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진도가 참 안 나간다. 시작할 때는 비장했는데.. 돌아보니 벌써 20일이고 (세상에!) 읽은 페이지수는 몇 장 안된다. 이건 뭥미 ;;; 암튼간에, 흑인이라는 대상에 대한 글을 읽으니 그동안 보았던 영화들이 자꾸 생각난다. 그러니까 흑인을 직접 대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 이미지를 아마도 영화에서 구하게 되는 것 같다.

 

 

1960년대 후반, 블랙파워 운동이 "흑인은 아름답다"를 구호로 외치면서 등장하기 전까지, 흑인은 피부색이 검을수록 멸시받았다. 즉 흑인을 피부색의 농도로 나누어 서로를 이간질시키는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은 역사적으로 "피 한방울의 법칙"을 따라 "흑인"으로 여겨졌다. "피 한 방울"이라도 흑인의 피가 섞이면 흑인이라는 이 불문율은 백인의 "인종적 순수성"을 내세워 백인의 결합으로 태어난 이들만을 백인으로 간주함으로써 백인집단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악의적인 관습법이다. 밝은 피부를 지난 흑인은 흑인과 백인 사이의 인종혼합의 역사를 체현한 주체이다. 헤게모니적 역사관은 미국을 유럽계 백인 이주민과 그 후손의 나라로 규정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등과 백인 사이의 인종혼합이야말로 미국 역사의 근간을 이루는 토대 중 하나이다. (p166, 각주)

 

 

 

 

<슬픔은 그대 가슴에 (원제: Imitation of Life)> 라는 영화(1959년作)가 있었다. 라나 터너와 산드라 디가 나왔기 때문에 이 두 배우로만 기억될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영화를 보았을 때 가장 인상에 남는 배우들은 주아니타 무어와 수잔 코너 였다. 아주 어릴 때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보았던가 그랬었는데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다.

 

줄거리는 두 개의 축으로 움직인다. 배우를 지망하는 로라(라나 터너)와 딸 수지(산드라 디). 그리고 우연히 이들과 마주친 애니(주아니타 무어)와 딸 사라(수잔 코너). 여기에서 애니는 흑인이고 사라는 백인이다. 즉, 사라는 흑백 혼혈이었으나 백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애니가 로라네의 가정부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그들의 운명은 얽히게 되고 로라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출세의 길을 가게 되었을 때 그 뒤에는 헌신적으로 집과 수지를 돌보던 애니의 지원이 있었다 (이것이 <흑.페.사>에서 얘기하는 흑인 여성의 유모라는 통제적 이미지일 것이다).

 

어쨌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애니와 사라였다. 애니는 사라에게 지극정성이었고 정말 사랑으로 키웠지만 사라는 자신은 백인의 모습인데 엄마가 흑인인 것을 너무나 싫어했다. 학교에 오는 것도 싫어했고 남자친구에게도 백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처럼 행세하다가 들켜서 차이곤 한다. 그러니까 위에 인용한 대목처럼, 혼혈일 경우 흑인으로 취급받는다.. 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사라는 집을 나가버렸고 술집 댄서로 일하게 된다. 딸을 찾아갔다가 이것을 보게 된 애니. 심지어 딸에게 외면까지 당하게 된 후 원래 앓았던 지병이 악화되어 죽게 되고, 죽기 전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 만큼은 화려하게 해달라 말하며 모아둔 돈을 로라에게 맡긴다.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사라는 장례식에 뛰어오고... 오열하고..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잘하지..ㅜ) 관이 나가는 뒤를 따라가며 엄마 엄마 미안해 라고 말하던 장면은 그 때나 지금이나 눈물이 쏟아지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어린 나의 눈에도, 흑백 갈등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갈등하는 사라와 그 중에 희생으로 살아야 했던 애니의 운명이 너무나 가슴아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흑인이 노예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난 후, 백인을 모방하며 살아가던 그 모습을 사라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그래서 제목이 Imitation of Life 인가),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해방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남아 있던 그 당시의 세태를 잘 그린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읽고 있는 <흑.페.사>의 전반부 많은 내용들이 이 영화에 다 담겨 있다고도 생각되고. 아카데미나 골든 글러브가 영화의 질을 다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애니와 사라로 나왔던 두 배우는 조연상 후보로 올랐었고 결국 사라로 나왔던 수잔 코너가 골든 글러브를 탔던 것으로 기억된다. 영화 자체로도 잘 된 영화였지만, <흑.페.사>를 읽고 나면 다시 보면서 책에 나왔던 흑인여성들의 이야기에 대해 되짚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네이버 다운로드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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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20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말씀하신 것처럼 흑페사의 내용들이 다 축약되어 있는 영화네요. 저는 존재도 몰랐던 영화에요.

비연 2020-05-20 09:46   좋아요 0 | URL
한번 보시면 좋을 듯... 저도 다시 한번 볼까 생각 중요 ;)

수이 2020-05-20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씀하신 영화 보면 더 이해가 잘 될듯 싶어요 ^^

비연 2020-05-20 11:56   좋아요 0 | URL
본의 아니게 영화 홍보가 된 것 같은 ㅎㅎ 그러나 한번 볼만한 영화는 맞습니다. 특히 <흑.페.사> 여러분^^

공쟝쟝 2020-05-21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흑페사 ㅋㅋㅋ (저 백십페이진데..) 엉엉...

