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며 11월 1일 주문에 들어갔다. 결국 결재한 건 2일이었지만. 




















존 버거의 책은 다 산다... 이 책을 놓치고 있었는데, 레샥매냐님의 페이퍼에서 보고 바로 구매에 들어갔다. 레샥매냐님이 이렇게 쓰신 거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눈은 언제라도 눈물샘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존 버저 작가가 섬세하게 구상한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나의 감정은 그런 태세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만난 존 버저의 <결혼식 가는 길>은 그저 아름다웠다..." 아니 이렇게 썼는데 이 책을 더더군다나 어떻게 외면하느냐는 것이지. 르네상스적이며 보헤미안적인 존 버거라는 사람의 글은 늘 내게 도전이다. 존 버거와 수전 손택이 토론하는 유튜브를 본 적이 있는데 (둘다 천천히 말해서 듣기에 괜찮았다) 세계의 지성들은 이렇게 토론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 그들은 지구상에 없다. 그립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들은 아주 옛날 버전으로 가지고 있다. 엄마가 아주 예전에 <장미의 이름>이 단권의 초록색 표지로 나왔을 때 사서 읽으시고는 내게 읽어보라고 주셨었다. 그 이후로 난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 되었고, 그 이후 나온 책들도 줄줄이 몇 권을 보았다. <푸코의 진자>도 괜찮았고, <전날의 섬>도 괜찮았지. 심지어 <논문 잘쓰는 법>이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도 읽었더랬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전권을 소장하는 게 나의 '작은' 바램이기도 하고. <장미의 이름>은 꼭 다시 봐야지 마음 먹고 있던 책인데 (너무 고전도 아니지만 고전에 가까운 책이므로) 숀 코너리가 며칠 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아 정말 다시 읽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예전 버전은 엄마 집에 두고 와서 새롭게 사기로 결심했고. 숀 코너리가 영화에서 윌리엄 수사 역할을 했을 때, 이건 숀 코너리를 보고 쓴 거 아니야 할 만큼 잘 어울렸었다. 영화가 소설보다 나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때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책을 읽은 이들에겐 좀 시시해보일 수 있었지만, 거기에 나오는 숀 코너리는 제임스 본드는 생각도 안 난다. 나에게 숀 코너리는 윌리엄 수사다. 


* 구입하고 나니 양장판이 있었다. 아 정말. 못 봤네... 이걸로 살 걸. 





























여행기. <고전에 맞서며>는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를 둘러보는 마음의 여행기. <마음의 발걸음>은 아일랜드를 둘러보는 리베카 솔닛의 여행기. 안 살 이유가 없는 책들이다. 보자마자 장바구니에 퐁당 넣어야 하는 책들이지. 사실 <고전에 맞서며>는 서평이다. 31개의 책에 대한 서평. 남과는 다른 고전에 대한 시선. 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이다. <마음의 발걸음>의 아일랜드는 어떨까.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들, 제임스 조이스, 버나드 쇼, 윌리엄 예이츠, 조너선 스위프트, 사무엘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어떻게 이 작은 나라에서 이리 많은 문학인들을, 그것도 세기를 대표할 만한 문학인들을 배출했을까. 늘 궁금했다. 영국을 거쳐 아일랜드를 가서, 아이슬란드까지 보고 오는 것이 나의 여행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데,..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터. 책으로라도 여행해봐야겠다. 리베카 솔닛의 시선이 궁금하다. 




















<상페의 음악>은 엄마께 드리는 선물로, <Ex Librs: 100+ Books to Read and Reread>는 내게 주는 선물로 구입했다. 엄마는 장자크 상페를 좋아하셔서 그의 책은 다 가지고 싶어하시니 이 책도 좋아하실 것 같다. 저 두꺼운 원서를 내게 주는 이유는... 그냥 좋아서. 이유가 뭐 필요하겠는가. 곧 있을 내 생일을 맞이하여 내게 주는 선물이다... 안 읽으면 머리맡에 두고 그림이라도 볼 거다. 




















