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
찬호께이.미스터 펫 지음, 강초아 옮김 / 알마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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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시마다소지상에 빛나는 찬호께이와 미스터펫의 콜라보레이션 작품.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데이터 기반으로 우리의 인생까지도 시뮬레이션하여 판단할 수 있다는 착안에서 시작된 소설로, 그 상상력과 묘사가 매우 돋보인다. 읽는 내내 흥미진진이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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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4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자주 하는 것 같다. 지금 6권까지 번역되어 나왔는데, 여차하면 그냥 원서로 볼 마음이 든다. 책도 가볍고 손에 쥐기에 적당한 크기라 번역본도 꽤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나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해미시 멕베스 순경이 좋다. 왜? 이번 4권을 읽으면서 내가 이 주인공을 왜 좋아하는 지 확실히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다가 프리실라에게 가까워지기 직전에야 비로소 자존심 덕분에 가까스로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해미시 멕베스는 원숭이 같은 털복숭이 남자에게 홀딱 반해 정신을 못 차리는 저급한 취향의 여성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그런 남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프리실라."

(p35)

 

신분 차이가 완연한 프리실라 할버턴스마이스에게 마음을 뺏기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시골 순경의 태도. 멋지지 않은가. 비위나 맞추려 한다든가 마음에 들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고 끝까지 나름의 품의를 지키려는 해미시. 굿.

 

그와 해미시는 유전자 지문 감식법으로 해결한 사건들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프리실라는 다시 데이비엇 부인을 상대하게끔 남겨졌다. '이게 바로 해미시와 결혼하다면 내가 살아가게 될 그런 삶이란 말이군.'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해미시가 직접 총경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야망이 있음을 보여 주는 어떤 신호가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프리실라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데이비엇 부인의 심문 같은 질문도 그럭저럭 견뎌 낼 수 있었다.

(p59)

 

해미시를 좋아하는 것을 아직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해미시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 프리실라. 하지만, 야망이 없는 남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녀는, 해미시가 시골에서 순경으로나 만족하며 살려고 하는 것이 비겁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이런. 야망이 뭔지나 아는 지. 야망을 가진 남자가 어떤 종류인 지 알기나 하는 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구만.

 

해미시는 한숨을 쉬었다. "날 여기 묶어 두는 게 내 아둔함이나 수줍음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언제쯤이나 당신 머리가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난 로흐두를 사랑하고, 로흐두 사람들도 좋아하고, 여기에 있는 게 행복해요. 내가 왜 꼭 사회의 통념에 맞춰 로흐두 밖으로 나가 승진을 하고 돈을 벌고 하는 식의 성공을 해야 하는 거죠? 난 성공했어요, 프리실라. 요즘 나처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요."

(p228)

 

이 대목에서, 난 해미시 멕베스 순경을 좋아한다고 소리지를 뻔 했다. 이 얼마나 당당한가. 자신의 삶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고 남과 비교를 하지 않으며 자신의 행복에 충실한 모습. 이게 자칭 성공했다 하는 사람들이 봤을 때 대수롭지 않은 인생이면 어떤가. 이런 경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영리해야 이럴 수 있는지를 이해 못 할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해미시의 이 말 한방이 얼마나 좋은 지.

 

 

그때 데이비엇 부인은 블레어 경감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프리실라의 차가운 반응에 속이 쓰리던 참이었다. '블레어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데이비엇 부인은 생각했다. 그 말은 블레어라면 무조건 그들 앞에서 굽실거리며 아첨하리라는 사실이 보증된다는 의미였다... (중략) ... 블레어는 거의 뛰다시피 그들 곁으로 왔다. 데이비엇 총경도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블레어에게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전형적인 형사였다. 해미시는 특이하고 별나고 사람 기분을 상하게 했다. 솔직히 말해 진심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사람을 사는 사람과 마주치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p258-259)

 

역시 한 자리를 하는 사람은, 게다가 그 사람의 부인까지도, 자기 맘대로 안되면 싫어한다. 아주 작은 지위라도 가지고 있으면 그러하다. 나에게 아첨해주길 원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길 원하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길 원한다. 나의 불행이 그에게도 자리해서 함께 고뇌하기를 원한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사람이 좋다. 권력 앞에 굽신 거리고 애결하고 살살 거리고, 그래서 나의 자존심을 높여 주는 사람이 좋다. 인간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금 현실로도 그걸 목격하고 있으니까. 상당히 가슴 아프게, 절렬하게, 미치게.

 

 

그녀는 천천히 돌아서서 부엌 식탁에 나란히 놓인 두 신문을 바라봤다. 광분한 존 벌링턴의 얼굴과 멕베스 순경의 행복한 얼굴이 보였다.