비연 2020-05-21 10:40   좋아요 0 | URL
저도 뭐... 이제 249.................. 전체 페이지가 470 이라죠.. (먼산;;;)
 

지난 금요일에 심한 과음을 했다. 과음도 모자라 '심한'. 비도 오고, 그래서 막걸리에 파전이 너무나 맛났다고 변명해본다. 함께 한 약간은 생경한 친구들이 왠지 너무 좋았다고도 변명해본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그날 술이 너무 먹고 싶었던 것이고 덕분에 자제없이 달렸다.. 라는 게 더 맞는 말일 게야.  

 

과음의 뒤는 뭐.. 전사. 내 인생에서 5/16 토요일 하루는 그냥 없는 시간이었다고 보면 되겠다. 누워 자고, 밥 먹기 싫었지만 속이 안 좋아 겨우 해먹고 (누가 해주면 좋겠다고 골백번은 생각했다) 또 자고... 또 자고... 그러다 아 빨래는 하자 해서 어기적 어기적 일어나 빨래 돌리고 또 자고.. 세탁기가 삐삐 거릴 때마다 일어나 좀비처럼 걸어가 빨래를 꺼내고 아무 생각없이 건조대에 널고.. 또 자고... 아. 이게 뭐냐. 다신 술 먹지 말자. 라고 생각하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나 이제부터 금주할거야." 라고 메세지 보냈더니 당장 답이 왔다. "네가 금주한다는 말은 못 믿겠다.".. 날 너무 잘 아는 친구들. 킁. 그래 금주는 못할 거 같고 절주할 거야. ㅜ

 

이렇게 몸이 안 좋은 날들에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는 것은 내 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되어 내리 스릴러 소설만 읽어대었다. 하나는 일본소설, 하나는 스웨덴소설. 쟝르소설이라는 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나오지만 특히나 일본과 북유럽은 유독 많다. 나라마다 특색이 있고.. 아뭏든 두 권 홀랑 다 읽었다, 그저 드러누워서.

 

 

 

읽을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 읽은 책인데... 중편 정도가 세 편 정도. 첫 편의 내용이 참 찝찝했다. 다락방님이 완전 싫어하는 내용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읽으면서 내내 좀 불편했다고나 할까. 끔찍했다고나 할까. 마치 신문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소설로 읽는 느낌이었고, 이건 뭐... 나머지 두 편은 소프트했다.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북스피어에서는 '행복한 탐정' 시리즈라고 하지만)는 미야베 미유키가 유일하게 내는 시리즈물인데, 갈수록 탐정일 하는 주인공의 발전이 눈에 띈다. 그냥 부잣집 사위로 그 부잣집 회사의 사보 편집자로 일하다가, 잘 맞지 않는 옷인양 거북하게 지내다가, 결국 아내의 불륜이 드러나 이혼한 후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재주, 탐정하는 재주를 직업 삼아 지내게 되면서 만나는 사람들 폭이 넓어지고 탐정으로서의 역할도 조금씩 늘어가는 게 보인다. 첫 편의 찝찝함을 넘기고 나니 나머지 두 편은 너무 말랑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금은 평이하고 일반적인 내용이었긴 하지만. 다음 권에서는 장인 이야기와 딸 이야기가 더 추가된다고 해서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생각 중이다.

 

 

 

 

크리스티나 올손의 <파묻힌 거짓말>을 얼마 전에 보고, 마지막에 남겨진 여운 때문에 다음 책을 안 볼 수가 없었다. 거짓말 시리즈인데다 첫 권에서 해결 안된 얘기들이 <피할 수 없는 거짓말> 이 책에서 다 해결된다고 하니 ... 어떻게 안 보겠는가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제목만 달랐지, 한 권을 두 권으로 나눈 것에 불과했다 이거다. 아뭏든, <피할 수 없는 거짓말>은 재밌다. 마틴 베너 변호사의 과거와 현재가 겹치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스토리였음에도 그 긴박함과 반전은 즐거움이었다고 얘기하고 싶다. 물론 루시와의 관계에서는 이넘의 마틴 베너,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생각은 되지만서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내 현재를 위협하며 다가올 때,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과거가 누구나에게 다 있다, 라고 말할 순 없지만. 과거는 교정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고스란히 당할 수 밖에 없는 대상인지라 현재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건 피하고 싶을 수도 있겠고. 간만에 조금 특이한 구성과 독특한 변호사 이야기를 만나서 쟝르소설을 좋아하는 자로서는,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싶다. 다음 책도 나온다고 하니 기다렸다 봐야지.

 

 

 

 

 

그래서 이 <피할 수 없는 거짓말>을 다 읽은 게 5월 17일 일요일에서 5월 18일 월요일로 넘어가는 즈음이었다. 다 읽고 옆에 던진 채 자려고 하는데, 다음에는 뭘 읽을까 하다가 아 <중독자의 죽음>을 읽자 싶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책을 책장에 꽂은 기억이 안 나는 거다. 분명, 샀고 구매리스트에도 있고 내가 박스를 뜯었을 때 본 기억도 나는데 말이다.

 

 

벌떡 일어나 서재로 가서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다 두었지? 어디다 두었지? 떨어졌나 싶어 뒷 칸도 보고 아래 칸도 보고... 없다. 이상하네.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이러면서 새벽에 30분이나 샅샅이 뒤졌으나...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기억을 되살려보니, 이 책들이 도착한 날, 택배를 몇 개 더 받았었는데, 아무래도 이 책을 제대로 안 빼고 한꺼번에 버린 것 같다.. 라는 생각에 도달. 절망. 다시 뒤지고 또 뒤지고. 없다. 없다. 아 책을 그냥 날로 버린 것 같다!