책을 살 때마다 잊지 않고 넣는 시리즈는 여성학 분야와 추리소설 분야다.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의 책소개는 이렇다. "여성을 돌봄과 양보의 최전선으로 몰아가는 성차별주의의 오류를 짚어내며 ‘충분히 평등해졌다’는 착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 뉴욕에서 20년간 성인과 부부를 대상으로 상담해온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약한 저자는 약 100여 명의 부모를 인터뷰, 불평등한 가사 노동의 사례들과 데이터를 수집해 실상을 낱낱이 밝힌다. 또한 생물학, 신경과학, 인류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통해 모성신화, 남녀의 뇌 차이, 호르몬 변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등 고정관념과 과학이 어떻게 여성의 희생과 남성의 무책임을 대물림했는지 살펴본다..."  충분히 평등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책을 읽고 싶었다. 오늘도 어느 지위 높은 남성분과 대화를 했는데,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이 없으리라 보는 사람인데도 역시 내가 느끼는 것만큼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느꼈다. 많이 달라졌잖아. 이렇게 굼벵이처럼 달라지다간, 이 세상 다 끝나 지구가 폭발하는 그 날까지 여성들은 불평등한 세상에 살아야 할 거다. 아니라는 책을 읽으며 동질감을 느끼고 싶다. <무증거 범죄>는 중국의 3대 추리소설가 중 하나인 쯔진천의 대표작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데.. 역시 중국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가끔 쓰는 게 상당히 독특한 작가들이 튀어나온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하니 뭔가 내 뒤통수를 칠만한 내용이 들어간 모양이다. 그래서 숑. 


***


올해도 여전히 책을 사댔으나 아직도 못 읽은 책이 산적하다. 1월에는 책 들고 어디 파묻혀야 다 해결나겠다 싶다. 그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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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04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책 주문을 했습니다. 스누피 일력이.. 굿즈로 함께 올겁니다. 일력 예쁘면 조카 주려고요...
아직 성의 역사를 다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월급 받으면 또 지를 생각입니다.
책 지름은 끝이 없어요..

비연 2020-11-04 16:22   좋아요 1 | URL
앗. 전 탁상달력을 굿즈로 주문했는데요..ㅜ 일력도 탐나서 <육체의 고백> 주문할 때 같이 주문할까 고민중..
정말이지... 책지름은.. 끝이 없고 한도 없고.. 그래서 돈도 없고.. 뭐 그런..ㅜㅜ

수연 2020-11-04 19:14   좋아요 0 | URL
일력 예쁘면 알려주세요 락방님_ 일력 때문에 지금 장바구니에 책 하나씩 담는중~

다락방 2020-11-04 19:17   좋아요 0 | URL
네 근데 책이 토요일에 배송될거라 ㅋㅋ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

미미 2020-11-04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움베르토 에코 너무 사랑해요! 논문 잘 쓰는법도 눈에 보이자마자 바로 사뒀는데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보나마나 제맘에 들거란건 알지요ㅋㅋ
기호에 관한 책들은 계속 검토중ㅋㅋ 11월도 글 많이 올려주시고 즐독하세요 비연님^^*

비연 2020-11-04 16:26   좋아요 1 | URL
미미님. 움베르토 에코를 사랑하신다니.. 와락. 저 컬렉션 다 구입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쭉 진열해놓을 생각하면. .짜릿. ㅎㅎ 11월.. 일이 많긴 하지만 알라딘에는 부지런히 발걸음하기로. 미미님도 자주 뵈요~

단발머리 2020-11-04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고르기 바쁘면 비연님이 골라주신 책으로 읽으면 되겠어요. 아주 골고루, 영양만점 책선정입니다.

비연 2020-11-04 17:00   좋아요 1 | URL
과찬의 말씀임다.. 단발머리님. 전 단발머리님이 올리시는 책들을 보면서 매일 한숨만 폭폭...
이 많은 좋은 책들을 언제 다 읽는단 말이냐 + 단발머리님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흑흑.
(아직 <레베카>를 펼쳐보지도 못했지 뭡니까요..;;)

수연 2020-11-0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베카는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앗 그러고보니 아직 안 샀다;;;; 먼저 사야지. 제가 진짜루 11월에는 책 딱 한 권만 사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어흐흐흐흐흑_

비연 2020-11-04 20: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11월의 책 한권, 레베카. 흠? 멋지다.

