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고민이 있었다. 안 해도 되는 고민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결정이란 걸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이주 정도 고민했던 것 같고, 오늘 그 고민의 마지막을 찍었다. 그러니까 결정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 결정으로 3월 이후의 내 생활은 급변할 것이고... 잘한 건지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어렸을 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상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고 뭐든 결정도 빨리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이를 그렇게 먹었는데? 뭘 머뭇거려? 나이가 어렸을 때야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생각해야 할 변수들도 많고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나이 들면 그런 거 아니잖아. 좀 더 가졌을 거고 생각해야 할 변수는 나이에 반비례하여 많이 줄어들었겠지... 근데 아니네. 더 힘들다. 좀 더 가졌고 생각해야 할 변수도 훨씬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묘하게 결정은 못하겠다. 내가 결정을 잘 못하는 의지박약자 스타일도 아니고 가급적 결정 빨리 하고 뒤도 안 돌아보는 성격임을 감안할 때 매우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나이 먹는다고 뭐가 그렇게 많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럴 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하라고 얘기 좀 해주면 좋겠다. 그냥 머리 비우고 좇아만 가면 좋겠다.. 라는 생각도 든 2주 남짓이었다. 이젠, 아 몰라. go 야. 이렇게 생각하고 2월 한달을 재미나게 놀 생각을 해야겠다 싶다.

 

2.

 

현재 읽는다고 들고 있는 책은 두 권이다.

 

 

 

 

 

 

 

 

 

 

 

 

 

 

 

 

이 책, 보기보다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2019년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요즘 주류경제학보다는 행동경제학, 감성경제학 등의 말하자면 비주류경제학이 노벨상에 더 근접해있는 것을 보면 아주 놀랍진 않지만, 그래도 가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그 때, 노벨상 결정나고 그 주제에 확 당겨서 바로 사두었었는데.. 이제야 읽고 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상투적인 개념으로 단순화하려는 버릇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p6)

 

세계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목표는 당장 내일은 아니지만 가까운 미래에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의 고삐를 늦추면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요원해진다. 우리는 독자들이 인내심을 발휘해 한 단계, 한 단계 접근하는 것이 빈곤 문제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일 뿐 아니라, 세계를 보다 행복한 곳으로 바꿔놓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하길 바란다. (p37)

 

빈곤의 덫 이론에 숨어 있는 전제는 '가난한 사람은 가능한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p45)

 

 

지금 빈곤의 덫(poverty trap)에 대한 실험과 해석들을 읽고 있는데, 정말이지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내용을 이렇게 풀어나가니 적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빈곤=기아.. 라고 항상 생각해왔던 거다. 그게 맞아? 라고 물어보니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거다. 빈곤, 가난.. 이것의 정의는 뭐지? 과연 가난한 사람들은 기아만 해결하면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거야? 이런 의문들을 던지는데,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깨달음이랄까.. 가 생긴다고나 할까. 뭔가 좀 역발상적으로 생각하는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내게 던져주는 문제의식만으로도 읽는 동안 충분히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다 읽고 페이퍼/리뷰 한번 쓰는 걸로.

 

 

 

 

 

 

 

 

 

 

 

 

 

 

 

 

 

왜 예전에 버지니아 울프를 지루하다고 생각했었지? 도대체 내가 뭘 읽은 거지? 라는 자책감이 들 정도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좋다. 이 책 <올랜도>는, 이제까지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책에 들어가지 않는 책이라, 그래서 골랐다. 이걸 다 읽으면 <댈러웨이 부인>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하긴, <자기만의 방>을 이제야 읽고 좋아라 한 비연이니 뭐.. (반성)

 

 

 

 

 

 

 

 

 

 

 

 

 

 

 

 

 

그리고.. 내 책상 위엔 이 책이 '올려져' 있다. 2월의 책. 오해 마시길. 아직 읽지는 않았답니다. 선행학습 그~음지! 그냥 양이 얼마나 되나 글자는 어떤가 하고 살짝 열어봤는데.. 비교적 얇다고 안심했던 것에 일격을 맞은. 글이 촘촘해. 그리고 논문 묶음이었어... 아. 2월도 그닥 만만치는 않겠구나 한다. 근데 제목이 맘에 든다. 무질서(disorder).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크하하.

 

<육식의 성정치>, 1월의 책은... 사실 다 읽은 후에는 페이퍼/리뷰를 쓰지 못했는데, 이것은 뭐랄까 심정이 복잡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못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지 모르겠다. 다만, 당장의 내 식습관에 영향을 주고 있긴 하다. 고기 먹는 횟수가 줄었고 어떻게 하면 고기 대신 채소나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물론 이게 쭉 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테이크는 너무나 큰 유혹이거든. 그러나 그만큼  이 책이 impact 큰 책이란 증거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아마도 아주 느리게 조금씩 먹는 쪽으로의 취향이 바뀌어나가는 trigger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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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1-28 2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육식... 은 읽은 사람의 심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힘이 있네요.^^;;
응원합니다, 비연님! 결정하신 일도 식습관도요 ~
버지니아 울프는 저도 동감이에요. 근데 사실 좀 지루한 글도 있는 건 맞아요. 소곤소곤.ㅎㅎ

비연 2021-01-28 22:35   좋아요 2 | URL
정말.. 육식.. 이 책은 어떻게든 영향을 받는 느낌요..ㅜ
버지니아 울프에게 지루함을 느꼈던 게 이상한 건 아니었군요. 괜한 안심 ㅎㅎ