 

이게 다... 술 탓인 게다. 토요일날 받았는데, 술김에 눈으로만 보고 손으로는 그 책을 안 뺀 모양이다. 정말이지 하다하다 별 일을 다 하는 비연.. 이 시리즈는 내가 애정하는 시리즈라, 결국 다시 보관함에 넣어두고 다음에 재구입하려 하고 있다. 에잇.

 

 

 

 

 

 

 

그래도 다음에 읽을 소설책 한 권은 정하고 자자 하고 절망감 속에 고른 책이 이 책, 애니 프루의 <시핑 뉴스>이다. 진작에 읽고 싶어서 사두었었는데 아직까지도 책장에 고스란히 놓여 있길래 냉큼 집어서 가지고 나왔다. <흑.페.사>는 가지고 다니기 너무 무거워 이따가 집에 가서 읽을 생각이다. 지난 주에 그거 들고 다니다가 어깨 나가는 줄 알았다...

 

 

 

 

 

 

 

 

 

 

 

 

이번 주는 맑은 정신으로 지내기. 술약속은 있으나 (여러 개네..=.=;) 과음하지 않기. 책 그냥 내다버린 스스로를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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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18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어쩝니까 비연님. 책 한 권을 그렇게 날로 버리셨..... 그렇지만, 어쩌면, 다른 어딘가에 빼두지는 않았을까요? 저도 분명히 샀고 집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도무지 찾을 수 없던 경우가 더러 있었거든요. 나중에 불쑥 발견되더라고요. 물론, 사뒀다는 걸 까먹고 또 사서 나중에 어랏 왜 두권이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입니다. 흠흠. 아무튼 유감을 표합니다.

미미여사 신간의 첫번째 단편은 진짜 너무 싫어서 미칠뻔 했어요. 저는 그래서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감각이 살면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장착해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고 보거든요. ‘아닌 것 같다‘라는 감각이 찾아들었다면 첫번째 단편에서처럼 피해자들이 자꾸 발생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은데요, 그 감각이 없거나 있다 해도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찾아들었을 것이고... 아이고 참 너무 싫은 단편이었고, 그게 실제 없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더 찝찝했어요 ㅠㅠ

저는 오늘부터 흑페사 읽을 생각입니다만, 얼마나 읽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오늘 출근길에도 읽다가 세정거장 남기고 눈을 감고 있었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연 2020-05-18 10:02   좋아요 0 | URL
흑흑흑... 다른 어딘가에 빼두었을까요? 그러나 지금 발견이 안 되고.. 너무나 읽고 싶고.. 그래서 그냥 한 권 다시 구매할 건데.. 나중에 두권? 왜 두권? 하게 될 날이 올까봐 사뭇 두렵슴다..ㅜ 술이 웬수.

저도 미미여사의 첫번째 단편은.. 뭐랄까. 이게 뉴스 같은데서 실제 읽은 내용이랑 비슷해.. 라는 생각 때문에 더 싫었어요. 이런 데 말려가는 사람들의 행동도 화가 나고 안타깝고. 아니면 아닌 거지.. 자꾸 이것만 이런 거야 하면서 발을 못 빼다가 결국 큰 일에 덜컥 걸려버리고. 정말이지, 아닌 것 같다 싶으면 바로 거부하는 자세를 늘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흑페사는... 왠지 눈이 감기는 책이에요 ㅎㅎㅎ 전 지난 주에 들고 다니면 읽다가 무겁기는 무거운데 몇 장 못 보길래 그냥 과감히 포기하고 집에서 편하게 읽는 방향으로 선회했어요. 아. 읽어야죠. 29일까지. 끙.

다락방님, 오늘도 홧팅에요!

다락방 2020-05-18 10:05   좋아요 1 | URL
당장 읽고 싶으니까 일단 구매해요. 그리고 나중에 발견되면 중고로 팔아버리죠, 뭐. 괜찮아요. 읽는 동안은 행복했을테니까.....

비연 2020-05-18 10:07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마 책값이 좀 싸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

단발머리 2020-05-18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책은 비연님 댁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왠지 모를 예상 ㅋㅋㅋㅋㅋㅋㅋㅋ을 하게 됩니다.
찾을 때는 안 보이지만 포기할 때 찾아지는 신비의 세계*^^

비연 2020-05-18 15:20   좋아요 0 | URL
흑. 어제 눈 부릅뜨고 찾을 땐 안 보였는데.. 그렇죠 포기하면 보일 듯. 아.. 아...
결국 하나 사야 나타날 느낌... 이렇게 돈을 쓰네요 허허허허

공쟝쟝 2020-05-21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쟝르! 라니! 저 카톡 상태메시지 쟝르개척 이엇는데 ㅋㅋ 비연님의 토요일 제 토요일이랑 똑같아욬ㅋㅋㅋㅋ (전 그러고 저녁에 또 마시러나가서 해장술 ㅋㅋㅋ)
저두 비연님따라 쟝르 소설 여름에는 한권 봐야겠어요 ㅎㅎㅎ

비연 2020-05-21 10:41   좋아요 0 | URL
쟝르개척 ㅎㅎㅎㅎ 그래도 쟝쟝님은 젊어서 또 해장술을... 부럽.
전 요즘 술 끊고.. 좀더 미래에 먹을 술을 위해.. (흠? 뭐라고???) 여름의 쟝르소설, 짱이죠!
 

