)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그래도...하는 마음에 집어들었다. 고려원에서 십년도 전에 나왔고 한번도 개정이 안되었다는 것도 그 망설임의 이유이긴 했지만(^^;)

보면서 어떤 영화가 계속 생각났었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였는데(이 제목을 말하면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스포일러의 누명을 쓸 듯 하여 일단 건너뛴다) 보면서도 계속 속이 메슥거렸었다. 역시 이 책을 보면서도 그런 기분이었다. 십년도 더 전의 책인데 그 당시에 이랬단 말인가. 그러면 지금은 어떤가 싶다. 미성년에 대한 강간(?), 변태, 살인, 혼음, 마약 등등등.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악한 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게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이란 말인가. 정말인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쩝. 정말 이럴까? 믿고 싶지 않지만 이 책에 상까지 준 걸 보면(에드가 앨런 포우상이라나) 현실을 잘 묘사한 책인 모양이다.

주인공 탐정 '매튜 스커더'는...우리가 흔히 추리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냥 우리 근처에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지만 그 마음이나 그 성향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회색 뇌세포만으로 사건을 추리하기 보다는 몸으로 뛰고 열심히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사건을 파헤쳐나가고 자신의 느낌에 충실한 탐정. 게다가 알콜 중독 환자에 무면허인 남자. 그래서 이 책의 결말은 매우 놀라운 것임에도 놀랍지 않은 것일 수 있었다.

가끔 이런 추하고 더러운 면들은 모르고 살면 안될까 싶기도 하다. 그냥 남의 나라일인 듯 모른 채 나만의 꿈을 꾸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하지만 우리가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배우고 하는 것은 아마도 세상을 바로 알아가자는 차원에서 하는 일이겠지.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몰라도 되는 일을 우연히 알게 된 사람모양 그저 힘겹고 역겹고(!) 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10 - 미국 : 미국인 편 먼나라 이웃나라 10
이원복 글 그림 / 김영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먼 나라 이웃 나라....교양만화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이 만화시리즈를 제대로 잡고 읽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예전에 친구 집에 놀러가면 아이들을 위해 사둔 책들을 훑어본 적은 있어도 내 돈 주고 직접 사서 시간을 들여 보기는 첨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건축학을 전공하고 유럽에서 장기간 살면서 디자인을 공부한 교수가 자신의 경험과 방대한 문헌자료를 통해 만들어내고 있는 이 책은 사실 만화의 형태만 띄어서 그렇지 성인에게도 참 유익한 내용이 아닐 수 없겠다. 이번 '미국' 편을 산 건, 다른 유럽 나라와는 달리 오묘하고도 가끔 해석이 힘들어지는 그 나라에 대해 뭐라 썼나 궁금해서였다. 매우 잘 아는 것 같지만 기실은 잘 알지 못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말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잘 읽었다. 한번 잡으니 잘 놓아지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만화라고는 해도 워낙 여러가지 얘기들을 실어놓아서 꼼꼼히 읽어야겠기에 시간이 적쟎이 걸렸던 것 같다. 무엇보다 군데군데 섞여 있는 유머러스한 삽입그림들이 이 만화의 재미를 더한다. 정식으로 공식적으로 뭐라뭐라 말하는 대신 누군가가 툭 튀어나와서 한마디 던지는 것에 많은 의미들이 담겨져 있었다. 책 한권 읽었다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다 알게 된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 도움이 된 듯 하다.