미미 2021-01-28 20: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기만의 방>은 너무 좋아서 다른 출판사 것으로 한 권 더 살까 생각중이예요. ‘무질서‘ 저도 좋아함 흐흐^^♡

비연 2021-01-28 22:36   좋아요 2 | URL
아. 저도 이런 욕심이 있어요. 좋은 책을 출판사별로 가지고 싶다 이런 거.. 오노.. 미미님. 우리 우째요ㅜ

라로 2021-01-28 21: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댈러웨이 부인>으로 먼저 시작할까 해요. 그리고 봐서 <자기만의 방>을 읽을까 말까 결정. 너무 많은 (읽고 싶은 작가의 책이) 책이 줄을 서서 기다리니 전작을 하고 싶은 작가는 아니라서요. 저는 쉬운 책 읽기,,가 전문이라서요. (주제 파악 잘하죠!! 내세울 것은 그것 하나;;;)

비연 2021-01-28 22:36   좋아요 2 | URL
<댈러웨이 부인> 읽고 알려주세요! ^^
라로님 페이퍼 보고 보관함에 책 슝슝 던지고 있는 제겐,
라로님이 쉬운 책 읽기가 전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데요.. ㅎㅎ

유부만두 2021-01-28 22:49   좋아요 3 | URL
댈러웨이 부인 전 재밌게 읽었어요. 문장도 우아하고요. 전 자기만의 방을 어렵게 읽어서 오랫동안 울프를 겁냈었는데, 왠걸요! 버지니아 울프 소설 무섭지 않더라고요!

유부만두 2021-01-28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의 휴식과 충전의 2월을 덩달아 기뻐하면서 하트를 눌렀습니다.

비연 2021-01-28 23:59   좋아요 1 | URL
감사 감사 ㅎㅎ

수연 2021-01-28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는 왜 이리 재미난 책들이 많은 건가요 비연님 ㅠㅠ 알라딘을 끊어야 해 알라딘을 없애야 해 알라딘을 폰에서 삭제해버리겠어 북플도 삭제해야겠어요. 얼른 단계 떨어져서 2월에 면담하고 싶어요!!!

비연 2021-01-29 00:00   좋아요 1 | URL
저도 늘 삭제의 충동이.. 근데 왜 책 충동만 남는 것인지요.. 2월 면담 필히!^^
 

















이스라엘 작가는 아모스 오즈 정도 알고 있다가 '뉴욕 타임즈'로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아모스 오즈와 얀 마텔, 조너선 샤프란 포어 등의 극찬을 받은 작가의 에세이가 있다 해서 찾아 읽어보았다. 작가 이름은 에트가르 케레트. 몰랐던 사람이다. 이런. 세상에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작가 인생 처음으로 논픽션 에세이를 쓴 것인데, 그러니까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서 7년이 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의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매우 독특한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일면 애잔함이, 그러니까 2차대전을 겪은 부모를 두고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스라엘에 사는 상황에 대한 애잔함이 스미는 에세이였다. 사실, 이 모든 공포스러운 상황도 유머러스하게 묘사하다보니, 글 중간 중간에서 혼자 빵빵 터지곤 했다. 



그렇다. 그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기저귀를 더럽혀버린다. 그가 우주로 날아가거나 F-16 전투기를 조종하려면 아직 배울 게 몇 가지 더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48센티미터 규격의 완성된 인간이며, 그것도 그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극단적으로 기묘하고 독특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남들이 존중해주기는 하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사람. 왜냐하면 복잡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키나 체중과 무관하게, 그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p20)


아기(이름이 레브)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하니, 뭔가 생생해지는 느낌이랄까. 이후에도 아들에 대한 얘기들은 참 다정하면서도 재미나게 그려진다. 이런 아빠에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면 인생을 참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리키 선생님은 네가 초콜릿을 다 먹고 다른 애들이랑 나눠 먹지도 않는다고 하시더라." 내가 덧붙였다.

"응." 레브는 바로 그렇다고 했다. "애들은 학교에서 단 걸 먹으면 안 되니까 나눠줄 수 없어."

"그렇구나." 내가 말했다. "하지만 애들이 학교에서 단 걸 못 먹는데 왜 너는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애가 아니니까." 레브가 능글맞게 웃었다. "난 고양이잖아."

"네가 뭐라고?"

"야옹." 레브는 가르릉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야옹, 야옹, 야옹." 

..(중략)...

하지만 레브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보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들은 내 아들처럼, 자기가 고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속임수를 쓰고, 남의 것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엽고 털이 복슬복슬하며 크림을 좋아하는 생명체인 그들은, 주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다니는 이족보행 생물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과 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p135~136)



아직도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가 싶지만 어딜 가나 그런 것 같다. 우선 가장 가까운 부모가 홀로코스트를 겪은 세대이고 전쟁을 겪은 세대이니 그 상황이 작가에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중동 틈바구니에서 힘들다. 주변에 내전이 일어나고 폭탄도 터지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것을 그냥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사는 모습은, 이스라엘인들이 얼마나 매순간 평안하기 힘들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부다페스트의 문학 행사가 끝나고 술집에서 만난 헝가리 남자는 자기 등에 있는 커다란 독일 독수리 문신을 보여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자기 조부가 홀로코스트 때 유대인을 삼백 명이나 죽였다고 하더니 자신도 언젠가는 비슷한 숫자를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느 작고 평화로운 독일 동부의 마을에서는, 두 시간 전에 무대에서 내 단편을 읽은 배우 한 사람이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는 반유대주의는 나쁜 것이지만, 역사를 통틀어 유대인들이 저지른 견딜 수 없는 행동이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어느 호텔 직원은 나와 아랍계 이스라엘인 작가 사예드 카슈아에게 자신이 규정을 정할 수만 있다면 호텔에 유대인을 받지 않을 거라고 했다. (p54~55) 