 

 

 

 

 

 

 

 

 

 

 

 

 

얘야, 백인남자가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배자란다. 흑인남자가 힘을 쓸 수 있는 세상이 저 바다 어디엔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지. 백인남자는 자기가 할 일을 흑인남자에게 던져 주고 그 짐을 들라고 한단다. 흑인남자는 어쩔 수 없이 그 짐을 받아들기는 하지만 짊어지지는 않는단다. 대신 그 짐을 여자식구들한테 들이민단다. 내가 보기에 흑인여자야말로 이 세상의 짐을 지는 노새란다. - 조라 닐 허스톤, 1937, 16 (p93)

 

 

이 책을 읽다보니 두 개의 영화가 생각났다.

 

 

 

 

 

 

 

 

 

 

 

 

 

 

 

 

 

<HELP>는 원래 원작이 있다. 문학동네에서 나왔는데 캐스린 스토킷이라는 작가가 썼다.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1960년대의 흑인 가정부들이 한 젊은 백인 여성과 연대하여 변혁을 일구어내는 이야기이다. 그 당시에는 백인 가정에 하루 종일 있는 흑인 가정부들이 있었고 그들이 생활의 전반과 육아를 담당하였었다. 충격이었던 것은 화장실을 같이 쓰지 않기 위해 따로 만드는데, 집안도 아니고 바깥에 덩그러니 만들어서 화장실 가고 싶을 때는 집문을 열고 나가서 가야 한다는 대목에서였다. 그들에게도 남편과 자식이 있지만, 가정부로 하루종일 일하다보니 오히려 자신의 가정에는 소홀해 지게 마련이고, 백인 가정에서는 가족인 것도 아니고 가족이 아닌 것도 아닌 상태로 있게 되는 흑인여성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는 이것을 "내부의 외부인(outsider-within)"이라고 했다(p38).

 

 

흑인여성은 백인 "가정"에서 일하면서 가사노동의 의무를 다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자신들이 양육하는 백인 어린이와 그리고 고용주와 강력한 유대를 형성했다. 어떤 면에서 백인가정의 내부인(insider)이 된다는 것은 관계자 모두를 만족시켰다. 흑인 가사노동자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여성들이 인종차별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자기들을 신비화함으로써 자신들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점을 꿰뚫어보는 탈신비화 과정을 겪으며 이 과정이 스스로를 긍정하는 경험으로 이어짐을 관찰할 수 있다. 동시에 이 흑인여성은 자기들이 일하는 백인 "가정"에 결코 소속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일 뿐이며 백인 가정의 외부인이다. 흑인여성 가사노동자는 내부의 외부인(ousider-within)이라는 흥미로운 사회적 위치에 처하며 내부의 외부인 위치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흑인여성 고유의 관점을 가지게 한 특수한 주변적 위치이기도 하다. (p37-38)

 

이 책/영화는 인종차별이라는 까다롭고 어쩌면 어두울 수 있는 주제를 따뜻하게 풀어나간다. 책이든 영화든 재미있고 세 여성의 연대는 감동을 자아낸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으면서 흑인여성이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와 그 시대 이후를 거쳐 가사노동자로서 경험했어야 하는 대목들이 나올 때마다 이 책/영화가 떠오른다. 정확히 책에서 애기한 상황을 소설과 영화로 나타내어서 머릿 속에서 좀더 이해가 쉽다고나 할까.

 

<헬프>는 마틴 루서 킹을 위시한 흑인 지도자들이 시민권 운동을 벌이던 시기,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서서히 미국 전역을 휩쓸던 시기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아이들은 남에게 맡기거나 집에 버려둔 채, 생계를 위해 백인 가정에 들어가 그 집을 위해 일하고 백인 아이를 돌보아야 했던 사람들. 작가 캐스린 스토킷은 자기에게 어머니와 같았던 흑인 가정부 디메트리를 떠올리며, 자신이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그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를 자문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 민감하고 어려운 소재를 소설로 탄생시킨다.


인종에 대한 차별, 남녀에 대한 차별, 계급에 대한 차별,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놓은 거대하고 높은 벽. <헬프>는 접점이 별로 없어 보이는 세 여성이 함께 이 거대한 벽에 도전하는 이야기, 그러한 작은 힘들이 하나둘 모여 거대한 벽을 허물고 세상과 삶을 보다 인간답게 그리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이야기이다. (알라딘 책 소개 中)

 

 

 

 

 

 

 

 

 

 

 

 

 

 

 

 

 

<Hidden Figures>는 영화로 봤다. 사실 책이 있는 줄 몰랐는데 원작이 있었네. (ㅜ)

 

나사와 나사의 전신인 미 항공자문위원회(NACA)에서 일한 흑인 여성 수학자들에 대한 실화 에세이. 1950년대와 1960년대,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고 백여 년이 흐른 뒤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흑백 차별이 성행하고 있었다. 흑인 여성이 버스의 백인 칸에 앉았다가 승차를 거부당했고, 백인 식당은 흑인에게 음식을 서빙하지 않았으며, 흑인 입학을 명령받은 학교는 자진 폐교하여 아예 학생을 받지 않기도 했다.

