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나 보호자, 노인이나 장애인이 '시민'이기 어려운 사회는 무언가 잘못된 사회다.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가 '시민적 관계'에서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질병, 돌봄,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돌봄을 누락한 채 이루어지는 어떤 시민권/시민성citizenship 논의도, 나아가 시민을 전제로 하는 정치체제와 법제도도, 결국 거대한 부정의를 재생산하게 된다. (p33)  

 

 

누구나 젊을 때는 몰랐던 것이(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내게도 질병이 오고 늙게 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는 상태가 오리라는 것, 또 내 주변의 아주 가까운 사람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일 게다. 이건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거다 하리만치 어느 순간, 불쑥 내 인생에 쳐들어온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나혼자 고민한다고 되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한번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많은 문제의식들 속에서 나의 고민이 녹여짐을 느끼며 이것이 혼자서 풀어갈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나도 이 달라짐을 '직면'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많은 관계들이 '가족 같은' 관계로 불리는 사회는 정이 넘치는 사회가 아니라 상상력이 빈곤한 사회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 우리가 취약할 때 바라는 모든 것을 욱여넣기 보다, 가족 바깥에서도 그럭저럭 시름시름 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타인을 든든해하고 필요할 때 기댈 곳이 있으리라 믿으며 늙어갈 수 있는 사회를 구상하고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p43)

 

 

이 문단의 첫 대목에서, 사실 웃었다. 아 정말 적나라한 지적이다. 가족 같은 회사 어쩌고 하는 광고 문구에 가슴에 멍자국이 들곤 했었는데, 역시나 이넘의 가족 같은, 이걸 붙여서 다 해결하려고 하는 사회라는 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지적하다니. 나이들어 가장 두려운 건, 나 자신의 무너짐도 있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볼모로 잡게 될까봐이다. 나처럼 비혼으로 사는 사람들은 더하다. 물론 누가 날 돌봐준다고 선듯 나서리라 믿지도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들에게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남기는 존재가 될까봐, 열심히 고민하게 된다.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 경제적인 것, 육체적인 것, 정서적인 것 이런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테러, 라고 나는 생각하니까. 사랑에 빗대어 그들의 인생에 짐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리라고 전제하는 사회보다, 모든 사람이 취약함을 갖고 있다고 전제하는 사회가 더 '현실적'이다. 그런데도 의존이 이렇게 두렵고 위협적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발달과 교육의 기본목표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는 '몸에 대한 통제'에 기반하여 성립하고 지탱된다. (p55)

 

사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는 모호하며 때로, 아니 자주 정치적이다. 아무 병도 없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며 혼자 두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개체에 대한 환상은 '건강한 노동'을 중시하는 사회가 심어준 허상일 지도 모른다. 누구든 우리가 생각하는 좁디좁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질병과 늙음에 대한 두려움이 좀 가셔지고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걸음을 이제사 내딛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혹은 사람을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는 제스처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attention, 무의미해 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가지게 하는 관계와 돌봄의 제스처라는 것이다. 여기서 테일러는 돌봄에서 다른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이라는 측면보다, 그러한 과정의 근간이 되는 관심과 배려의 측면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p221-222)

 

 

치매에 대한 얘기도 있다. 사실 누구나 너무나 두려워하는 상태. 나나 내 주변 사람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상태가 이 상태 아닐까. 기억을 잃어가고, 내가 아닌 누군가로 사는 것 같은 상태. 그게 나일까 다른 사람일까 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 그래서 지금 내가 생각하는 돌봄이라든가 의존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나 판단조차 유보되는 상태. 두렵고 두렵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조차도 인정해야 하는 상태이며, 그러나 우리는 조금씩 준비는 해나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어렵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내가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았긴 한가보다. 이 책에서 인용된 많은 책들을 이미 읽은 걸 보면. 물론 이 저자들이 번역한 책들도 여러 권 있었다. (이전에는 몰랐었다)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그와 같은 시장의 힘에 의존할 수 없을까? 아마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돌봄은 컴퓨터 기술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돌봄은 극도로 노동집약적이다. 일대일의 접촉과 개인별 맞춤 지식이 필요하다. 표준화되거나 객관화될 수도 없다. 훌륭한 돌봄 로봇을 만들어 내지 않는 한, 땀과 눈물을 실리콘으로 완벽하게 대체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 돌봄 로봇이 있다 하더라도 그 용어 자체가 모순이다. (p87)

