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빗 -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
웬디 우드 지음, 김윤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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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를 하고 못하고는 의지력만의 문제는 아니다. 좋은 습관이 형성되어 있는 사람은 훨씬 효율적으로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룬다. 습관은 고민 없이 자동으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보상을 주거나 환경을 바꿔가며, 하기 쉽게 또는 어렵게 마찰력을 주어 습관을 만들고 없앨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이다.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꾸준히 반복하면 습관이 마법처럼,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다. 이 책은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었던 바를 과학적으로, 통계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쉽고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데 무척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은 탓이다. 이 또한 반복만이 해결책일 테고.

이로써 우리는 곧 ‘시작’보다 ‘지속’이, ‘탁월함’보다 ‘꾸준함’이 인간의 삶을 더 생산적이고 가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 P19

뇌과학적으로 봤을 때 무언가를 반복하는 일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과 전혀 다른 영역의 행위이며, 같은 방식으로 여러 번 반복하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할 수 있다. 이렇게 변한 ‘무언가’는 보상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매우 강력한 지속력을 얻게 된다. - P80

무언가를 시작할 때(학습)의 뇌와 무언가를 반복할 때(습관)의 뇌가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그리고 각각의 영역은 자극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더 발달한다. 즉, 당신의 행동이 뇌를 재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당신이 처음 그 행동을 배웠을 때(학습)와 늘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일을 반복할수록(습관) 당신의 뇌 속에서는 새로운 신경 시스템이 계속해서 재구축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뇌의 재설계 덕분에 과거에 우리가 학습했던 것을 반복하면 그다음에는 좀 더 수행하기가 쉬워진다. 뇌가 그에 맞춰 조금씩 변하기 때문이다. 소금을 얼마나 더 넣어야 하는지, 면은 언제 꺼내야 하는지, 스파게티 소스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습관이 형성된다. - P104

충동에 맞서는 시도는 손가락으로 둑을 막는 것과 같다. 단기적인 해결책에 불과한 것이다. 계속해서 의식적 자아를 불러내 욕구에 맞서 싸우는 일은 고통스럽고 외롭다. ‘생각하는 일’은 동원할 수 있는 숫자가 정해진 기병대와 같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사람들은 성적 향상, 승진, 자녀 교육, 저축, 다이어트, 건강한 식습관 등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장기 목표 앞에서 금세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 - P124

그렇다면 이들은 금욕에 매달리지 않고 어떻게 건강한 행동을 반복했을까? 어떻게 좋은 습관을 몸에 새겼을까? 그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자동으로 운동하러 나갔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운동을 했다. 운동은 이미 그들의 삶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있었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날마다 작은 성공을 쟁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건강해지기 위해 굳이 입술을 꽉 깨물지 않았다.
매일 10킬로미터씩 달리는 사람에게 비결을 물어본다면, 그 사람은 첫 1킬로미터가 힘들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또 마지막 1킬로미터 역시 힘들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 출발한 후에는 그만 뛸지 말지, 몸이 불편한지 아닌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강력한 달리기 습관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별달리 고민하지 않는다. 단지 정해진 패턴에 따를 뿐이다.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한번 형성된 습관은 당신의 고통을 덜어준다. - P125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언제나 ‘투쟁’이 아니라 ‘자동화’로 목표를 달성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굳이 입술을 꽉 깨물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한 행동을 반복한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고 해동하고, 한번 시작하면 고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날마다 작은 성공을 쟁취한다.
그들은 투쟁하지 않는다. - P126

우리는 상황에 따라 행동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면서도 주변 상황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변화를 꾀할 때 의지력과 동기부터 찾아나서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어떤 행동이 주변의 압박에 얼마나 크게 좌우되는지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습관은 그 점을 알고 있다. 더 건강해지겠다고, 더 부자가 되겠다고, 더 똑똑해지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데 실패했다면 스스로를 자책하는 대신 부엌을 정리하라. 과일 바구니를 눈에 더 잘 띄는 곳에 둬라. 설탕 덩어리 쿠키를 파는 커피숍을 피해 약간만 더 돌아서 출근하라. 브라우니를 가져오는 동료를 피하라. 우선 자신을 용서한 다음, 당신이 살고 있는 상황을 평가하여 자신의 삶을 더 쉽게 만드는 일에 착수하라. 그렇게 하면 우리의 인생에는 좋은 습관만 굴러들어올 것이다. - P151