(p267)

 

고작 4권 읽었지만, 해미시 멕베스 순경이라는 캐릭터가 점점 좋아진다.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힘,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누군가를 죽이거나 해꿎이 한 사람들에게도 보이는 따뜻함, 유머 그리고 마을과 주변 사람들의 평온함을 지키려는 보이지 않는 노력들. 슬쩍 슬쩍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얄밉지 않게 넘어가고, 사랑 앞에 약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울 정도로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자세.

 

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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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6-11-0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실라는전권들에서 만난남자들을보면모두야망이가득한 인물들이고야망없는 헤미시를이해하지못하죠 헤미시가자신의생활에만족한다는걸이해하지못하는 가족들이속물인데 그자신역시 모르지만그런면이있죠 2권의공산주의자부터지금까지나머지권에서는 다행히남친이없죠 근데헤미시가다른여자한테관심이가서 과연두사람이이어질지 지켜보는것도이시리즈의재미중하나죠 썸아닌썸타는두사람의관계

비연 2016-11-06 20:25   좋아요 0 | URL
저도 이게 꿀잼이에요 ㅎㅎㅎ 프리실라가 야망없는 해미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해미시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게 될 것이냐... 둘이 이어지면 어떤 모양새일까도 기대되구요 ㅋㅋ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
앙투안 로랭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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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아주 고전 영화 중에 롤스로이스 라는 차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흑백 영화는 지금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한 롤스로이스를 가지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처음에 롤스로이스를 산 사람은, 그 차 안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차를 팔아 치우고.. 뭐 이런 내용이었나. 아뭏든 비싼 차를 가진 사람들이, 그 차를 두고도 그닥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차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내 어린 심정엔 차가 가엾다, 무슨 운명으로 저런 주인들을 만났나 라는 느낌마저 가졌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물건이란 건, 생명은 없을 지라도, 그렇게 사람들의 운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었던 것 같고.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 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 영화 생각이 났었다. 다니엘 메르시에라는, 그냥저냥 회사 생활 하면서 그닥 인정도 받지 못하는 한 남자가 어느날 가족들이 다들 자기 일을 하러 간 저녁 혼자 들렀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미테링' 대통령을 만나게 되는 사건이라면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테랑이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미테랑이라는 프랑스 대통령이 상징하는 바는, 지금 생각해봐도 상당히 큰 것이었다. 레지스탕스 출신의 프랑스 최초 좌파 대통령. 잘할 수 있을까를 수없이 의심받았지만, 프랑스의 자긍심을 높이고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받는 대통령. 그가 다니엘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대통령이 식사를 다 마치고 나갈 때까지 천천히 식사시간을 가졌던 다니엘은, 문득 대통령이 그의 모자를 두고 나갔음을 알게 되고, 순간적인 충동으로 자기의 모자인 양 쓰고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모자는 마술을 부리게 된다. 소극적이고 근근했던 다니엘 메르시에는 회사에서 딱 부러지는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윗사람의 눈에 들게 되고 더 높은 자리에 임명이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그러니까, 그 모자가 주는 힘. 프랑스 대통령의 모자라는 권위가 그에게 모자랐던 2%를 채워준 셈이 된 것인가. 대통령의 머리 위에 얹어져 부여되었던 파워가, 그 모자를 쓴 사람에게도 작용한 것인지. 그러다가 그 모자를 우연히 기차칸에 놓아두고 내리게 되고 다시 그 모자는 파니 마르캉이라는 여자의 손으로 넘어가고... 그렇게 우연을 거듭하며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동하던 모자는, 그 모자를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자신감을 부여하게 된다. 아.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알라딘의 요술램프란 말인가. 

 

이 소설은, '대통령의 모자'라는 상징적인 존재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 변화하고자 애쓰던 보통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모습들, 그러니까 소심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생 역전극을 보여주는 재미가 있다. 그것이 알라딘의 요술램프이든, 마녀의 유리구슬이든 간에, 사람들은 어쩌면 그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런 생활을 타파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그 무엇. 그것이 아마도 '대통령의 모자'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 지. 무엇보다 미테랑 대통령이라는 실제 존재했던 인물,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대통령을 소재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 가장 흥미진진하다. 마지막까지 가면, 작가가 미테랑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프랑스 국민에게 보낸 마지막 신년 인사에서 그는 의례적인 대통령의 새해맞이 인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우 당돌한 한 마디를 했다.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쿵저러쿵 논란이 많았지만 어느 누구도 만족할 만한 해석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 자신은 물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이 문장엔 무려 461만 개의 댓글이 달려 있음을 구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4년 12월 31일 신년 인사를 마치기 2~3초 전, 그는 두 눈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한 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신의 힘을 믿으며, 여러분들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 p266

 