 

 

 

 

 

 

 

 

 

 

질병은 죽음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몸이 병에 걸린 것은 우리를 배반한 것이 아니다. (p294)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아픈 사람들은 동정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치 있게 여겨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멀고 먼 별자리에선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 하늘 한구석의 죽음이겠지"라고 폴 사이먼은 노래했다. 멀고 먼 별에서, 우리는 한 번 깜빡이고는 사라지는 빛처럼 보일 것이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우리는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죽음은 삶의 적敵이 아니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또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균형 잡힌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 위해 우리는 질병을 존중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존중해야 한다. (p190-191)

 

 

 

 

 

 

 

사두고 아직 읽지 않고 있거나, 아직 사지 않은 책들을 담아 둔다. 이제 내겐 젊어질 길은 없고 나이들 길만 있으며 이제까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삶보다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현실적인 노쇠와 질병과 끝내는 가야하는 죽음으로까지의 길이 남아있을 뿐이고, 이를 현명하게 개인적으로 대처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책을 보면 참으로 반가운 것이, 이제 우리 사회에도 우리의 글로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문제제기를 오롯이 담아내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구나 싶어서다. 어쩌면 고령화사회에 급히 접어들지만, 아무 준비도 안되어 있고 가족주의적인 사상이 뿌리깊은 우리나라라는 사회 내에 존재하기 때문에 더 그런 지도 모르겠다. 사는 건 참 힘든 일이고 이런 모든 일들을 눈 똑바로 뜨고 '직면'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지만, 살아있기에 해야 하는 일이니, 관심을 계속 기울여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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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1-14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중에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ㅠ 오래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살다 편안하게 가고 싶은...그런 바람...

비연 2020-11-15 02:06   좋아요 1 | URL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이 책을 보면.. 그럴 수 없는게 자연스러운거다 얘기해주더라구요. 그렇게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싶더라는.

정하 2020-11-23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이랑 친하지 않은사람인데 요양원 사회복지사라서 정독했네요 너무 공감합니다 ..!!

비연 2020-11-23 13:28   좋아요 0 | URL
사회복지사시라니 저보다 훨씬 마음으로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이 책들 한번 읽어보실 것을 (감히) 추천~
 

 

 

 

 

 

 

 

 

 

 

 

 

 

 

 

일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페이퍼 하나 끄적. 사실 몇 군데 인용하고 싶은 글이 있었고, 그래서 포스트잍으로 단단히 붙여 두었으나 지금 내 손에 없다. 다 읽었다고 책장에 꽂고 다른 책을 가져 나왔네. 흠. 그럼 뭐 내 얘기나 잠깐 하고 휘릭 해야지.

 

책 이야기, 책이 있는 장소(예를 들어 서점) 이야기,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 이야기, 책을 번역하는 사람 이야기 등등. 책이라는 대상을 두고 직업을 가진 사람들 얘길 좋아하는데, 이번엔 책을 편집하는 사람 이야기다. 글항아리의 이은혜 편집자.

 

편집자라는 직업은 어떤 걸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새로운 책을 기획해야 하고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야 하고 그 작가와의 인연을 이어나가야 하고 책의 판매도 생각해야 하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도 기웃거려야 하고.. 등등. 심지어 어떤 책을 편집할 때 실수하지 않기 위해 관련 서적을 싹 사서 읽어서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갖추기까지도 해야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영역의 길도 알았다. 외서 기획자라는 사람도 있고 팩트 체커라는 사람도 있고. 헐.. 이게 책 한 권 나오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 구나. 그런데 한 권의 책은 가격이 넘 낮구나..

 

책을 좋아하는 것과 책에 대한 업을 가지는 것은 다른 일이야, 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그런 직업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내가 외부인이기 때문이겠지. 예전에 출판사 대표의 강의도 여러 차례 들어보면, 아이고야, 출판업이라는 게 참 녹록한 게 아니구나 했었던 기억도 있건만, 어느새 까먹고는 또 그 로망으로 이 책을 찾았고.. 역시 덮으면서 좋아하는 것과 일하는 것은 별개인 것이다 결론 짓고. 무한 루프.