제2차대전 중,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모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느 폴란드 소도시의 땅속 굴에서 육백 일 가까이 숨어 지냈다. 굴이 너무 작아서 그들은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인들이 그 지역을 해방시켰을 때, 그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들어서 옮겨야 했다. 모두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근육이 전부 위축되어버린 것이다. 굴에서 보낸 시간 때문에 아버지는 사생활에 민감해졌다. 형과 누나, 내가 같은 방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아버지에게는 미칠 노릇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었다. (p168~169)


너무나 좋은 아버지를 둔 행운을 가졌다고 말하다가 아버지가 암에 걸렸음을 얘기할 때는 내가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그것도 혀뿌리에 생겨서 여든이 넘은 나이에 항암치료 같은 것은 부담만 된다 하고 수술을 하면 혀를 잘라 말을 못하게 될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하는데,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어쩌면 자식 앞이라 노력하는 지도). 


"지금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란다." 아버지가 내 손을 쓰다듬으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상황이 바닥을 칠 때 결정을 내리는 걸 좋아하지. 그런데 상황이 어찌나 암담한지 결국 이보다는 나아지는 것밖에 없겠구나. 화학요법을 받으면 곧바로 죽고, 방사선 치료를 하면 턱에 괴저가 생기고, 모두다 내가 여든셋이라 수술을 받으면 살아남지 못할 거라고 하는구나. 내가 이런 상황에서 땅을 얼마나 많이 사들였는지 너도 알지? 주인이 팔지도 않으려고 하고, 내 주머니에 동전 한 닢 없을 때 말이다."

"알아요." 내가 말했다. 정말로 알고 있다. (p168)


"널 사랑하니까." 내가 말했다. "내 아들이니까.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지켜줘야 하니까."

"그런데 왜?" 레브가 끈질기게 물었다. "왜 아버지는 아들을 지켜야 돼?"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있잖니." 아이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가끔 아주 힘들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적어도 지켜줄 사람 하나는 옆에 있어야 공평하지."

"아빠는?" 레브가 물었다.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빠는 누가 지켜줘?" 레브 앞에서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울었다. (p208)


주말에 부모님 집에 갔다. 매주 가는데도 엄마는 내가 집에 가려고 나설 때마다 따라 나서신다. 춥다고, 힘들다고 계시라고 해도 내가 차를 몰고 나가는 뒤꽁무니에 대고 손을 흔드신다. 현관을 나서는데 아빠가 말씀하셨다. "비연이는 좋겠다. 엄마가 있어서.".. 그리고는 약간 쓸쓸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빠는 엄마가 없는데.".. 그 얘길 듣고 나오는데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 때만큼은 우리 아빠가 나의 아빠가 아니라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들로 보였다. 한참 전에, 정말 한참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인데. 누구나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나를 보호해주는 아빠와 엄마가 있(었)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잘 모르고 살다가 문득 문득 가슴에 사무친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약해지시고 연세가 들어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뒤돌아 나올 때마다 가슴에 먹먹함이 차오르곤 한다. 내 나이가 이렇게나 많이 먹었는데도 늘 걱정하시고 뭐든 해주려고 하시는 부모님을 쳐다보면 그렇다. 부모란 뭘까. 엄마란 뭘까. 아빠란 뭘까... 


마지막 에피소드가 너무 좋은데, 여기 옮기지는 않으련다. (이 에피소드는 읽어야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작가는 이 책을 모국어(히브리어)로 쓰지 않고 영어로 썼다. 내밀한 이야기라, 그래서 '비행기나 열차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사람에게 하는 편이 더 좋은 이야기'라 그냥 모르는 사람과만 나누고 싶다 생각했단다. 작가와 함께 따라가는 7년의 여정은, 그저 재미있기만 하진 않다. 전쟁과 아이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형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마음에 뭔가 차곡차곡 쌓이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책이 너무나 멋진 에세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맞았다. 좋은 에세이다.


작가를 알게 된 김에 그의 책들이 있나 찾아봤더니 번역된 게 몇 권 있었다. 심지어 이 작가가 2013년인가 우리나라에 오기까지 했더라는. 아, 이렇게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 이 에세이는 원서로 읽어볼까 라는 생각도 있다. 흠. 아니다. 쌓인 원서들. 지우자 지우자 생각을 ㅜ 나도 나중에 에세이를 쓴다면 이 작가처럼 쓰고 싶다. 이렇게까지 위트있으면서도 다정하게, 마음의 스산함까지 담아내는 글을 쓰진 못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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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26 13: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연님의 이 글 보고 방금 이 책 질렀습니다.
지르는김에 5만원을 넘겼지요.
2월엔 책 안살거니까 1월에 많이 사둬야겠지요?
그럼 이만..

비연 2021-01-26 14:01   좋아요 3 | URL
우리는 서로 책 뽐뿌하는 사이... 우히히.
2월엔 책 안 살거니까... 정말요? 정말요? ... 저도 그런 각오로 1월에 많이 사두었는데..
2월엔 알라딘을 안 들어와야 할까요...;;;;; 그것만이 길일지도. ㅜㅜ

수연 2021-01-26 17:1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뭐야 반칙이야 다락방님!!!!!!

