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리즈이긴 하다. 엄청 두꺼운 책이 술술 읽히고 마지막에 가서는 아하. 하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해리 홀레라는 형사가 주는 흡인력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11부작까지 나왔고... 지금 번역은 9권이 되어 있다. 비채에서 전권을 번역하고 있고.

 

아 근데 이제 너무 괴롭다. 해리 홀레는 이제 거의 만신창이이다. 30대의 전도유망했던 형사는 저리 가고 거의 괴물급의 불사신으로 등극하였다. 얼굴에 긴 흉터 하나 박히는 건 아무 것도 아니고 손가락 잘려서 금속으로 채우고 여기저기 쑤시고 잘리고 뚫리고. 이 책 <팬텀>에서도, 예리한 칼날로 턱 부분에 자상을 입었는데, 병원에도 못 가고 직접 실로 꿰매고 (으악) 그것도 나중에는 떨어져서 덜렁거리니까 다시 한번... 붙으라고 테이프를 붙여두고... 아. 해리 홀레는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다. 그나마 머리는 안 다치니 시리즈가 연명은 할 수 있는 거겠지. 물에 빠지고 말에서 떨어지고 여기저기 채이고 찔리고 문에 끼이고... 읽고 있으면 정말 괴로와서 미칠 지경이다.

 

그 배경은 또 어떠한가. 노르웨이 오슬로라는 동네는 마약 천지라서 대부분이 마약 먹고 뿅.. 간 상태로 지내는 듯 하다. 경찰들도 다 배신자들 뿐이고 이넘 저넘 불륜이고... 으악. 막 불편해진다.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뭐랄까. 이제 좀 그만해줘. 해리를 놓아줘. 그냥 편하게 살게 해줘... 이런 생각만 든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결국 해리가... 끝?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데, 이 이후에도 책을 쓴 거 보면 죽지는 않았나 보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니라서 해리 홀레 그만 좀 괴롭히라고 하니까 요 네스뵈가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니.. 라는 투로 대답을 했다는데..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닙니다요. 대부분은 나이가 들면서 좀더 안정되고 좀더 느릿해지고 그러지요. 이제 중년도 훌쩍 넘긴 아저씨를 이렇게 시달리게 해서야 불쌍해서 우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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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판다는 건 단지 50그램의 종이와 잉크와 풀을 파는 게 아니에요. 새로운 인생을 파는 거란 말이에요. 책에는 사랑과 우정과 유머가 들어 있고,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들어 있고, 온 하늘과 땅이 들어 있어요. 진짜 책에는 말이죠! 만약 내가 빵장수라거나 정육업자라거나 빗자루 행상꾼이라면, 사람들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우르르 달려들겠죠. 내가 파는 그 물건을 기다렸을 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가지고 가는 건 그런 게 아니죠. 나는 영원한 구원을 들고 가는 겁니다. 그래요, 맥길 양. 그들의 작고 왜소한 마음에 대한 구원이라고요. 그건 사람들 눈에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러나 그래서 더 가치가 있는 겁니다. 나는 나사렛, 메인에서부터 월러월러, 워싱턴에 이르기까지의 그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어요. 이건 새로운 일이면서, 휘트먼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이 시골에 필요한 건 바로 더 많은 책을 공급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입니다!" 

 

- <파르나소스 이동서점> 중 p46-47

 

 

 

책에 대한 사랑과 열망으로 가득찬 로저 미플린과 새로운 인생에의 눈을 뜨게 되어,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길을 걷게 된 헬렌 멕길의 이 이야기 <파르나소스 이동서점 (Parnassus on Wheels)>은, 나로 하여금 책 뿐 아니라 인생에 까지도 묘한 활기를 가지게 하는, 괜히 기운이 부쩍 부쩍 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아울러,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의 글을 읽고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른 크리스토퍼 몰리의 또 다른 작품이자 이 둘이 다시 등장하는 <유령서점>을 사서 (또!..) 봐야겠다. 그냥 살 때 한꺼번에 살 것을, 솔직히 같은 저자의 책인 줄 몰랐다는...휘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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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29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은 뭐죠! 저도 다음번 지름에 넣어야겠어요. 불끈!

비연 2018-01-29 08:27   좋아요 0 | URL
으흐흐. 다락방님. 제가 락방님께 유혹의 글을..ㅋㅋㅋㅋㅋㅋ
이거 술렁술렁 잘 넘어가면서 재미있어요. 호호. 전 다음에 <유령서점>을...^^;;;;

레삭매냐 2018-01-29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재밌었어요,
비연님도 읽으셨군요 !!!

