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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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고 부르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 헤매고 멈칫한 지 10여 년 만에 1권을 처음으로 읽었다. 인물 한 명 한 명에 몰입하게 만들고, 이야기는 마치 어제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다. 그동안 왜 이렇게 이 책을 어려워하고, 읽기를 주저했는지 모르겠다.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봤지만 연진희 선생님의 번역이 제일 읽기 편한 것 같다. 이제 2권으로 옮겨간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 P13

세 번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그 결과 그는 결코 일에 몰두하거나 실수를 범하는 일이 없었다. (스테판 아르카지치에 대한 묘사 中) - P44

"물론, 그렇지." 스테판 아르카지치가 말을 가로챘다. "하지만 이런 것에 교양의 목적이 있는 거야. 모든 것에서 쾌락을 만들어 내는 것 말이야." "음, 그것이 정말 교양의 목적이라면 난 야만인이 되고 싶군." - P86

‘날 공적(功績)으로 용서하지 마시고 자비로 용서하소서.’ - P92

"이것 봐." 스테판 아르카지치가 말했다. "자네는 매우 순수한 사람이야. 그건 자네의 미덕이자 결점이기도 하지. 자네는 순수한 성격이라 인생 전체가 순수한 현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자네는 공무(公務) 활동을 경멸해. 자네는 행위와 목적이 언제나 일치하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또 자네는 한 인간의 활동이 언제나 목적을 갖기를, 사랑과 가정생활이 언제나 일치하기를 바라지.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해. 인생의 변화, 인생의 매력, 인생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야." 레빈은 탄식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 P99

그러다 갑자기 그 두 사람은 깨달았다. 자기들은 친구 사이인 데다 함께 식사를 하고 술까지 마시고 있지만―이런 것은 그들을 더욱 가깝게 해 주는 일이 되었어야 할 텐데―저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상대방의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오블론스키는 식사 후에 서로 가까워지는 대신 이런 극단적인 분리가 일어나는 경우를 이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계산서!" 그는 이렇게 소리치고는 옆 홀로 나갔다. - P99

저녁 내내 돌리는 언제나처럼 남편을 가볍게 조롱하듯 대했고, 스테판 아르카지치는 만족스럽고 즐거워 보였다. - P166

‘그래, 나에게는 사람들을 밀어내는 불쾌한 무언가가 있어.’ 레빈은 쉐르바츠키 가를 나와 형의 집으로 걸어가며 생각에 잠겼다. ‘게다가 다른 사람과도 잘 맞지 않아. 남들은 내가 오만하다고 말하지. 아니. 나에겐 긍지도 없어. 만약 자존심이라는 게 있었다면, 스스로를 그런 처지에 몰아넣지 않았을 거야.’ (레빈의 독백 中) - P187

레빈은 기억했다. 니콜라이 형이 수도사처럼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재계와 교회 예배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정열적인 기질에 대한 굴레와 구원을 종교에서 찾을 때, 아무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를 비웃었던 것을.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며 노아니 수도사니 하고 불렀다. 그런데 막상 그가 타락하자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고, 모두들 두려움과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며 등을 돌렸다. - P189

그는 자신의 존재를 느꼈으며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예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중략) 그의 삶의 흔적들이 마치 그를 둘러싸고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니, 넌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그저 예전처럼 살아갈 거야. 의혹, 자신에 대한 끝없는 불만, 자신을 개선하려는 부질없는 시도, 타락, 지금껏 손에 넣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얻지 못할 행복에 대한 영원한 기대, 그런 것들과 함께 말이지.’ 그러나 그것은 그의 물건들이 한 말이었다. 마음속의 다른 목소리는 과거에 굴복할 필요 없다고, 자신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 P205

‘사실 우스워. 그녀의 목적은 선행이고 그녀는 그리스도교 신자잖아. 그런데 늘 화만 내. 게다가 그녀에게는 모든 것이 적이야.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 정신과 선행을 위협하는 적이지.’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에 대한 안나의 생각 中) - P241