라로 2020-11-05 0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막 웃으면서 들어왔어요. 어째 제목은 11월까지 책 안 사고 기다렸다는 뉘앙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비연 님 책 늘 사시잖아요!! ㅋ 어머니께서 [장미의 이름]을 읽으시고 주셨다니,,, 어떤 어머니이실까 궁금하네요. ^^

비연 2020-11-05 12:50   좋아요 0 | URL
흠흠..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가 책을 늘 사긴 하지만.. 11월이 되니 또 사야겠다 뭐 그런.. 흠흠.
저희 엄마는, 제게 책이라는 세상을 알려주신 다정한 분. ^^ 도스토예프스키와 까뮈를 사랑하는, 지금도 매일 책을 열심히 읽고 계시는.. 어릴 적엔 엄마가 소개해준 책 위주로 읽어서, 저도 비슷한 작가들을 좋아하구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어릴 적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나무가 하나 있다. 모질고 긴 겨울 내내 도전적인 초록색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던 푸른 빛이 도는 은청가문비였다. (p46)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나무가 있다. 아니, 식물인가. 어딘가에 딱 고정되어 나의 어릴 적 추억을 함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그 품종이 내게 와닿는 식물. 코스모스.

 

왠 코스모스? '코스모스 한들한들~' 노래 부르던 김상희씨가 생각난다.. 고 한다면 그건 연식 드러나는 얘기고 내게 이 코스모스라는 식물은 외로움을 달래주던 존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이란 걸 한 내가,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녔지만 속으로는 외롭고 외로와서, 학교 가는 길 길을 따라 쭈욱 피어있던 코스모스 분홍빛 꽃에 위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예전 학교와 달리 전학온 학교의 아이들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더 깔끔하고 더 잘 살고 더 좋은 부모 밑에서 성장한 것 같은 아이들인데 참 못된 애들이 있었다. 동끼리 나눠서 서로 욕을 하고 (정치꾼들처럼 이 동에서 반장이 나오면 저 동에서 다음 반장이 나와야 한다 이런 걸로 싸우더라는) 친구 쟁탈전을 벌이고... 그 동네에 원주민이라 불리던 아이들을 괴롭혔다. 원주민이라니. 내 귀를 의심했었는데.. 그러니까 그 동네가 개발되기 전에 원래 살던 사람들이 거의다 이사를 갔음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 반에도 여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 장의사 집 딸이었고, 집에서 잘 돌봐주지 않는지 항상 지저분한 행색으로 학교에 나왔고 공부도 잘 하지 못했었다. 그 아이를 어찌나 사악하게 따돌리고 괴롭히는지.. 순진했던 나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한 학기 정도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지냈다. 그 전 학교에서는 난다 긴다 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 아이는 결국 못 버티고 전학을 갔고.. 난 학교 아이들한테 정을 못 붙인 채 겉도는 한 학기를 보냈었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가 정말 싫었는데, 그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참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즘도 코스모스를 보면, 그 때 생각이 아주 선명하게 난다. 그 때의 괴로움, 무서움, 불안함... 그리고 위안이.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p52)

 

좋은 글이다. 그냥 말했으면 그저 그런 잠언에 불과했겠지만, 이 작가의 말은 식물을 바라보며 과학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성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어서 마음에 와 닿는다. 소란스럽고 야단스러운 걸 싫어해서인지, 작가의 글이 좋다. 과학자로서, 여성 과학자로서의 고충을 그려낸 부분도 좋다. 아니 사실 아리다. 어디나 참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게 어떨 땐 위로이고 어떨 땐 고통이다. 세상에서 진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어딘가는 훨씬 나은 상태여야 하지 않는가. 여성으로 태어나서 느끼는 건 왜 비슷할 수 밖에 없는 건가. 라는 약간의 좌절감도 스민다. 관련해서 사둔 몇 권의 책이 나를 째리고 있다. 읽을 책이 많구나. 할 일도 많고.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이럴 때가 좋은 거겠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일이 대충 끝난 후, 연말 연초에는 일이 주 독서만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어디로 가든, 집에 쳐박히든. 사람들의 말이, 글이, 영상이 주는 재미가, 다 나의 시간을 그냥 잡아먹는 건 아닌가 두려울 때가 있다. 잠시 내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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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03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랩 걸 참 좋지요? 저는 특히나 같이 연구하는 이성 동료와의 관계가 인상적이더라고요. 그 부분에 되게 집중해서 보았던 기억이 나요.