남녀 차별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암흑의 시기에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재능을 빛내 인류를 달에 보낸 인물들이 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수십 혹은 수백 명이다. 그 숫자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그야말로 '히든 피겨스' - 가려진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기계가 아닌 인간을 칭하던 시절, 인류가 우주를 꿈꾸기 시작하던 그 시절에 흑인이자 여성으로서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꽃피운 그녀들의 이야기는 한계를 극복하고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간 도전과 용기, 감동 그 자체이다.  (알라딘 책 소개 中>

 

 

이것은 실화다. 노예 해방 이후, 여전히 인종 차별이 만연해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 당하고 식당이나 대중교통에서 거부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들의 경우는 말해 무엇하랴. 재능이 있어도 수업을 들을 수 없고 직장을 얻어도 무시당하고 그렇게 구석에 쳐박혀 있어야 했던 여성들이, 수학자들이, 우주선을 띄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는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무시당하던 흑인여성들이 실력으로 의지로 노력으로 하나하나 깨나가고 사람들에게 진한 인상을 주고, 그래서 어느 순간 빛을 발하는 그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흑인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세상의 벽을 향해 한걸음 나아갔기에 지금 21세기에 조금은 나은 세상이 왔다고 믿는다.

 

“그(그녀)를 데려오라.”

 

1962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구 궤도 비행을 앞둔 우주비행사 존 글렌은 뜻 밖의 요구를 한다. “그(그녀)가 괜찮다고 해야만 떠나겠다.”

 

사상 첫 지구 궤도 비행이다. 한 치 오차가 없어야 한다. 자칫하면 우주 미아가 된다. 그런 만큼 당대 최고 기술들이 총동원됐다. 가장 중요한 ‘비행 궤도’는 IBM7090로 계산했다. 지구상에 있는 컴퓨터 중에선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제품이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기계는 없다.

 

그런데 그 순간, 글렌은 ‘그’를 찾았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그가 괜찮다고 해야만 떠나겠다.”

 

절체절명의 순간 글렌이 찾은 인물은 캐서린 존슨이었다. IBM 컴퓨터의 계산을 검증한 존슨은 “OK” 신호를 줬다. 그제야 존 글렌은 사상 첫 지구궤도 비행을 떠났다. (영화 中)

 

 

이 장면은 정말 짜릿했다. 존 글렌은 우주에 가야 하고 숫자 하나 틀리면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캐서린 존슨을 찾는다. 그가 괜챦다고 해야만 떠나겠다. 정말 저릿. 보면서 발끝에서부터 전율이 올라왔었다. 이런 신뢰감을 주었던 캐서린 존슨이 올해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NASA는 캐서린 존슨 별세 소식을 알리면서 “인종 평등의 선구자이자, 미국이 우주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 “캐서린 존슨은 NASA에서 가장 뛰어난 영감을 가진 인물 중 한 명”이라면서 우주 영웅의 죽음을 애도했다." (ZDNet 기사 中) 라고 한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도 흑인여성 지식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중요한 화두로 삼는다. 

 

 

오직 흑인여성만이 이러한 중심을 차지하며 흑인여성의 영혼을 파고드는 "강철을 느낄" 수 있다. 흑인여성의 경험은 다른 이들의 경험과 유사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독특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흑인여성이 주도적으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이들이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생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현실을 정의하는 일차적 책임은 그 현실을 사는 사람, 그러한 경험을 실제로 겪는 사람에게 있다는 뜻이다. (p76)

 

 

100페이지 정도 읽은 지금, 사실 저자가 처음에 얘기한 것과는 달리 그렇게 녹록한 책이 아님을 깨닫는다. 빡빡한 글들 속에서 자꾸만 정신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려는 걸 간신히 붙잡고 읽고 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아주 먼 세상의 일이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수많은 경험들 속에서 뽑아낼 수 있는 이론이라는 걸 생각하고 읽는다면 좀 나을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흑인여성' 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럴 수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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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5-12 15: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오, 지금 시작 안한 사람은 저뿐인가 하노라... 이렇게 비연님도 글 써주시고..겟타님도 시작한다 하시고 .. 아직 펼쳐보지 않은 저는 초조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거 시작 전에 내가 좀 보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 아이참 큰일났네.

써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쓴 글 읽는 게 참 좋으네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될지 읽기전부터 기대되기도 하고요. 비연님, 열심히 읽고 계속 열심히 써주세요!

비연 2020-05-12 16:56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은... 늦게 시작해도 금새 읽을텐데요 뭐 ^^ 저도 읽고 싶은 책들 일단 뒤로 미루고 보고 있긴 한데.. 자꾸만 곁눈질을 하게 되네요 ㅎㅎ;;; 다락방님이 이 책 스타트 하시고 올릴 글들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

단발머리 2020-05-12 20:34   좋아요 2 | URL
늦게 시작해도 금새 읽을텐데요. 이 정확한 예언의 말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5-13 09:2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5-13 13:40   좋아요 1 | URL
저도 시작한 후 금세 읽기를 바라지만 여러분들의 글을 보노라면 금세 읽히는 글이 아닌 것 같아서...지금 다른 책을 펴놓고도 고민이 많아요. 도서관에 책 안읽고 반납할까...

