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레드메인즈 동서 미스터리 북스 32
이든 필포츠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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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접해보는 이든 필포츠의 추리소설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형식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는, 풍경에 대한 세심한 묘사와 로맨틱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어느 작은 도시에서 뜻하지 않은 혈육간의 살인 사건으로 보여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우연히 휴가를 갔던 마크 브렌던이라는 런던 경시청 소속의 민완 형사가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거기에는 살인된 사람의 부인인 스무살 초반의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가 있고 브렌던 형사는 사사로운 연애 감정에 휘말린 채 사건의 해결에 전력한다. 하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가고 계속 유령과 같은 살인자의 모습만  드문드문 나타나는데..결국 이 제니 펜딘이라는 미망인의 큰 삼촌의 친구이자, 탁월한 탐정인 피터 건즈의 등장으로 사건은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고 결국 잡히고야 만 범인의 멋드러진 수기로 이 책은 마무리를 짓는다.

무엇보다 사람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는 점이 이 추리소설의 큰 장점이다. 아주 세세한 감정의 흔들림과 의혹, 질투, 분노 등이 눈 앞에 보이는 듯 그려지고 있고 범인의 잘난 체 하고 싶어하는(!) 그 심정 또한 곳곳에 드러나 소설의 매력을 더한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작위적인 설정과 지나칠 정도의 구체적인 설명들로 인하여 범인의 윤곽과 플롯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는 것이 흥미를 조금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범인이 왜 그런 일들을 저질렀는가에 대한 의구심만큼은 그대로 남아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게 한다.

무엇보다 믿어야 할 사람과 믿지 말아야 할 사람, 사실이라 생각해야 할 것과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 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어 끝까지 그 결말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라 보여진다. 결국 일종의 허영심으로 무너진 범인이, 그러나 자신의 범죄 행각과 배경을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유려한 솜씨의 글로 남기는 대목은 인간이란 어디까지 사악할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삐뚤어진 생각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세계 10대 추리소설 중의 하나라는 타이틀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멋진 작품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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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2-25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읽어보고 싶어요!! 세계 10대 추리소설이라... 심리묘사도 탁월하단 말이죠....

비연 2005-02-2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꼬옥 읽어보세요^^

balmas 2005-02-2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96220

 

일단 추천 하나 하고 ㅋ.
저도 읽어봐야겠군요. 감사.^^


울보 2005-02-2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비연 2005-02-27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almas님..추천감사하구요~^^ 잡아주신 숫자도 감사~
다들 읽어보신다니 제가 왜 이리 반가운지요...오호홋~^^**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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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 난 교육과 관련한 책인 줄 알았다. 막상 읽고 나니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일종의 호러나 SF 영화를 본 듯한 기분도 들고 정치적인 뉘앙스가 있는(마치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처럼) 것도 같고 아니면 그저 평범한 일상에 대한 안일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고처럼도 느껴진다.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 덕분으로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읽을 수 밖에 없었다.

