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무지개 여신 (2disc)
쿠마자와 나오토 감독, 아오이 유우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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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러브레터>의 이와이 슌지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고, 우에노 쥬리나 아오이 유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이유가 됐다.군대에 있을 때 개봉했었는데 휴가 나가서 찾아보니 이미 막이 내렸더랬다. 결국은 이렇게 봤으니 그동안의 갈증은 풀어진 셈이다. 

  보고 나니 가슴이 후련해야 할텐데 오히려 묵직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전작들처럼 영상은 수수하고 아름답다. 이야기도 순정만화 비슷하기도 하고 신파조가 흐르지만 헤어나올 수 없이 빠져든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극대화되도록 이야기를 뒤틀어도 결말에서는 행복하게 끝을 내는 것이 보통 드라마의 공식일텐데, 이 영화는 초장부터 주인공을 죽이고 시작하니 끝까지 남는 것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다.

  설레임과 망설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랑은 연애로 이어지지 못한다. 극중 토모야의 사랑은 언제나 스토커적이고, 다른 사람의 사랑에 끌려 다닐만큼 수동적이다. 사랑앞에서 늘 설레이지만 망설임의 벽은 넘지 못한다. 아오이도 마찬가지. 자신의 취미활동인 영화 속에서만 꿈을 이룰 뿐이다. 자기의 꿈을 찾아 일까지 내던지고 떠날만큼 결단력있는 그녀도 연애에서 만큼은 우유부단한 셈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들의 취직과 꿈에 대한 이야기. 10년 후쯤 되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고민들. 망설임. 설레임. 그 감정과 이야기들이 왜 모두 스쳐지나가지 않는 여운으로 남는 건지. 어딘가 나와 맞닿아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사람은 언제나 확신을 갖고 싶어한다. 설레임 속에서도 망설이고 주저하는 이유는 확신이 없어서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뿐, 이것이 꿈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아오이. 아오이를 좋아하는 듯 느끼면서도 쉽사리 고백하지 못하는 토모야. 모두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확신이 없을 때는 누군가의 진실한 조언 한마디가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오이가 자신의 꿈을 살려 취직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토모야의 조언 덕분이고, 아오이가 해외로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히구치의 도움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고 누군가가 잡아주기를 바란다. 그 한 사람의 존재는 정말,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망설이고 주저하던 토모야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든다. 확신이 없어도 일단 부딪혀보는 건 어땠을까. (역시 남의 일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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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호텔 르완다
테리 조지 감독, 닉 놀테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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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후로, 인종학살은 끝이 났다.'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을 보면서 '정말 그것으로 모든 비극은 끝이 났을까?' 다시 묻게 됐다. 영화는 분명히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만화영화를 볼 때처럼 '그리고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자막에서 느꼈던 안도와 기쁨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의 한 장면이 복선처럼 떠올랐다. 그 장면은 후투족 대통령과 투치족 반군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UN평화유지군 사령관이 이제 평화의 시작이라며 축배를 제의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 장면에 이어서 후투족 대통령이 암살되고 끔찍한 학살이 벌어진다. 마치 복선과 같은 이 장면은,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결말도 폭풍이 몰아치기 전 잠시동안 찾아오는 고요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벗어버릴 수 없게 했다.   

  슬픈 대륙 아프리카. 이 이야기는 르완다 내전에 관한 영화지만 르완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멋대로 정해버린 구획 안에서 지금도 수많은 민족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후투족의 지도자가 전범재판소에 불려 나가고 투치반군이 정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권선징악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지 않을까? 

  벨기에가 르완다를 점령하기 이전까지 후투족과 투치족은 특별한 갈등 없이 어울려 지내왔다. 영화에서도 두 부족은 겉모습으로 구별할 수 없을만큼 비슷하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벨기에 사람들은 코와 키와 같은 잣대를 만들어 후투족과 투치족을 억지로 구분하고 소수부족인 투치족을 지배계급으로 만들어서 두 부족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그것을 식민통치에 이용했다. 후투족의 상대적 박탈감은 벨기에가 식민통치를 끝내고 돌아가버리자 폭발하여 투치족과 후투족간의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문제는 부족간의 갈등을 조장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부도덕한 통치기술, 후투족 반군 정치 지도자들의 광기와 선동, 세계의 무관심과 방조이다. '세계는 하나'라고 외치며 '세계화'와 '지구촌'을 부르짖으면서도 왜 세계의 한켠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이렇게 무관심한지. 서구 국가들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들의 무관심함이 너무 화가났다. 그들이 주장하는 '세계화'는 결국 물건을 팔아먹을 때만 소용되는 것인가.