비연 2020-05-13 13:45   좋아요 0 | URL
병행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이게 마치 교과서처럼 읽혀지는 것 같아요. 매일 조금씩 읽어야 달성이 될 느낌. 한꺼번에 다 읽기엔 머리에 부하가...;;;;

단발머리 2020-05-12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부의 외부인, 저도 인덱스 해두었던 부분이에요. 백인 가정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가정을 돌볼 수 없었던 여성들에 대해서 저도 할 말이 있는데 그건 다음 페이퍼로 찾아뵙겠습니다.
저 아직 82쪽이고요, 이제 제대로 시동을 걸어볼까 하고 있습니다요^^

비연 2020-05-13 09:26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의 페이퍼, 기대하고 있겠나이다 ;)
전 이제 110페이지 정도인데... 우웅.. 좀더 속도를 내야겠어요~ 부릉부릉

공쟝쟝 2020-05-13 12:32   좋아요 1 | URL
저두 형광펜 쫙 체크 해놨어요~ 우히히

비연 2020-05-13 13: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5-13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랄까 흑인여성의 이야기가 (멀리 동양 여성인 제게는) 약간은 멀게 느껴져서 인지, 저도 책을 보면서 영화들을 떠올려요. 영화속에서 스테레오타입화되었던 그녀들. 히든피겨스는 좀 봐야것네요. 인용이 많이되네 ㅋㅋ

비연 2020-05-13 13:02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히든 피겨스 재밌어요. 추천.

블랙겟타 2020-05-13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두 영화 다 봤어요.. ㅋㅋ
헬프 같은 경우는 예전 사귀었던 사람과 처음 본 영화인걸로..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둘 다 좋은 영화죠 ㅋㅋㅋ

다락방 2020-05-13 13:17   좋아요 2 | URL
저도 두 편 다 봤어요!

블랙겟타 2020-05-13 13:22   좋아요 1 | URL
두 영화에 다 나오는 배우도 있어요 ㅋㅋㅋ 옥타비아 스펜서라고.

다락방 2020-05-13 13:40   좋아요 2 | URL
그런데 둘다 뭐랄까, 결국은 백인이 끼어야만 구원되는 서사인 것 같아서 그건 좀 별로였어요. 히든 피겨스도 결국 화장실 간판 뽀개는게 케빈 코스트너의 역할이었잖아요.
그래서인지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록산 게이‘도 영화 [헬프]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죠.

˝나는 나 자신을 진보적이고 마음이 열린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치우친 부분이 있을 것이고 《헬프》를 읽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었는지 아프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는 《헬프》가 백인 여성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이었다. 시나리오는 백인 남성들이 썼고 백인 남성이 연출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p.302)˝

˝사실 역사의 중심은 흑인이고 백인이 ‘도우미‘였다. 흑인 인권 운동의 기획자, 지도자, 운동가, 가장 밑바닥에서 활동한 노동자는 백인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메리칸이었다.˝ (p.294)

비연 2020-05-13 13:44   좋아요 1 | URL
겟타님 ㅎㅎ 추억의 영화였다니.
다락방님. 사실 저도 그게 좀 불만이었어요. 백인에 의해 쓰였고 백인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 근데 또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애초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동등하게 맞설 기회조차 못 가져본다 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방향으로 했었어요. =.=; 소수자가 소수자만으로 어찌해보려한다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인가 싶었죠. 그리고 어떤 계기가 주어질 때 확 낚아채기 위해서는 어쨌든 그 속에서 비등하는 힘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싶기도 했구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비연 2020-05-13 21:14   좋아요 1 | URL
헉. 옥타비아 스펜서 이 배우, 찾아보니 심지어 <설국열차>에서 주연이었네요?!
근데 왜 기억이 안 나는 거죠.... ㅡ.,ㅡ;;
 

 

 

 

 

 

 

 

 

 

 

 

 

 

 

 

여성주의 책 함께 읽기 5월 도서인 이 책. 그제 도착했고 어제부터 시작했다. 시작, 시작. 항상 시작은 빠르나 끝은.. 거의 몰아치기 연속이었음을 자백하며 이번만큼은 차분차분히 읽어서 몰아 읽는 일이 없어야겠다.. 불끈 하고 있다.

 

 

흑인여성은 자신의 일상생활에 대한 의식을 바꿀 때 스스로의 힘을 기를 수 있다. 변화된 의식이 일차적으로 한 개인의 정신에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자유를 향유하는 삶을 살도록 개인을 자극할 수 있다. 의식의 변화를 체험한 개인이 자신과 비슷한 여정을 경험하고 있는 다른 이들을 운좋게 만날 수 있다면 다른 이들과 따로 또 함께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p16, 2000년 개정판 저자 서문 중)

 

이제 겨우 1장에 진입한 상태인데 (이랴이랴), 사실 서문에서부터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저자가 책 앞에 밝힌 이 이야기들. 흑인이자 여성이자 노동계급 출신이었던 저자가 최고이며 엘리트에 속한 소수이며 어디에서나 유일한 흑인여성으로 살아가야 했던 저자가, 이러한 점에 천착하여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고 동시에 함께 연대해나갈 방법을 찾아나갈 여정이 기대되기까지 한다.

 

 

지금 나는 흑인여성의 힘기르기empowerment는 억압과 사회 부정의가 판치는 사회적 상황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어떤 집단이든지 오직 다른 이들을 지배함으로써만 권력을 획득할 수 있따. 흑인여성의 사상에서 발견되는 힘기르기는 이런 식의 것이 아니다. 나는 흑인여성의 저작을 읽으면서 어떻게 힘기르기가 개인에게 중요한 체험인 동시에 다른 이들과 연대할 수 있게 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일차적으로 흑인 여성을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다른 사회정의 기획과도 연결된다. (p16, 2000년 개정판 저자 서문 중)

 

코로나가 와서 어디 마음대로 가질 못해서 답답하긴 하지만, 어쩌면 이런 좋은 책들에 좀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허락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평안해진다. 이번엔 좀 찬찬히 여유를 두고 음미하며 읽고 싶다. 이 책은 서문부터가 그런 느낌을 팍팍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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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5-09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시작하셨군요!😘 전 아직 74쪽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내용은 책마다 다르니 다르게 느껴질테고 쪽수도 그러하겠지만 빽빽하기로 한다면 이 책이 으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척 기대되는 책이에요. 전 주말 지나서 달리려고요. 뽜야!