1960년대 영국.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지고 사회에 불안과 살인과 실직이 만연하고 성(性)의 문란이 심각해지고 가족의 해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던 즈음, 해리엇과 데이비드라는 어찌 보면 매우 보수적인, 또 어찌 보면 매우 독특한 두 남녀가 한눈에 반하여 결혼을 하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평범한 출발이다. 그들은 서른살과 스물다섯살의 젊은이들이었고 남자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여자는 비교적 안온한 가정에서 자랐다. 큰 집과 정원을 두고 여럿의 아이를 낳아 주위의 친지들이 언제라도 스스럼없이 찾아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낙원'을 꿈꾸는 그 부부를, 주위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지켜본다. 첫 아들이 금방 생기고 둘째딸, 셋째딸, 그리고 넷째 아들이 차례로 태어나면서 사실 번잡한 일상사가 반복되기는 해도 그럭저럭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 그 부부는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가정으로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음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물론 거기에는 경제적 지원을 하는 남자의 아버지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주는 여자의 어머니가 있었긴 하지만, 가급적 크게 남들에게 기대지 않은 채 그들은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일구어나갔다. 그리고 불행은 다섯째 아이가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광폭하고 엄마를 고통스럽게 하던 아이. 너무나 아프고 두려워 진정제를 입에 '쏟아 부을' 수 밖에 없게 하던 그 아이는 마치 외계인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다. 증오와 분노를 한가득 안고 주위의 애정을 거부하며 커가는 그 아이, 벤으로 인해 가정은 붕괴되고 서로 경원시하는 상태가 지속되며 주위에 몰려들던 많은 사람들도 하나둘씩 다른 데로 흩어져 간다. 한때 요양원(말이 요양원이지 거의 수용소인 곳)에 벤을 버려두려 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한 엄마 해리엇으로 인해 잠시의 행복은 또 무너지고 그 짐을 엄마가 다 짊어지게 된다. 그리고 벤은 이 세상이 자기가 머물 곳이 아닌 양 이상스레 부유(浮流)하다가 자신의 비슷한 '종족' 들을 찾아 집단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자신의 가정은 특별히 단란하고 특별히 이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걸까. 그녀는 데이비드에게 말하였다. "우린 벌받는 거야. 그뿐이야." "무엇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에 그가 증오하는 톤이 있었기 때문에 방어적으로 그가 물었다.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책 속에 나온 이 구절은 아마도 그러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지 모르겠다.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사회집단이자 일종의 보호막을 두른 존재는 가장 이기적인 집단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들을 철저히 가리고 구성원들에게 가식적인 행복의 상태를 강요하기도 하는 그 불야성은 어느 한 순간 불거질 수 있는 작은 틈으로도 금새 붕괴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지도. 그리고 그 속에서 그 틈에 손가락을 끼우고 막아보려 하는 엄마 해리엇은 철저히 소외를 당하게 되고 결국 이렇게 소리친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 안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전 그저 죄인이죠." 어떤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기 보다는 어떤 구성원에게 책임을 물거나 혹은 철저히 외면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허울로 한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비관론이 될까.

혹은 격세 유전자에 의해 생겨난 '에어리언'이 이 세상에 부적응한 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중시킨다는 설정으로 하나의 호러물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의 일상을 침범하는 무서운 방해꾼이 동시대인이 아니라 저 먼 옛날부터 전해내려오는 다른 세계의 존재가 불현듯 끼어들어 공포를 자아내는 상황이나 인간 진화 과정에서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그 어떤 존재가 있었고 그들은 지하세계로 숨어들어가 자신들만의 세계를 형성함으로써 미래의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설정 등이 예사롭지 않다. 이는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일반적인 작품 세계에서 주로 엿볼 수 있는 내용이라 한다.

아뭏든 그것이 가족이데올로기의 문제이든 통제가 불가능한 유전자로 인한 괴물의 출현이든간에 작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그냥 그렇게 영위되는 것이 아니며 늘 위태하고 누군가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매우 불안한 상태임을 규정한 채 그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화의 소산인 인간이나 가족의 형태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어쩌면 신기루에 불과해서 훅 하고 불면 금새 흩트려질 허상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음산한 작품 분위기와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함이 책을 덮고 나서도 왠지 개운치 않은 맛을 남기기는 하지만 이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 라는 궁금증을 자아낼 정도로 이 책은 다른 소설류에 비해 많이 독특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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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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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영화로 먼저 접했었다. 음습한 감옥 안에서 단 두 명의 죄수가 앉아 끊임없이 떠들던 그 모습과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책으로 한번은 다시 봐야겠다 벼르고 벼르다가 이번에 보게 되었다.