다락방 2021-01-26 18:52   좋아요 2 | URL
응? 왜요? 왜? 뭐? 🙄
=3=3=3=3=3

비연 2021-01-26 23:02   좋아요 1 | URL
귀여운(?..!) 두 분 ㅎㅎㅎ

붕붕툐툐 2021-01-26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세상엔 제가 모르는 좋은 작가, 좋은 책이 참 많아요!! 비연님 덕분에 알게 되어 기쁩니다~ 읽고 싶은 책에 넣어놨어요!!😄

비연 2021-01-27 10:01   좋아요 0 | URL
정말, 알면 알수록 책의 세계는 넓고도 넓습니다, 붕붕툐툐님!
이 책을 읽고 싶은 책에 담아두셨다니 넘 반가와요~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립니다^^

incoldblood 2021-01-3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이 커 갈수록 작아지는 나이 많은 부모님 이야기가 재일 먼저 떠오르네요.

비연 2021-01-31 12:56   좋아요 0 | URL
아. 이 내용은 어느 책에 있는 건가요?

scott 2021-02-10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모스 오즈 작품 이번에 영화로 나온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는데
포트만이 감독하는
비연님 페이퍼 이달의 당선 됬음
추카~추카~

설연휴 멋지게 보내세요(저는 오늘 부터 ㅋㅋ)

비연 2021-02-10 21:04   좋아요 1 | URL
오호. 아모스 오즈 작품이 영화로! 넘 궁금하네요~ 축하 감사드리구요^^ (부끄) 새해 복복복!!!
 















연구모임에서 이 책을 일부 번역해서 읽자고 했고 그래서 그 일부를 파일로 보내줬음에도 난 원본 책을 구매해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왜냐고? 묻지 말라. 그냥 공부하는 책은 특히나 다 산다. 이게 내 원칙이라는 것만 밝히는 바. (다른 책도 특히나 다 산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면...외면) 심지어 hardcover이기까지 한 이 책을 얼마나 이해하고 읽을 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읽어보기로. 어차피 연구모임에서 발제해야 하니 읽긴 읽어야 한다. 이건.. 시련이다. ㅜ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책으로 가지고 있는 건 낭비다. 아이패드나 킨들을 사자. 이북으로 보자. 


이렇게 이 책 한 권 사려고 들어왔지만, 알라딘에서 책 구매하러 들어와서 한 권만 사서 나간 적이 있던가. 하던 대로 그냥 몇 권 더 샀다. 왜냐고? 묻지 말라. 그냥 관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 구매 관성. 알라디너의 기본 소양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하고.. 다시 외면) 






































월 1회 사기로 했는데 좀 더 구입하는 거라 몇 권 안 샀다고 조심스레 말해본다. 소설이 많다. 2월엔 아마 소설 아닌 책도 많이 사겠지. 책을 읽으면 그 안에 나온 책을 또 보관함에 담고 사고.. 이런 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인문학적으로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나,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테러에 가까운 일임을 느끼고 있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또 사면서 생각했다. 정말 이북으로 갈아타야겠구나. 그러나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기쁨은 그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기 때문에 그걸 누리고자 한다. <Criminality at work> 이 책이 늦게 와서 아마 2월 초에나 받게 될 것 같다, 이 책들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엄마가 원한 책이다. 바로 받길 원하실 수 도 있는데 내 책과 같이 주문해서 2월 초에나 받게 될 거라고 미리 말씀드려야 할 듯. 



















지유님과 scott님의 페이퍼 덕에 EBS 일본어를 들어볼까 해서 사려고 했는데 2월 초에나 도착한다고 해서 일단 뺐다. 그냥 서점 가서 사야겠다. 일본어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데 이젠 예전만큼 들리지 않고 읽히지 않아서 속상하던 차였다. 매일 언어의 근육을 단련하는 일을 올해는 해봐야겠다. 뭐, 가지고 있는 일본어 원서를 읽으면 돼지..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일본 만화는 읽어도 되겠다 라는 생각에 미친다. <피아노의 숲> 일본어 만화가 있으니 그걸 좀 읽어볼까나. 영어도 잊어버리면 안되는데.. 아이고. 머리야.  


오늘 석사과정 여학생 한 명이 찾아와 1시간 가량 면담을 했다. 나보고 롤모델이라고 해서 화들짝 놀랐다. 아.. 더 좋은 사람을 롤모델로 삼으렴.. 이라고 말하고는 이런 저런 얘길 했다. 나이가 좀 있어서 공부를 시작한 탓에 이런 저런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지나고 보니 공부가 늦는 때란 없단다, 여자들에게도 기회가 이제 많단다 라고 했는데, 나는 무슨 자신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누군가에게 조언이랄까 코멘트랄까를 하는 것은 늘 나를 돌아보게 한다. 너는 과연? 이런 느낌. 오늘 가서 오랜만에 와인이나 한 잔 해야겠다. 맥락없이 술 먹겠다고 마무리하는 비연, 물러갑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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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1-21 15:4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롤모델로 삼은 분과 면담을 1시간 가량 할 수 있다니... 그 학생도 벌써 멋진 인생을 사는 거 같아요. 저도 면담 신청해도 될까요? 🤗

비연 2021-01-21 19:04   좋아요 1 | URL
제가 말하면서도 아 이게 맞나 싶어서 속으론 엄청 쫄아 있었다는 ㅎㅎ;; 단발머리님과의 만남은 언제든지! ㅎ