자기통제를 이용한 행동 변화는,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동 변화처럼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설사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더라도(실제로는 그럴 수도 없지만),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겠다는 야무진 시도는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계속해서 자신의 욕구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하며, 흥을 깨고 금욕 속에 자신을 밀어 넣어야 한다. 공부하는 공간, 즉 환경에 변화를 꾀한 학생들은 자신과 불쾌한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이들은 물리적, 사회적 주변 환경에서 놀고 싶은 유혹을 아예 제거함으로써 여러 바람직하지 않은 욕구를 차단했다. 예를 들어 친구와 영화를 볼지 말지 갈등하지 않았다. - P153

위치라는 마찰력을 잘만 활용하면 원하지 않는 삶은 멀리 떨어뜨리고, 원하는 삶은 내 쪽으로 당겨올 수 있다. 위치는 마치 ‘해류’와도 같다. - P165

바꿔치기 전략이 성공하려면 ‘보상’의 원칙을 잘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선택지가 전보다 못한 것으로 판명되면, 뇌의 도파민은 활동을 멈추고 앞으로는 그 행동을 피하라는 신호를 내보낸다. 더 나은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새로운 신호를 만들려고 할 때는 반드시 더 큰 보상을 마련해야 한다. 만약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면 그 습관을 발동시키는 신호가 무엇인지 파악하라. 그리고 그 신호가 요구하는 보상을 동일하게 실현할 수 있는 좀 더 나은 반응(습관)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대지 위에 좋은 습관이 단숨에 자라나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신호를 주체적으로 파악해 그것들이 이미 구축해놓은 ‘자동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 P192

마법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용히 시작된다. 그러니 언젠가는 마법이 일어난다는 걸 믿어야만 한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신경 네트워크와 기억 시스템에 습관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새로운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만 한다. 그러다 어느 지점이 되면 그 반복은 습관을 낳고 우리의 제2의 천성이 되는 것이다. - P214

고민하지 말고 좋은 습관으로 향하는 행동을 그냥 반복하라. 처음에는 괴롭고 힘들겠지만, 임계점을 돌파하면 내적 갈등이 해소되면서 새로운 행동이 싹을 틔운다. 습관은 마음을 빠르게 장악한다. 자신이 선호하는 상황을 인식하기만 하면 반응이 자동으로 촉발된다. 과연 이것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인지 고민하기도 전에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이 점을 명심하라. 습관의 이 가공할 처리 속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때는 ‘선물’이 되지만, 원하지 않는 습관을 통제하려 할 때는 ‘골칫거리’가 된다는 것을. 반복은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방망이나 마법의 도화선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습관을 빠르게 유발하는 지름길일 뿐이다. 당신이 어떤 일을 두 번째 할 때는 처음보다 시간과 정신적 노력이 덜 든다. 세 번째는 두 번째보다 더 수월해지고, 네 번째는 세 번째보다 월등해진다. 그리고 그사이 습관이 불쑥 치고 들어와 마음을 장악한다. - P222

반복을 통해 좋은 습관이 형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우리는 새로운 행동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여기까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고 오로지 반복만이 정답이라는 태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여선 안 된다. 의식에 매여 있는 당신의 인생 일부를 반복으로 만들어진 습관에 맡긴 뒤, 그렇게 얻은 여유를 정말 중요한 일(기계처럼 반복해선 안 되는 일)에 투입해야 한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애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 P229

인간의 충동적 본성은 인내심이나 자제력만으론 다스릴 수 없다. 오직 정교하게 설계된 습관의 힘으로만 통제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출처가 정확하지 않은 이메일을 함부로 클릭하지 않고, 가게에서 도둑질을 하지 않고, 배우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동료에게 함부로 폭언하지 않는 습관을 갖추길 바란다. 한번 먹이를 맛보기 시작한 내면의 나쁜 습관은 인생의 다양한 충동에 반응해 점점 몸집을 키워나갈 것이다. 그러다 어떤 상황에 이르면, 가령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정신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산만해지면 이 나쁜 습관이라는 늑대가 마음을 비집고 불쑥 튀어나온다. 그땐 아무도 이 늑대를 막을 수 없다. - P275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습관은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인생을 구원하는 습관도, 파멸시키는 습관도 모두 우리의 선택에서 비롯한다. 평소 좋은 태도를 유지하고 몸에 각인시킨 사람이라면 급박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올바른 행동을 반복할 수 있다. 습관은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거나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목적지까지 인도한다. 좋은 습관은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복잡다단한 일상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P275

어른들도 반복해서 접하는 외부의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은 반복해서 한다. 하지만 반대로 반복해서 하는 일이 점점 좋아지기도 한다. 마치 양쪽에 놓인 거울에 우리 모습이 무한정 반사되는 것처럼 반응이 계속해서 다음 반응을 낳는다. 이는 우리의 습관 형성 원리와 관련돼 있다. - P296