낭만적인 동성애자 몰리나와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정치범 발렌틴이 한 감옥에 수감된다. 몰리나가 '캣피플' 이라는 영화의 줄거리를 얘기해주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되고 이러한 대화는 몰리나가 풀려나기 전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계속된다. 그 이야기들은 그저 흔하디 흔한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몰리나의 마음과 시각을 담보하고 처음엔 싸구려 이야기라며 냉소하던 발렌틴은 갈수록 그 이야기들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몰리나와 발렌틴은 '사랑'을 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가석방된 후 발렌틴의 부탁을 위험한 상황에서도 실행하려 했던 몰리나는 죽게 되며 고문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발렌틴은 몰리나처럼 자신의 상상을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하며 이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몰리나의 모습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동성애자. 미성년자 추행혐의로 감옥에 들어오게 된 그는 어찌 보면 매우 추잡한 인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무엇이고 그 사랑을 실천함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성적인 감성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책에서는 곳곳에서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들을 주석으로 달아놓아 과연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왜 낙인찍혀 버림받게 되었는가에 대한 고려를 하게끔 한다. 어떤 경로를 통해 그러한 성향을 가졌든간에 그것이 과연 질타와 비난의 대상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몰리나라는 사람은 겉은 남성일 지 모르나 마음은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과 애정으로 충만하였다. 그는 이미 사랑하게 된 발렌틴을 사모하는 마음을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적절히 묘사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전달하려 했고 발렌틴이 (의도적으로 넣어진 음식을 먹고 걸린) 병으로 앓는 동안 조석으로 보살핀다. 또한 교도소장을 이용하여 먹을 만한 음식들을 가지고 들어와 자신보다는 발렌틴을 먹이기에 열중하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런 모습들 속에서 과연 성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규정하고 있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것이 생물학적 형태론에 입각하여 정해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정치범 발렌틴은 감옥 밖에서 배운 이데올로기적인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사람이다. 그는 사상을 위해 사랑을 희생하고 자신의 감정을 억압한다. 그래서 몰리나의 애정지상주의에 서슴없이 경멸을 보이고 항상 강박적으로 사상서를 읽으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여기에서는 사상이 그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가두고 표현하지 못하게 하며 벽을 쌓게 만드는 도구로써 작용한다. 하지만 몰리나와의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에워쌌던 껍질을 벗어던지게 되고 끝내는 쓰레기처럼 여겼던 소설적 이야기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묘사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몰리나와 발렌틴의 결합, 그리고 폭력에 희생되는 몰리나의 모습, 편견 자체였던 발렌틴이 변화하는 모습들이 시사하는 바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완전히 상반되는 성향의 인물 설정과 그 결합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억압과 폭력과 부조리에 대해 말하는가 하면 양 극단이 사실은 아예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비치기도 한다. 사회에서 멸시의 대상인 동성애자의 마음은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차 있고 사상적으로 투철하고 지적인 정치범의 가슴은 냉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설정 또한 매우 아이러니하다. 중간 중간 사회의 주류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편입되지 못한 존재들이 주변인으로서 느끼는 심정들도 드러나는 점은 주시할 만 하다. 무엇보다 너무나 많이 얘기가 되고 있어서 이제는 소설의 주제로 다루기에는 지겨울 정도인 그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끔 만드는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 대화체 형식으로 끌어가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낌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작가의 솜씨에 이끌려 쉼없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추었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현 세대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문제들을 어렵지 않으나 천박하지 않고 쉬우나 의미심장하며 반복적인 형식 속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표현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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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2-0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추천 하나요~~
 
아버지로 산다는 것
카를 게바우어 지음, 심재만 옮김 / 예담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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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내 생일 때 우리 회사 사람이 선물로 준 책이다. 사실 받아들고 조금 황당하긴 했다. 나는 어머니가 되었으면 되었지 아버지가 되지는 못할 거니까. 선물한 사람이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그래서 아마도 자신의 고민의 화두 끝에서 읽은 책을 준 것이겠거니 하고 대충 구석에 두고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에서 펴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 아빠가 편챦으셨기 때문이고 힘들어하시는 아빠를 보며 과연 아버지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아버지로서의 삶을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하는 갑작스러운 궁금증이 생겼다는 데에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이런 때를 대비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느껴졌었다.

독일 사람이 지은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아이의 성장과정에 따른 아버지의 역할이고 2부는 열 여섯사람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 마지막 3부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요건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열 여섯 사람의 남자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인터뷰한 내용일 게다. 폭력적인 아버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도 있고 일찍 돌아가셔서 그다지 기억에 없는 아버지, 애정 표현에 서툴러 늘 멀리 느껴졌었던 아버지도 있다. 아버지의 태도에 의해 아들의 인생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제대로 된 아버지의 상을 그리지 못한 사람은 자신도 그런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 있기도 하며 또는 아버지 이외의 남자들로부터 정체성을 획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가까이 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공통적인 것은, 누구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섬세한 애정표현들, 자상한 보살핌, 친근감 등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이고(자주이든 가끔이든 간에) 아버지와의 제대로 된 소통을 늘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분석들은 비단 독일 사람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세대에나 다 통하는 얘기들인 것 같다.