라로 2020-11-03 12:26   좋아요 1 | URL
저두요!!

비연 2020-11-03 14:23   좋아요 0 | URL
반 쯤 읽었는데, 재미있네요. 독특하고. 이성 동료와의 얘기는.. 부럽다 부럽다 하면서 보고 있어요.
인생의 소울메이트랄까. 성적인 끌림 없이 그렇게 일에 파묻혀 서로를 보완하고 지지하는 관계. 멋져요~
 

 

... 라는 마음으로 어제 몇 권 주문. 못 읽는다는 죄책감(?)은 뒤로 하고 그냥 사고 싶으니까 사는 걸로.

 

 

 

 

 

 

 

 

 

 

 

 

 

 

 

 

프랑스 콩쿠르상 수상작을 좋아한다. 사실 상을 타서 그 책을 사서 읽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대체로 콩쿠르상 수상작들이 내게 잘 맞아왔다. 그래서 이 책을 알라딘 서재에서 발견하고 바로 보관함에 퐁당. 이번에 샀다는 것.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는 이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 괜히 뭔가 결핍이 있어 보이는 느낌으로 어필이 되고 있고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만 부각되는 작가이지만, 사실 그녀의 글들을 보면, 놀랍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런 글을 쓰다니.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 갔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한 권씩 두 권씩 사모으고 있다... 읽기도 읽자.. 비연..ㅎㅎ;;;

 

 

 

 

 

 

 

 

 

 

 

 

 

 

 

 

 

 

페미니즘 관련 책 두 권도 퐁당. <여자는 인질이다> 이 책이야 워낙 유명하니.. 이게 아직 나한테 없었단 말이야? 뭐 이런 심정으로 산 거고, <성의 변증법>은 <페미니즘-교차하는 관점들>에 나온 파이어스톤의 관점이 궁금하여 샀다. 뭐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 사모으고 있는데... 언젠간 읽을, 아니 읽어야 할 책들이다.

 

 

 

 

 

 

 

 

 

 

 

 

 

 

 

 

 

 

요즘 나의 관심사 중 하나는 늙고, 병들어가는 사람과 그 돌봄에 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서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 경험이 조금씩 내 것이 되어 가는 중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제목이 마음에 든다. 새벽 세 시의 몸이라.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읽을까말까 망설이다가 일단 사기는 했는데 괜찮을까 싶다. 책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일 거라서가 아니라, 너무 쓸쓸해질까봐 두렵다는 게 더 옳은 말인 듯 싶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의 에세이는 잘 읽지 않는 편이라, 너무 감정과잉이고 너무 설교적이고 너무 미사여구가 많고... 이런 책들이 많아서 가급적 읽지 않는 편인데..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나니 하는 일에서 얻는 인생에 대한 관점을 담담히 써내려간 책들은 읽을 만 하구나 해서 골라봤다.

 

 

 

 

 

 

 

 

 

 

 

 

 

 

 

 

 

시리즈물로 내가 무조건 구매하는 책 중의 하나가 루이즈 페니의 책이다. 추리소설류이지만,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류의 소설들이라 나오면 바로 구매. 새 책이 나오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나온 것이다. 8월에 나왔는데 이제야 발견한 게 억울할 뿐이다. 필립 로스의 야구책 <위대한 미국 소설>은 필립 로스가 썼는데, 내용이 야구래? 바로 퐁당이지. 뭐 이런 감정의 흐름이 있어 구매한 것이다. 필립 로스에 대한 내 심정은 좀 복잡하긴 하지만, 좋다고 하기에는 딱 내 스타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나쁘다고 하기에는 글솜씨나 내용이 탁월하고.. 그러나 이 멋지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작가가 야구 이야기를 소설로 냈다는데 안 살 수가 없다. 어떻게 썼을 지 벌써부터 기대 만빵이다.