미미 2021-01-21 15: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멋쪄요~♡

비연 2021-01-21 19:05   좋아요 3 | URL
아.. 그닥 그렇진 않은데... 부끄럽습니다ㅜ 그냥 더 잘 살아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scott 2021-01-21 16: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멋찜 2월부터 라디오 중급 클래스메이트 예약 !ㅋㅋ
알라딘이 기대별점날리면 천원주는거에 혹에서 끌려다니고 있는 1人어제 장바구니 털고나니 오늘 고객님에게만 준다고 1천원을 ㅋㅋㅋ

비연 2021-01-21 19:05   좋아요 2 | URL
2월부터 함께 해요 scott님!!!! ^^

2021-01-2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1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1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1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연 2021-01-21 16: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면담 신청 여기 손 번쩍!!!

비연 2021-01-21 19:08   좋아요 2 | URL
ㅋㅋㅋ 면담 말고 만남~

붕붕툐툐 2021-01-21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롤모델 롤모델~ 아, 넘나 멋지심다~~👍👍👍👍

비연 2021-01-22 08:53   좋아요 0 | URL
멋진건 아닌 거 같고... 그냥 마음에 부담이 물밀듯이... ;;;;

han22598 2021-01-22 0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의 핫 이슈는 롤 모델이네요. ㅎㅎ 누군가의 롤 모델이시다니. 간지납니다. 비연님!

비연 2021-01-22 08:53   좋아요 0 | URL
흠흠... 많이 부끄럽나이다 ;;;;

지유 2021-01-27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급일본어 2월호 기다리고 있어요. ㅎㅎ

비연 2021-01-27 12:44   좋아요 0 | URL
오홍! 2월에 함께 해요!^^
 

















이 책을 읽고 있노라니 내 어린 시절은 어땠지..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먼먼 옛날 일 같은데, 가 아니라 먼먼 옛날 일이라 (아흑)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으니 조금씩 조금씩 생각이 날랑말랑 하게 되어서 괜히 아연해진다고나 할까. 



그러자 현성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p18)


아이라고, 몇 년 안 살았다고 알 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할 걸 못하는 게 아니다. 그냥 어른의 시각으로 보니 모르는 것 같고 느린 것 같고 그런 것이지.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어릴 때 나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삐쩍 말라서 허연 얼굴로 다니는 아이였다. 달리기도 잘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타는 아이였다. 그냥 맨날 방에 앉아 책만 읽는 아이였다. 좀더 활발하게 힘차게 지내고 싶었지만, 체력이 안 따라주고 운동신경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못한다 못한다 하니까 더 못하게 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딱 하나 잘 하는 게 있다면 피구였다. 그것도 던지는 건 잘 못하고 피하는 걸 잘했다. 몸이 작아서 그런 지 잘 맞지 않았고 매번 끝까지 남는 한 명이었다. 난 그걸 잘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끝까지 남는 내가 좋았다. 어느 순간 발꿈치를 탁 맞아 장렬히 전사하게 되긴 했지만, 둘러싼 아이들의 눈을 보며 그 공을 어디로 던질 건지 머리로 가늠하며 던지는 순간 판단해서 피할 때, 쾌감이 컸다. 묘하게 그 때 그 쾌감이 아직도 기억된다. 가끔 뭔가 잘 안 풀릴 때 그 어린이가 기억나기도 한다. 그 때 잘 피했었는데.. 하면서. 


하지만 모든 무서운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어른이 '여성'이기 때문에 무서워하게 되는 그 많은 일들이 모두 그렇다. 그런 무서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을 좀먹고 무너뜨린다. 우리는 어린이가, 여성이 안전을 위협받는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 수수를, 보리를, 검은콩이를 불안하고 신뢰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할 수 없다. (p53)


어린이든 누구든,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무서움을 유발하는 모든 것을 증오한다. 길거리를 걸을 때 뒤에서 다가오는 남자의 발걸음 소리에 가슴이 쿵쿵거리거나, 으슥한 곳에서 남자와 단 둘이 스쳐지나가게 되거나, 택시를 탔을 때 백미러 너머로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는 눈초리를 느끼는, 그런 경험들 하나하나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지, 여성들만이 아는 그 무엇이 있다. 아이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세상은 그런 일이 없는 세상이어야 할텐데. 나도 그런 생각을 늘 한다. 신문지상이나 어디나 떠들어대는 그 소름끼치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불평등과 모멸감도 그렇고, 단지 성별을 이유로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없어지길 늘 기원한다. 



자람이가 가고 보니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 (p72)



어린이는 참 착하다. 요즘 애들이 못됐다고 까졌다고 아무리 그래도 애는 애다. 아이의 마음엔 순수함이 있다. 착함이 있고 반짝이는 생각이 있다. 그런 어린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도 나고 기쁘기도 하고 가끔은 씁쓸하기도 하다. 예전에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이 분홍색 플라스틱 자를 하나씩 나눠주시면서 이게 있어야 2학년 5반이다, 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런 일이 왜 기억에 남는 지 모르겠지만, 어쩄든 그 얘길 듣고 난 2학년 5반 학생이 아니면 안된다는 약간의 절박함으로 그 자를 내내 지니고 다녔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안달이었다 싶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메리 올리버의 문장들이 떠오른다.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우주는 활기차고 사무적이다" (<완벽한 날들> 중에서) (p91)