"아무도 자기의 재산에는 만족하지 않지만, 누구나 자신의 지혜에는 만족하네." 외교관이 프랑스 시를 읊었다. - P298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삶의 반영을 다루는 공무(公務) 분야에서 전 생애를 보냈다. 그래서 그는 삶 자체와 부딪칠 때마다 매번 그것을 회피했다. 이제 그는 낭떠러지 위에 놓인 다리를 침착하게 걸어가던 사람이 문득 그 다리는 허물어졌고 그 아래에 깊은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음 직한 그런 감정을 맛보고 있었다. 이 심해는 삶 자체였으며 다리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가 살아온 인공적인 삶이었다. 그의 아내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이러한 의혹 앞에서 전율했다. - P312

아니, 미안하지만 난 나 자신과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귀족이라고 생각해. 과거의 가족사에서 삼사 대에 걸친 정직한 세대를 가리킬 수 있는 사람, 높은 수준의 교양(재능이나 지성은 별개의 문제야.)을 갖춘 사람, 나의 아버지와 나의 할아버지처럼 결코 남들에게 아첨을 하거나 남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야. 난 그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어. 내가 숲의 나무를 세는 게 자네에겐 천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무튼 자네는 랴비닌에게 3만 루블을 갖다 바쳤어. 물론 자네는 임대료와 내가 모르는 여러 수입을 받고 있지만, 난 그렇지 못해. 그래서 난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과 내가 수고하여 얻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귀족은 바로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권력층에게 동냥질해서 살거나 20코페이카로 매수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레빈의 말 中) - P373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오직 야심뿐이야. 오직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지.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 있는 전부야. 고상한 생각, 학문에 대한 사랑, 종교, 모든 것이 그저 성공을 위한 무기에 불과해.’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한 안나의 생각 中) - P446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팔꿈치로 그녀의 팔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누구에게 묻든 상관없이, 그런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게 더 좋은 법이다." (마담 슈탈에 대한 쉐르바츠키 공작의 평가 中) - P498

"남들에게, 나 자신에게, 하느님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서요. 모든 이들을 속이기 위해서요. 아니, 이제 더 이상 그런 것에 굴복하지 않겠어요. 추해 보일지언정, 적어도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은 되지 않겠어요!" (키티의 말 中) - P506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온 이후 키티에게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세계가 모두 변했다. 그녀는 자신이 알게 된 모든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속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위선과 오만 없이 자기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 경지를 고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히 느겼다. 그 밖에도 그녀는 그녀가 살고 있는 세계, 즉 슬픔과 질병과 죽어 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세계의 무게를 느꼈다. 그녀는 이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하는 것이 괴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하루빨리 상쾌한 공기 속으로, 러시아로, 예르구쇼보로 가고 싶었다. -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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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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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쓰는 사람은 말하고자 하는 바와 본인의 경험을 잘 연결시킨다. 자신의 경험과 유리되어 있는 글은 읽기도 힘들지만, 글 자체에 매가리가 없다. 이 책에 실린 짧은 글들은 글쓴이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 자신의 경험과 일화를 들어 하고 싶은 말을 하니 글이 재미있지 않을 수가 없고, 글에 힘이 없을 수가 없다. 문장 하나하나에 뽐을 내서 밑줄을 긋게 만드는 부분은 없다. 하지만 글을 풀어내는 솜씨, 그 안에 담긴 사상과 생각들이 아름다워서 통째로 옮겨적고 싶은 부분은 많다. ‘매일 쓰는 삶‘이 다다르고자 하는 글쓰기의 경지 중의 하나가 이 책에 담겨져 있지 않나 싶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 P12

유희와 노름은 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지만, 삶과 노동은 이미 이루어놓은 결과에 줄곧 얽매여야 한다. - P16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 P21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들이 한두 해를 방황 속에 허송하다가 ‘복학생 아저씨‘가 되고 나서야 공부에 전념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군대 생활이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군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 P23

우리에게 과거의 상처는 너무 악착스럽고, 미래에의 걱정은 갈수록 두터워질 뿐이다. 그래서 현재는 그만큼 줄어들고 눈앞의 삶을 깊이 있게 누리는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가 미래의 걱정거리로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학은 지금 이 자리의 삶에 자신을 자유롭게 바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대학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자유의 시간과 공간 없이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구실아래 그 자유는 줄어들었으며 이제는 거의 폐기되기까지 했다. - P42