 

 

***

 

살 때는 많이 사는 것 같은데, 사고 나면 흠... 그렇게 많지도 않아. 뭐 이런 느낌이 든다. 내 원칙이 한달에 두번까지만 산다, 한번에 10권 이상 사지 않는다 라서 애써 마음을 누르고 보관함에 담겨둔 책들을 신중히 면밀히 검토 후 고르는 것이긴 하지만... 일단 구매하고 나면 흑. 괜한 아쉬움이 있다.

 

월요일이다. 이번 주도 일로 달려야 해서 독서가 많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알차게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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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0-19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나이가 나이인지라 늙고 병들어가는 몸에 대해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같은 이유로 지난 주에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주문했거든요. 저도 가지고 있게 되었지요.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사기는 자꾸 사는 것입니다, 네....

비연 2020-10-19 11:34   좋아요 0 | URL
아 주문하셨군요. 언젠간 읽겠죠.. 책장에 꽂혀 있으니. 언젠간....

다섯 2020-10-19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넣지 않을 수 없군요.ㅋ 책장에 꽂혀 있으면 읽듯이 장바구니에 넣어두면 사게 되더라구요. 좋은 책 소개 해주셔서 감사해요

비연 2020-10-19 15:05   좋아요 0 | URL
다섯님. 정말 읽고 싶고 사고 싶은 책들은 왜 이리 많은지요.. 쩝쩝.
책 소개 받으셨다니 너무 기쁘구요. 같이 읽어요!^^

레삭매냐 2020-10-19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 폴 뒤부아의 책은 작년에 공쿠르 상을
받았다고 해서, 두어권 중고서점에 사다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이번 책은 갑질하는 입주자대표와 건물
관리인의 이야기라는 글을 신문 기사에
서 보고, 아 프랑스/캐나다도 우리의 삶
과 다를 게 없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어
읽고 싶어졌습니다.

필립 로스의 신간은 야구팬이라 머스트...
그나저나 미국을 노린 음모는 도대체
언제나 출간이 되는 건지.

비연 2020-10-19 15:07   좋아요 0 | URL
내용은 안 보고 무조건 샀는데 ㅎㅎㅎ 갑질 얘기군요. 잘 샀다는 생각이...
야구팬이시라니, 어디를 응원하시는지 급궁금.. 전 두산.. 요즘 추락세인 ㅜ
그러나 야구팬이라면 이 책을 외면할 순 없을 것 같아요.
필립 로스의 책은 번역이 많이 되어나온 것 같은데도 안 나온 게 많은 듯.
나와라 나와라~

수연 2020-10-19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울프 언니닷!!!!!!! 외치고난 후 그러고보니 저도 별로 읽지 않았어요 울프 언니;;;; 이런 생각 드니 가슴이 두근두근

비연 2020-10-19 18:28   좋아요 0 | URL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은 끊이질 않는 것이죠..(먼산)
버지니아 울프의 글들은 한번 몰아서 찬찬히 보고 싶다.. 생각만...(흠냐)

2020-10-20 1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0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10-21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벽세시의 몸들에게 읽고 싶어서 킵 해뒀는 데! 갖춰놓은 모습 보니 따라 읽고 싶은 마음! 그치만 언제나 처럼 ㅋㅋㅋ 안읽을 걸 알아서 오늘은 참는다 (꾸욱-)

비연 2020-10-21 19:22   좋아요 1 | URL
쟝쟝님. 참지 말고 사세요 ㅎㅎㅎㅎ
언젠간 읽지 않을까.. 조심스레.. 이미 받은 자로서... 얘기해봅니다... (흠냐)
 

 

 

 

 

 

 

 

 

 

 

 

 

 

형님, 책이 나오면 제가 나서서 널리 읽히도록 하고 싶네요.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절대 보여 주지 마세요." (p258)

 

