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함께 읽기로 하지 않았다면 난 이 저자도 책도 아예 모르고 살았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랬다면, 이 혁신적인, 말하자면 튀는 생각을 접할 행운도 놓쳤겠지. 정말 다행이다 싶다.

 

나는 뭐든 좀 다르게 보는 걸 좋아한다. 예전에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태평양의 끝>이란 책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우리가 아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는 백인 남성이고 서양인이고 영국인이고 기독교도인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떨어져 살아남는 생존기이며 모든 이야기는 그가 중심이다. 거기 나오는 원주민 격인 프라이데이(프랑스말로는 방드르디)는 그냥 곁다리로 등장하고 심지어 서양문물에 경도되는 내용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미셸 투르니에는 이 생각을 뒤집어서, 방드르디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그의 사는 방식에 로빈슨 크루소가 따라가게 된다는 내용의 소설을 썼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랄까, 놀라움이랄까. 내가 이제까지 알던 소설을 이렇게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관점을 달리 하니 그 내용이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어쩌면 우리는 백인에 서양인에 영국인에 기독교도인 사람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는 데만 익숙했지, 원주민의 세상은 그냥 주변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런 역발상 혹은 혁신적인 관점으로의 전환을, 나는 매우 사랑한다.

 

 

 

 

 

 

 

 

 

 

 

 

 

 

 

 

 

 

이 책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도 마찬가지다. 이제 70페이지 남짓 읽었는데도 그 예상치 못한 관점과 생각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찬성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아 나의 고정관념이 이정도구나. 이 저자가 말하는 내용을 자꾸 훼방놓고 있는 내 머릿속의 그 고정관념을 계속 느끼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refresh 되는 느낌을 함께 가진다.

 

 

그러므로 성(sex)은 없다. 억압받는, 그리고 억압하는 성이 있을 뿐이다. 성을 생산하는 것은 억압이며, 그 반대가 아니다. (p45, <성의 범주> 중)

 

그리고 진실로, 여성의 투쟁이 없는 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갈등은 없다. 예상되는 비율에 따르면, 재생산 신체 노동까지 더해서 사회적 일의 4분의 3을 수행하는 것은 여성의 운명이다. 살해당하고, 절단당하고,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문당하고 학대당하고, 강간당하고, 얻어맞고, 결혼을 강요당하는 것이 여성의 운명이다. 운명은 아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은 자신들이 남성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침내 그 사싱르 인정했을 때 여성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 ..(중략).. 남성은 자신들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배하도록 훈련되었다. 남성은 그 사실을 항상 표현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한 지배를 거의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p47, <성의 범주> 중)

 

 

남성과 여성의 성을 나누는 것 자체에서, 지배와 억압은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남성은 그 관점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대의 성을 지배하고 있다. 그게 지배라는 걸 알지만 구태여 되새김질 할 필요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태생적으로. 누가 성별을 자연적인 것을 만들고 그로 인한 억압 구조를 만들어내어 받아들이게 했는가. 이를 거부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이 모든 사안들이 이런 기저에 깔린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대의적으로는 이론을 말할 수 있는데 생활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남성'이라는 성별이 가지는 거대한 억압 기제를 뿜어내는 지도 모르겠다.

 

 

성은 여성이 벗어날 수 없는 범주이기 때문에 성 범주는 인구의 절반을 성적 존재로 만드는 이성애 사회의 생산물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공적 영역에서 일하는 것을 포함해서) 여성은 남성에게 성적으로 접근 가능한 것처럼 보여야 하고 (만들어져야 하고), 가슴과 엉덩이, 옷은 반드시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여성은 노란별을 달고 늘 밤낮으로 웃어야 한다.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모든 여성은 강압적인 성적 서비스를 한다. (p52, <성의 범주> 중)

 

성 범주는 여성에게 딱 붙어 있기 때문에, 여성은 범주 밖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성은 오직 성, 그 성이다. 그리고 성이 여성의 마음, 몸, 행동, 제스처를 만든다. 심지어 살인과 구타도 성적이다. 정말로 성 범주는 여성을 꽉 옭아매고 있다. (p53, <성의 범주> 중)

 

 

여전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에 매여 있는 나는, 자꾸만 헷갈린다. 성별이 없다면 범주를 어떻게 나누지? 만약 범주가 필요하다면, 그 이외에 뭐가 있지?.. 그런 게 무슨 걱정이겠는가.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양태를 펼쳐놓고 구분하면 되는 거지, 필요한 경우에 한해. 뭐든 두 개로 쪼개놓으면 대결 구도가 되고 누군가가 누군가의 위에 서는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아마도 이 성별이라는 문제 자체가 그래서 남성과 여성의 이 어이없는 구조를 만들어냈는가 싶다.