이 유례없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이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거운 마음을 나누어 짊어지는 것도 우리의 의무다. - P54

과거를 영예롭게도 비열하게도 만드는 것은 언제나 현재다. - P63

눈앞의 참혹한 광경은 두 눈을 부릅뜨고 마주 볼 수 있다 해도, 옛날의 마음 아팠던 기억에는 손발이 묶여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 P105

청계천 복개는 내가 ‘덮어 가리기 근대화‘라고 부르는 것의 전형적인 예이다. 박정희 이후 오랫동안 우리의 근대화는 눈앞에 문젯거리가 있으면 그것을 올곧게 해결하기보다는 덮어서 보이지 않게 했으며, 구질구질하다고 여겨지는 삶은 그것이 성장하고 개화하기를 돕고 기다리기보다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몰아냈다. 이명박 시장 시절에 덮었던 청계천을 다시 열었지만,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개천의 양안과 바닥을 시멘트로 덮어 단장하고 수돗물로 냇물을 연출하게 하였으며, 시민들의 삶과 깊이 연결된 복잡한 가게들을 멀리 내보냈으니, 조금 세련된 ‘덮어 가리기’에 불과하다. - P111

일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시간과 공간에서 지지부진하게 힘을 소비하는 일은 많아도 자신을 풀어놓는 데는 늘 실패하는 사람이 자신을 반성하는 일에 서툴 수밖에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내가 자극 없는 사고를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혐오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겁내고 힘겨워한다고 말하는 편이 아마 옳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런 시간이 내게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늘 옛날의 기억 속에만 있다. - P155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 - P212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기계 뒤에도 사람이 있고 기계 속에도 사람이 있다. 내가 버린 쓰레기도 사람이 치워야 하고 내가 만들어낸 소음도 사람의 귀가 들어야 한다. 골짜기에 댐을 막으면 사람의 집이 물속에 들어가야 하고, 개펄에 둑을 쌓으면 그만큼 사람의 생명이 흙속에 묻힌다. 사람은 큰 집에서도 살고 작은 집에서도 살고 집이 아닌 것 같은 집에서도 산다. - P244

물질문명의 시대란 역설적이게도 몸이 물질을 누리지 못하는 시대이다. 이제 육체가 물질을 접촉하는 순간이란 저 스냅 동작의 짧은 순간뿐이다. 우리는 어디서나 단추를 누른다. 옷을 입을 때도 옷고름을 매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서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도 위층에 올라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단추를 누른다. 우리의 육체가 물질과 교섭할 때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각들은 이제 누름단추의 탄력으로 통일된다. 물질로부터 듣게 될 모든 소리는 이제 딸가닥에 그치는 경쾌한 금속성의 소리로 통일된다. 흙도 물도 불도 나무도 돌도 모두 손가락에 한 번 튕겨오르는 탄력과 딸가닥으로 추상화된다. - P277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식구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애들은 그 시간에 학교 성적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기도 할 것이며, 내가 알고는 제지하지 않을 수 없는 난잡한 비디오에 빠져 있기도 할 것이다. 어차피 보게 될 것이라면 마음 편하게 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아내는 그런 시간에 노래방에 갈 수도 있고,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 내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늘 되풀이되는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 P281