  돈 치들이 연기한 주인공 폴 루세사마키나는 솔직히 말해 영웅은 아니다. 그는 친한 이웃이 투치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려가는대도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라는 이유로 방관하기도 하고 고위층에 선을 대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소시민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자 뜻하지 않게 영웅이 되고 만다. 후투족이나 투치족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내가 이렇게 무심히 보내고 있는 시간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게 했다. 총과 폭탄이 날아다니고 피가 튀는 장면은 없었지만 집단적 광기에 젖은 후투족 민병대가 칼로 아스팔트 바닥을 긁는 장면이나 얼굴 한 번 나오지 않는 후투족 지도자의 라디오 방송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고 두려웠다. 보여주지 않고도 공포를 이끌어낸 감독의 기교가 대단했다. 투치족의 시체더미를 보고 두려움에 넥타이조차 제대로 매지 못하여 오열하는 주인공을 연기한 돈 치들의 연기도 돋보였다.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꼭 한 번은 봐야될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분명히 누군가가 조장했을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의 갈등을 볼 때, 그리고 비무장지대에 흐르는 남한과 북한의 갈등과 긴장을 볼 때, 르완다는 어쩌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섬뜩해진다. 부디 누구의 선동과 광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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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 구본형의 하루 경영 9가지 법칙, 개정판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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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기준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인류 보편의 본질적인 고민과 심오한 진리에 대해 쓴 책도 좋은 책이지만, 결국에는 독자에게 얼마나 공감을 이끌어내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나도 그래', '어머머, 너도 그러니?'라는 공감과 호응을 얻어내는 사람이 능력있는 화자이고 능력있는 작가이며, 그런 책이 좋은 책이다. 책의 안쪽 날개에서 저자의 이력을 보고 나는 저자와 나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학교에서 같은 과목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안되는 이유로 생긴 동질감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끈끈해졌다. 어쩜 그렇게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하고 깜짝 놀랐다. 마치 나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맞춘 점괘에 감탄하며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고 목을 쭉빼며 점쟁이를 채근하듯 나는 '그래서, 그 때 당신은 어떻게 했수?'라고 저자를 재촉하면서 책을 읽었다. 정말 매혹적이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정말 피곤했다. 이 피곤은 성공을 위한 조건과 법칙을 떠들어대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일찍 일어나고, 시간을 쪼개어서 관리하고, 이건하고 저것은 하지 마라고 규제했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나를 내맡기면서도 그들의 스케쥴에 따라가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는 내가 한심해졌다. 그렇게 '나는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인가봐'라고 나를 비난하면서 더 깊은 좌절 속으로 빠져들었던 시간들! 힐러리가 말했다던가? '성공하는 법칙이라는 것은 없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기가 훨씬 쉬웠을것'이라고. 이 책은 그런 법칙의 파괴다. 

  하루를 작은 조각들로 나누고 우선 순위를 배분하는 시간관리의 법칙에 대해 저자는,

 시간 관리는 '만일 내가 시간을 통제한다면, 나는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을 번 사람이 더 시간이 없다. 하루를 작은 조각들로 나누고 분배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 일을 하느라 더 바쁘다. 그 사람은 하나의 약속에서 다른 약속들로 이동할 뿐이다. 여전히 그는 시간에 쫓긴다. 시간의 부족은 유감스럽게도 오히려 성공적인 시간 관리의 결과다. (82쪽 1-7줄)
 
  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오히려 시간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의 존재를 잊고 하는 일에 몰입해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기를 변화시키라는 성공을 위한 법칙론자들에 대해서도 

 자신을 바꾸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장 비효과적인 방법이다. 성공의 가능성이 별로 없다. 변화의 핵심은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143-144쪽)

 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말하는 바는 기존의 성공을 위한 법칙에 대한 역설이며, 저자만의 새로운 자기경영론이다. 성공을 위한 법칙들의 높은 벽앞에서 초라해졌던 사람들에게 '내가 나를 인정하라'고 말하는 이 작가의 팬이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예전에 공지영씨의 수도원 기행을 읽을 때 기억에 남았던 글귀가 생각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렇다. '모든 창조설화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만 유독 창세기의 하느님은 어둠과 혼돈과 공허라는 질료를 가지고 세상을 창조하신다'면서 '개인의 삶 속의 혼돈과 공허도 창조를 위한 질료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희망에 젖는 내용이었다. 저자도 그런 관점에서 사람의 이중성과 자기와의 불화에 대해 비관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중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갈등과 불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 같이 가야할 동반자들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춤추는 별 하나가 태어나려면 그 내면에 카오스를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158쪽 2-3줄)는 말도 인용하면서 그 혼돈과 갈등을 에너지와 힘으로 삼아 한 발 한 발 힘차게 나아가라고 당부한다.

