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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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전부터 육아휴직 중이다. 내 하루는 아이의 생체리듬에 맞추어 재편되었다. 아이가 잠이 들 때만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아이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갈 수도 없다 보니 신체활동이 확 줄어들었다. 하루에 만 보는 자연스럽게 채워졌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 절반도 채우기가 어렵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짬짬이 책을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소일하다 보니 찌는 것은 살이요, 느는 것은 갑갑함이다. 물론, 아이가 웃는 것을 보면 모든 피로가 싹 날아가는 느낌이지만, 신체 활동이 줄어든 만큼 활력도 감퇴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원래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않고, 조금만 뛰어도 숨을 헉헉대는 저질 체력이지만 요즘은 부쩍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이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적당한 신체활동은 마음도 건강하게 한다. 하루키가 달리기 시작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본업인 소설을 잘 쓰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처음의 목적을 뛰어넘어 삶을 더 풍요롭게 한 경우다.


내 경우,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 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므로 레이스나 연습을 위해서 작품을 쓸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고 할까, 약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단계에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있다. _ 264쪽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매일 1~2시간의 여유를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이틀이 지나면 또다시 갖은 핑계를 대고 집 밖에 나가지 않을 수 있다. 이유야 충분하다. 중국발 미세먼지, 공원의 민폐견, 추레한 트레이닝복, 너무 맑은 날씨(덥다), 너무 흐린 날씨(우울하다) 등등. 시작이야 쉽지만 길을 들이는 것은 어렵다. 습관이 들 때까지 그저 계속하는 것, 하루키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_ 19쪽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책이다. 기껏해야 하루키의 달리기 습관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달리기를 소재로 보여주는 하루키의 인생 철학이 정말 멋있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고단하고 귀찮을 수 있는 일을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반복하는 삶의 자세. 사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사회와 한 발 떨어진 침묵의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집에서라도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만드는 것, 그리고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있으면 만 가지의 핑계를 뒤로하고 성실히 걷고 뛰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 습관.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_ 115쪽


  남은 휴직 기간을 그렇게 잘 쓰고 싶다. 이 시간은 아이가 나에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므로.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19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유익한 운동인 동시에 유효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왔다. 나는 물론 대단한 마라톤 주자는 아니다. 주자로서는 극히 평범한 - 오히려 그저 평범한 주자라고 할 만한 - 그런 수준이다. 그러나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 P27

타인으로부터의 고립과 단절은 병에서 새어 나온 산(酸)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고 녹여버린다. 그것은 예리한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보호하는 동시에, 그 내벽을 끊임없이 자잘하게 상처 내기도 한다. 그와 같은 위험성을 나 나름대로 (아마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신체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움직여 나감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극한으로까지 몰아감으로써, 내면에 안고 있는 고립과 단절의 느낌을 치유하고 객관화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직감적으로. - P41

내 생각에는, 정말로 젊은 시기를 별도로 치면, 인생에는 아무래도 우선순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순번을 매기는 것이다. 어느 나이까지 그와 같은 시스템을 자기 안에 확실하게 확립해놓지 않으면, 인생은 초점을 잃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 P65

몸이라는 것은 지극히 실무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시간을 들여 단속적·구체적으로 고통을 주면 몸은 비로소 그 메시지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그 결과 주어진 운동량을 자진해서(라고는 말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수용하게 된다. 그 뒤에 우리는 운동량의 상한선을 조금씩 높여간다. 조금씩 조금씩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 P84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5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 P172

거기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같은 나의 성격일 뿐이다. 개인적이고, 완고하고, 협조성이 결여된, 때로 자기 멋대로인, 그래도 자신을 항상 의심하며,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거기에 우스꽝스러운 - 또는 우스꽝스러움과 비슷한 -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낡은 보스턴백처럼 그것을 둘러메고, 나는 긴 여정을 걸어온 것이다. 좋아서 짊어지고 온 것은 아니다. 내용에 비해 너무 무겁고, 겉모습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군데군데 터진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짊어지고 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메고 온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애착도 간다. 물론. - P229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 P256

