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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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는 이 세계가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 극빈층은 20년 전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고,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도 크게 줄어들었으며, 세계 기대 수명은 70세에 달한다. 의외의 사실이다. IS와 같은 끔찍한 테러, 환경오염, 새로운 전염병의 창궐, 핵전쟁의 위험. 아침 뉴스에서, 민방위 훈련에서 들은 그 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정말 이토록 살만한 곳이란 말인가?

 

긍정적 변화는 훨씬 흔하지만 그 소식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라. 우리가 직접 찾아봐야 한다(통계를 보면 그런 소식은 차고 넘친다). _ 104

 

  저자는 유명한 의사이자 통계학자였다. - 안타깝게도 그는 2017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역작이다. - 그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여러 통계를 보기 좋게 풀어주며 사실에 근거하여 세계를 바라보자고 말한다. 이분법과 낭설들, 그리고 공포에 이끌리지 말고 정확히 있는 그대로 세계를 보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세상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가 진짜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게 된다.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볼 때 마음이 더 편하다는 것이다. 대단히 부정적이고 사람을 겁주는 극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적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_ 365

 

  단지 통계에 대한 책이라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것보다 훨씬 큰 책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 학문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준다.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이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읽은 가장 중요한 책, 세계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안내서라는 빌 게이츠의 평가는 정확했다고 본다.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죄를 추궁하기보다 시스템에 주목해야 할 때가 많다. (중략) 세계를 정말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_ 295

세상은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다. 모든 면에서 해마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 대체로 그렇다. 더러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지만, 이제까지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다. 이것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다. - P27

· 극단 비교를 조심하라. 국가로 보나, 사람으로 보나 어느 집단이든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이 어느 정도는 있게 마련이다. 아울러 그 차이가 심각하게 불공평할 때도 더러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사람들이 흔히 간극이 존재하려니 생각하는 중간층에 사실은 다수의 사람이 존재한다. - P70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어리석은 오해로 희망을 버린다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희망을 포기하는 건 부정 본능과 그에 따른 무지가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 P102

긍정적 변화는 훨씬 흔하지만 그 소식은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라. 우리가 직접 찾아봐야 한다(통계를 보면 그런 소식은 차고 넘친다). - P104

· ‘다수’에 주의하라 다수는 절반이 넘는다는 뜻일 뿐이다. 언급한 다수가 51%인지, 99%인지, 그 중간쯤인지 질문하라. - P232

운명 본능을 억제하려면 더딘 변화도 변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 점진적 개선을 추적하라 매년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수십 년 쌓이면 거대한 변화가 될 수 있다.
· 지식을 업데이트하라 어떤 지식은 유통기한이 짧다. 기술, 국가, 사회, 문화, 종교는 끊임없이 변한다. - P262

· 수치를 보되, 수치만 봐서는 안 된다 세계를 수치 없이 이해할 수 없지만,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진짜 삶을 말해주는 수치를 사랑하라.
· 단순한 생각과 단순한 해결책을 조심하라 역사는 단순한 유토피아적 시각으로 끔찍한 행동을 정당화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복잡함을 끌어 안아라. 여러 생각을 섞고 절충하라. 문제는 하나씩 사안별로 해결하라. - P288

세계의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죄를 추궁하기보다 시스템에 주목해야 할 때가 많다. (중략) 세계를 정말 바꾸고 싶다면, 세계를 이해해야지 비난 본능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 P295

탄자니아의 현명한 주지사가 예전에 내게 해준 말이다. "누가 정글 칼을 들고 협박하거든 등을 보이지 말아요.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서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세요." - P349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겸손과 호기심을 가르쳐야 한다. 여기서 겸손이란 본능으로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것이고, 지식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겸손하면 모든 것에 대해 내 견해가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고, 항상 내 견해를 옹호할 준비를 해야 할 필요도 없어 마음이 편하다. - P357