 

내 친구가 인문학 서점을 해서, 요즘 알라딘에서 사야할 책들 중 인문학에 관련된 책은 이 아이를 통해 구입하고 있는데, 코로나 이후로 많이 힘들어보인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그저 책 몇 권 정기적으로 사주는 것 뿐이고, 안스럽지만 잘 버텨나가길 응원하면서 또 생각한다. 역시, 업은,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세상에 생각만큼 고상하고 즐겁기만 한 일이 어디 있겠어.

 

 

 

 

 

 

 

 

 

 

 

 

 

 

 

 

 

지금 들고 나온 책은 이것. 일한다고 읽지는 못하고 있는데, 어제 몇 장 읽어본 결과 내게 건네는 말들이 많은 것 같아 진지하게 읽으려고 하고 있다. 나이듦과 돌봄과 병듦에 대해 이제 좀더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기가 온 모양이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이면서 진지한 접근방법이 마음에 든다. 다 읽고 페이퍼 써야지 하면서 다시 일하러 휘릭. (오늘은 일요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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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8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08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0-11-09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 몸 축나지 않게 하시구용^.^ 새벽세시.. 는 독후감 기다리겠습니다!! (장바구니에 대기중 😶 드릉드릉~~)

비연 2020-11-09 08:31   좋아요 0 | URL
감사감사~ 새벽 세시 ... 좋네요. 페이퍼 쓸수 있도록 노력!

다락방 2020-11-09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 저도 사두었어요. 아무래도 저도 나이들면서 몸이 달라지는 걸 느끼기 때문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비연님의 페이퍼 기다리겠습니다.

비연 2020-11-09 08:55   좋아요 0 | URL
좋은 문제제기가 있는 책 같아요. 페이퍼 쓸 수 있어야 할텐데.. 홧팅하갰나이다!^^

syo 2020-11-09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쁨은 비연님의 운명인가요?
비연의 ‘비‘가 busy의 그 ‘비‘라는 말이 있어...

비연 2020-11-09 13:34   좋아요 0 | URL
그것이... 바쁘다 바쁘다 좀 야단스러운 면도 있겠고 (반성중) 일을 취사선택해서 안받고 넙죽넙죽 받은 제 불찰도 있겠고 (시무룩).. 비연의 ‘비’는 비지의 비가 아니라 비상하다의 비인데. 날고 싶네요. 오늘은 특히.. ㅠ

han22598 2020-11-10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처럼 좋아하는 장소를 거주지로 만들어버리는 실수따위는 피해야만 하는 것인가요? ㅋㅋㅋㅋ

비연 2020-11-10 01:3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좋아하는 장소를 거주지로 만드는 건.. 상황에 따라선 괜찮을 때도 있지 않을까요? ㅎㅎㅎ
 

 

 

 

 

 

 

 

 

 

 

 

 

 

 

 

12월까지 많이 바쁠 예정이라, 조금 일찍(?) 시작해볼까 하고 들었다. 1권은 얇군.. 하면서. 4권은 사야지.. 하면서. 경자년을 푸코로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환영인데, 차분차분히 이해하면서 제대로 읽을 틈이 날 지 모르겠다. 암튼 일단 시작.

 

억압은 사라지라고 정죄하는 것으로뿐만 아니라 침묵하라는 명령, 실재하지 않는다는 단언, 따라서 그 모든 것에는 말할 것도 볼 것도 알 것도 없다는 확증으로 작용한다. 이런 식으로 균형을 잃고 위선의 논리에 빠진 부르주아 사회는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타협을 하게 된다. 비합법적 성생활에 정말로 자리를 내줄 필요가 있다면, 다른 곳에서, 즉 생산의 회로가 아니라면 적어도 이윤의 회로로 편입될 수 있는 곳에서 소동이 일도록 하라. 유곽과 요양원은 이와 같은 허용의 장소가 된다. (p11)

 

어찌 보면 성생활과 억압, 이것을 연결하는 것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단순명료할 수 있을 지 모르겠으나 푸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푸코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는 거겠지. 그가 말하는 "억압의 가설"은 1) 성의 억압은 정말로 자명한 역사적 사실일까? (역사와 관계된 문제) 2) 권력의 메커니즘,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서 작용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은 요컨대 억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역사-이론적 문제) 3) 억압을 겨냥하는 비판적 담론은 그때까지 이의없이 기능한 권력 메커니즘의 통로를 차단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억압'이라고 부르면서 비난하는 (그리고 아마 왜곡할) 것과 동일한 역사적 망(網)의 일부분을 이루는 것일까? 억압의 시대와 억압의 비판적 분석 사이에 정말로 역사적 단절이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정치적 문제)의 세 가지 의혹에서 출발한다 (p18). 흥미롭다.