소설 말미에 있는 이 문장. 실제로 미테랑 대통령은 1995년 퇴임 후 1996년에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굿바이인사였을까. 그는 아직도 프랑스 국민들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문득, 부럽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처럼, 대통령의 모자가 나에게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그 대통령을 싫어해서는 안 되겠지. 그리고 이렇게 소설에서 대통령을 '마음대로' 묘사하려면 그만한 자유가 보장된 나라여야 하겠지. 그리고 나의 첫 소설에서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대통령이라니, 그 사람에게 애정이든 뭐든 그런 게 있어야 가능한 것이겠지... 우린 어떨까. 내가 식당에서 대통령의 모자를 주우면, 내 머리 위에 쓰고 싶을까. 심지어 그걸 쓰면 의기양양하게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노 코멘트.

 

이 작가의 글솜씨가 마음에 든다. 나온 책 중에 <빨간 수첩의 여자>도 마저 사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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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6-09-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읽겠다고 찜하신 책이
<빨간 수첩의 여자>라고 하시니.. 갑자기 개드립 하나가 생각납니다.(윽 비웃지 마세여) 우리나라엔 `수첩공주`가 있잖아요...

비연 2016-09-19 09:06   좋아요 0 | URL
앗. 컨디션님.... 대통령에 이어... 수첩... 앙투안 로랭은...혹시 우리나라를 염두에.. 두고..? =.=;;;;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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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의 책 뒷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

동감한다. 매우, 깊이.

 

소세키 소세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얘기하고 강상중이 얘기할 땐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만, 한 권 두 권 소세키의 책을 읽다 보면, 이런 게 고전이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된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의 마음의 이야기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지금도 하나 어색하지 않게 묘사하고 있는 그의 소설들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p50)

 

이 구절이 나쓰메 소세키의 경향을, 그리고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요약해 나타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주인공 '나'는 어느 해변가에서 '선생님'을 만나 친분을 쌓게 된다. 도쿄제국대학까지 나왔지만 별로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는 선생님은 부인과 단둘이 살고 있는데 '상. 선생님과 나'에서는 이러한 선생님을 미스터리하게 그림과 동시에 '나'가 바라보는 선생님에 대한 모습이 자세히 나와 있다. 뭔가 비밀이 있는 듯한, 전부 보여지지 않는 선생님에 대해 존경심과 의구심 등등 복합적인 심경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잘 되어 있다.

 

'중. 부모님과 나' 에서는, 편찮으신 아버지와 그 옆에서 돌보시는 어머니, 그리고 나의 관계가 여러 각도로 조명된다. 아들이 대학을 나왔으니 뭔가 버젓한 직장을 바로 잡기를 원하는 부모와 조금은 태평한 아들의 모습, 아들이 직장을 잡고 제대로 살고 있다는 걸 남들에게 얘기하고 싶어하고 그런 일로 부끄럽고 싶지 않은 부모와 그런 것이 괜히 귀찮은 아들의 모습... 이런 모습들의 내면에 깔린 감정의 흐름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편찮으셔서 점점 죽음에 가까와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의 시선들도 마찬가지. 죽음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와 이제 아버지는 죽을 것이다 라는 것을 전제로 다음의 계획을 생각하는 자식들... 요즘 주변에 그런 일이 있어서인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하. 선생님과 유서' 에서는 선생님이 지면을 빌어 주인공 '나'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일인칭적 내용이다. 어렸을 때부터, 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는 지, 왜 별다른 일 없이 다 포기한 것처럼 살게 되었는 지.. 자신 안의 악마가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 지에 대한 고백들이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 소세키에게 참으로 감탄하게 된다. 사람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들을 어찌나 잘 묘사하는 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고백을 받는 느낌을 부여하니 말이다. 사랑과 질투, 신뢰와 배신, 기만, 그리고 죄책감... 그 속에 위치하는 자아라는 그림자. 그리고 작품 전면에 깔려 있는 외로움. 내가 나를 마주 대할 때 느껴지는 외로움. 그 누구에게 이해를 구하기도 어렵고 그저 자기 자신만이 직면해야 하는 그 기저의 감정들. 그러한 내용들은 읽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자아를 어쩌면 외롭고 쓸쓸한 대상으로 바라보게 함과 동시에 그것이 진정, 사람이라는 것이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현암사에서 나오는 이 시리즈는 다 사서 두어야 겠다. 현재 내게 있는 것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 그리고 이 책 <마음>. 전부 14권 나와 있는 책들을 하나씩 둘씩 사모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어 본다. 신기하게도 계속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들이고... 아마 이런 것이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다. 고전은 고전. 언제 읽어도 오늘에 비추어 퇴색해 보이지 않는 본질을 거울 처럼 명징하게 드러내주는 것. 재삼 느끼게 된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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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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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하루 만에 다 읽은 후 방금 책장을 탁 덮으면서 든 생각. 아니 내가 이 책을 왜 이제야 발견했지? 그리고 나서는, 이제 정유정의 책을 다 사봐야겠군... 이라는 생각으로 옮겨갔고, 마지막에는 '난 이제 정유정 팬이야' 라고 생각을 마무리지었다. 우리나라 소설가의 책을 읽고 팬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언제? 꼬무작꼬무작... 있긴 있었나...