계속 경험하면 그것은 곧 우리가 바라는 바가 된다. 결국 습관이란 양방향 통로다. 어떤 행동이 작은 목표를 달성하면 그것이 작은 욕구로 변해 다시 행동을 촉박한다. 그럼 그 행동은 다시 목표를 달성하고 좀 더 큰 욕구가 생성된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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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유리벽 안에서 행복한 나라 타산지석S 시리즈
이순미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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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조선이라는 자조가 무색하게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꽤 높아진 듯하다. 세계적인 감염병 유행 속에서도 극단적인 통제 없이 헤쳐나가고 있는 모습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된 것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헬조선을 구성하던 문제들이 일거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높은 청년 실업률, 성긴 사회안전망, 떨어진 성장 동력 등의 사회 문제는 여전하다. 단점이 없어지고, 장점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새삼 우리 사회의 밝은 면을 발견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이상사회로 생각했던 나라들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도 알게 됐다. 어느 사회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게 마련이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최근 허둥대고 있는 것을 보면 지상낙원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재작년인가 싱가포르로 여름휴가를 떠나기 전 읽을 요량으로 보관함에 담아뒀던 책인데, 이제야 읽게 된다. 코로나19로 여행을 떠나지 못해서인지 이런 책들을 통해서 떠나고 싶은 욕구를 대리만족하고 있다. 이왕이면 한 장소에 오래 살았던 사람의 경험담이 더 진국일 것이라는 기대로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여느 여행자의 에세이에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꽤 있다. 싱가포르의 춤 문화나 메이드의 희생으로 일궈낸 남녀평등이라는 소재는 여행책자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다. 싱가포르 여행지에 대한 소개는 없다시피 하지만 이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지은이는 싱가포르를 유리벽안에서 행복한 나라라고 정의한다. 기가 막힌 비유다. 누군가 유리벽 안에 있으면, 외부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게 되고, 행동도 제약을 받는다. 저자의 비유대로 싱가포르는 나의 자유의 일부를 국가에 반납하는 대신, 정부의 통제와 보호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진 자연농원이다. 시끄럽지 않은 세상, 각자 자기 위치에서 ()다이 신()다이 민()다이사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다소 숨 막힌 삶이다. 그 유리벽의 존재를 몰랐을 때야 괜찮지만, 유리벽의 답답함을 느꼈을 때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작은 섬나라를 세계적인 도시국가로 만든 리콴유 수상과 싱가포르 사람들의 노력은 경탄할만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 한 번 성공한 공식이 다시 통할 수 있을지. 다양한 경륜을 가진 정치가들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부로 여겨지는 사람의 아들이 세습통치하는 구조가 과연 21세기에도 효과적일지.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이 하부구조를 떠받치는 데에 따른 위기나 변수는 없을지. 몇 가지 의문은 있지만, 현재의 성공신화 속에서 이러한 의문들은 힘을 잃을 때가 많다. 싱가포르가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될지, 아니면 반면교사가 될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 밑줄긋기의 쪽 수는 e-book 화면에 표출된 것을 기재한 것으로, 단행본의 실제 쪽수와 다를 수 있습니다.


유리벽 안에만 있으면 싱가포르는 멋진 나라, 볼 만한 나라, 즐길 것이 많은 나라다. 유리벽 안에서는 세계 어느 곳보다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싱가포르에 한번 발을 디딘 서양인은 절대 싱가포르를 떠나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 P8

싱가포르 정부는 벌금, 조선시대에나 있었던 태형, 비밀경찰 따위의 몇 가지 협박을 교묘하게 내놓았다 감췄다 하면서도 외국인을 포함한 국민들에게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즐기라고 한다. 별일 아니다, 애써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먹으면 안 되는 사과 몇 알 외에는, 싱가포르 정부의 통제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보장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굳이 그 그늘에서 벗어날 이유를 못 느낀다. 저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맥없이 묻힐 수밖에 없다. 어쩌면 싱가포르는 인간이 만든 모조품 에덴일지도 모른다. - P11

리콴유 수상의 클린 앤 그린(Clean & Green) 정책이 ‘가든 시티’라는 명성과 ‘가든스 바이 더 베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준 반면, 벌금의 도시(Fines City)와 보모국가(nanny state)라는 오명도 줬다. - P79