 

그래서 저자는, 용감하고 과감하게 시몬 드 보부아르의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라는 명제를 비판한다.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없다." 라고 얘기한다. 그 성별이 있는 것부터가 모든 문제의 온상이므로.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과 이성애와 동성애라는 이분법 자체를 배격하고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을 문제로부터의 탈출 trigger로 잡는다.

 

어렵고 잘 안 읽혀지지 않는 책이지만, 읽을수록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답다. 기존 관습에 대한 도전, 고정 관념의 전복, 그리고 당당하게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논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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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17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 책보다 비연님의 이 페이퍼가 더 좋습니다. 정말이지 이런 명품 페이퍼를 만날 때면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하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요.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감상을 읽는 일은 정말 즐겁습니다! ㅜㅜ

비연 2020-07-18 22:2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명품 페이퍼라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 같은 주제로, 그것도 관심이 큰 주제로 다 같이 함께 책을 계속 읽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 들어 저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에요. 이런 게 책을 함께 읽는 묘미구나 싶구요.

단발머리 2020-07-17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 의견에 완전 동감하는데요. 비연님 페이퍼가 책보다 좋습니다.
우리가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듣고 그 생각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요.
비연님은 글을 더 자주 쓰셔야 하지 않나요? (은근한 강요+협박)

비연 2020-07-18 23:2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칭찬에 부끄러워지는... 전 정말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가 좋습니다. 뭔가 풍요로와지는 느낌이에요.. 글을.. 더... 자주 쓰도록... 그것은 노력을... 쩜쩜쩜... ㅎㅎ;;;

수이 2020-07-19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다시 읽다가 아 무리다 싶어서 중간에 다시 덮었어요. 좋았는데 딱 알맞은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아름답다는 비연님 문장에는 동의! 전 이번 책 읽으면서 둘러싸고있는 테두리에
금이 간다고 해야하나 그런 느낌 받았어요. :)

비연 2020-07-19 19:06   좋아요 1 | URL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에 금이 간다... 이 문장 좋네요. 뭔가 제가 느낀 것과 비슷한 느낌의 글.
책이 좋은 것 중 하나는 (무지하게 많지만 그 이유는 ㅎ),
이렇게 우릴 늘 살아있게 하고 변화하게 하는 데 있는 것 같아요. ;)

수이 2020-07-19 19:27   좋아요 1 | URL
처음에 마리아 미즈 읽고난 후에 막 숨 벅차고 잠도 오지 않고 그랬는데 그 정도 임팩트는 아니어도 아 내가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겠구나 이걸 좀 더 또렷하게 보여주지 않았나 싶어요. 생리통 때문에 머리 쪼개질 거 같은데 이 아픔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끔 한다고 해야할까요. 말이 막 나오려고 하다가 멈추고 그래요. 아 말 잘하는 사람들 부러워요. 그리고 글 더 자주 써주세요, 단발머리님 협박에 살짝 협박 한 숟가락 더 보태요 ㅋㅋ
 

 

 

 

 

 

 

 

 

 

 

 

 

 

 

호기롭게 사서 바로 읽기 시작했지만, 다락방님 코멘트대로 그다지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시공간을 왔다갔다 하고 사람도 왔다갔다 하고, 묘하게 눈에 잘 안 익혀지는 이름들 속에서 그 인생들이 헷갈리기도 했다. 그냥 어쩌면 요즘의 내 심정이 심란하고 갈팡질팡하여 그런 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 시기가 되면, 멍때리는 일이 잦아지는데, 근간에 있었던 사건과 그로 인해 오고간 많은 말들, 공격들이 계속 스트레스가 되어 더 힘들어졌었다. 누구를 옹호하고 누구를 비난하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내 마음을 가르지 못했고 그게 묘한 죄책감이 되기도 해서인지, 더 잦아드는 기분이었다. 다만, 그냥 사는 게 왜 이리 힘든 지 사는 게 뭔지 정말 아무리 시간이 가도 잘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만이 짙어지던 요즘이었다.

 

이 책은 여자 수형소 얘기이다. 가난하고 사회 밑바닥에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래서 입게 된 마약사범, 살인자, 사기범 등의 이름. 그 결과로 가지게 된 장기수, 사형수, 전과자 라는 굴레. 그런 이야기이다. 누구나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하는 거다. 가난해서였을까. 못 배워서였을까. 부모가 학대를 해서였을까. 뭐였을까.. 하지만 어쨌든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런 '남보다 못한' 배경 때문에 죄라는 걸 짓게 되고, 사법체계는 거기에 그 죄에 엄중한 처벌만을 내린다. 처벌을 그 개인에게 한다는 게 옳은 일인가. 어쩌면 많은 사연이 있었던 사람들. 그 사연을 만들어낸 사회나 배경에는 철퇴를 내리기 힘드니 결국 죄를 짓는 '개인'에게 처벌할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그런 이야기들을 이 책은 하는 것 같다.

