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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평점 :
작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는 독서도 있다. 나에게 이 경우가 그렇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 슈테판 츠바이크를 만났는데, 번역투라서 그런지 몰라도 문장이 약간 길면서도 행간에서 뿜어져나오는 힘과 깊이, 그리고 이야기를 극적으로 몰고 가는 능력에 정말이지 홀딱 반해버렸다. 그래서 이 작가에 대한 모든 책을 다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그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것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꽤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버릴 정도로 이 책은 기대했던 만큼 흥미롭고 유익했다.
하지만 이 것은 내 개인적인 호감일뿐,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다른 데 있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악녀' 또는 '탕녀'로 도색되거나, '희생양'으로 오도된 마리 앙투아네트를 '인간화'한것이 그것이다. 승자의 명분을 위해 역사에서 패자는 더럽혀지고 도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안목을 좁히고, 잘못 판단하게 한다. 인간화된 인물에서야 말로 일말의 진실과 진정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의 이 작업은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이다.
혹자는 지은이가 노골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옹호하고 있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인생의 극에서 극으로 내몰린 그녀의 운명에 대한 동정이자 인간으로서의 측은함이다. 그리고 그녀가 비로소 시대를 이해하게 된 후반생에 대한 격려와 철없었던 그녀의 전반생에 대한 비난과 회환 그것들이 모두 뒤섞인 인간에 대한 인간의 복잡한 감정인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츠바이크는 '부도덕하고 경박한 진보주의자보다 도덕적이고 성실한 보수주의자가 역사에 더 많이 기여한다'는 조지훈 시인의 말처럼, 경박하고 과격한 혁명의 광기보다는 좀 더 이성적인 결과를 희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관통하는 츠바이크의 역사에 대한 관점은 역시나 '광기와 우연으로 가득한 역사'이다. 아주 작은 사건이나 소소한 선택이 역사적인 큰 흐름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지론 덕분에 그의 책들은 항상 극적이고 반전이 넘치며 흥미롭다. 한 사건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다양한 동기들이다. 그 동기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을 골라내는 것은 역사가의 역할이자 관점이다. '극히 작은 바퀴라도 정교하게 조합된 역사의 장치 속에서는 엄청난 힘을 낸다'는 지은이의 생각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고 즐겁다.
이렇듯 나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만족했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했다. 우선 오타가 너무 많다. 처음에는 실수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많아도 너무 많다. 뿐만아니라 책의 320쪽부터 336쪽까지는 어이없게도 289쪽부터 304쪽이 다시 인쇄되어있다. 책의 17쪽 정도의 분량이 사라진것이다. 도대체 교열과 편집과정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내가 구입한 책만 우연하게 잘못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어이없는 실수에 매우 당황했고 화가 났다. 앞으로 쇄를 거듭하면서 이러한 부분이 수정되어서 또다른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