비연 2018-01-29 11:42   좋아요 0 | URL
넵넵... 읽었는데 재밌어서 술술... 레삭매냐님이랑 동시다발적으로 읽다니 므흣~^^
 

 

어제 엄마와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하나 사오면서 오는 길에 슬쩍 말했다.

 

엄마. 나 또 책 샀다.

또? 있는 책은 어쩌구?

아 그게 중고로 내놓으려고 하는데.. 불라불라$&*(#!$#%#$^$^$&

.... 좀 내놓는 게 좋겠네. 빠른 시일 내에. 책장에 자리도 없쟎니.

 

어머니. 한 달만에 사는 건데요..ㅜㅜ 많이 참았답니다. 결국 질러버렸죠. 곧 책장 비울 정도로 알라딘에 내놓을 게요 ㅜㅜㅜ

 

그래서, 뭔 책을 샀느냐 하면...

 

****

 

 

이 두 책은 산다고 이미 말했던 바. 요 네스외봐 찬호스께이인데 안 사고 버티기 쉽지 않다 라고 이미... 그래서 제일 먼저 구매목록에 올린.. 그리고 너무나 기대가 된다는... 해리 홀레 시리즈는, 사실 재미는 있는데 너무 잔인해서 (해도해도 너무 잔인하다 싶을 때도 없지 않다...) 밥먹을 때는 보지 말아야지 하고 있다. 찬호께이의 쫀득쫀득한 글은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냐하하. 기대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은 괜챦다 싶으면 꼭 사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번역본도 중요하지만, 우리말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란 것은 매우 소중한 것이고, 그래야 괜챦은 필진들이 그 세를 더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가리지는 않는데, 사실 자기의 전문 분야에 대해 쓴 책을 좋아한다.

 

<말이 칼이 될 때>는 혐오에 대한 글이고, 요즘 여러가지로 관심이 많아진 페미니즘도 이 테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리베카 솔닛의 책을 읽은 이후에 이 책을 보고 아하. 사야 한다. 라고 생각했었다. 문유석 판사의 글솜씨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내었다. 에세이에 가까운 책일 것이라 생각은 되지만, 간단히 소개된 글을 보니, 나의 어떤 부분이랑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사야지 하고 따끈따끈하게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책이다.

 

 

 

지금 읽고 있는 마이클 마멋의 <건강 격차>에서 언급된 아마티아 센이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터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의 공저가 나와서 냉큼 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 그리고 프랑스 경제문제연구소 소장 장 폴 피투시 등 세계적 석학들이 모여 작성한 ‘행복 GDP’를 측정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보고서.

우리는 수년 동안 높은 GDP 성장률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국식 모델을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가계나 경제 전체가 안고 있는 부채의 급속한 증가도 따라가게 되었다. 위기 직전에 GDP를 기준으로 나타난 높은 성과는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지속가능성은 곧 미래를 뜻한다. 이제 경제적 지속성과 환경적 지속성 개념을 포괄하는 개량 방식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 알라딘 책소개 中

리베카 솔닛의 이 책 <걷기의 인문학>은... 왜 아직 이 책을 안 샀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늘 머릿속에 넣어두었던 책이다. 리베카 솔짓이라는 작가는, 최근에 발견한 내가 좋아하는 문체의 작가라 그의 책은 가급적 다 볼 생각이다. 알랭 드 보통에게 가졌던 느낌이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러고보니 알랭 드 보통 책 읽은 지가 꽤 되었네? 흠...

 

 

 

 

 

 

 

소설을 빼놓을 수가 없지. 마거릿 애트우드의 책은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1843년 7월, 토론토 근처 시골 마을에서 하인과 하녀가 공모해 집주인과 그의 정부였던 가정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다. 잔혹성으로 유명해진 이 사건은 범인 중 한 명이 16세 소녀라는 점이 밝혀지며 더욱 더 논란이 커졌다. 이 소녀가 바로 캐나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여성 범죄자이자 이 책의 주인공, 그레이스 마크스다.  - 알라딘 책소개 中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ㅎㅎㅎ 살인이야기가 좋다는 게 아니라..ㅜ 실제 일어난 범죄에서 그 살인자의 심리적 배경을 캐는 이야기. 좋다. 실제로 어떤 내용일 지는 읽어봐야 알겠지만.

 

샤토 소고의 <달의 영휴>는 줄곧 읽고 싶었었다. 뭐 한번 얘기했던 것 같고. 내용은 대충 아는데, 결말이 뭔지 무지하게 궁금해서 말이다. 일본 사람 소설 읽은 지도 꽤 되었는데 이거부터 볼까나.