 

제목인 <마스룸>은 주인공인 로미 홀이 일했던 클럽이다. 여자들이 거의 헐벗은 몸으로 나와 '가짜' 애무를 하면 그 주변에 둘러 앉은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진짜' 애무를 하는 곳. 남들은 뭐라 할 지 몰라도 로미는 그 직업이 싫지 않았다. 스트립댄스를 추며 남자들의 시선을 끌었고 거기에서 번 돈으로 아들 잭슨을 키우는 생활. 그러다가 지미 달링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었고 애인이 되었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살만하다 싶은데, 커트 케네디라는 스토커를 만나 결국 집에까지 좇아 들어온 그 자를 쳐서 죽였다. 29살 나이에 종신형 두 번 추가 플러스 6년을 받아 영원히 감옥에서 보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오래 살 계획은 없다. 그렇다고 짧게 살겠다는 것도 아니다. 내게는 그런 계획이라는 게 전혀 없다. 문제는 계획이 있든 없든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계획 따윈 무의미하다.

그러나 계획이 없다고 후회도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마스 룸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를 만나지 않았다면,

소름 끼치는 커트 케네디가 나를 스토킹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하지만 그는 마음먹었고, 그러고 나니 끈질겼다. 저 일들 중 어느 하나만 일어나지 않았어도, 콘크리트 구덩이 속 인생을 향해 달리는 버스에 타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p26-27)

 

 

호송되는 버스 안에서 지난 인생들을 훑으며 로미는 이런 후회를 한다. 인생이, 참 그런 것 같다. 납득 안되는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애쓰다보면, 과거에 그 결과를 일으켰으리라 예상되는 여러 원인들에 생각이 닿게 되고 그 때 그걸 안 했다면, 인생이 달라졌겠지 라는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 잔인한 것은, 인생은 그냥 one-way라는 것. 돌이킬 수 없는 한 방향. 후회한다 해도 영화처럼 그 선택의 순간에 돌아갈 길은 없다.

 

 

"감옥에서는 말이야, 적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 있어. 내 말은, 진짜로는 모르지. 예측이 불가능해. 근데 그 예측 밖의 일들마저도 다 따분할 뿐이야. 비극적이고 끔찍한 뭔가가 벌어질 수도 있는 그런 곳이 아냐. 내 말은, 물론 벌어질 수 있지. 당연히 벌어질 수 있지. 하지만, 교도소에서 모든 걸 잃을 순 없어. 이미 모든 걸 잃은 뒤니까." (p42)

 

 

감옥은 그런 곳이다. 특히 이렇게 장기수이며 무기수인 사람들에겐 더 하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다. 왜냐하면 희망이 없으니까. 이미 인생의 막장 코스에 올라탔으니까. 그런 사람에겐 외부의 사람과의 연락이 정말 간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다 소용없다. 애인이었던 지미 달링은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당신이 지미 달링의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지 모른다. 편지에 야구 얘기를 쓰지는 않았을망정 인생이 끝장난 누군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긴 했을 것이다." (p43) 로미는 그렇게 받아들인다. 뭐하러 교도소에 있는 여자랑 연인을 하겠냐고. 그렇게 그들은 점점, 어떨 땐 아주 확, 소외되어 가고 잊혀져 간다.

 

세상사는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복잡하다. 인간은 우리가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멍청하고 덜 사악하다. (p266)

 

 

인정.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담은 문구인 듯 하다. 세상사도 인간도 우리가 알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걸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그래서 다들 살면서 계속 실수를 한다. 작은 실수, 큰 실수. 로미 홀은 큰 실수. 근데 그게 그렇게 종신형을 살 정도로 그녀만 잘못한 일인가.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는 큰 실수로 그녀의 인생은 그냥 망가졌는데. 스토킹이라는 걸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남자가, 그녀가 얼마나 두려웠을 지 얼마나 몸서리쳤을 지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생각할 때는 그런 '사소한' 일로 사람을 죽이다니, 심지어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스트립댄서 여자가 흉기를 휘두르다니, 선처의 여지가 없지, 라는 판단 밖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인 나는 그 느낌을 안다. 내 일상 전부가 위협받는 듯한 그 느낌. 뭔가 내게서 소중한 것을 잃을 것 같은 느낌. 무엇보다 그 소름끼침. 그럴 때 옆에 몽둥이가 있다면 힘껏 쥐고 내리치는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우리는 그걸 정당방위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걸 안다. 사회에, 남자에, 설명도 안되고 납득도 안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생각보다 대단히 훌륭한 소설이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읽어볼 만은 한 책이었다. 내내 좀 불쾌하고 잔상이 남는 이야기라, 요즘 같은 때 읽기 좋겠다 라고 말하기도 어렵겠지만, 읽고 있으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니 다른 잡생각은 안 들어올 수도 있겠다.