100세 시대라고 한다. 60대는 이제 노년이 아니잖아, 청춘이지, 라고 말한다. 80대에 돌아가신 분 장례식장에 가면 사람들은 그런다. 너무 일찍 가셨어. 그렇지만 그건 그냥 하는 소리일 뿐. '사회적으로는' 60세가 넘어가면 그냥 노인이다. 국민연금도 65세는 되어야 나오고, 대중교통 수단 무료 이용권도 70세로 높여야 한다고, 고령인구 많은데 60대가 무슨 노인이냐며 이야기하지만, 60대의 사람들을 일할 사람으로 보진 않는다. 아니 일할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아무도 안 하려는 일, 막 부려도 되는 일, 허드렛일 등에 넣어도 될 만한 연령대의 '노인'으로 본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삶에 대해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삶에는 비상구가 있기 마련이고, 살고자 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날들을 근심하지 않았고 노후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직하자마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달아 돌출했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던 삶의 비상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p15)

 

38년간 공기업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조정진님에게 편하게 노후를 누릴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없어졌을 때, 세상은 냉혹한 현실로 다가온다. 은행에서는 대출을 갚으라고 닥달을 하고, 아들은 비싼 학비가 드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가진 경력으로 취직을 다시 해보려 하지만 '나이 잡수신 노인을 어떻게 부려 먹습니까.(p16)' 라는 얘기에 머물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임계장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長)을 줄인 말. 그들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사지 육신 멀쩡하게 몸으로 버틸 수 있는 체력만을 요구한다. 그 전에 있었던 경력도, 지식도, 다 필요없고 그냥 '사람' 하나 때우는 일에 넣었다가 몸 상해 버티기 힘들어지면 그냥 바로 갈아끼우는 부품 취급을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대우는 좋아지지 않고 돌아오는 건 싫은 소리와, 자르겠다는 소리와, 책임지라는 소리 뿐이다. 직장이라고 나갔는데 어디 편하게 머물 곳도 없고, 제공하는 장소는 벌레가 나오고 비좁고 추운 곳이다. 최저임금이 도입되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정상화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 수를 줄이고 총액을 맞추는 구조로 운영된다. 남은 사람은 남아서 고맙다 열심히 일하지만, 한 사람이 서너 명, 어떨 땐 예닐곱 명의 일을 해야 한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된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p39)

 

나는 아니야. 난 나이 들어도 저렇지 않을 거야. 라고 대책없는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같은 사람에게 (사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아직 당해보지 않은 일이니) 이 대목은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아 자욱을 남긴다. 드라마나 영화나, 잡지나, 어디에서든 나이들어 전원생활을 하고, 나이들어 취미생활을 하고, 나이들어 못해본 것들을 이루어내는 사람들 이야기 투성이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훨씬 많은 사람들은 70세가 넘어서까지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이 내 것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혹여 운이 좋아 내 것이 되지 않더라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누군들, 삶의 예측할 수 없는 길을 비껴갈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의지만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어? 나도 이 바닥에서 밥벌이하면서 위에서 시키는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해냈다고! 밥벌이가 그렇게 쉬워?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 돼. 늙은 영감탱이를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지금 어디서 불평이야?" (p42)

 

"너 이 자식, 대대손손 아파트 경비나 해처먹어라." (p78)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네가 버린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p98)

 

"뭐야, 이 새끼, 신고를 하든 조치를 하든, 지금 바로 해! 당장 살 수가 없는데 내일이 뭐야, 내일이. 당신 그런 일 하라고 월급 주는 거 몰라? 한번만 더 오밤중에 오토바이 소리 들려봐. 가만두지 않겠어." (p101-102)

 

"아빠, 저 경비 아저씨, 참 힘들겠네."

아빠가 대답했다.