어머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자존을 가져야 올바른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아버지도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자식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요즘 명퇴가 밥먹듯이 일어나고 기러기 아빠라는 새로운 풍조가 대두되면서 남성이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한없이 보여줌으로써 자식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롭게 클 수 있다. 누구 하나의 역할이 비대해지거나 왜소해질 경우 아이에게 가는 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읽으면서 우리나라 아버지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아버지 세대들은 6.25를 겪었거나 전후의 가난하고 헐벗었던 시절을 겪어내었고 잘 살자는 모토 아래 직장과 나라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일했던 세대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식에게 주어야 할 애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도 잘 모르고 바깥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썼던 시간동안 훌쩍 커 버린 자식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근대의 몇 십년 동안은 너무나 커다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세대차라는 문제가 매우 커서 아버지와 자식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기도 하다. 이제 세월의 풍파 속에 늙어버린 아버지들은 덕분에 가족으로부터 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소외된 채 외롭게 지내게 되곤 한다. 이게 사회의 문제라고는 하지만 기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알 수 없이 시간은 자꾸만 가고 있는 듯 하다.

책을 덮고 아빠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빠의 지난 시간들을 상상해본다. 사진 속의 젊은 남자는 누군가를 몹시 사랑했던 적도 있었을 테고 직장에서 살아남고자 고민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갓 태어난 딸과 아들을 보며 아버지로서의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꼈을 테고 커가는 자식의 모습에 뭐라 따뜻한 애정표현은 못해도 가슴 그득한 자애감을 가지기도 했을 것이다. 또는 지금의 나처럼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던 시간들도 있었겠고 한 줄 두 줄 늘어가는 주름에 시름섞인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을 테다...이런 생각들을 하니 아빠가 그냥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남성'으로서 살았을 인생을 보게 되고 그래서 애틋한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각각의 사연들이 마음에 많이 와 닿지는 않았으나(반복되는 회상들과 특징없는 구술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나와 아버지의 관계, 내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데는 나무랄 데 없는 책이다. 아버지가 될 혹은 된 남성들과 그들을 남편으로 아버지로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모두 읽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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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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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가 인상적이다. 여우(fox)가 덫에 걸려 난도질당해 죽어가는 장면. 그리고 어느 노인에게 집어던져지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그런 잔인한 사건들에 지친 노인은 여우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총을 쏜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이름. 폭스 이블(Fox Evil)이라는 정체모를 사내. 그대로 읽으면 탈모증이란 뜻이고 거꾸로 읽으면 사악한 여우라는 뜻이다. 그의 아들인 울피(Wolfie)와 컵(Cub, 새끼여우)은 아버지의 폭력과 억압으로 인해 그 나이때보다 훨씬 못 큰 아이들이다. 영국 도싯 지방의 작은 마을 센스테드에서 일어난 제임스 로키어-폭스의 부인 에일사의 살인사건. 남편과 아내의 다툼을 동네 사람이 들었고 괴상한 소문 탓에 남편이 아내를 죽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덕분에 제임스는 집안에 두문불출하며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이렇듯 주인공들의 이름은 모두 여우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여우 사냥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동물학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우를 사냥하는 자체가 생명존중 사상에 어긋난다고 하고 사냥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가 여우를 죽이는 게 가장 깨끗하다고 한다. 여우와 관련된 사람들의 가정사와 여우 사냥을 중심으로 한 동물학대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작품 전체에 잘 스며들어 매우 짜임새있는 구성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 작가는 동물애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런 형식을 빌어 나타내고자 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정과 작은 시골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축으로 하여 어두운 가정사와 그를 둘러싼 음모들, 모함들이 주된 흐름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는 영국 추리소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살인 사건을 계기로 제임스의 망나니 아들 레오와 난잡한 사생활을 가진 엘리자베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열일곱에 낳아 멀리 입양시킨 딸 낸시와 관련한 가정사가 하나하나 들춰 내어지고 이기심과 잔인한 본성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이 가정을 경계하는 마을 주민들의 추악한 면들도 함께 도출되면서 단지 살인 사건이라는 측면보다는 작은 도시에 같이 머물면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나 애정이 결핍된 인간의 본질적인 잔혹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이 아마도 이 미네트 월터스라는 작가를 아가사 크리스티의 계보에 올려놓는 것 같다.

매우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잘 읽혀지고 특이한 구성(신문 기사가 중간 중간 게재되는 형식)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논리의 흐름,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여운을 남기는 소설적 재미가 아주 인상적이다. 또 인물 캐릭터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여 내가 그 속에 놓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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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2-04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넷 월터스 좋은 작가죠^^

비연 2005-02-0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만두님이 적극 추천하셔서 읽게 되었는데 정말 좋은 작가더군요..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