 

 

 

 

 

 

 

 

 

 

 

 

 

 

 

 

 

어제 다 읽은 이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이 있었다.

 

마지 피어시가 말했듯 삶과 사랑은 버터와 같아서, 둘 다 보존이 되질 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 만들어야 한다. (p385)

 

그렇구나. 왠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구절이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서. 매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삶과 사랑이라니. 삶도 사랑도 그냥 그대로 쑥쑥 커나가는 것이 아니구나.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사랑은 어쩌지? 남녀 사랑만 사랑은 아니니... 인류를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자.. 라고 하려니, 아 트럼프의 소송 기사가 뜨네? 인류애 소멸. 그냥 내 반려 식물을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자.... 호프 자런의 책이 한 권 더 나와 있던데 읽어봐야겠다. 이 분, 이 <랩걸>에서 쓰다 만 얘기들이 정말 많아 보인다.

 

 

 

 

 

 

 

 

 

 

 

 

 

 

 

 

 

추워졌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스미는 요즘이다. 책읽기에 좋은 계절에, 일을 하는 나지만, 삶과 사랑을 새롭게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오늘 하루도 버텨보자. 이렇듯, 책은.. 내게.. 의지를 준다. 버텨낼 의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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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05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앗 시작하셨군요. 저도 시작해야 할텐데..
사랑은...여성주의 책 같이읽는 멤버들에 대한 사랑으로 늘 거듭나면 되지 않겠습니까? 후훗.

그런데 인용해주신 푸코..저는 어렵네요 ㅠㅠ

비연 2020-11-05 14:00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을 바쁘다고 뜨문뜨문 읽어보니.. 나중엔 뭔 이야기였지 싶어져서 좀 일찍.
늦게 시작해도 다락방님이 저보다 빨리 읽는다는 것은 이미...수차례 입증된 ㅜㅜ
사랑은..ㅎㅎㅎㅎ 몽실몽실 멤버들에 대한 매일의 사랑으로 거듭나고 있긴 하지요 ㅋㅋ

인용한 글은, 맥락없이 뚝 떼어와서 그렇고 쭉 따라 읽으면 어렵지 않을 거에요.
근데 뭔가 번역 탓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들기도 합니..다...홋.

단발머리 2020-11-05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써 시작하셨네요. 저는 책을 꺼내놓기만 했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랑으로 거듭나는 일에 저도 한 표합니다!!!

비연 2020-11-05 19:1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얼른 시작해서 함께 읽어요! 우리는 늘 사랑이죠 ㅎㅎㅎ

수연 2020-11-0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과 사랑..... 버터 그리고 푸코....... 이 모든 게 왜 이다지도 다정하게 들리는 건가요 비연님, 오늘밤에는 푸코를 야금야금 씹어먹어봐야겠어요. 푸코 읽다가 버터빵이 먹고싶어지면 어쩌나..... 이런 쓰잘데없는 걱정을 마구 하면서.....

비연 2020-11-05 19:16   좋아요 0 | URL
지금쯤 푸코를 야금야금 씹어먹고 계실지. 푸코와 버터빵! 우째 어울리는 느낌이 드는데요 ㅎㅎㅎ 전 야구와 꼬깔콘 중..

syo 2020-11-05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터와 버텨보자의 라임을 느꼈다....
오늘이 엘지의 올해 마지막 경기라는 소식이 들리던데...ㅠ

비연 2020-11-05 19:40   좋아요 0 | URL
오 부지불식간에 제가 시인의 본능을 발휘? 크크~ 엘쥐는.. 그게 운명. 켈리는 몸풀다 집에 갔을듯.
 

.. 라며 11월 1일 주문에 들어갔다. 결국 결재한 건 2일이었지만. 




