"응, 많이 힘들 거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아저씨저럼 된다.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야 해." (p103)

 

읽으면서, 슬프다 씁쓸하다 이런 게 아니라 고통이 찾아왔다.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비정규직 노동자들, 나이든 노동자들, 시급 받으며 온갖 일 다하는 사람들이라고 함부로 보고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들 성질머리를 있는 대로 퍼붓는 이런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한테도 비수인데 직접 듣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다가갈까.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 된 거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p122)

 

이불을 꺼내려고 이불장을 열자 벌레들이 무더기로 흩어졌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숙소는 무엇보다 청결해야 한다. 자주 세탁하고 해충을 없애지 않으면 여러 잡균에 감염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숙소의 침구에는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전임자들의 20년 묵은 체액과 체취가 배여 있었다. 이 냄새에 적응해야 경비원 생활을 할 수 있다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터미널 고속에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숙소에서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파트 경비원을 하며서 악취 나는 쓰레기를 매일 주무르고 음식물 잔반통을 씻으며 살았기 때문에 왠만한 냄새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경비원 숙소의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잘 수는 없었다. 1980년대 군대 내무반보다 더 못한 취침 환경이다. 자는 곳이라기보다는 심야 근무를 교대하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곳에 가까웠다... (중략) ... "당신들이 쓰는 침구를 왜 회사가 세탁해 줘야 합니까. 그런 건 당신들이 빨든지 새로 사든지 알아서 해요." (p213-215)

 

아는 분이 그런 말을 하셨었다. "사람 하나하나는 하나의 우주다. 한 명이 고통받는다면 그것은 하나의 우주가 침해받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아래,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주여야 할 사람을 뭉개고 멸시하고 하찮게 대하는 곳들이 있다. 힘이 없으니, 돈이 급하니, 일을 해야 하니, 참아나가는 그들의 마음 속 우주는 정말 시커멓겠다.. 싶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 자리에 그 사람이 필요해서 앉혔으면 그 직종 자체를, 그 사람 자체를 적어도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고 대해야 하고 최적은 아니라도 기본적인 살만한 환경은 제공하면서 일을 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역지사지라고. 말하는 너같으면 그런 데서 일하겠는가,  사람 대접 못받는 직장에서 일하겠는가.. 묻고 싶어졌더랬다.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 어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보고자 써낸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감사의 글 中)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을 억눌러 와서인지, 쌓인 고통이 터져나와서인지, 이 책 제일 마지막 이 대목을 보고 새벽녘에 혼자 펑펑 울어 버렸다. 글쓴 이의 심정이 이 짧은 글에 집약되어 나타난 듯 하여. 내가 괜히 미안하고 감사해서 더 눈물이 쏟아졌다. 학술적인 글, 비정규직이 어떻다 고령인구가 어떻다 어쩌구저쩌구 공부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론들 다 갖다붙여서 써내는 글들의 공허함을 확 걷어내고, 정말 그 속에서, 사실은 지난 세월 동안은 그 속과 전혀 무관하게 살았으나 이제는 그 속의 일부가 되어서 담담히 써내려간 이런 글이 훨씬 더 명징하게 현실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더더욱 이 글을 쓴 이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여전히 어딘가에서 임계장을 하고 계시겠지만, 이 글이 널리 널리 퍼져서,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글들을 내주셔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제도가 변하는 데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뿐이다.

 

 

*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살아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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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0-18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임씨 성을 가진 ‘계장‘ 직급을 뜻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수명은 길어졌는데, 정년퇴직 나이는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지금 막 노인이 된(또는 될) 세대가 위로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자식도 키웠는데, 노후도 스스로 해결해야 해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비연 2020-10-18 23:55   좋아요 1 | URL
저도 처음엔 몰랐었어요. 사실 알기 힘든 게 사실이기도 하고.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나이에 맞게, 경력에 맞게 일할 자리들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수명도 길어졌는데 연륜과 더불어 쌓인 것들이 사장되는 것도 아깝고.. 무엇보다 노후문제도 있고 하니.
 

 

 

 

 

 

 

 

 

 

 

 

 

 

 

북유럽 스릴러. 하지만 이 책은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보는 차별적인 시선'에 대해서일지도. 그래서 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졌을 때 (사실 뭔가 좀 급하게 서둘러 많은 것이 해결된 느낌도 있었지만) 씁쓸함이 더 강하게 남는 것 같다.