 

 

계속 소설을 읽어대느라, 7월 책은 앞의 몇 장만 뒤적이고 아직 진도를 못 뽑고 있다. 200페이지인데, 다른 때 같으면 벌써 끝냈을 분량인데 말이다. 이제 잠시 소설을 놓고 이 책을 봐야겠다. 물론 <캘리번과 마녀>는 매일 조금씩 아주 재미나게 읽고 있다. 이 책에 대해서도 조만간 페이퍼를 써야지 작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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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14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리뷰랑 비연님 리뷰 읽고 나니 왠지 친근한 이 소설.... 전 아무래도 패쓰할 것 같아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이제 두 꼭지 남았는데, 아직도 제 자리네요ㅠㅠ 오늘의 결심, 꼴등하지 않으리....

비연 2020-07-14 13:47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괜찮습니다. 꼴등은 저로 확정...ㅜ 이제 10페이지인데요..
<캘리번과 마녀> 읽느라 그렇다고 괜히 핑계대봅니다...
이 소설은, 강추는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 조심스레.
아..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을 날이 이제 17일 남았군요. 헉.

레삭매냐 2020-07-14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초반에 아주 흥미롭게 몰입했었는데,
로미 레슬리 홀이 감방에 간 다음에 잠깐
주춤하고 있네요.

스탠빌 교도소와 프리스코에서 성장기,
싱글만 랩 댄서로서 로미의 고단한 삶,
미국 서브컬처에 대한 조금은 장황한
하지만 그네들에게는 공감을 살만한
이야기들이 조금 동 떨어져 있다는 느낌
이 드네요.

소설의 소재 선택과 구성은 뛰어나다
는 느낌이네요.

전작 <화염방사기>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연 2020-07-14 20:46   좋아요 0 | URL
전체적인 구성은 나쁘지 않은데 좀 산만한 느낌이랄까. 아주 현실적이진 않은 느낌이랄까.
좀 그렇긴 했어요... <화염방사기>라는 전작이 있나요? 제목 끝내주네요 ㅎㅎㅎ 저도 찜.

파이버 2020-10-03 0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인공 로미 홀의 이야기 외에 다른 인물들의 묘사가 많아 읽는 속도를 내기 힘들었습니다^^;;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던 것 같아요

비연 2020-10-03 08:08   좋아요 1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ㅠ 헥헥
 

 

 

 

 

 

 

 

 

 

 

 

 

 

 

좌우간에 공공부조의 도입은 노동자 및 자본이 국가와 맺는 관계의 전환점이었고 국가기능의 정의를 바꾼 계기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굶주림과 공포라는 수단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존속할 수 없다는 점을 최초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계급관계의 보증인이자 노동인구 재생산과 훈육의 제1감독기구로서의 국가를 재건하는 첫 발걸음이기도 했다. (p136)

 

봉건제는 페스트와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상실과 실질임금 상승으로 인해 그 기반이 무너져 내렸고 그렇게 노동계급이 나타나 지역적으로 단결하여 저항하게 되자 국가가 나서게 되었다.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국가가 조치를 취하는 순간이 오게 된 것이다. 그 맥락에서 공공부조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 새로운 "사회과학"이 출범하면서 오늘날의 복지논쟁을 예견하는 국제적인 공공부조 관련 논쟁이 전개되었다. 소위 "자격 있는 극빈자"인 노동무능력자만 공공부조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신체 건강한" 노동자도 혜택을 받아야 할 것인가" 그리고 혜택을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줘야 구직의욕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가? 공공부조의 주된 목적이 노동자를 일터에 묶어두는 것이었던 만큼, 위 사항은 사회규율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들에 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p137)

 

공공부조는 시혜가 아니라, 노동력 규제의 수단이었다. 남아도는 인력이 없게끔, 국가가 한 곳에 수용해서 그들에게 노동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였다.