비연 2020-05-09 10:28   좋아요 0 | URL
74쪽! 역시 단발님... 빨리 나가고 계시네요.. 저는.. 저는.. 꼼지락꼼지락.. 이제 1장 들어가고 있다 라는 더욱 안타까운 소식을.. =.=;; <제2의 성> 이후로 이런 빡빡한 책을 또 만나리라고는 예상 못했지 뭡니까..하허허, 그래도 큰 기대감으로 달려보려 합니다. 우리, 힘내욧!!

공쟝쟝 2020-05-10 16:48   좋아요 1 | URL
ㅋㅋㅋ 31페이지를 읽다발고 북플을 유랑중인 쩌리짱이 이 댓글을 보고 주눅들어 합니다..

수이 2020-05-10 21:26   좋아요 1 | URL
다섯 페이지 읽은 저는 그저 납작 엎드릴뿐 쿨럭

비연 2020-05-11 01:05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 아마 단발님은 지금쯤... 100페이지 훌쩍 넘기지 않았을까 싶은.. ㅠㅠ
수연님.. 저도 뭐.. 아주 많이는 못 나갔나이다 ..ㅜㅜ

우리, 힘내서 읽어요!!!!

단발머리 2020-05-12 20:39   좋아요 1 | URL
5월은 특히 분위기가 좋아요. 혹시 우리 1등으로 읽는 사람 선물주기로 했던가요?
서로서로 초조한 마음이 장난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5-13 09:27   좋아요 0 | URL
이것은 진정... 날짜가 명확하게 하나 박혀 있어서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을.. ㅎㅎ

수이 2020-05-10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시작하셨네요. 전 딱 다섯 페이지 읽었는데........ 오늘은 좀 읽어야겠어요, 부추전에 매실주 마셨는데 읽을 수 있을까요 과연........

비연 2020-05-11 01:04   좋아요 0 | URL
시작은 하였으나.. 느릿느릿 이랍니다..ㅜㅜ
부추전에 매실주라.. 흠. 이 새벽에 마구 부럽네요...
 

 

 

 

 

 

 

 

 

 

 

 

 

 

 

<여성성의 신회>를 다 읽고, 아 두꺼운 책 다 읽었다! 만세를 외치며 이번엔 그냥 머리 식힐 책으로 골라야지 하며 고른 책이다. 이 책 소개글이 그랬다. 북유럽 코지 미스터리라고. 그래, 코지 미스터라고 분명 그럤다. 그래서, 나는 그냥 재미있는 유쾌한 친구들의 사건해결기라고만 생각하고 책을 펼친 것이다. 그런데, 내용이... 아 정말. 

 

소규모의 도시인 크리스이안순에 살고 있는 단 소메르달과 플레밍 토르프는 막역한 친구 사이이다. 단 소메르달은 잘 나가는 광고대행사 임원이고, 플레밍 토르프는 경찰이다. 단은 최고 자리까지 갔다가 번아웃으로 지금 직장도 쉬면서 허덕이고 있는데, 우연히 자신이 근무하던 광고대행사 내에서 한 여자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다. 광고대행사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친구를 도와주게 되었는데 점점 사건에 빠져들게 되고, 플레밍과 단은 서로 평행선을 그리며 조사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접점을 만나게 되는데... 그 동안에 죽은 여자와 같이 살던 한 여자의 처참한 시신도 발견되는 일이 있었고 죽은 여자와 함께 일하던 벤야민이라는 젊은 친구와 그 어머니가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단의 집에 머물게도 되고...

 

내용을 요약해보면, 정말 코지 미스터리에 가깝다 싶지만, 읽어나가는 도중에 발견된 것들은 참혹한 사회적 현실이라는 것. 덕분에 나는 금방 해치울 줄 알았던 이 책을 삼일이나 잡고 읽어야 했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말이다.

 

 

"그래요, 그 사람이 가끔 때린 적은 있어요. 그런데 술을 마셨을 때만 그랬어요. 술이 깨고 나면 정말 잘못했다고 사과했어요."... (중략)... "자, 그러니까 단, 사실은 아주 끔찍한 이야기야. 여성과 아동 폭력에 관한 얘기인데 그게 결코 단순하지 않아. 중대한 차이점 한 가지는, 벤야민의 아버지 욘이 비정상적으로 잔인하고 그 탓으로 세 번이나 교도소에 다녀왔다는 거야. 처음에 자기 부인 학대로 3개월 형을 받았는데 여성보호센터에서 은신하고 있던 앨리스와 아이들을 공격했어." ... (중략) ... "요약하자면, 욕이 갑자기 필립을 낚아채서 자동차로 데려갔어. 앨리스가 뒤따라 뛰어갔지만 욘이 훨씬 빨랐어. 금세 필립을 조수석에 앉히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가버리고, 앨리스가 오기 전에 시동까지 걸고, 욘이 주차장을 나가는 걸 보고 앨리스는 지름길로 가서 욘을 못 가게 막으려고 했어. 그런데 차 앞으로 달려오는 앨리스를 보고도 그는 멈추지 않았어. 브레이크 한 번 밟지 않고 그냥 가속페달을 밟아 들이받고 가버린 거야. 앨리스는 피 흘리며 의식을 잃은 채 길바닥에 쓰러졌고." (p158-162 중 인용)