내가 울트라 마라톤 쪽으로 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 경우,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 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므로 레이스나 연습을 위해서 작품을 쓸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나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고 할까, 약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단계에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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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Quiet -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수전 케인 지음, 김우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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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성과 외향성은 무엇이 더 우월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가진 성격적 특성을 바로 알고 그 재능들을 활용해야 한다. 학교와 직장도 내향성과 외향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브레인스토밍‘의 효과성에 대한 분석이 눈에 띈다. 잘 읽히지만 구성과 번역은 어수선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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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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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좋다. 흥미로운 고고학 이야기가 가득하다. 정확히 말하면, 현대 국가의 이해에 따라 재단되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불가피한 한계들과 필요와 요구에 따라 계속 반복될 오류들이지만, 그렇다고해도 하나하나 다시 살펴보고 성찰하는 학문적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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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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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되고 보니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도 아이들을 참 싫어하는 어른 중에 하나였는데... 이제는 아이들 노는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보면 무슨 이유가 있나, 어디가 아픈가 생각하게 된다. 물론, 아직도 어떤 아이들은 딱밤을 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울 때가 있지만.


  요새 화제인 육아 방송프로그램만 봐도 말썽꾸러기 아이들의 원인은 대부분 '양육자의 어린시절'이나 '사랑과 관심의 부족'에 있다. - 물론, 아이들의 모든 문제를 다 '부모탓'으로 돌리는 데 대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 주변의 자극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어떤 세계를 물려주느냐는 참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책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버릇 없는 아이들', '노키즈존 설치', '가정교육의 부재' 등등 '아이의 문제'로 결론짓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 지은이의 '노키즈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신선하고 공감이 갔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있다. 이 세계의 룰이 모든 세계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노인의 세계', '장애인의 세계', '빈자의 세계' 등 소외 받는 이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다. 이해하려 하고 노력하면 보이기 마련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에세이다.


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 P42

놀이터의 모래 때문에 뛰기 어렵고, 모래가 자꾸만 신발 속에 들어가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하준이는 바로 그런 모래를 믿고, 떨어져도 다칠 걱정없이 아찔한 정글짐을 올랐던 것이다. 나는 마치 격언인 것처럼, 하준이의 말을 그대로 외웠다. "밑에 모래 있으면 떨어져도 안 아파요."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 P63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 이것이 나 자신의 사훈이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을 존중하고, 그들의 지적 정서적 성장을 돕고, 좋을 때 좋게 헤어지는 것. 직업 윤리와 진실한 자세만 있다면, 굳이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고도 성과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랑‘이란 내가 다루기에 너무 크고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마음이 드러날지도 모르니 늘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 P151

다만 어린 나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사랑도 감사의 표현인 양 생각했던 것 같다. 고마워서 사랑한 게 아닌데. 엄마 아빠가 좋아서 사랑했는데.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다. 어린 나도 몰랐고, 아마 부모님도 모르셨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 다만 서툴러서 어린이의 사랑은 부모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하는지 모른다. - P179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 P212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 P219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좋아해서 그러는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 것 같다면,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 P227

어린이가 그림을 망쳤을 때 "다 소용없는 일이란다. 구겨 버리렴"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고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새 종이를 주고, 다음에는 더 잘 그리도록 격려할 것이다.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 실제로 어린이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새 종이를 주며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기도 전에 어린이는 종이를 뒤집어 뒷면에 새로운 그림을 시작한다. 냉소주의는 감히 얼씬도 못 한다. - P256

‘김소영‘이라는 렌즈로 세계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마침내 깨닫게 된다. 어린이를 온전히 마주하는 경험은 결국 우리 안에 오랫동안 꽁꽁 숨겨 둔 가장 작고 여린 마음들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고 천천히 헤아리는 시간이라는 걸. 어린이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과 태도와 마음,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해 있다는 걸. (윤다은 영화감독, 추천의 글)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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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자서전
벤자민 프랭클린 지음, 이계영 옮김 / 김영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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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하다. 시대를 넘어선 고전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프랭클린 자신은 겸손을 생의 모토로 삼았지만 자서전에는 은연 중에 자랑이 뭍어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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