존 버거의 책은 다 산다... 이 책을 놓치고 있었는데, 레샥매냐님의 페이퍼에서 보고 바로 구매에 들어갔다. 레샥매냐님이 이렇게 쓰신 거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눈은 언제라도 눈물샘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존 버저 작가가 섬세하게 구상한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나의 감정은 그런 태세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만난 존 버저의 <결혼식 가는 길>은 그저 아름다웠다..." 아니 이렇게 썼는데 이 책을 더더군다나 어떻게 외면하느냐는 것이지. 르네상스적이며 보헤미안적인 존 버거라는 사람의 글은 늘 내게 도전이다. 존 버거와 수전 손택이 토론하는 유튜브를 본 적이 있는데 (둘다 천천히 말해서 듣기에 괜찮았다) 세계의 지성들은 이렇게 토론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 그들은 지구상에 없다. 그립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들은 아주 옛날 버전으로 가지고 있다. 엄마가 아주 예전에 <장미의 이름>이 단권의 초록색 표지로 나왔을 때 사서 읽으시고는 내게 읽어보라고 주셨었다. 그 이후로 난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 되었고, 그 이후 나온 책들도 줄줄이 몇 권을 보았다. <푸코의 진자>도 괜찮았고, <전날의 섬>도 괜찮았지. 심지어 <논문 잘쓰는 법>이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도 읽었더랬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전권을 소장하는 게 나의 '작은' 바램이기도 하고. <장미의 이름>은 꼭 다시 봐야지 마음 먹고 있던 책인데 (너무 고전도 아니지만 고전에 가까운 책이므로) 숀 코너리가 며칠 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아 정말 다시 읽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예전 버전은 엄마 집에 두고 와서 새롭게 사기로 결심했고. 숀 코너리가 영화에서 윌리엄 수사 역할을 했을 때, 이건 숀 코너리를 보고 쓴 거 아니야 할 만큼 잘 어울렸었다. 영화가 소설보다 나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때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책을 읽은 이들에겐 좀 시시해보일 수 있었지만, 거기에 나오는 숀 코너리는 제임스 본드는 생각도 안 난다. 나에게 숀 코너리는 윌리엄 수사다. 


* 구입하고 나니 양장판이 있었다. 아 정말. 못 봤네... 이걸로 살 걸. 





























여행기. <고전에 맞서며>는 고대 그리스 로마 세계를 둘러보는 마음의 여행기. <마음의 발걸음>은 아일랜드를 둘러보는 리베카 솔닛의 여행기. 안 살 이유가 없는 책들이다. 보자마자 장바구니에 퐁당 넣어야 하는 책들이지. 사실 <고전에 맞서며>는 서평이다. 31개의 책에 대한 서평. 남과는 다른 고전에 대한 시선. 내가 좋아하는 류의 책이다. <마음의 발걸음>의 아일랜드는 어떨까.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들, 제임스 조이스, 버나드 쇼, 윌리엄 예이츠, 조너선 스위프트, 사무엘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어떻게 이 작은 나라에서 이리 많은 문학인들을, 그것도 세기를 대표할 만한 문학인들을 배출했을까. 늘 궁금했다. 영국을 거쳐 아일랜드를 가서, 아이슬란드까지 보고 오는 것이 나의 여행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데,..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터. 책으로라도 여행해봐야겠다. 리베카 솔닛의 시선이 궁금하다. 




















<상페의 음악>은 엄마께 드리는 선물로, <Ex Librs: 100+ Books to Read and Reread>는 내게 주는 선물로 구입했다. 엄마는 장자크 상페를 좋아하셔서 그의 책은 다 가지고 싶어하시니 이 책도 좋아하실 것 같다. 저 두꺼운 원서를 내게 주는 이유는... 그냥 좋아서. 이유가 뭐 필요하겠는가. 곧 있을 내 생일을 맞이하여 내게 주는 선물이다... 안 읽으면 머리맡에 두고 그림이라도 볼 거다. 




