이렇게 또 좋은 책을 하나 소개 받는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너무 강요해서 유치원 때부터 선행을 하고 영어를 하고 초등학교 때 학원을 돌려대며 애들에게 공부를 시킨다. 중학생이 되면 새벽까지 학원에 가고 숙제하느라 잠을 못잔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마찬가지고. 공부를 못하면 여전히 낙오자 취급을 받는다. 살아보니 그게 다가 아니더라, 하면서도 자기 자식한테는 용납을 못하는 부모가 많다... 근데 정말 살아보니 그게 아니던데. 하나하나 사는 내용이 다르고 방식이 다르고 그 모든 것이 다 소중한 것이던데. 이게 사실은 살아봐야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하나 있는 조카에게 (이젠 고등학생이 되어 총각티가 나는) 가끔 메세지를 보내며 꼭 뒤에 이런 말을 달아준다. "OO이가 뭘 해도 고모는 OO편임을 잊지마. 사랑해요, 조카." 남자아이고 아직 어려서 이거 뭐야? 하고 쓱 지나칠 지 모르지만, 난 우리 조카가 그걸 알아줄 날이 있을 거라 믿는다. 세상에 하나 뿐인 소중한 사람으로 조건없이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의 든든함. 어떤 일을 하든 다 믿어줄 거라는 자신감. 그리고 누구보다 스스로가 스스로이기에 빛나는 사람이라는 생각. 





















좋은 책이다. 어린이를 대할 때도 기억해야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이해하는 데에도 큰 위안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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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21-01-19 14: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해 들어 읽은 리뷰 중 최고인데요 비연님 포용력 갑인 목소리에 걸맞는 포용력 최갑인 리뷰입니다. 이런 고모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싶은 :)

비연 2021-01-20 11:54   좋아요 1 | URL
앗. 수연님.. 부끄부끄... 우리 조카도 든든해해야 할텐데..^^

미미 2021-01-19 14: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히히~저도 피구 잘피하는 편이었는데 시작만하면 항상 너무나 심장이 터질것같더라구요.
비연님 글 읽으니 그 느낌이 또 다른 생각을 부르네요. 메리 올리버의 책 담아갑니당♡

비연 2021-01-20 11:55   좋아요 2 | URL
예전 피구 볼 때의 그 둑은둑은이 저도 아직 느껴져요. 돌아보면 즐거운 기억이기도 하구요.
메리 올리버 책은 저도 담 구매시 포함할 예정. 룰루~

얄라알라북사랑 2021-01-19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연 어린이^^ 저도 제 이름 뒤에 어린이 한 번 붙여 불러보고 싶어집니다.

˝뭘 해도 네 편˝ 이런 문자 보내주시는 고모 너무 멋지시네요^^

비연 2021-01-20 11:55   좋아요 2 | URL
비연 어린이.. 그러니까 좀 느낌이 다르죠? ㅎㅎ
사실, 전 우리 조카가 있다는 자체가 우주를 안고 있는 기분이에요~

syo 2021-01-19 14: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비연 어린이는 어릴 적부터 똑똑하고 자기 일 스스로 하는 씩씩한 어린이였을 것만 같은데!

비연 2021-01-20 11:56   좋아요 1 | URL
흠흠... 노 코멘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cott 2021-01-19 15: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둘도 없는 조카와 고모 뭘해도 네편이 있다면 매끼 챙겨먹지 않아도 든든 ^ㅎ^

비연 2021-01-20 11:57   좋아요 1 | URL
우리 조카와 제가 좋은 팀웍이긴 하죠.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1-19 16: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고 하얀 비연 어린이 너무 보고 싶어요^^
조카님은 비연 고모님 맘을 알고 있을 거에요. 조카님 부럽네요, 홍홍!

비연 2021-01-20 11:57   좋아요 0 | URL
제 어린 시절은.. 비연 어린이는... ㅋㅋㅋㅋ
우리 조카도 알고 있겠죠? 믿어봅니다~ 워낙 철없는 고딩이라 ㅎㅎ;;

라로 2021-01-20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연 어린이와 친구가 되고 싶은 어린이였을 것 같아요. ^^;;
저는 비연님처럼 좋은 고모, 또는 이모가 될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제게 좋은 고모나 이모가 없어서 모범을 보지 못해서 그런가 봐요. (또 또 어두운 이야기... 라로 어린이는 어두웠나봐요. ㅎㅎㅎㅎㅎ)

비연 2021-01-20 16:57   좋아요 0 | URL
저도 라로 어린이랑 친구하고 싶었을 듯요 ㅎㅎㅎ^^
라로님은 좋은 엄마시잖아요. 전 사실 엄마가 되어 보지 못해서 자식이 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볼 뿐이지만, 그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카스피 2021-01-2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만 핵가족이 되고 친인척간의 교류가 없어지다보니 좋은 고모나 이모 삼촌이 되기는 더욱 더 힘든 시대인가 봅니다.

비연 2021-01-21 00:06   좋아요 0 | URL
먼 친척과는 잘 안 만나도 고모, 이모, 삼촌이랑은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저처럼 아이가 없는 사람은 조카가 제일 큰 보물이라.. ^^
 
















도살을 통해 동물은 부재 지시 대상이 된다. 동물의 이름과 신체는 고기로 존재하는 동물에게는 부재하는 무엇이다 ...(중략)... 동물이라는 이름은 소비자가 고기를 먹기 전에 죽은 동물의 신체에 다시 이름을 부여하는 언어, 곧 각 부위별 명칭에는 부재하는 무엇이다. (p104)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기억에 되살려지는 것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육식에 대한 폭력성을 대비하기에 앞서 내가 스쳐 지나쳤던 동물에 대한 기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해체되기 전의 동물, 그리고 해체된 동물, 어쩌면 해체되었을 것 같은 동물.