 

 

 

사사키 아타루의 이 책. 일본철학으로 분류되는 이 책.

 

2011년 3월 11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일본 각지에서 ‘지식인의 발언’ 요청이 쇄도한 가운데 자칫 대참사를 ‘이용’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극도로 발언을 자제해온 사사키 아타루. 그는 2010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수상 기념 강연을 기회로 작심하고 지진과 원전, 핵병기, 민주제 등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며 열정적으로 논의를 이어나간다. 그 대표작이 바로 「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이다. - 알라딘 책소개 中

 

이 사고/재해에 대한 이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다. 일본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고 있는 이 사람은 이것들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사실, 흥미롭다.

 

정민 교수의 책은 오랜만에 사는 것 같다. 2000년 냈던 책의 개정판이다. 제목은 같고. 전각과 글귀과 평설이라...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고른 책이다. 사실 세미나를 참여할까 하고 사는 책이기도 하다. 내용이 참신할까? 라는 것에는 자신없지만, 남들보다 어쩌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선택한 또 다른 길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나를 벼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모른다. 요즘처럼 조금은 나태하고 조금은 포기하고 조금은 어지러운 세월 속에서는 말이다.

 

 

 

 

 

 

 

 

 

 

 

 

****

 

 

11권이다. 살 때는 엄청나게 많이 고른 것 같지만, 막상 늘어놓아보면 그렇게 많지도 않은 권수다. 그게 늘 주문하고나서의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그냥 더 살걸? 뭐 이런 ㅎㅎㅎ 암튼 이왕 저지른 거, 이제 월 2회에서 월 1회만 책을 사기로 하고, 가급적 보고 두번 읽을 책 아니면 바로 내놓는 걸로 목표를 수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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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1-18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걷기의 인문학]은 사야겠다고 계속 벼르는 책이에요.
그러면...머그컵 두 개 받으셨어요? (초롱초롱)

비연 2018-01-18 21:25   좋아요 0 | URL
머그컵은 1개만.. 빨간머리앤 ㅎ
집에 컵이 많아서 ... ㅋㅋㅋ

레삭매냐 2018-01-18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11권...

전 월요일날 산 설터 씨의 <아메리칸 급행열차>
가 오늘 도착했네요.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꼬여 버린 저의 독서.

비연 2018-01-19 08:31   좋아요 0 | URL
저도 설터씨 책 살까말까 하다가 담으로... 했는데...
급후회되네요 레삭매냐님 댓글 보니 ㅎㅎㅎ 아 이 책욕심 ㅠ

cyrus 2018-01-19 0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책을 주문하면 택배상자를 알라딘 서점에 맡겨 놓는 픽업 서비스를 선택해요. 어머니 눈치 받지 않고 택배상자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택배상자 받으러 서점에 갔는데 왜 구입한 책이 더 늘어났을까요? 책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ㅎㅎㅎ

비연 2018-01-19 09:14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방법이 있군요! 근데 넘 무거워서 가져올 수 있으려나... 근처에 서점이 하나 생기긴 했는데! ㅎ
근데 가서 책을 더 사는... 그런 일이... 왠지 제게도 일어날 것 같은 ... 확신이 .. 두려움이.. 드네요. cyrus님ㅜ
책욕심, 이거 어쩌죠. 뭔가 돈 지출할 때 일정 이상 되면 브레이크를 걸게 하는 테크놀로지가 필요해요 ㅎ

비공개 2018-01-19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과 비슷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제가 작년에 사고 안읽고 책장을 차지하게 내버려두고 있는 책들도 섞여 있네요^^ 굴뚝속의사와 말이칼이될때는 저도 의무감에 골랐어요. 찬호께이도 13.67 이후 항상 염두에 두는 작가!! 저도 슬슬 주문에 들어가야 하나 망설여집니다 ㅎㅎ

비연 2018-01-19 10:47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jsshin 님과 비슷하다니! 우히힝~ 우리 비슷한 거 좋아하는데 그냥 저처럼 확! 질러버리세요~ㅋ

transient-guest 2018-01-20 0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회사로 책을 받기 때문에 일단 첫 관문은 쉽게 넘습니다. 물론 집에 가져가는 것이 좀 어렵다는 단점이...-_-:: 그래도 형편이 된다면 책은 생각날 때 바로 사야 후회가 없습니다.ㅎㅎ 미루다가 구매하려던 책이 절판이나 품절로 들어간 걸 보면 어찌나 속상하던지요..ㅎ