 

오름베리라는 곳이 있다. 낙후된 곳. 그 옛날엔 제철소가 있었고 제분소가 있었고 사람들에겐 직업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 이전하고 남은 것은 변화라고는 없는 매일의 일상과 그 곳에서 먼지처럼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난민수용소만이 있을 뿐이다. 산업이 나가고 들어온 것은 난민수용소. 보스니아나 아랍의 이주민들이 갈 곳 없이 떠돌아다니게 하지 않으려고 정부에서 이 곳에 그들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지원을 하고 있다. 이제는 쇠퇴해가는 이 곳에서, 대놓고 뭐라 하진 않으나 그 난민들에 대한 두려움, 증오, 역차별당한다는 실의.. 이런 것들이 동네의 저변에 무겁게 깔려 있다.

 

여기서 성장한 경찰관 말린. 그녀는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고 이제 스톡홀름의 변호사와 결혼을 해서 완전 탈출을 할 수 있는 기회 직전에 이 곳에 다시 돌아온다. 지긋지긋한 곳. 하지만 일상적인 경찰 업무에서 벗어나 좀더 스릴 있는 살인사건을 다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돌아온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에 크나큰 전환점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고.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동네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그 동네가 그녀에게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점점 느끼게 된다. 그녀에겐 엄마가 있고 고모 마르가레타와 사촌 망구스가 있다. 오름베리의 터줏대감들. 외로운 사람들.

 

엄마 집에서 지내기로 한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다 큰 어른은 부모와 함께 살아서는 안 되는 법이다. 마르가레타와 망누스가 어떻게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망누스는 25년 전에 그 집에서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마르가레타에게는 달리 아무도 없고, 망누스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은 분명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접착제다. (p310~311)

 

마지막 대목에서 멈칫, 한다. '외로움'은 사랑보다 훨씬 강력한 접착제라니.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어우러져 사는 건, 사랑해서, 증오해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외로와서인지도.

 

열다섯살의 제이크. 엄마가 몇 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시고 알콜중독 증상을 보이는 아빠와 누나와 함께 산다. 이 아이, 여자처럼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다. 자기는 그래서 '돌연변이'라고 생각한다. 병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싫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들한테서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남자들만이 그놈들이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걸까? 그렇다는 건 나 역시 어른이 되면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는 인간이 된다는 뜻일까? 여자애들이 조심해야 하는 종류의 인간? 내가 자라면 통제력을 잃게 되나? 그게 남자가 된다는 뜻일까?

그런 거라면, 난 남자가 되고 싶지 않다. (p185)

 

 

가부장적인 남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 있구나, 이 아이. 남자가 그런 거라면 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생각할 줄 아는 아이. 이런 아이가 드레스를 입고 한껏 치장한 채 나갔다가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던 프로파일러 한네를 만나면서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치매를 앓아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던 한네가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써내려간 일기장을 주워 와서 그것을 읽어내려가면서, 한네를 친구로 생각하면서, 세상에 대해 부딪힐 용기를 가지게 된다. 여자 같다고, 호모 같다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친구에게 분연히 대적할 줄 아는 아이로 변하게 된다.

 

사라진 한네의 애인이자 경찰인 페테르를 찾아나가면서, 8년 전 발견된 여자아이의 유골과 이제야 발견된 어느 여자의 유골을 따라 그들을 살해한 사람을 찾아나가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타인에 대한 편견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그 고정된 사고방식이 어떤 것인가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난다. 난민들에  대한 편견, 여성적인 취향을 가진 남자아이에 대한 편견, 나이든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편견, 남자와 여자에 대한 편견. 그러나 누구나, 그 대상이, 그 편견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당신이었을 수도 있었어요. 전쟁과 기아에서 도망쳐야 했던 게 당신일 수도 있어요.." 라는 말을 빌어 여실히 전달하고 있는 소설이다.

 

나는 스스로, 편견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부딪히는 많은 일들 속에서 온전히 중립적일 수 있는지, 나의 상황에 비추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고 있는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고의 흐름에 편하게 손쉽게 나를 얹어 그냥 그렇게 따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었다. 제대로 산다는 건, 이렇게 어렵다. 아이는 그저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어른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여러 가지 잔머리를 굴리며 시선을 고정하며 사는지, 가끔씩 흠칫 흠칫 놀라는데, 그 속에 제발 내가 없기를, 항상 바랄 뿐이다... 소설이 좋은 건 이런 거겠지. 어려운 얘길 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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