  요새 부쩍 다급함을 느끼며 성공과 변화에 대한 책을 많이 뒤적거리던 차에 참 좋은 책을 접한 것 같다. 미래의 성공만이 다가 아니라 바로 내 앞에 닥친 하루하루를 새롭고 힘차게 살 수 있다면, 매일 매일이 새로울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삶일까.

  이탈리아의 엔터테이너인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계를 바꾸겠다는 의지로 인생은 시작된다. 그러나 고작 TV채널을 바꾸는 것으로 인생은 끝이난다."(33쪽 8-10줄)고. 인생은 TV채널을 바꾸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비루한 것도, 세계를 바꾸는 것처럼 거창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은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금 죽을 수도, 내일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루하루는 정말 귀하고 소중한 시간들이 아닐지. 오늘을 사는 것은 통장의 잔고와 같은 기쁨이고, 내일을 사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이자'가 들어온 것과 같은 행운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루하고 변함없은 일관성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 시각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새로운 하루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인생의 전부이고, 중요한 방점일 것이다.

  저자와 나를 동일시하며 시작했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그 대화를 통해 느낀 결과물을 당장 오늘부터 실천에 옮겨야 될텐데‥그렇게 될까? 기쁨에 넘치는 날도 있겠지만 다시 흔들리는 날들도 있으리라. 그러면 그 때, 다시 저자를 만나겠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저자와 다시 새로운 책으로 만나겠다. 그 때도 이렇듯 기분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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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디셉션 포인트 1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고상숙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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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은 휴식이 필요한 법이다. 휴식도 책과 함께 하다니, 그게 무슨 휴식이냐 싶기도 하지만 가끔 스릴러나 추리 소설들을 방바닥에 드러누워 읽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댄 브라운은 '휴식 파트너' 중 단연 일등인 작가다. '천사와 악마'를 통해 파문을 예고하고 '다빈치 코드'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후에 '디셉션 포인트'를 내놓았다는 소식을 듣고 언젠가 휴식이 필요할 때 읽어야 겠다 생각해두었다가 근래에 다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조금 어려웠다.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는 시온수도회나 프리매이슨 그리고 상징들같은 종교나 기호학적인 사실들이 어렵게 느껴지긴 해도 재미있었는데 이 책에서의 운석이나 우주 관련 사실들은 너무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졌다. 마이클 톨랜드의 고야 호와 잠수함의 생김생김도 언뜻 머리에 그려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내가 이 분야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고, 작가의 전작들과 달리 이야기의 무대와 소재가 옮겨진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작가가 이 번 소설에서는 소재에 대한 흥미와 이해를 유발하는데 약간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NASA의 재정파탄과 잦은 실패를 대통령의 국정실패로 몰아붙여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색스턴 상원의원. 그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NASA 무용론은 NASA를 지키려는 세력들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해 음모가 시작된다. 그 음모의 비밀을 알게된 사람들과 비밀을 지키려는 세력들 간의 치열하고 박진감 넘치는 대결은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들의 싸움 이면에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잘못된 애국심 그리고 정적이 쓰러뜨리려는 정치문화, 돈과 로비로 점철된 선거와 같은 정치의 어두운 모습들이 담겨있다. 이 모습들은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현실이기도 하고, 그 현실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정부기관의 잘못된 충성심과 애국심은 가까운 과거에 익히 우리가 보아왔던 현실이며, 권력에 대한 집착과 돈에 얽힌 선거는 바로 현재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정적이 쓰러져야만 내가 산다는 정치문화 또한 조선시대의 사화부터 분단,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소설을 읽으면서는 주인공들이 과연 살지 죽을지 조마조마하면서 봤지만 다 읽고나자 우리나라의 정치의 한 단면을 본 듯해서 께름찍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같다. 내가 본 작가의 책 세 권 모두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밀회로 끝을 맺는다. 정말 '인간에겐 공포의 감정과 성적 충동이 가장 가까운 것'인지 생사가 달려있는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참 잘도 사랑을 느낀다. 이런 부분이 거친 스릴러에 부드러운 낭만을 섞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어찌보면 참 억지스럽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드라마를 볼 때도 '이 둘이 이어졌으면'하고 내 일인양 극성을 떠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던가. 원래부터 세계명작을 읽는 기분이 아닌 할리우드 스릴러를 보면서 휴식을 찾으려는 심산으로 보았으므로 크게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고 해야할지, '이건 정말 아닌데' 싶은 억지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놓은 '이야기 뒤집기'에 놀랐다. '이것 만은 말이 안돼'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한동안 이해가 안되서 투덜거리기도 했다. 

