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선이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 12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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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가 거듭되어도 전혀 실망이 되지 않는 해미시 멕베스 시리즈. 갈수록 내용이 알차지고 짜임새도 좋아져서 읽는 즐거움이 상당하다. 특히, 해미시 멕베스의 캐릭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유쾌한 유형으로 그 매력은 늘 빛난다. 이번 내용도 흥미진진하고 매우 재미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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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강
올리버 색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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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이론이 낡은 이론을 무효화하거나 대체하는 게 아니라, 낡은 개념들을 좀 더 높은 수준에서 재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고 역설했다. 그는 유명한 직유법으로 이 개념을 확장했다.

 

비유법을 사용하여 설명해보겠다.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는 것은 낡은 헛간을 부수고 그 자리에 마천루를 세우는 것과 다르며, 그보다는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은 위로 올라감에 따라 시야가 새롭고 넓어지며, 출발점과 다채로운 환경 사이에서 예기치 않았던 관련성을 발견하게 된다. 당신은 변화무쌍한 산행길에서 장애물을 통과하여 마침내 널따란 시야를 확보한다. 그러나 출발점은 아직 존재하며, 크기가 아무리 작아 보이고 시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더라도 여전히 시야에 들어온다. (p226)

 

 

올리버 색스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이 에세이는, 무엇보다 스쳐 지나간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돋보였다.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시대에 맞지 않아서 당시의 과학자들의 생각과 달라서 등등의 이유로 그냥 묻혀 있다가 오랜 세월 후에 다시금 대두되곤 한다. 어쩌면 여건이 맞아떨어져서 또 어쩌면 몇몇의 천재들이 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아인슈타인의 위 말처럼 이 모든 것이 '발전'이라는 것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발견되고 어쩌면 그 가는 길 중에 외면당하고 회피되고 거부당하기도 하면서 직선으로 쭉 가는 게 아니라 지그재그로 움직여가면서 어느 순간에 다시금 길을 찾아 그 출발점을 확인하게 되는 것. 그것은 누구 하나의 힘이 아니며 역사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토대 위에 누군가 벽돌 하나 더 올림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일 게다. 뉴턴마저도 이전 세대를 부정하고 자신의 이론이 독창적임을 강조했다고는 하지만, 누구든 "거인의 어깨"를 빌리지 않고는 발전이라는 것, 새로움이라는 것을 일구어내기 힘들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안다.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노익장으로도 끊임없이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고 이런 글을 써낼 수 있었던 그가 평생 지녔던 것은 무엇일까. 한편으론 그가 가졌던 그 많은 지식들, 그 치밀한 시야들이 이젠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글로써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으니,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고 그도 누군가에게는 '거인'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억은 고정되고 활기 없고 간편적인 수많은 흔적들을 고스란히 재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반응이나 경험들을 바라보는 전반적 태도‘와 ‘이미지나 언어의 형태로 저장된 세부 사항‘을 기초로 하여 상상력이 가미되어 구성되거나 재구성된다.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암기와 반복의 경우에도 기억이 늘 정확한 것은아니다. 따라서 기억의 정확성을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p109)

인간의 기억은 오류를 범할 수 있고 취약하며 불완전하지만,굉장히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출처에 대한 혼동과 무차별성은 역설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어디 한번 생각해보라! 만약 모든 지식에 출처가 표시된 꼬리표가 붙어 있다면, 우리는 종종 엄청난 양의 부적절한 정보에 압도당할 것이다. 출처에 무관심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읽고 들은 것‘과 ‘타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쓰고 그린 것‘을 통합하여, 마치 1차기억인 것처럼 강렬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덕분에 우리는 타인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고,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예술, 과학, 종교가 포함된 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공동정신common mind에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보편적인 지식연방commonwealth of knowledge을 구성하게 된다. 기억은 개인의 경험뿐만이 아니라 많은 개인들 간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34)

멀린 도널드Merlin Donald는 <현대 정신의 기원Origins of the Modern Mind>에서, 모방문화mimetic culture를 문화와 인지능력 진화의 핵심 단계로 간주한다. 그는 흉내, 모방, 미메시스mimesis를 명확히 구분한다.

첫째, 흉내는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으로, 가능한 한 정확한 사본duplicate을 만들기 위한 시도다. 따라서 누군가의 얼굴 표정을 정확히 재현하거나 앵무새가 다른 새의 소리를 정확히 모사하는 것은 흉내에 해당한다. 둘째, 모방도 대상을 재현하지만, 똑같이 따라 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는 자녀들은 모방을 하는 것이지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니다. 셋째, 미메시스는 모방에 표상representation이라는 차원을 첨가한다. 그리하여 흉내와 모방을 통합하여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며, 하나의 사건이나 관계를 재현하는 동시에 표상한다. (p148)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지 타인이나 주변의 문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차용한다. 아이디어는 늘 공중에 떠돌아다니며, 우리는 종종 의식하지 않고 오늘날 유행하는 구절과 언어들을 차용한다. 우리는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빌려 와, 각자 개별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해석한다. 우리는 언어를 차용하는 것이지, 발명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남의 것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끼거나 영향받는가‘가 아니라,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낀 것을 갖고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다.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자기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 입장과 혼합하여 얼마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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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5-27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수고했어용, 토닥토닥^^*