그러나 한편으로는 애초에 가능성과 희망이 잘리는 무력감과 더위까지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최악의 상황을 제공한다. 내가 만났던 느리고 게으른 상점의 점원이나 일꾼들은 더위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려서부터 무력함에 길들여져서 게을러진 것일지도 모른다. 우수한 인력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젊은 나이에 10년 후에도 현재 만들어진 내 모습으로 쭉 나아갈 수 있다는 안일함. 싱가포리안이 그처럼 밋밋한 것은 교육적인 환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 P114

사람에겐 죽는 날까지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싱가포르에서는 너무 빨리 인생이 결정된다. - P115

두리안이 그 고약한 냄새를 잃는다면, 과일의 왕좌를 내놓고 그저 단맛 나는 열대 과일쯤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내 부족한 점들이 오히려 나를 더 매력 있는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해도 될 것 같다. - P178

손에 묻은 두리안 냄새를 말끔히 없애는 방법은 두리안 안에 있다.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 자기 안에 있듯이 그 골칫거리인 두리안의 냄새를 제거하는 방법은 두리안 껍질 속에 든 물로 씻는 것이다. 껍질 속에 있는 성분이 두리안의 냄새를 감쪽같이 제거해준다. - P178

고작 국경일 행사나 왈츠가 그들의 오락거리였으니, 싱가포르에서의 삶이 밍밍하다고 하소연하는 싱가포리안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밍밍하게 살 능력이 없으면, 싱가포르로 이민 갈 생각을 말아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 P206

찰나의 마주침이었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 잔영을 남기는 사람이나 장소, 음악이 있다. 잔잔한 듯, 별 힘이 없는 듯하면서도 마음속에 오래 파동을 남기는 그런 부류들, 은근히 사람 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도무지 떨쳐낼 수 없는 알 수 없는 위력을 가진 그 존재 앞에서는 거부 의사를 표하기가 쉽지 않다.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석양이 아름다운 것 외에는 조건이 맞지 않는 콘도였는데, 부부가 나란히 뭐에 홀린 듯 저항하지도 못하고 월세 계약을 했다. 흠이 한두 가지뿐인 아파트들을 다 제쳐두고, 존재하지도 않는 석양이 감동적인 것 빼고는 좋은 점이 거의 없는 집을 고르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 - P290

싱가포르의 더위는 한마디로 말해 매력 없는 더위, 재미없는 더위다. 에어컨, 빌딩, 아스팔트…그런 도회적인 환경에서 나오는 지루한 더위다. - P293

그들의 기다림과 여유, 느림은 더운 나라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습득되는 삶의 형태였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본능이었다. 자연이 제공해주는 느릿함이었다. 사람이 자연을 떠나 따로 존재할 수 없다. 그 땅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적당히 느리고 게으름을 부릴 줄 알아야 했다. 갓 발령을 받고 온 신참내기 한국 주재원들은 더운 싱가포르에 와서 한국에서처럼 파닥거리다가 한 차례씩 큰 열병을 앓고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천천히, 천천히…." - P304

많이 변해버린 고향에 와서 보니, 나도 모르게 싱가포르의 통제 속의 자유를 용납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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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서쪽 끝, 포르투갈
서양수 지음 / 홍익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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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 출장 때 런던과 리스본에 들렸었는데, 런던보다는 리스본에서 보냈던 시간이 더 정겹게 남아있다. 살짝 낡고 촌스러운 듯한 도시였지만, 무엇인가 끌리는 데가 있었다. 아직도 리스본 하면, 보랏빛 자카란다꽃이 만발하고, 모자이크 타일이 오밀조밀하게 깔린 거리와 트램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느 광장이 책을 읽다보니 호시우(로시우) 광장인 듯하다의 오래된 가게에서 맛봤던 진자 한 잔의 알딸딸함도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미 5년도 더 된 일들인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다시 새록새록 떠올랐다.

 

  가족여행이라도 여행 중에 다툼과 위기가 있기 마련인데, 일행들의 개성이 다 다른데도 평화롭게 일정을 마무리한 저자의 융화력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글은 다소 가볍게 느껴지지만, 때때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어 나쁘지 않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이보다 더 좋은 글재주를 가지고 있다거나 더 많은 에피소드를 겪었더라도 이만한 여행기로 묶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여행 중의 일들을 목차를 갖춘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다만, 민망함과 어색함, 즐거움, 기쁨 등의 감정들이 글에 녹아나는 것이 아니라 크크’, ‘크하하’, ‘하하하라는 웃음소리 그대로 그냥 버려져 있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물론, 꿰지 못한 추억들과 생각들이 방 한가득인 게으름뱅이가 할 이야기는 아니다.