 

 

16세기 잉글랜드에서는 아이건 어른이건 "구빈원(work-houses)"에 갇히는 조건 하에서만 부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거기서 그들은 각종 노동계획표의 실험대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인클로저와 가격혁명에서 비롯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한 세기가 지나면서 노동계급의 범죄자화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신축 구빈원이나 교정원(correction-houses)에 감금되어 노동하거나, 아니면 항상 채찍과 교수대의 올가미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법 외부에서 생존을 모색하고 국가를 공공연하게 적대시하는 대규모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되었다. (p138)

 

 

이 부분을 읽는데 문득 최근에 본 영드가 생각났다. <콜 더 미드와이프(Call the Midwife)>.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이스트엔드의 수녀원에서 조산사로 일했던 Jennifer Worth의 실제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든 영드인데, 시즌 1 에피소드 1의 지루함만 극복하면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이제는 나이든 Worth의 목소리가 바탕으로 깔리면서 그 시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시즌 1의 에피소드 5화에 구빈원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나이든 남매가 있다. 그들은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구빈원에 가 살아야 했다. 7살이었던 오빠는 어린 여동생의 보호자가 되었고 그 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 중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여동생은 구빈원에서 청소업무를 맡았고 온종일 닦고 쓸고 하는 일만 하느라 인간다운 생활을 못한다. 오빠는 그 곳을 뛰쳐나와 여동생을 그 곳에서 빼내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여동생을 구출(!)해나와 둘이 오손도손 살아가게 된다. 여동생은 수녀원에서 청소를 하는데 예전 구빈원에서의 습관을 못 버린 채 깨끗하게 하는 데 엄청 집착하고 오빠는 그런 여동생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구빈원은 그런 곳이었던 거다. 가두어 두고 노동을 착취하던 곳. 약간의 물질을 제공하면서 사람을 사육하던 곳. 그 곳은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탈출해야 하는 장소였던 거다.

 

그 에피소드에서 사실 그 남매는 부부와 같은 사이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산사들이 모여서 근친상간 아니냐며 수근거리자 그 얘기를 옆에서 듣던 나이든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구빈원이 어떤 데인 줄 알아요? 알면 그렇게 말 못합니다."

 

어쩌면 종교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그 상황에서도, 오히려 수녀님들은 이해했다. 세상 천지에 의지할 사람이 서로일 수 밖에 없었던 남매에게, 그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오빠가 암에 걸려 죽고 여동생은 그 오빠 곁에서 모르핀을 먹고 죽는 길을 택한다. 발견한 수녀님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 진정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거라고.

 

<캘리번과 마녀>에 나온 구빈원에 대한 내용을 읽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서 <콜 더 미드와이프>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니, 이런 짓이 참 할 짓이 못되는 일이었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하려면 그냥 그 현상만이 아니라 흐름을 보고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수녀님들처럼. 종교에 얽매여 제도에 얽매여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개인이 뿌리치지 못했던 불행한 국가적 속박이었음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 거구나...

 

 

 

 

 

 

 

 

 

 

 

 

 

 

 

 

 

 

책도 있고 Audio CD도 있어서 한번 사볼까 한다... 결국 또 지름신 안착. 하지만 <캘리번과 마녀>와 <Call the Midwife>와의 접점을 발견한 것은, 내게 때아닌 기쁨을 안겨준다. 이런 것 때문에 책을 읽는 게 아닐까. 그러니 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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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07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 사도 된다, 라는 문장에 오늘 페이퍼는 설득력이 가득가득합니다. 사셔도 됩니다, 비연님.

비연 2020-07-07 12:19   좋아요 0 | URL
그쵸? ㅎㅎㅎㅎㅎ 그래서 지금 보관함에 푱 넣고 장바구니로 옮기기 직전입니다 ㅋㅋㅋ
 

 

 

 

 

 

 

 

 

 

 

 

 

 

 

 

책을 보기도 전에 이 책이 내게 맞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근데 이 책은 그랬다. 계속 보관함에 두고 급기야 사면서, 이 책은 나한테 맞을 거야 라는 절렬한 느낌이 쫘악 끼쳤었다. 그리고 요즘, 드디어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그 느낌을 확인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실비아 페데리치라는 근사한 사람과의 만남에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다.

 

임금노동과 "자유로운" 노동자의 출현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맑즈주의적 시각은 재생산의 영역을 은폐하고 자연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또 <대캘리번>은 미셸 푸코의 신체 이론에도 비판적이다. 신체를 복종시키는 권력기술과 훈육에 대한 분석은 재생산과정을 무시하고, 여성사와 남성사를 무차별적인 단일체로 융합시키며, 여성의 "훈육"에 너무나 무관심하여 근대 들어 신체에 가해진 가장 소름끼치는 공격 중 하나인 마녀사냥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p22)

 

마르크스와 푸코는 훌륭한 학자이고 시대의 흐름과 사상을 바꿀 만한 저작을 내놓은 사람들이다. 그들 이론 전부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으나, 여성주의 책들에서 특히 최근의 책들에서 계속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어쩌면 어쩔 수 없는) 남성주의적 시각이다. 역사와 사상의 맥락에서 여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음으로 인한 맹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 언급에서도 나타났듯이 말이다. 이런 대목을 읽을 때마다 왠지 통쾌하다. 남들은 못 찾는 그 틈새를 찾아낸 그들도 멋지지만,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완전히 동감할 수 있다는 점도 멋지게 느껴진다.