비연 2018-05-27 21:32   좋아요 0 | URL
^_______^
 
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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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열두살 아이가 우연히 다섯살 동네 아이를 죽이게 되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심리적 묘사와 마을의 변화, 그리고 십이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위기와 마지막의 반전까지.. 숨쉴틈 없는 전개를 보이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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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서점 국내 미출간 소설 3
크리스토퍼 몰리 지음, 박선경 옮김 / 현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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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이야기이고 헌책방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책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미프린씨 이야기라 좋았고 책에 얽힌 음모가 밝혀지기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다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집중이 안 되고 자꾸 책을 덮고 싶게 만든다는 게 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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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정말 맘에 안 드네... 이 이유로 살까 말까 망설인 책이었다. 책 살 때 표지도 유심히 보는 나로서는, 아 이런 류의 책표지는 절망감에 가까운 느낌을 안겨 주곤 한다. 물론 저마다의 취향이 있으니 이 책표지가 맘에 드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여기서 더 왈가왈부할 내용은 아닌 듯 하지만 말이다.

 

슬픈 이야기이다. 미국의 1920년부터 1950년까지 조재아 탠과 멤피스 산하 테네시 보육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이야기는, 이게 전쟁 때도 아니고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가능했던 이야기인가 라는 현실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게 한다. 미국이 잘나서가 아니라, 1950년대까지 이런 일들이 그냥 덮어진 채 자행되었다는 자체가 놀랍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릴과 그 오남매의 인생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내용이기도 하다. 강가에서 브라이니와 퀴니라는 엄마 아빠를 두고 아카디아라는 배 위에서 단란하게 살던 릴과 카멜리아, 라크, 펀, 가비언 오남매가 있었다. 이렇게 강가를 떠돌아다니며 사는 가족들이니 일종의 집시라고 할 수 있겠지. 퀴니가 쌍둥이를 낳는 와중에 위기가 닥쳐와 아빠와 근처에 사는 지드 아저씨와 함께 병원으로 가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쌍둥이는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 아이들에게 들이닥친 것은 엄마와 아빠가 아니라 경찰들 비스므레한 낯선 남자들이었다. 엄마 아빠를 보러가게 해주겠다며 억지로 끌려간 아이들은 보육원에 갇히게 되고 학대와 폭행이 이어지는 현실에 맞부닥치게 된다.

 

과거의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와 맞물려, 70여년이 흐른 어느 날, 명문가인 스태포드의 막내딸 에이버리가 우연히 다녀간 요양원에서 아흔의 메이라는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이 돌아가게 된다. 할머니가 에이버리의 손을 잡으며 "펀?" 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에이버리가 자신의 친할머니인 주디 할머니로부터 받은 팔찌를 메이라는 할머니가 자기 것이라고 얘기하면서부터, 그리고 메이 할머니의 방에서 발견한, 부부의 사진을, 주디 할머니와 빼닮은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부터 과거에 대한 탐색은 시작되고, 결국 드러난 진실은... 아...

 

가난한 아이들, 집시들의 아이들 등을 유괴하거나 부모를 속여 서명을 하도록 하여 보육원에 가두고는 명망있고 돈 많은, 그러나 자식이 없거나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팔았던 조지안 탠이라는 여자. 어려운 아이들을 구하는 데 삶을 바친 대단히 훌륭한 여성으로 칭송받던 그 여자. 나중에 이 악독한 일들이 세상에 드러난 직후 암으로 죽은 여자. 죄에 대한 벌조차 죽음으로 비껴간 여자. 그리고 이 일에 연루된 수많은 명망가들에 의해 스르르 덮여간 아이들, 그 친부모들... 이런 끔찍한 일이 20세기에 벌어졌었다니... 놀라움을 넘어서 슬픔이 밀어닥친다.

 

그리고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거다. 소설에서, 가난했던 그 아이들은 친부모와 형제들과 떨어져 부유하고 품위있는 집안에입양되어, 아마도 친부모와 형제들과 살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삶을 누렸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았고, 교육도 충분히 받았고, 좋은 집안의 사람과 결혼하여 평생 부족함 없이 살았다. 그냥 그대로 남겨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행로를 탄 이 인생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잘 모르겠다. 여기에서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어쩌면, 입양되어 산 세월이 그들을 더 행복하게 했을 수도 있었을까... 하지만, 혈육이란 것을, 그들과의 이별을 잊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건 확실한 것 같다. 인생이 바뀌어 좀더 풍요로와지고 좀더 품격은 있어졌을 지라도 마음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사랑은, 늘 그들을 지배하지 않았을까. 외로움의 근원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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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4-29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화라고요. 음음... 잠시 생각해보니 울나라에선 더한 일도 일어났을 것 같네요. 리뷰 보니 저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 마지막 대목이 많은 걸 생각하게 하네요. 친부모랑 살았으면 누리지 못할 삶.... 다시 태어나면, 그리고 친부모랑 사는 게 가능했다면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요, 그들은.

비연 2018-04-29 20:47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꺅. 오랫만이에요.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더한 일들이 일어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니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어요. 한번 읽어보실 것을 추천.
저도, 그들의 인생을 생각하면서, 어떤 것이 최선이었을까. 이 나쁜 짓의 결론에 대해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 아이를 유괴하고 부모에게서 억지로 빼앗고 학대하는 그 천인공노할 죄를 물어야 하는데, 결국 어쩌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 아이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들 때문에 만감이 교차하더이다... 마태우스님 리뷰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