 

쫀득쫀득한 문체와 앞 뒤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구성, 그리고 강렬한 흡인력. 또 뭘 말할 수 있을까. 유려한 단어를 구태여 골라 쓰지 않아서 화려한 느낌보다는 담백한 느낌. 우리나라 소설에서 흔히 보여지는 장광설이 없이 내용으로 승부하는 책. 또 또... 뭘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의 심연을 바닥까지 다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통찰력.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긍정적인 방향성을 구차하지 않게 제시하고 있는 스타일... 내가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뒤지는 것이, 하나 이상하지 않다.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죄책감. 그 크고 작음을 떠나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특히나 부모, 가족에 대한 애증의 느낌. 아이에게는 이런 것들이 가슴에 큰 구멍을 남기고 때로 헤어나지 못하는 우울함을 커서까지 끌고 가게 하기도 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전부,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최현수가 그랬고 강은주가 그랬고 안승환이 그랬고 심지어 오영제도 그랬다. 그리고 그 모든 상처는 살아남은 사람, 최현수의 아들인 최서원에게로 응집된다.

 

어쩌다 벌어진 사건에는, 많은 원인들이 있었다. 그냥 그렇게 그날 잘못된 에너지들이 모여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아버지에게 학대받던 오서령이라는 아이가 그날 따라 엄마 흉내를 내며 엄마의 옷을 입고 화장을 짙게 하고 있지 않았다면, 오영제가 도망치는 딸아이를 일찍 발견만 했더라면, 강은주가 괜히 집보러 다녀오라고 최현수에게 시키지만 않았더라면, 최현수가 그날 따라 술을 그렇게 진탕 마시지 않았더라면, 안승환이 저수지에 들어가 수몰된 마을을 찍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수많은 가정들이 그냥 다 '그래 버렸기' 때문에, 그것들이 맞닥뜨린 지점에서 아이가 희생된다. 그리고 그 잘못된 사건으로 말미암아 모두의 인생이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그걸 우연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왜 이렇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인지.

 

그렇게 세령호에서의 이 주는, 살인의 죄로 망가져 가는 한 남자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그의 아내와, 아버지를 사랑하고 믿지만 점점 마음이 멍들어가는 한 아이와  '내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또 한 남자에게 가혹한 세월로 매김하게 된다. 결국 여자아이를 죽이고 아내를 죽였다는 죄명과 함께, 한 마을을 통째로 물 속에 가라앉게 만들었다는 괴물로서 '최현수'는 아들 최서원에게 돌이킬 수 있는 시커먼 구멍을 남기게 된다. 살인마의 아들은 견뎌낼 수 밖에 없었고 그걸 쳐다보는 세간의 시선이나 친척들의 눈길은 곱지 않았으며 어딜 가나 따라다니며 정착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어떤 세력으로 인해 결국 '아저씨'에게 의탁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게 되고. 그리고 지난 세월, 그 속에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 둘씩 벗겨지는 드라마틱한 전개가 이어진다.

 

저 젊은 눈동자는 그때 무엇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을까. (p512)

마지막 즈음에 이 대목에서 사실 눈물이 났음을 고백한다. 인생의 한치 앞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 때 그랬던 해맑은 미소의 청년은 44살에 할아버지의 몰골이 되어 교도소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된다고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사는 것에 대한 회한이 불현듯 밀려와 이 대목을 두번 세번 읽게 된다.

 

대기화면에 깔린 사진을 들여다봤다. 안개낀 별채앞길. 불 켜진 가로등들, 측백나무 울타리 옆을 나란히 걷는 거구의 남자와 사내아이. 남자는 사내아이의 책가방을 들었고 사내아이는 남자의 바지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였다. 열흘 전 아침, 아저씨가 찍었을 우리의 뒷모습이었다. (p8)

아들을 사랑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좋아했던 아들. 참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훼방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공포, 불안, 죄책감... 이런 것이 아닐까. 떠났다고 다 털어 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거기에 휘말려 버린 스스로를 발견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넘어서 경악이다. 남겨진 아이는 정면으로 맞부딪히고 그래서 자기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어쩌면 그 아이에게 말한다고는 하지만, 내게 말하는 듯한 느낌으로 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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