어릴 때 키우던 개를 생각한다. 이름이 에스였지. 짧은 흰털을 가진 잡종견이었는데 영민한 녀석이었다. 답답할 때 가끔 집을 뛰쳐나갔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제 집을 찾아 돌아오고 우리가 들어가면 야단스럽지 않은 모양새로 컹컹 거리며 다가오던 개였다. 나는 지금이나 예전이나 동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아주 살갑게 대하진 않았지만, 동물이라든가 반려견이라든가 얘길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어릴 때 추억과 결부하여 내게 꽤 깊숙이 박혀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어느날 집을 나간 에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 엄마가 불쑥 말씀하셨다. "어디 개장수한테 잡혀갔나보다... 에스가 우리집에 다시 안 올리가 없는데.." 그 때 내 머릿속에는 개장수라는 것과 보신탕이 바로 연결되진 않았다. 어린 마음에 개장수가 우리 에스를 잡아가서 어떻게 했을까 죽였을까 라고만 생각하고 안타까와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개장수가 데려갔다면... 버~얼써 어느 사람의 뱃속에 들어갔겠다 싶다. (으악) 내 옆에 있던 개가 누군가에게 잡혀가서 죽임을 당하고 나누어져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거란 생각 자체가 뭐랄까. 그냥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고야 만다. 


그리고 나서 우리집에 새로 들어온 개는 돌이였다. 이름 한번 촌스럽게 지었다 싶지만, 이 개는 긴 갈색털이 산지사방으로 자란 그냥 잡종견이었다. 영민하지도 않았고 그냥 얌전하기만 했다. 어디 뛰쳐나가는 법도 없었고, 그 자리에서 맴맴 돌기만 하는 녀석이었다. 내 동생이 꽤나 예뻐해서 엄마가 너무 돌보기 힘들다고 작은 아빠 집에 보내버렸을 때 울고 불고 하여 다시 데려온 기억도 있다. 돌이는,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를 오면서 같이 못 가게 되어 지나가던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잡종견이고 집에 들여 키우기도 힘든 개라 아무리 찾아도 누가 받아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결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날 그렇게 팔려가던 돌이는, 철제 케이스에 갇혀 바깥으로 주둥이를 내민 채 우릴 쳐다보던 그 눈길을 잊을 수 없다. 슬프다고만 딱 잘라 얘기할 수 없던 그 눈빛. 알고 있었던 거지. 헤어짐과 자신의 (먹힐) 운명을. 어쩌면 내 감정이 이입되어서 더 그렇게 느꼈는 지도 모른다.... 아뭏든,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다.


누구나, 이런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개든, 소든, 돼지든... 닭이든... 동물은 살아 숨쉬고 뛰어다니고 내 곁에 와서 몸을 부벼댈 수 있는 뜨거운 피를 가진 생명체인데 그것이 고기로 전락되는 순간, 원래의 그것은 사라진다. 내가 이 책이 정말 고마운 것은, 잊고 싶었거나 몰랐거나 그냥 지나쳤던 그 '생명과 고기 사이의' 과정을 명확히 인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은 똑같이 고통을 받으며 죽는다. 당신이 자기가 기른 돼지를 잡아 먹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죽여야 했으면, 십중팔구 당신은 돼지를 죽이지 못한다. 돼지 멱따는 소리 듣기, 솟구쳐 흘러내리는 붉은 피 지켜보기, 이 광경이 무서워 엄마 뒤로 숨어버리는 아이 바라보기, 동물의 눈에서 죽음의 그림자 보기 등은 당신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래서 당신은 돼지를 대신 잡아줄 사람을 고용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게토가 지저분하다고 비웃는 부유한 귀족들이 그 고통에 찬 비명을 들었으면, 배고픔에 서서히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을 봤으면, 사람들의 사나이다움과 위엄이 교살되는 장면을 목격했으면, 살인을 계속 저지를 수 없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은 이런 공포를 겪을 기회가 없다... 만약 당신이 고기를 먹기 위한 동물 살해를 정당화할 수 있다면, 당신은 게토의 이런 실상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쪽도 정당화할 수 없다. (Gregory 1968, 69~70) (p110) 



그래서, 이런 구절, 조금 과하게 비교한다 싶은 이런 구절도 어느 면에선 마음에 와닿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과연 채식주의가 될 것인가, 육식을 줄이게 될 것인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계속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은 분명해보인다. 동물에만 그치는 내용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과 해체와 소비에 대응된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더 기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고기는 늘 권력을 쥔 자가 먹었다. 유럽의 귀족 사회는 온갖 고기로 가득한 음식을 소비한 만면 노동자들은 합성 탄수화물을 소비했다. 식습관은 계급 구분을 명확히 해주며 가부장제에 기초한 구분도 확실히 한다. 2류 시민인 여성이 먹는 음식, 그러니까 채소, 과일, 곡식 등은 가부장제 문화에서 2류 식품으로 여겨진다. 육식에서 드러나는 성차별은 형식은 다르지만 계급 차별로 되풀이된다. 고기는 남자의 음식이고 육식은 남성적 행동이라는 신화가 모든 계급에 스며들어 있다. (p98)


따라서 동물권 옹호자들도 동물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묘사하기 위해 은유적으로 여성에게 적용되는 '성폭행rape'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주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은유적으로 동물에 적용할 때, 우리 문화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행의 사회적 맥락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런 선결 조건 없이 단지 동물 억압을 설명하려고 여성 성폭행이라는 단어에 의존하고 마는 은유적 차용은, 결국 가부장제의 근원적 폭력에 맞서지도 못할 뿐 아니라 동물 억압과 여성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못한다. 우리의 목적은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폭력에 맞선 저항이자 부재 지시 대상을 만들어내는 가부장제 구조의 제거다. (p139)




오늘은 여기까지. 