  댄 브라운의 소설들을 읽으며 썼던 서평마다 했던 말이지만, 이 책 역시 '잘만들어진 할리우드 스릴러'다.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고 봤고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름 휴가때 피서지에 누워서 할리우드 스릴러에 몸을 맡기고 그 속도감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책보다는 저자의 전작인 '천사와 악마'가 더 재미있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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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라디오 스타 일반판 (2disc) - 할인행사
이준익 감독, 박중훈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이 영화는 정말 '제대로' 보고 싶은 영화였다. 영화 제작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군복무중이라 개봉일을 놓치고 말았다. 영화가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재밌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부대 내에서 볼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엉겁결에 봤다가는 빠져들지 못할 것 같아서 참고 참고 또참다가 어제서야 DVD로 보게 되었다. 이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영화는 많고 많을 텐데 영화를 본 지 하루가 지난 지금도 그 여운을 떨치기 힘들다. 박중훈이 부르는 '비와 당신'의 멜로디가 머리 속을 맴돌면서 장면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영화를 세네번 봤다는 극성팬들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 같다.

  영화는 88년 한 방송사의 가수왕이었던 최곤을 조명한다. 그 화려함도 잠시, 장면이 바뀌어 몰락해서 변두리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최곤을 비춘다.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같지 않지만 최곤은 전성기때의 오만함을 버리지 않았다. 그 오만함을 있는 그대로 봐주며 대접해주는 사람은 매니저 박민수 뿐이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최곤이 너무나 얄미웠다. 뭣도 아닌게 옛날의 영광에만 집착해서 거들먹거리는 꼴도 보기 싫었다. 하지만 박민수 역시 애들 버릇 없게 키우는 부모들처럼 너무 답답하게 보였다. 두 사람 모두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서 지금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기회에 어쩔 수없이 영월의 라디오 방송 DJ를 맡게 되어 내려가게 된다. 원주방송과 통폐합 하기만을 기다리는 국장과 박기사, 원주에서 좌천되어 여기까지 오게된 강PD 그리고 몰락한 왕년의 스타 최곤까지!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모두 영월에 모인 격이다. 원주방송과 통폐합 되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방송에 임하는 국장과 박기사, 언젠가 서울에 가서 진짜 PD다운 PD로 이름을 남겨보고 싶은 강PD, 일단은 아쉬워서 하지만 이따위 촌구석에서 이러고 있는게 너무나도 불만인 최곤. 도무지 잘해보려는 의지 없이 하루하루 '날림'방송을 하던 차에 그들은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된다.

  어쩌다가 전파를 타게 된 터미널 다방 김양의 방송이 지역주민과 '날림 방송 4인방'의 심금을 울리게 된 것이다. 사람 사는 이야기와 소통의 장으로서의 라디오의 역할을 깨달은 그들. 드디어 현실에서 재미를 찾고 슬슬 의욕을 가져보려는 찰나,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서울의 대형 연예 기획사에서 최곤을 캐스팅하면서 박민수를 배제시키려고 한 것. 박민수는 최곤의 장애물이 되기 싫어서 또, 그동안 관심을 못가졌던 가족들의 삶을 위해 최곤을 떠나기로 한다. 최곤은 자기를 버리는 박민수를 향해 분노를 표시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박민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방송 또한 영월에서 전국으로 송출되어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영화는 극중 '이스트 리버'로 등장하는 '노브레인'의 라이브 송들과 철지난 음악들과 박중훈이 맛깔나게 부르는 '비와 당신'과 같은 노래들로 더욱 빛난다. 영화의 쓸쓸하지만 어둡지 않은 분위기와 음악이 묘하게 잘 어울려서 영화가 끝나도 음악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영상 또한 화려하지 않지만 여운이 있어서 계속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다. 극중 안성기가 김밥을 꾸역꾸역 먹는 장면이라던지, 마지막 장면인 안성기가 우산을 최곤과 나누어쓰는 장면이라던지. 정말 억지로 웃기지도 않고 울리지도 않는 언뜻 촌스러워 보이는 이 영화는 마치 조미료를 섞지 않은 엄마의 음식처럼 잊혀지지 않는 여운을 준다.
 
  안성기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일품이고, 박중훈은 최곤이라는 캐릭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투캅스'의 영광이 사라진 박중훈이라는 배우도 사실, 우리에게서 많이 잊혀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최곤이 영월방송의 라디오 DJ로 재기하듯 그는 라디오스타를 통해서 자기 이름을 다시 알렸다. 최곤이라는 캐릭터가 딱이다. 최정윤도 너무나 사랑스럽게 나왔고, 박기사나 국장님의 연기도 재미있었다. 노브레인의 감초역할도 빼놓을 수가 없다. 

  라디오와 잊혀진 스타, 산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락밴드, 시골 다방 아가씨…아웃사이더들. 아웃사이더들이 부르는 낮지만 질리지 않는 리듬에 푹 빠졌던 115분이었다. 이런 영화도 성공할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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