비연 2018-01-20 13:41   좋아요 0 | URL
저 책을 다 들고 집에 갈 일이 까마득하네요 ㅠㅜ 생각날 때 책을 사야한다는 데 백퍼동감요 ㅎㅎ 아 이렇게 해서 올해 저의 ‘절책’ 혹은 ‘금책’ 결심도 작심삼’주’가 되어버렸네요 ㅎㅎ;;;;
 

 

 

 

 

 

 

 

 

 

 

 

 

 

 

 

 

해미시 맥베스 시리즈의 10권을 방금 다 읽었다. 이 시리즈는 별 얘기 아닌데도 참 재미있다. 해미시와 프리실라와의 티격태격도 재미있고 게으른 해미시가 인간 본성에 대한 직관을 가지고 살인사건을 좇는 과정들도 즐겁다. 그러니까 무서운 살인사건 이야기인데도 유쾌하다는 생각? 이 든다. 이제 1/3 정도 번역을 한 상태라 아직도 많은 책들이 남았다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을 준다.

 

이번 책은, 인간 내면에 깊게 내리깔린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래 작고 사람 왕래가 적은 시골마을이 훨씬 섬뜩하고 무서운 법이라. 외지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심하고 어떤 외부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양태가 그동안 감춰왔던 사람들의 저변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서 대응하기가 심히 난해한 것이다. 해미시의 관할구역인 드림은, 지금의 로흐두마을 보다도 더 폐쇄적이고 조용하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찾기 어려운, 그래서 항상 고인 물 같은 동네이다. 이 곳에 정말 매력적이고 잘 생긴 젊은 남자가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M.C.비턴은 이런 류의 소재를 잘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젊고 멋진 남자가 주변에 살게 되면 중년의 여자들이 갑자기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제는 쇠락한 모습에 자포자기하며 살고 있는 그들에게, 그래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지만 별로 의욕도 없는 그들에게, 뭔가 큰 자극이 도래한 것이고. 머리를 염색하고 에어로빅을 배우고 .. 그렇게 그 젊은 남자의 주변을 돌면서 환심이랄까 관심이랄까를 사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 남자가 정말 순진하고 좋은 사람이라면 별 문제 없겠지만, 자신의 매력을 알고 이를 악의적으로 십분 활용하겠다고 하면 참 골치아픈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고.

 

읽다 보니 예전의 내 경험이 생각났다. 이십대 후반이었던가 삼십대 초반이었던가. 집의 오디오가 자꾸 고장이 나서 아 이 기회에 하나 사야겠어 하고는 친구와 이태원 전자상가엘 갔었다. 딱히 오디오를 살 건 아니었고, 친구가 카셋트 라디오인데 CD까지 넣을 수 있는 콤포넌트를 샀다며 그 모델부터 보자고 해서 그걸 찾아다녔다. 그리고 아 발견. 하고는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아. 거기 주인남자가... 너무 잘 생긴 거다. 난 급작스러운 그 잘생김에 너무 놀라서, 너무 가슴이 뛰어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유덕화처럼 생겼던 것 같기도 하고, 신성우처럼 생겼던 것 같기도 하고. 30대 초중반 쯤 되어 보였는데 목소리도 저음의 듣기좋은 상태였고... 설명을 해주는데 가슴이 쿵쾅거려서 자제가 안 될 정도였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그걸 사기로 결정을 했고... 나오면서 "감사합니다"를 연발. 같이 갔던 친구왈, "넌 물건을 사는데 왜 그렇게 감사합니다를 계속 말하는 거니?" 라고 할 정도였다는.. (아 화끈거려)

 

그렇게 잘생김을 구경(?)하고 온 건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그 때 내 주위에 그렇게 생긴 남자가 정말 없었던 것 같다. 이건 변명일까. 어쨌든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잘생겼다고 생각한 남자를 본 게 거의 처음이었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 근데 문제는 그 콤포넌트가 계속 고장이 났다는 거다. 이거 뭐지?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잘생긴 남자도 볼 겸, 그걸 들고 다시 이태원 전자상가로 갔다. 그 잘생긴 남자는 여전히 앉아 있었고... 내가 고장이 자꾸 난다고 하자, 눈살을 좀 찌푸리더니 두고 가라고, A/S 맡기겠다고 하는 거다. 나는 뒷걸음질로 나오면서, 아 정말 잘 생겼어... 하트뿅뿅... 그러고 왔는데... 연락이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전화를 했으나, 답이 애매하다. 그래서 참다가 다시 이태원으로 갔다. 가게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참 묘한게,... 화가 나니까 그 잘생김이 그닥 안 와닿고 짜증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거다. 갑자기, 그렇게 잘 생기지도 않았구만.. 뭐 이런 느낌? 그래서 내 콤포넌트 맡겼냐. 그랬더니... 막 머뭇거리면서 찾아보다가 어느 뒤쪽 구석에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그것'을 들고 나오면서 아직 안 맡겼는데 이제 맡기겠다.. 라고 그러는 거다.