 

 

그러니까 이 정도 읽으면, 이전에 읽었던 <페미사이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술 먹고 폭력을 휘두르고 법으로 떨어뜨려봐야 수 개월에서 수 년. 다시 돌아와 찾아서 또 패고 납치하고 강간하고... 죽이고... 밟고 때리고. 이 책이 덴마크 작가가 쓴 건데 말이다. 덴마크에도 역시, 그런 복지국가에도 역시 그런 넘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남자의 아내는 그의 소유property 라고 하는 생각이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악과 고통의 치명적인 뿌리다. 모든 잔인한 남자들, 그리고 삶의 다른 관계에서는 잔혹함과 거리가 먼 수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아내는 자신의 물건thing이라는 생각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 이런 남자들은 분개하면서 "내 것을 가지고 내 맘대로 못한단 말인가?" 라고 물을 준비가 되어 있다. (p101)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폭력은 여성들의 삶에 만연해 있는 특징이다. 이것은 남성 우위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성을 구성하는 데 폭력이 핵심ㅇ르 이룬다는 걸 확실히 주장하려는 것이다. 드워킨이 주장하듯, 남자가 되는 과정에서 소년은 폭력에 적극 참여하도록 사회화된다. (p508)

 

<페미사이드>에서 이야기되었던 수많은 폭력의 사례들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큰일이다. 이렇게 소설에 만연해 있는 가정 내 폭력이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육체적 정신적 폭력의 내용을 읽을 때마다 이 책이 떠오르고 그래서 속에서 분노가 쌓이니 말이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혼외 관계를 하는 여자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지 못 들어봤죠? 성폭행을 당했든 노예로 유럽 집창촌에 팔려왔든 개의치 않는다는 거 알아요?"

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문에 실린 기사를 봐서 알고 있어요."

"내가 어렸을 때 한 여자가 돌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볼 적이 있어요. 맹세컨대 난 절대 안 돌아가요."

(p212-213)

 

 

덴마크에서 성매매활동을 하거나 그런 활동을 하다가 관련 정보를 제공한 여자들은, 한동안(100일?)만 머물다가 본국으로 송환된다고 한다. 피해 여성들은 본국으로 송환되는 즉시, 공항에서 다시 그 포주 내지는 주인에게 끌려가서 심하게 맞은 후 다음 비행기로 다시 덴마크에 돌려 보내지고 거기서 다른 위조 여권을 가지고 다시 성매매를 하게끔 한단다.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되나? 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법이 그러하니 그럴 수 없다는 거다. 이게 현실이라는 것. 그 여성들은 어디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 그대로 살거나 그렇게 살다가 매질로 죽거나, 도망치려다가 잡혀 죽거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포주에게 얻어맞은 여성들 사진을 비롯해서 항문 성폭행으로 인해 직장이 파열된 어린 여성 사진, 온몸이 담뱃불로 지져 생긴 화상 흉터투성이인 여성들 사진도 있었어요. 그 여성들은 모두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죠. 외국 여성이라는 것, 크리스티안순에 몰래 숨어 산다는 것, 그리고 덴마크에서 추방당할까 봐 무서운 나머지 어떤 형태든 관청에 도움을 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p295)

 

"나는 그의 집에서 4일을 지냈어요. 그는 내가 저항을 멈출 때까지 몇 번이고 나를 성폭행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됐어요.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자 나를 때리는 일도 줄어들었고 내게 먹을 것도 줬어요. 그의 집에 오는 친구들도 섹스를 하고 싶어했어요. 이제 이러나저러나 나는 상관이 없었어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그냥 신경을 끊어버렸죠." (p304-305)

 

 

이런 여성들을 돕는 단체가 있었고 암암리에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디나 마찬가지로 그 속에는 순수한 의도를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자신의 이득을 철저히 취하는 사람들, 자기 살자고 그들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사회의 변방에서 학대받고 고통받던 여성들은 다시 또 다른 이유로 살해되고 사라져 갔다. 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내내, 분위기가 음산하지는 않았지만 내용 자체는 참으로... 참기 힘들었다.

 

소설을 읽을 때 관점이 많이 바뀐 것을 요즘 절실히 느낀다. 여성주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수많은 소설에서 접했던 낭만도 폭력이 (낭만은 개뿔) 되어버렸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폭력이 말 그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로 다가와 소설 내용에서 너무나 도드라져 보인다. 가끔은 작가의 관점 (이 책은 그런 관점은 아니었다. 플레인한 기술이었고 사회 현실에 대해서 담담하게 그리고 너무 비참하지 않게 쓰고 있을 뿐이다)에서 남성성이나 가부장제의 느낌이 너무 들어 읽기 싫어질 때도 있다. 이전에는 내가 좋아했던 작가임에도. 어쪄면 소설은 소설일 뿐인지라 포장이 가능할 지 몰라도, 그 속에 투영된 현실이 가끔 너무나 암담하다. 좋은 연휴에, 이 생각 저 생각 머릿 속에서 많이도 스쳐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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