책을 살 때마다 잊지 않고 넣는 시리즈는 여성학 분야와 추리소설 분야다.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의 책소개는 이렇다. "여성을 돌봄과 양보의 최전선으로 몰아가는 성차별주의의 오류를 짚어내며 ‘충분히 평등해졌다’는 착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 뉴욕에서 20년간 성인과 부부를 대상으로 상담해온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약한 저자는 약 100여 명의 부모를 인터뷰, 불평등한 가사 노동의 사례들과 데이터를 수집해 실상을 낱낱이 밝힌다. 또한 생물학, 신경과학, 인류학의 최신 연구 결과를 통해 모성신화, 남녀의 뇌 차이, 호르몬 변화,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등 고정관념과 과학이 어떻게 여성의 희생과 남성의 무책임을 대물림했는지 살펴본다..."  충분히 평등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책을 읽고 싶었다. 오늘도 어느 지위 높은 남성분과 대화를 했는데, 여성에 대한 차별의식이 없으리라 보는 사람인데도 역시 내가 느끼는 것만큼은 아니라는 걸 여실히 느꼈다. 많이 달라졌잖아. 이렇게 굼벵이처럼 달라지다간, 이 세상 다 끝나 지구가 폭발하는 그 날까지 여성들은 불평등한 세상에 살아야 할 거다. 아니라는 책을 읽으며 동질감을 느끼고 싶다. <무증거 범죄>는 중국의 3대 추리소설가 중 하나인 쯔진천의 대표작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이라는데.. 역시 중국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가끔 쓰는 게 상당히 독특한 작가들이 튀어나온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과 비슷한 내용이라고 하니 뭔가 내 뒤통수를 칠만한 내용이 들어간 모양이다. 그래서 숑. 


***


올해도 여전히 책을 사댔으나 아직도 못 읽은 책이 산적하다. 1월에는 책 들고 어디 파묻혀야 다 해결나겠다 싶다. 그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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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04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책 주문을 했습니다. 스누피 일력이.. 굿즈로 함께 올겁니다. 일력 예쁘면 조카 주려고요...
아직 성의 역사를 다 구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월급 받으면 또 지를 생각입니다.
책 지름은 끝이 없어요..

비연 2020-11-04 16:22   좋아요 1 | URL
앗. 전 탁상달력을 굿즈로 주문했는데요..ㅜ 일력도 탐나서 <육체의 고백> 주문할 때 같이 주문할까 고민중..
정말이지... 책지름은.. 끝이 없고 한도 없고.. 그래서 돈도 없고.. 뭐 그런..ㅜㅜ

수연 2020-11-04 19:14   좋아요 0 | URL
일력 예쁘면 알려주세요 락방님_ 일력 때문에 지금 장바구니에 책 하나씩 담는중~

다락방 2020-11-04 19:17   좋아요 0 | URL
네 근데 책이 토요일에 배송될거라 ㅋㅋ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

미미 2020-11-04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움베르토 에코 너무 사랑해요! 논문 잘 쓰는법도 눈에 보이자마자 바로 사뒀는데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보나마나 제맘에 들거란건 알지요ㅋㅋ
기호에 관한 책들은 계속 검토중ㅋㅋ 11월도 글 많이 올려주시고 즐독하세요 비연님^^*

비연 2020-11-04 16:26   좋아요 1 | URL
미미님. 움베르토 에코를 사랑하신다니.. 와락. 저 컬렉션 다 구입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쭉 진열해놓을 생각하면. .짜릿. ㅎㅎ 11월.. 일이 많긴 하지만 알라딘에는 부지런히 발걸음하기로. 미미님도 자주 뵈요~

단발머리 2020-11-04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고르기 바쁘면 비연님이 골라주신 책으로 읽으면 되겠어요. 아주 골고루, 영양만점 책선정입니다.

비연 2020-11-04 17:00   좋아요 1 | URL
과찬의 말씀임다.. 단발머리님. 전 단발머리님이 올리시는 책들을 보면서 매일 한숨만 폭폭...
이 많은 좋은 책들을 언제 다 읽는단 말이냐 + 단발머리님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흑흑.
(아직 <레베카>를 펼쳐보지도 못했지 뭡니까요..;;)

수연 2020-11-0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베카는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앗 그러고보니 아직 안 샀다;;;; 먼저 사야지. 제가 진짜루 11월에는 책 딱 한 권만 사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했건만 어흐흐흐흐흑_

비연 2020-11-04 20: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11월의 책 한권, 레베카. 흠? 멋지다.

라로 2020-11-05 0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막 웃으면서 들어왔어요. 어째 제목은 11월까지 책 안 사고 기다렸다는 뉘앙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비연 님 책 늘 사시잖아요!! ㅋ 어머니께서 [장미의 이름]을 읽으시고 주셨다니,,, 어떤 어머니이실까 궁금하네요. ^^

비연 2020-11-05 12:50   좋아요 0 | URL
흠흠..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가 책을 늘 사긴 하지만.. 11월이 되니 또 사야겠다 뭐 그런.. 흠흠.
저희 엄마는, 제게 책이라는 세상을 알려주신 다정한 분. ^^ 도스토예프스키와 까뮈를 사랑하는, 지금도 매일 책을 열심히 읽고 계시는.. 어릴 적엔 엄마가 소개해준 책 위주로 읽어서, 저도 비슷한 작가들을 좋아하구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어릴 적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나무가 하나 있다. 모질고 긴 겨울 내내 도전적인 초록색을 자랑하며 우뚝 서 있던 푸른 빛이 도는 은청가문비였다. (p46)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나무가 있다. 아니, 식물인가. 어딘가에 딱 고정되어 나의 어릴 적 추억을 함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그 품종이 내게 와닿는 식물. 코스모스.

