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리커버)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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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런 책이 참 좋다. 몇 번이고 되뇌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이나 유려한 비유는 없지만,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고 꾸밈없이 담아내는 책. 이 책이 아니었다면 천문학자의 삶에 대해 관심도, 알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글을 읽다 보니 그동안 천문학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 예컨대, 천문대에서 천체망원경만 들여다보는 말수 적은 괴짜라는 이미지는 고정관념에 불과했다. 천문학자 이전에 비정규직, 아이의 엄마, 야근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깊이 공감했다. 글이 무척 솔직담백하고 순수하게 느껴져서, 읽는 동안 지은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할 수만 있다면 '우주의 이해'라는 과목도 수강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네 벽면에 난 창문이 모두 남향인 집?'(181쪽) 이야기는 아직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너무 별것 아닌 에피소드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해서 이해한 것처럼 책장을 넘겼는데, 사실은 여전히 모르겠다. 아까 지은이의 강의를 수강하고 싶다고 했지만, 만약 수강하게 되더라도 별까지 거리 구하는 공식(39쪽)을 풀 자신도 없다. 아, 어쩔 수 없는 문과형 인간이여... 참 좋은 만남이었지만, 아무래도 더 친해지기는 힘들 것 같다... 


  지은이와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그리고 '특별한' 이야기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 P13

허상 말고는 별다른 목표가 없는 인간이었다. 그저 오늘 할 일 오늘 하면서 사는 타입이다. 그게 잘 안 될 때도 많지만, 그러려고 노력은 한다. 그러니 내가 ‘타이탄 전문가가 되고야 말겠어!하는 다짐 같은 걸 했을 리 없다. 어쩌다보니 ‘행성방‘이라 불리는 연구실에 들어갔고, 어쩌다보니 아무도 손댄 적 없는 타이탄 관측자료가 내 손에 쥐였을 뿐이다. 어쩌면 한 번도 선택된 적이 없었기에, 오히려 더 절대적인 연구 주제가 되었달까. - P24

괴로울 때는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게 되지만, 그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삶의 다른 면을 돌보고 있었잖아요. - P70

우린 항상 잘 모른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 P95

어느 쪽이 더 의미가 깊고 가치가 높은 삶이냐 하면 그것도 쉽게 말하기 어렵다. 아이를 키우면서 얻는 행복이 천국 같다던데 하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천상의 기쁨과 동시에 그만큼 깊은 지옥도 만나게 된다고 답해주었다. 결국은 다 상쇄되지 않을까. - P116

나를 더욱 곤란케 하는 것은, 내가 어떤 대단한 계기로 천문학을 선택한 것도,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천문학자가 되기만을 그리다 마침내 꿈을 이룬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각자 인생의 흐름이 있는 것이고, 나는 삶을 따라 흘러 다니며 살다보니 지금 이러고 있다. - P145

하지만 언젠가 아이도 내 품을 떠날 것이다. "엄마가 뭘 알아?" 하고 큰소리치면서 제 방문을 쾅 닫아버리겠지. 독립한다고 손바닥만한 집을 얻어 나간 뒤 숙제는커녕 어떤 조언도 구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더 큰 집을 마련하게 되면 내 집에 남아 있던 제 짐을 마지막 하나까지 가져다 자기 보금자리에 옮겨두고는, 나더러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으라는 둥 아프면 병원에 좀 가라는 둥 타박을 할 것이다. 그 애가 마지막으로 잠시 나를 돌아본 뒤 자신만의 우주를 향해 날아갈 때, 나는 그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아주리라. - P155

뭐라도 되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고, 삶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안갯속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글을 썼다. 그래서 ‘어떤‘ 책이 되긴 되었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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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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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한 몰입감과 속도감. 서늘하고 어스름한 현장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역시, 정유정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완전한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말하려고 했던 바가 신유나라는 인물을 통해 제대로 구현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과 자기애라는 주제는 또 그것대로. 온전히 섞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서로 겉돌다가 책장을 덮고 나면, 재빠르게 사라진다. 솔직히 말해, 기대에 못 미친다.


  만약 '고유정 사건'이 없었다면, 이 소설을 읽고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구나, 무서운 일이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이미 몇 년 전 현실로 일어나버렸다. 바로 이 점이 소설의 생동감을 떨어뜨린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지 현실을 통해 얼추 알고 있으니까. 어쩌다 소설의 상상력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 걸까. 갑자기 스산한 느낌이 든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동의할 수 없는 개념이었으나,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 P112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타협이 있을 리 없었다. - P115

타인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건 행동의 의미를 스스로 설명해내는 일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유나를 잘 안다고 자부해왔으나, 막상 까보니 착각이었다. 안다고 여겼던 건 유나가 아니었다. 유나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었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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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7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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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7 2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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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 온전히 나를 위한 어른의 공부
와다 히데키 지음, 장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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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하다 일제 자기계발서를 읽게 될 줄이야! 와다 하루키의 책인 줄 알고 빌렸는데 와다 히데키는 누구인고. 그저그런 수준의 책이지만, - 물론 저자의 삶은 전혀 그저그렇지 않고 열정적이고 매우 정력적이다 - ‘아웃풋’을 내는 독서를 해야한다는 말에 한 방 먹은 느낌이다. 맞다. 나는 아웃풋을 내는 일에 너무 게으르다. 다시 한 번 개선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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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사이언스 - 프랑켄슈타인에서 AI까지, 과학과 대중문화의 매혹적 만남 서가명강 시리즈 2
홍성욱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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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재미있다. 유토피아, 사이보그, 로봇 그리고 세계에 대한 글들. 과학인지 인문학인지 모호하다. 한 꼭지는 문학평론 같기도 하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창조적 사고가 중요하며, 학문 간 통섭과 융합이 긴요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관점‘ 말고 학문으로서의 정체성은 의심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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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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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책이다. 재미있다. 위트와 유머가 넘치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 않다. 이름만 들어서는 절대로 읽지 않을 철학자들의 고전과 지혜를 직접 체득(!)하여 풀어내었다. 담고 있는 지혜의 양과 질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얼마 전 읽은 <질서너머>와 대비되었다. 책은 이렇게 써야 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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