  책장을 다 덮고 나니 불현듯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코로나19만 아니라면! , 회사만 아니라면! 아니, 매달 적자의 재정상태만 아니라면. , 도대체 언제쯤 떠날 수 있을까? 꿰지 못한 바람과 소망들도 어느새 서 말이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中) - P85

욕심을 앞세우며 계획을 세우다 보면 꼭 가야 할 곳들이 생긴다. 그 장소를 연결하면 선이 되고 그게 바로 여행 루트가 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처음 찍은 점들만이 여행이 아니라 점을 연결한 선들도 모두 여행이다.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해 처음 찍었던 점만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볼거리가 많은 도시에선 그 진리를 알아도 해결이 쉽지 않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진짜 유명한 장소인데, 바로 눈앞에 예전부터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거기서 조금 더 가면, 조금 더 가면.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다른 곳을 열망하며 무리하게 공간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여행은 그야말로 ‘이동’이 돼 버리고 만다. 과정은 생략되고 점만 남아 안 그래도 짧은 여행이 더 짧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 P93

생각해 보면 이 짧은 하루 동안 참 별일이 다 있었다. 만원 트램에서 소매치기와 고래고래 싸우지를 않았나, 그러다 한국 여배우를 만나 리스본의 거리를 함께 거닐고 있다. 사실 소매치기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도 없었던 인연이었다. 왜 이렇게 운이 나빴나 생각한 날도, 예상치 못한 행운에 감탄한 날로 바뀔 수 있는 게 삶 아닌가 싶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 P137

우리는 이국적인 마을에 취해 한량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아이가 문제집을 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부담스러워 중국집에서 뭘 먹었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먹고 나와 버렸다. "아니, 꼭 아시아인들은 어딜 가나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니까. 숨 막힌다." - P213

우리가 믿고 있는 상식의 탑과 직관의 성이 때로는 얼마나 헐겁게 연결돼 있는지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견고한 세상이 실은 그다지 견고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우린 또 얼마나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선입견과 편견의 울타리를 쌓으며 내가 만든 세상이 옳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말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그 단순한 진리 하나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의 당연한 모습을 해체시키는 경험이야말로 여행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테니 말이다. - P225

포르투에 익숙해지며, 우린 진화하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조금씩 익숙해진다면 이제 여행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날 때부터 익숙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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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몸도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본격 운동 장려 에세이
가쿠타 미츠요 지음, 이지수 옮김 / 인디고(글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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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과 정확히 일치되는 글은 아니다. ‘운동 장려 에세이라기 보다는 중년 여성의 마라톤 일지정도라고 해야 한다. 다만,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으면서 꾸준히 해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일반인이 마음먹어도 쉽게 해내기 어려운 마라톤이라니 더욱 그랬다.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욕심이나 갈망보다는 꾸준히 한 발짝씩, 한 발짝씩 나아가는 습관이랄까, 끈기가 너무 보기 좋았다. 그래서 책제목과 명실상부 하지 않아 실망스럽지만, 이 책을 그냥 덮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매 꼭지 하나하나는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그것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을 때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출발 전 귀찮음과 망설임 일단 뛰어본다(해본다) 뛰다가 너무 힘들어 걸을까 고민한다 그래도 뛴다 만족감과 깨달음을 얻는다는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메독 마라톤이나 나하 마라톤은 나도 한 번 참가해보고 싶을 만큼 이색적이었고, 달릴 때의 주변 풍경들도 매번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사진이나 지도 등 시각자료가 없어 심심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점이다.


나는 그때 뭔가를 깨우쳤다고 생각한다. 젊음과 새로움이 동의어가 아니듯,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 P9

운동이란 잘하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건강에 신경 쓰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거의 4년 동안 연재하며 몇 개월에 한 번 체육 수업에 참가하듯 운동을 했지만 역시 마지막까지 운동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 P12

40대 중반쯤 되면 대개는 자신이 대충 하는 것과 대충하지 않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노력해도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 P140

9년이나 계속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달리고 싶다거나 달리기 싫다거나를 생각하기 전에 일어나면 달리기용 운동복을 입게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꾀부리는 버릇 역시 나오는 모양이다. 이 꾀부리는 버릇은 대단히 무섭다. 버릇이란 건 습관에 필적한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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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에 천만 원 모으기 - EBS 호모이코노미쿠스
이대표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결국 돈을 모으려면, 더 벌거나 덜 써야 한다. 저축을 먼저 한 후 남은 비용으로 생활하고, 지출목적별로 통장을 구분하라는 지침 등은 이미 지키고 있어 새롭지는 않았다. 잡다한 기술이나 기교를 설명하기보다는 총론과 원칙을 설명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도전기에 자극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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