 

<캘리번과 마녀>가 제기하는 더욱 심오한 질문은 자본주의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신체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석과 푸코식의 접근을 대비하는 데서 나타난다. 여성운동 초기부터 여성주의 활동가 및 이론가들은 남성지배의 근원과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의 구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신체"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주의자들은 여러가지 상이한 이데올로기들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에 위계적인 등급을 매기고 여성을 육체적 현실이라는 비속한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가부장적 권력의 공고화와 여성 노동력에 대한 남성의 착취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35~36)

 

사실상 우리가 <캘리번과 마녀>에서 배울 수 있는 정치적인 교훈은 사회, 경제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항상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그 사회적 관계 속에 짜여진 모순(자유에 대한 약속과 억압의 만연이라는 현실, 번영에 대한 약속과 빈곤의 만연이라는 현실)을 착취대상(여성, 식민지 신민,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 지구화로 인해 갈 곳 잃은 이민자들)의 "본성"을 폄하함으로써 정당화하거나 애매하게 흐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 따라서 사본주의를 해방과 연결 짓는다거나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능력 때문에 오래도록 지속되리라고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재생산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신체에 새겨 넣은 불평등의 그 물망 때문이며, 착취를 지구화할 수 있는 역량 때문이다. 이 과정은 지난 5백 년간 그랬듯 아직오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날에는 투쟁 또한 전 지구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p41)

 

 

이 내용들은 서론에 불과하다. 본문으로 들어가 역사적 맥락을 통해 어떻게 여성이 마녀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박해받게 되었는가를 짚어나가는 과정은 논리정연하고 사실적이며 재미있다. 사실, 그 내용 자체는 재미있다고 말하면 안되는 비참하고도 슬픈 역사이지만, 읽는 사람에게 이런 재미를 주면서 심도깊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도 드물다. 본래가 역사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걸 좋아하는 나같은 독자에게는 정말 최적의 책이 아닐 수 없다. 지금 1장까지 읽었는데, 앞으로도 여러 번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캘리번과 마녀>와 세트같은 책이라 하여, 아직 다 읽지도 않은 주제에 주문부터 덜컥 했다. 뭐 늘상 있는 일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지만 (그러나 그 속도에는 나조차도 놀랐다. 섬광같이 질렀다ㅜ) 이 책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점점 쌓여만 가고 있지만, 이런 책들, <캘리번과 마녀>라든가 하는 책들을 접하게 되면 막 도전의식이 생긴다. 더 열심히 읽자, 이런 결심 아닌 결심도 하게 되고. 

 

 

 

 

 

 

 

 

 

덕분에 7월의 책인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꺼내 놓은 것은 6월말이었으나 살짝 뒷전으로 밀려있다. <캘리번과 마녀> 다 읽고 봐야지 라는 마음도 있고 얇으니 금방 읽겠지 라는 마음도 있는데, 먼저 읽어나가는 분들의 페이퍼를 보니, 이게 얇아도 만만치 않아요, 라는 평이 지배적이라, 엥? 얼른 읽기 시작해야 하는 건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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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03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페미니즘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캘리번과 마녀>는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애정도서거든요.
비연님과 느낌 공유네요.🤗

비연 2020-07-04 10:10   좋아요 0 | URL
어멋. 단발머리님이 많이 안 읽으셨다니...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페미니즘 책 상위랭킹에 들겠다 기분이 들어요. 다들 이 책 좋다 하셔서 더욱 힘내어 읽고 있는데 (심지어 7월 책은 뒷전..) 아 재밌네요.
이런 책 너무 좋아요!

syo 2020-07-04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섬광같이 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7-04 12:24   좋아요 0 | URL
ㅋㅋㅋ 심지어 이미 받았답니다
 

 

 

 

 

 

 

 

 

 

 

 

 

 

 

독특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어떤 연유로 알게 되어 읽겠다고 샀는 지는 가물가물한데.. (아마 라로님 페이퍼를 읽고 골랐던 게 아닌가 어렴풋한 기억이..) 읽어보니 이 학자의 인생도 놀랍고 이런 분야가 가능한 것도 놀랍고 무엇보다 하나도 보이지 않는 저저 깊은 곳에 흔적이 남아 누군가 그 어딘가에 있었는 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왔다.