 

이거 뭥미?

 

잘 생김이고 뭐고, 화가 불같이 나서... 여기 가져온 게 언제인데 이제까지 쳐박아뒀다가 이게 뭐하는 거냐고 막 따졌더니 그 남자 왈, "그럼 물르실래요?".... 얼굴이 요괴로 보였다. 화가 머리 끝에서 터져 나올 것처럼 나는 것을 느끼며, 소리를 버럭. "물러주세욧!".. 그랬더니 그 남자. 아주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러세요" 그러면서 그 돈을 돌려주었다. 현금으로 착착 세더니.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고. 다시는 이태원에서 전자제품을 사지 않았다는 슬픈 뒷얘기. 잘 생겨도 일처리 그렇게 하면 유덕화가 요괴로 보이기도 한다는 경험과 함께.

 

... 이 책을 보다보니 그 에피소드가 생각나서 말이다. 내가 그렇게 허당이라는 걸 처음 알았기도 하고 (잘 생김에 그렇게 정신머리 다 뺴놓는 아이였던가...) 잘생김과 일처리는 절대 비례관계가 아님을 알았기도 하고. 본인이 잘 생긴 걸 아니까 그렇게 거만하게 나온 거겠지... 아뭏든 그러니... 평생을 시골에 있으면서 남편 하나 바라보고 별 낙도 없이 살던 여자들에게, 게다가 이제 나이들어 머리에 힘도 없고 몸도 살이 찌고 얼굴에 윤기라곤 없어지고 있는 여자들에게 그런 남자의 등장은 '쇼크'에 버금가지 않았을까. 라는 묘한 이해감이 들었다 이거다.

 

뭐 암튼, 이 책 재미있습니다..ㅎㅎ 한번들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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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8-01-14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그래도 잘생기면 좋아요ㅠ어쩌죠

비연 2018-01-14 18:00   좋아요 1 | URL
흑. 그건 그렇습...니...다 ㅠㅠ
 

 

 

 

 

 

 

 

 

 

 

 

 

 

 

 

 

저런 질문은 세상에는 여러 여자들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여자만 있다는 생각에서, 그 여자는 종 전체를 위한 엘리베이터처럼 반드시 결혼하고, 번식하고, 남자를 받아들이고 아기를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듯하다. (p16)  

 

내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진실로 랍비처럼 문답할 줄 아는 자가 되는 것, 닫힌 질문에 열린 질문으로 답할 줄 아는 것, 내 내면에 대한 권한을 스스로 가짐으로써 다가오는 침입자에 맞서서 훌륭한 문지기가 되는 것, 최소한 "왜 그런 걸 묻죠"라고 재깍 되물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p19)

 

 

감기 걸린 머리로 읽다가 잠시 덮어 두었더니 연결이 되지 않는 느낌이라 다시 처음부터 읽어본다. 다시한번 이 책을, 올해 첫 책으로 감히 고른 나에게 으쓱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리베카 솔닛의 글 몇 장만으로도 왠지 정화되는 이 느낌. 페미니즘 책이지만, 어쩌면 타인에 의해 '하나'의 사람을 '강요'받는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 성소수자, 어쩌면 남성, 등등등. 열심히 줄 쳐가며 읽고 있다. 최근에 리베카 솔닛을 발견한 것은, 참 소중한 '득템'임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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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07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 저기서 참...!
언제나 읽으려나.ㅠ
빨리 나으시길...!^^

비연 2018-01-07 17:5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이 책은 안 읽고는 못 배기는 분위기요 ㅎㅎㅎㅎ
스텔라님의 독후감 읽어보고 싶어요!
.. 감기는 여전히 진행중. 빨리 낫기를 저도.. 아멘...ㅜ

2018-01-07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7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8-01-07 17: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하네요.
잘 고르셨다니 찜해둬야겠어요.
비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비연 2018-01-07 18:00   좋아요 1 | URL
꿈섬님. 지금 읽고 있는데... 정말 좋네요. 찜요 찜!^^
꿈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