 

왠 코스모스? '코스모스 한들한들~' 노래 부르던 김상희씨가 생각난다.. 고 한다면 그건 연식 드러나는 얘기고 내게 이 코스모스라는 식물은 외로움을 달래주던 존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이란 걸 한 내가,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녔지만 속으로는 외롭고 외로와서, 학교 가는 길 길을 따라 쭈욱 피어있던 코스모스 분홍빛 꽃에 위안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예전 학교와 달리 전학온 학교의 아이들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더 깔끔하고 더 잘 살고 더 좋은 부모 밑에서 성장한 것 같은 아이들인데 참 못된 애들이 있었다. 동끼리 나눠서 서로 욕을 하고 (정치꾼들처럼 이 동에서 반장이 나오면 저 동에서 다음 반장이 나와야 한다 이런 걸로 싸우더라는) 친구 쟁탈전을 벌이고... 그 동네에 원주민이라 불리던 아이들을 괴롭혔다. 원주민이라니. 내 귀를 의심했었는데.. 그러니까 그 동네가 개발되기 전에 원래 살던 사람들이 거의다 이사를 갔음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 반에도 여자아이 한 명이 있었다. 장의사 집 딸이었고, 집에서 잘 돌봐주지 않는지 항상 지저분한 행색으로 학교에 나왔고 공부도 잘 하지 못했었다. 그 아이를 어찌나 사악하게 따돌리고 괴롭히는지.. 순진했던 나는,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한 학기 정도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지냈다. 그 전 학교에서는 난다 긴다 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 아이는 결국 못 버티고 전학을 갔고.. 난 학교 아이들한테 정을 못 붙인 채 겉도는 한 학기를 보냈었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가 정말 싫었는데, 그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참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요즘도 코스모스를 보면, 그 때 생각이 아주 선명하게 난다. 그 때의 괴로움, 무서움, 불안함... 그리고 위안이.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p52)

 

좋은 글이다. 그냥 말했으면 그저 그런 잠언에 불과했겠지만, 이 작가의 말은 식물을 바라보며 과학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성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어서 마음에 와 닿는다. 소란스럽고 야단스러운 걸 싫어해서인지, 작가의 글이 좋다. 과학자로서, 여성 과학자로서의 고충을 그려낸 부분도 좋다. 아니 사실 아리다. 어디나 참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게 어떨 땐 위로이고 어떨 땐 고통이다. 세상에서 진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어딘가는 훨씬 나은 상태여야 하지 않는가. 여성으로 태어나서 느끼는 건 왜 비슷할 수 밖에 없는 건가. 라는 약간의 좌절감도 스민다. 관련해서 사둔 몇 권의 책이 나를 째리고 있다. 읽을 책이 많구나. 할 일도 많고.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이럴 때가 좋은 거겠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일이 대충 끝난 후, 연말 연초에는 일이 주 독서만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어디로 가든, 집에 쳐박히든. 사람들의 말이, 글이, 영상이 주는 재미가, 다 나의 시간을 그냥 잡아먹는 건 아닌가 두려울 때가 있다. 잠시 내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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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03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랩 걸 참 좋지요? 저는 특히나 같이 연구하는 이성 동료와의 관계가 인상적이더라고요. 그 부분에 되게 집중해서 보았던 기억이 나요.

라로 2020-11-03 12:26   좋아요 1 | URL
저두요!!

비연 2020-11-03 14:23   좋아요 0 | URL
반 쯤 읽었는데, 재미있네요. 독특하고. 이성 동료와의 얘기는.. 부럽다 부럽다 하면서 보고 있어요.
인생의 소울메이트랄까. 성적인 끌림 없이 그렇게 일에 파묻혀 서로를 보완하고 지지하는 관계.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