 

퍼트리샤 월트셔는 원래는 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이다. 화분학자라고도 해야 하나. 우연한 기회에 이 학문을 접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여 푹 빠진 나머지 평생의 업으로 삼아 공부한 사람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때가 된 듯하다.

내 인생은 내 바람대로 훌러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훌륭한 이야기는 모두 이렇게 시작한다. 50대 초반의 나는 어느 날, 인생의 방향을 바꿀 한 통의 전화를 받으며 법의학 수사의 세계로 들어섰다. (p45)

 

인생은 이런 것인가. 어느 날 받은 한 통의 전화로, 인생의 나머지를 다 바칠 만한 길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 물론 그 이전에는 어이없는 일로 다른 일을 했어야 했다. 어딜 가나 남자들이란.. 이란 생각을 하게 한 대목도 있었다.

 

 

나중에 나와 결혼한 당시 남자 친구는 내가 대소변과 혈액을 분석하고 쥐를 다루는 일보다는 더 '여자다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다운' 이란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사무직과 비서직을 위한 강의를 소개하는 광고를 보고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여긴 나는 강의를 신청했고 돈을 받는 상근직 일자리를 얻었다...(중략)... 여기서 하는 일들은 정말 이상해 보였다. 어두운 양복 차림의 이기적이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위해 바보같이 일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기계적인 일상에 치이다 보니 매혹적인 지식들을 얻을 기회가 적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p46~47)

 

나도 궁금하다. '여자다운' 일이란 무엇일까.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선생님이었는데 수업 시간에 자기가 왜 국문과를 선택했는 지를 얘기해줬다. 입학할 때 학부제로 들어가서 2학년 되기 전에 전공을 선택해야 했고 자기는 러시아문학이 좋아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그 당시 남자친구가 "나는 국문과 다니는 여자친구가 좋다" 라는 말 한 마디에 국문학을 선택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뭐 저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있어.. 라고 코웃음쳤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남자친구랑도 헤어졌다면서 자기도 그 때 왜 그런 선택을 그렇게 했는 지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아고. 그러나 살아보니 그 때 그 때의 선택에서 가끔 그런 바보스러운 이유로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다고 해도 그럴 때가 있는 것임을 알고 나니, 그 선생님께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었다. 뭐 어쨌든 재미있는 이유 아닌가.

 

통찰력 있는 경찰들이 범죄의 현장을 뒤쫓기 위해 식물/화분학자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인연이 닿은 관계는 주욱 이어진다. 범죄조직의 현장을 찾기 위해 차의 곳곳에 묻은 토양 표본들과 현장의 표본을 대조하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시체가 파묻힌 곳에 범인들이 갔었는 지를 찾기 위해 범인의 소지품을 다 조사하고 그 균류와 먼지의 성분, 토양의 성분 등을 대조하여 알아내기도 한다. 에드몽 로카르의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라는 말이 여실히 입증되는 과정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책은 단지 그런 직업적인 면만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퍼트리샤 윌트셔라는 사람의 자라온 이야기들. 살아온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인생과 어찌 연결되는 지를 말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죽음이, 사람의 생과 사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지도 더럽지도 않은 것임을, 누구나 그 길을 가고 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덕분에 이 험한 일을 하는 데에도 두려움 없이 임할 수 있었노라 이야기한다.

 

종종 죽음, 강간을 비롯한 여러 범죄에 관한 경험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질문을 받는다. 내 인생에서 죽음을 통해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명은 내 딸과 할머니였다. 아직도 지혜와 위안을 주던 할머니의 빈자리가 그립다. 내 딸 역시 내게 아픔을 주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가슴속 깊이 간직한 그 아이를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생각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그동안 마주친 사체들 역시 이들에 대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 깨닫게 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고한 희생자들을 계속해서 존중하고 보살필 수 있었다. 비록 검사대 위의 사체가 나와는 별 상관이 없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이 사체와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나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사람이 객관적이지 않으면 쓸모 있는 일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체가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p359~360)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The Nature of Life and Death> 인가보다. 사건을 추적하고 균류와 먼지를 분석하고 실험으로 그들을 대조하여 범죄를 좀더 명확하게 보는 데 일조를 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지만, 역시, 사람이 산다는 것, 나고 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 이 책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거기에서 나서 그 곳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 슬프지만 어쩌면 인정해야 하는 일인지도. 인간의 육체는 죽고 나면 그저 기존의 자연 모습 그대로 분해되어 자연의 분자와 원자 속으로 사라질 뿐이라는 것.