왜 정치가 그렇게 짜여졌는지 왜 부시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그들의 지방자치제는 과연 어떤 역사를 지닌 것인지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핵심적인 사람들로 자리잡고 있는 지 등등등...궁금해했었던 내용들을 속시원히 풀어주는 면이 많았다.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의 경우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안들이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이고 그래서 그 사이의 마찰과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철저히 법과 원칙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리도록 만들어두고 어느 한쪽이 큰 권력을 잡을 수 없도록 하는 예비 장치들을 곳곳에 만들어 둔 것이 이해가 되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이면에는 불평등과 불합리와 소수의 권력집중이 일어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저자의 관점이라는 것이 배제될 수는 없어서, 보수적인 색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저자의 정치적 성향이란 것들에 대해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겠으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50~60대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일종의 '향수'같은 것들이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애쓴 점들도 역력하여 어느 정도 한계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개 2004-12-19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에 6권까지만 나와있었을때 읽었었는데,그 뒤에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더군요.. 저도 언젠간 마음잡고 다시 읽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연 2005-04-17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요즘에 색깔이나 뭐 그런 것들을 새롭게 해서 더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조만간 읽으시고 감상을 제게도 알려주세요~^^**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은 아름다웠다 - 톨텍 인디언이 들려주는 지혜의 목소리
돈 미구엘 루이스 지음, 이진 옮김 / 더북컴퍼니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서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샀던 것 같다, 이 책은. 우선 리뷰도 좋았지만 책의 제목이 맘에 들어서 덜컥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살 수 있었다.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톨텍 인디언이라는 잘 알지 못했던 마치 미지의 세계에 사는 듯한 사람이 지은 책이라는 점도 흥미로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애시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에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그냥 깨달음 정도의 글일 것이라 예상하고 펼쳐들었는데 이건 명상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류의 얘기와 비슷했다. 우리 회사에 이런 분야에 관심많은 사람이 있는데 내게 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던 얘기가 여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에 적이 놀랐다. 그리고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나갈 수록 어쩐지 읽혀지는 맛이 있었다. 미사여구를 썼다거나 재미있는 예를 들어 술술 읽히기 보다는 그저 도덕책같은 글들, 자신의 느낌들을 나열한 글들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데도 문득 책을 손으로 끌어당겨 눈 앞에 두고 읽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 사실 다 이해했다고는 못하겠다. 어쩐지 굉장히 낯선 이야기들도 있었고 과연 이럴까 하는 말들도 많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 내가 그 세계에 대해 깊은 이해도를 못 가져서여서도 있고 원래 모든 사상들을 조금은  회의적인 시선으로 뜨악하게 바라보는 나의 기본적인 태도를 못 벗어나서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 책은 처음의 무료함을 넘어서는 어떤 '신비함'이 있다.

지은이는 톨텍 인디언의 정신을 물려받은 사람으로 부와 명예를 좇아 의사의 길을 택했다가 우연한 사고와 깨달음의 기회를 접하여 주술사(지혜를 잇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 더 좋아보인다)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책의 제일 첫 장을 펼쳐들면 이런 말이 쓰여져 있다. 우리는 진리 속에 태어났지만 거짓을 믿으며 자랐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짓은 우리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 우리가 지식을 흡수하기 전까지 우리는 완전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태어나 불과 몇 년만에 배우게 되는 많은 것들로 인해 우리는 지혜로부터 차단당하고 지식의 거짓말에 현혹되어 늘 불행하고 진리를 접하지 못한 채 일생을 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며 다 자신의 삶 속에서 주연을 맡은 존재들이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관점을 가진 이야기꾼이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우리가 믿는 것을 옹호할 필요가 없다. 대신 우리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임을 기억해야 한다...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야기에서 주연이고 우리는 다만 조연일 뿐이기에 그들을 바꾸려할 필요도 부딪힐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으로 육체와 더불어 사는 이 삶을 즐기라고 말한다. 그 사랑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무언가.

그것은 감정이 느끼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장 만족할 만한 상태를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생각하고 알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려 할 때 오히려 왜곡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 그냥 마음에서 비롯되는 감정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거기에 순종하면 다 잘 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행복이 있음을 지은이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이것은 어느 종교에서나 어느 선지자들의 말씀에서나 다 같은 내용으로 담겨져 있는 것이고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 인간의 생명은 불멸이며 육체는 땅에 묻혀도 그 생명의 힘은 영원하다. 그만큼 우리는 강력하고 힘있는 존재인 것이다. 알지 못하던 것을 알 때 충격은 있겠지만 빛을 모르다가 빛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리라 예상되는 그런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나면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곳이 천국이다...천국은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시간을 즐기고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읽었다. 물론 이해 못하는 부분은 그냥 그런 채로 두었다. 책의 내용대로 어쩌면 내가 열려있는 상태여야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될런지도 모르겠다. 사실 요즘 명상과 관련한 책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런 책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고 있다는 자체가 어쩌면 인간이 이제는 이런 거짓에서 벗어나서 진리의 순간에 한발짝 다가가야 할 시기가 왔는 것일 수도 있다. 책 내용을 다 믿지 않는다 해도 어쨌거나 지은이의 결론은 다른 선각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나를 나대로 즐기고 믿고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사랑하고 그래서 얻어지는 마음의 평화 속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책 한권으로 모든 것을 얻었다 할 수는 없으나 나의 생각의 흐름과 구조,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나의 편견과 어지러운 생각들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아주 쉬운 책 같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해야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이 책을, 명상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권하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04-12-02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 인디언의 영혼 >을 읽고 있는데 비슷한 부분이 많을것 같네요.

비연 2004-12-02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크냄새님이 올려주신 '밑줄긋기'를 보면서 저도 같은 생각을 했답니다..^^ 이 책도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저도 '인디언의 영혼' 한번 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