유진오 선생이 세상을 버리기 직전에 썼던 <양호기>에는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하나 있다. 우리는 국권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던 한말의 위정자들과 관리들이 매우 무능한 사람들이었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와 다르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철저히 공부를 했고, 어려운 과거 시험을 통해 등용된 관리들은 능력도 출중했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강해서 일본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열정적으로 조리정연하게 사안을 따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일본 측에서 "구미 제국의 예를 볼작시면"이라는 한 마디만 내뱉으면, 우리 관리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주눅이 들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사용하던 잣대가 달라지니 사태를 가늠할 수조차 없게 된 것이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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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수리가 됩니다 - 반품은 안 되지만.
필립 C. 맥그로 지음, 차백만 옮김 / 청림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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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다. 너무나 단정적인 어투에 거부감이 든다. 전형적인 미국식 자기계발서다.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노력, 구체적인 목표의 추구를 강조한다. 1999년 출간 ‘LIFE STRATEGIES‘의 번역서라고 하는데, 딱 그정도만큼 낡은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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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써봤니? - 7년을 매일같이 쓰면서 시작된 능동태 라이프
김민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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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참 재미있게 쓴다. 글재주가 없어 말하듯 글을 썼다고 하는데, 글을 보면 지은이가 평소에도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알겠다. 삶의 태도도 멋있다. 이직과 해고가 단 한 번이라도 인생의 큰 위기일 텐데, 여러 차례 그 위기를 겪고도,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나간 경험담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다 보니 뒤로 갈수록 조금 물린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글쓰기에는 이득이 많으니 글을 써보자, 글을 쓰는 도구로 블로그를 활용해보자.’정도일 텐데, 반복이 지나쳐 어머니의 잔소리처럼 들린다. 물론,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배운 것을 써먹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 밑줄긋기의 쪽수는 제가 본 e-book 화면 기준으로, 실제 종이책의 쪽수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일을 놀이처럼 접근하지 말아요. 일이 즐거워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놀 듯이 건성건성 하면 성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잘 하지 못하는 일을 놀 듯이 하면 직장생활이 괴로워질 수도 있어요. 차라리 놀이를 일처럼 하는 편이 쉽습니다. 놀 때 그냥 수동적으로 놀지 말고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놀아야 합니다. 놀이를 더 잘하려고 공을 들여야 합니다. 열심히 놀다 보면 놀이에서 준전문가의 영역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 P12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김민식보다, 노는 인간 김민식에 주목합니다. 주식회사 김민식의 미래가 그의 손에 달려 있어요. 그런 점에서 오늘도 저는 노는 인간 김민식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 P30

성공에 안주하고 새로운 시도를 멀리하는 순간, 사람은 퇴행합니다. 실패를 했음에도 다시 도전할 때 우리는 성장해요. - P38

인생이란 즐거운 추억의 총합입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즐거운 과거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꿈도 의미가 있습니다. - P44

이렇게 업무가 힘들 때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근무 외 시간에 평소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 P50

조언이나 충고를 해준다 해서 탁 깨우치고 변신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연기란 오랜 세월이 쌓여서 절로 우러나는 것이거든요. 어디 연기자만 그런가요? 연출가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습니다. 성장은 오로지 자신의 책임입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방법을 깨우쳐야지요. - P103

일단 오늘 이 순간 마음을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일은 내일의 사정이 있는 겁니다. 새로운 사정이 생겨 그만 두더라도 부담이 없어야 결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만두고 자책하지 말아요. 어제 마음먹은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어제 마음먹은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먹고 마시고 배출하는 동안 내 몸을 이루는 체세포도 바뀌었는데요, 뭘. 중도 포기는 어제의 내가 무리한 결심을 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에요. 오늘의 나는 괜히 그런 일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게 좋습니다. - P134

한 번 반짝 빛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불을 꺼트리지 않고 내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창작자로서 직업을 만드는 길이겠지요. - P143

글도 사람처럼 혼자서만, 사적인 공간에서만 쓰면 성장할 수 없다. 글도 사람이랑 똑같다. 세상에 나와 부딪히고 넘어져야 글도 성장한다. 블로그에 일기를 한 장 쓰고 비밀글로 처리하면 글이 안 는다. - <채널 예스>, 은유, "비밀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에서 발췌 - P151

"청취자의 사연만 읽어줘라. 괜히 거기에 코멘트 달려고 하지 마라. 상대는 공감만 원할 뿐이다. 공감은 사연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 김용민PD 발언 인용 - P173

저는 비범한 삶을 꿈꾸기보다 비범한 기록을 꿈꿉니다. 매일매일 빠짐없이 평생을 기록한다면 이는 더는 평범한 기록이 아니에요. - P185

‘초고는 나를 위해, 수정은 독자를 위해’ - P208

어쩌다 내가 아닌 나를 꿈꾸었을까?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사랑하라고 나마저 나를 저버렸을까?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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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9-12-03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일 글쓰기 쉽지 않더군요ㅎㅎ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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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읽다가 조금이라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껴지면 몰입이 파지직하고 깨진다. 소설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다. 나에게 트랜스포머어벤져스의 세계는 익숙하지도 않고, 선망의 대상도 아니다. 어느 때는 내 앞에 주어진 삶이, 괴수에 의해 파괴된 도시보다 더 난장판이고, 내 앞의 상사가 조커보다 더 악랄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구태여 그렇게까지 멀리 나가야 하나? 어느새 더럽게합리적이고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소설을 읽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정말 단숨에 읽었다. 이야기 속 인물들과 하나가 되어서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나도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까웠다는 세간의 평가들에 좋아요를 누른 1인 중 하나다.