아직 절반 좀 넘게 읽긴 했어도, 이 책, 좋다. 내 행동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겠고 (자신은 못하겠지만, 내 일부는 변하리라 본다) 그 전에 내 인식의 지평을 좀 더 넓혀 주는 책이다. 아울러 이 책을 읽으면서 보관함에 푱푱 담은 책들..은...아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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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21-01-14 16: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돼지고기 찌개감을 500g 사다가 김치, 청국장 끓여서
돼지고기가 아니면 이게 이렇게 맛있겠냐 같은 생각이 지금도 진심으로 들지만
이러던 것도 ˝그땐 그랬지˝ 하게 될 거 같기도 해요. 육식에 대한 관점이 결정적으로 바뀌는 때가
오고 말 거 같은.

한편 그래서 불안하기도.. ㅎㅎㅎㅎㅎㅎ
돼지고기 찌개 먹고 싶은데 아직은요.

붕붕툐툐 2021-01-14 16:35   좋아요 3 | URL
돼지고기가 아니면 이렇게 맛있겠냐에서 공감을 안할 수가 없네요~ㅋㅋㅋㅋㅋ

비연 2021-01-14 20:26   좋아요 1 | URL
아.. 정말 딜레마에요. ㅜㅜ 돼지고기 찌개라고 하니 뭔가 확 당기는..
근데 <육식의 성정치>가 절 쳐다보고 있고..
관점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될 때 다른 선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위안.. (먼산;;)

붕붕툐툐 2021-01-14 16: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현대사회는 푸른 풀밭에서 뛰어놀던(실제야 어쨌든) 소, 돼지, 닭이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 그 과정을 지우려고 무척 애쓰고 있죠.. 아는 분 딸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닭 잡는 모습을 보고, ˝꼬꼬 불쌍해..... 맛있겠다.˝ 했다는 얘기가 떠오르네요..

비연 2021-01-14 20:27   좋아요 1 | URL
푸하하. 불쌍해.. 에 이어 맛있겠다..가 나와서 빵터짐... ^^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과정들이, 그러니까 의식 속에서 생략된 과정들이 너무나 많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 읽는 내내 제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금 회의하게 되는...

미미 2021-01-14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애덤스 책 읽고 ‘프랑켄슈타인‘ 다시 보게됐어요! 여성작가의 소설인줄도 몰랐구요.저도 푱푱 담아갑니다 ㅋㅋ

다락방 2021-01-14 17:26   좋아요 4 | URL
프랑켄슈타인은 진짜 엄청 재미있어요, 미미님! 제가 그걸 2017년엔가 읽었는데, 그 해 읽은 최고의 소설이라고 페이퍼 썼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미미 2021-01-14 17:36   좋아요 2 | URL
어머 페이퍼 찾았음요! 1년에 한권 읽을 수 있음 이 책이라니 저 또 조급해집니다!!

다락방 2021-01-14 17:43   좋아요 3 | URL
아니, 찾아보실거라 생각했다면 제가 링크 드릴걸 그랬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님이 프랑켄슈타인 읽으시면 어떤 감상을 들려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꺅 >.<

비연 2021-01-14 20:28   좋아요 2 | URL
저도 예전에 다락방님이 쓰신 <프랑켄슈타인> 관련 글, 기억나요...
한번 읽어봐야지 할 정도로 뽐뿌질 막 느끼게 하는 페이퍼였는데^^

미미님. 푱푱~ 자꾸 하시면..ㅋㅋㅋ 어느 새 보관함이 그득... 자꾸만 사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 흠냐.

다락방 2021-01-14 1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밑줄 그은게 겹치네요, 비연님. 아마도 겹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말예요.
언급하신 것처럼 내 인식의 지평을 좀 더 넓혀주는 책이라서 읽기에 신나고 흥분되는가 봅니다.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은 절판이라 번역본을 구할 수가 없어 아쉬워요 ㅠㅠ

비연 2021-01-14 20:30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ㅎㅎ 비슷한 데가 좋았던 모양이네요.

<정글>은 번역본을 구할 수 없길래.. 세상에. 이 책은 왜 절판이 된 것이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원서를 보관함에 담긴 했는데.. 그냥 번역본이 다시 나와주십사.. 하는 게 솔직한 심정 ㅜ

han22598 2021-01-14 2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엉뚱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잡아먹을 동물을 짐승이라고 따로 구별해서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슬픈 이름 짐승 ㅠ

비연 2021-01-15 01:55   좋아요 1 | URL
짐승.. 그럴 수도. 그런 짐승이란 단어가 인간에게 적용될 때는 반대 입장이 되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syo 2021-01-15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멍뭉이 이야기만 나오면 높아지는 나의 집중력.....

비연 2021-01-15 01:48   좋아요 1 | URL
역시나 멍뭉 하면 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