 

 

나는 범죄 현장에서 구더기가 끓는 시체를 한동안 살폈고, 우리가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시체를 썩게 내버려 두는 미국 테네시주의 '시체 농장'에도 가봤다. 나는 여러분을 피가 흠뻑 젖은 카펫과 쿠션이 있고 회색과 갈색 곰팡이가 잔뜩 자라 희생자가 살해된 순간을 밝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던, 던디의 한 아파트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고 나무들이 무성한 숲과 외딴 황야에 버려진 시체들, 영국 남부 한복판에서 환각을 일으키는 독성 식물과 함께 벌어지는 샤머니즘 의식, 실종된 수많은 소녀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 채 얕게 파묻힌 현장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여정에서 또한 여러분이 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도록 이끌고자 한다. 거기에는 나의 사랑과 상실 그리고 어린 내가 자연 세계의 드넓은 경이에 눈떴던 웨일스의 작고 좁다란 골짜기가 있다. 그 끝에 지금껏 내가 식물과 동물, 미생물을 관찰하면서 발견한 경이로움을, 어떻게 우리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작동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여러분에게 줄 수 있다면, 이 작업은 성공인 셈이다. (p19)

 

 

책을 읽다가 '시체 농장'에 대한 글을 읽고 허걱 했는데, 그러니까 1970년대에 퓔리엄 배스 라는 미국 인류학자가 녹스빌 테네시 대학과 인접한 삼림지대에 부지를 받아 시설이라는 걸 세운 게 시초라고 한다. 말하자면 시체를 산재시켜 놓고 호나경이 시체가 부패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기 위해 시체들을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곳이라고.. 헐... 심지어 퍼트리샤 콘웰이 이에 대한 책도 썼다고 해서 찾아봤다.

 

 

 

 

 

 

 

 

 

 

 

 

 

 

 

 

 

번역판까지 있었다니. 이건 제목만 봐도 읽기가 싫어지는 류의... 이 책에 이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써놓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시설에 기증된 시신은 수많은 종류의 버려진 시체를 시뮬레이션하는 데 사용한다. 시신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때로는 특이하고 기괴한 상태에 방치되며 그 부패 과정이 상세히 기록된다. 이런 과정이 충분히 자주 반복되면 특정 조건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이 시설이 유명해지자 수많은 박사 과정 학생들이 사체나 그 주변 토양 그리고 그곳에 대량 서식하는 곤충들에 관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p197)

 

 

여기까지. 곧 점심 시간인데... 학문을 수행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정말 깨끗하지도 완벽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것임을 다시한번 절감. 뭔가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은 가장 지독하고 무시무시하고 지저분한 과정인 지도 모르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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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29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4월에 서점 갔다가 저 책을 보고 너무 사고싶어져서 보관함에 넣어뒀었거든요. 여즉 안사고 있었네요. 7월 구매에 넣겠습니다. 너무 궁금해요. 읽어보니 ‘호프 자런‘의 [랩걸]과 비슷한 것 같아요. 아, 너무 읽고 싶ㄴ에요. 오늘도 책이 도착했고 내일도 도착할텐데 또 사고 싶네요. 이런...

문득 인생을 살면서 성장과정에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저 고등학교때 화학선생님은 여자분이셨는데 본인은 수학과를 가려고 생각했대요. 그걸 과학선생님이 알고 오시더니 ‘숫자만 계산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공부가 과학이야, 과학이 어떠니‘ 라고 하셔서 화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하셨거든요.


저 대학때 남자친구가 긴 머리 자르지 말라고 긴 머리가 좋다고 해서 내내 제 긴머리를 자랑스러워했던 생각나네요. 아 짜증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점심 맛있게 드세요, 비연님!

비연 2020-06-29 12:28   좋아요 0 | URL
재밌어요, 이 책. 정말 다양한 식물종과 균류 등의 이름들이 나와서.. 가끔 헷갈리는 것만 빼고는 ㅎㅎㅎ
저도 지금 신간들 보면서 아 책을 또 사야 하나... 일단 보관함에 푱푱.. 까지만 하고 있는데. 내일까지는 버티려구요. 양심상 그래도, 7월에 샀다고 하고 싶어서... (조삼모사 ㅜ)

긴머리..ㅋㅋㅋㅋ 전 예전 남친이 짧은 스트레이트 머리 귀엽다 해서 짧은 스트레이트 머리만 고수했던 한 때가. 꼬불이 파마하고 싶어도 참고.. 이런. 하나쯤 짜증나는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 흠냐.

점심.. 먹어야죠. 맛나게 맛나게. 먹는 게 맛날 때가 좋은 거다 하고 푸짐하게 먹을 생각.. ㅋㅋ
다락방님도 맛난 점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