 

  이 책은 8개의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가 2~30대 직장인들에게 무척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익숙함공감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이다. ‘내가 아는 이야기’, ‘나에게 익숙한 이야기는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시함을 유발한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미 아는 이야기’, ‘식상한 이야기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는 듯하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극찬을 받기도 하고, 깍쟁이 직장여성의 깊이 없는 일기 정도로 비하되기도 한다.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전자의 평가에 가깝다. 올해 가장 뜨거웠던 책은 ‘90년생이 온다가 아닐까 하는데 이 책도 그 비슷한 흐름 속에 있다. 사회로 새롭게 진입한 젊은 세대들이 추구하는 바와 충돌하는 지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수평적인 조직을 추구한다지만 기존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조직문화, 원칙 없이 오너의 기분에 따라 추진되는 일들 등 직장에서의 불의(不義)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시대 직장인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꿈꾸고, 정치의 민주화만큼 일상에서도 정의가 충만하기를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과 부딪친다. 우리들은 더 이상 직장과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르러 거대한 성공을 얻게 되기를 꿈꾸지 않는데 말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_ 73(e-book)

전 막 열심히 하기도 싫고, 막 성공하고 싶지도 않은데요.” _ 135(e-book) 

  우리의 분노는 사회체제나 구조에까지 번지지 못하고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주변의 직접적인 인물과 현상에 꽂히곤 한다기업의 지배 구조자본의 본질이 어떤가보다는 오너의 언행불일치를 비웃고축의금을 내지도 않으면서 받으려고만 하는 직장 언니의 뻔뻔함에 분노하며잘해준다고 생각했지만 불성실함으로 대응하는 가사도우미에 화가 난다사실 이것이 우리 세대의 한계이기도 하다소소한 불의에는 분노하지만그 이면에 있는 거대한 불의의 구조에 대한 의문이나 고민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위태하게 외줄타기를 하고 있지만결국에는 이 서바이벌 게임의 생존자가 되기를 원하지 돈키호테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연봉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씁쓸한 감정이 들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나는 정말이지진심으로기뻤다방송국이고 피디고 뭐고 지긋지긋했다대신 4대 보험이 어쩌고 하는 말들과 상여금특근수당연차와 실비보험 같은 단어들이 그렇게나 따뜻하고 푹신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수습 기간이 끝나고 정직원이 되면서 회사에서 가족 의료비도 지원해주었다아빠는 그 돈으로 수술할 수 있었다. _ 247(e-book)


  그럼에도 나는, 2019년을 살아가는 2~30대 직장인의 일상과 생각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타임머신에 단 하나의 물건을 담아야 한다면, 이 책을 넣고 싶다. 우리와 가장 가까이 근접한 소설이다. 회사일과 글쓰기를 병행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작가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이 많고 많은 유혹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그것만으로도 자신감을 얻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공유하는 직장인으로서 작가의 앞날을 기대하고, 또 응원하고 싶다.

 

이 사람아. 잘 생각해야 돼. 요즘은 그냥 순간이야, 순간. 딱 한 곡이라고. 이 많고 많은 유혹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삼분 정도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았으면 그걸로 된 거야. 최선을 다한 거야.” _ 131(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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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1-2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ook쪽수도 있나요? 전에 밀리의서재에서 보니 쪽수 없던데 ㅎㅎ 있어야하는게 당연한거죠 ㅎ

송도둘리 2019-11-29 12:47   좋아요 1 | URL
이북에는 쪽수가 없더라고요...그냥 제가 화면에서 읽을 때 나오는 쪽수를 적어놨습니다. 아마 다들 화면 크기에 따라 다르긴 할텐데...나중에 제가 다시 찾을 때 편하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