호기심이란 새로운 정보를 마다하지 않고 적극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아울러 내 세계관에 맞지 않는 사실을 끌어안고 그것이 내포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이끌어내자. ‘내가 그 사실을 어쩌면 이렇게 잘못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사람들이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왜 그런 해결책을 썼을까?’ 호기심을 품으면 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 꽤 흥미진진하다. - P357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볼 때 마음이 더 편하다는 것이다. 대단히 부정적이고 사람을 겁주는 극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적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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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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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읽었다. 그리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도 몰입하게 만들고, 웃으면서 신나게 읽다 보면 결국, 생각할 거리가 남는다. , 글재주가 대단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말씀을 정말 잘하시는 주임님이 계시는데,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내곤 하신다. 우리가 그 주임님께 보내는 최고의 찬사는 ‘H주임님은 인생이 시트콤이야!’이다. 김영하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누가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추방을 당해봤을 것이며, 뉴욕까지 가서 게임에 빠져 두문불출해본 적이 있겠는가. ‘정말 인생이 시트콤이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도 많다. 저자는 책의 제목대로 여행의 이유를 구성지게 뽑아낸다. 인간의 원초적인 사냥방식은 그저 사냥감을 쫓아가 고립시키고, 지치게 만든 다음 포획해오는 것이었다며, 인간은 원래여행하는 동물이라는 부터 시작해서, 아폴로 8호가 보내온 사진을 소재로 인생이 곧 여행이라는 통찰도 이끌어낸다. 정말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신비하기도 한 여행이야기들의 연속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_ 138

 

   여행이란 어떤 목적을 품고 떠나지만 결국 전혀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돌아오는 여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전혀 다른 무언가가 인생을 바꾸기도 하는 그런 것이다. 마치, 원효대사 해골물처럼.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여행을 기획할 것이고, , 그 힘으로 다시 일상을 여행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읽어야 할 서류들의 틈바구니에서 여행에 대한 글을 읽는 것 또한 여행의 하나일 수 있으니.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_ 18~19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P18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 P24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P51

호텔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가?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즉각 처리 가능한 일도 있고, 큰맘 먹고 언젠가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도 있다. 집은 일터이기도 하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만 봐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니,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만 봐도 그렇다. 책들은 내가 언젠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일, 그러나 늘 미루고 있는 바로 그 일, 글쓰기를 떠올리게 한다. (중략)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가족에게 받은 고통, 내가 그들에게 주었거나, 그들로부터 들은 뼈야픈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집 구석구석에 묻어 있다. 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중략)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 P63

그러나 나는 언제나 고대의 지혜에 끌린다. 인생의 난제들이 포위하고 위협할 때면 언제나 달아났다. 이제 우리는 칼과 창을 든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른 적, 나의 의지와 기력을 소모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대결한다. 때로는 내가 강하고, 때로는 적이 강하다. 적의 세력이 나를 압도할 때는 이길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삼십육계의 마지막 계책을 써야 한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 P68

영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여행은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 P80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 P117

페넬로페의 침대에 누운 오디세우스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때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다. 영원히 늙지 않는 아름다운 요정 칼립소의 침대에서 매일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한 여행자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혜의 여신이 그를 다시 고난의 여행길로 끌어냈고 그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기다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것으로 돌아갔다. - P132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 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행은 먼저 도착한 이들의 어마어마한 환대에 의해서만 겨우 시작될 수 있다. 신생아는 자기가 도착한 나라의 말을 모른다. 부모와 친척들이 참을성을 가지고 몇 년을 도와야 비로소 기초적인 언어를 익힐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가 될 때까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 충분히 성장하면 인간은 지구에 새로 도착한 여행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것을 갚는다. - P138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던 시절이면 나는 무엇에든 쉽게 중독되어 자신을 잊기를 바랐다. - P178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 P179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P185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히 안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 P193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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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9-06-25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씨 소설은 모르겠는데 산문은 좋더라고요ㅎ 읽어보고 싶네요ㅎ
 
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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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한 일간신문은 이 책이 발간 일주일 만에 대부분의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 10위권에 든 사실을 놀라워하며, 그 원인을 중장년 남성들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론했다.

 

이순신의 내면을 빌려 전하는, 아비가 되고자 하는 자는 치욕에 몸을 담그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는 비장한 메시지가 허를 찔러서? 누구보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586의 정치 감각을 김훈이 대변하기 때문에? 그도 아니라면, 고정팬이라서?’

_ 신준봉 기자, 201946일 중앙일보 소득주도·창조경제현실개선 없는 슬로건 무의미

  다른 말이야 다 그렇다고 쳐도 진보적인 정치감각을 김훈이 대변한다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견의 효과나 전망을 분석하지 않고 이니 이니 하며 누구와 친하고 머냐는 것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는 그네들의 프레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해서 알러지처럼 반응하는 김훈에게 과연 그런 수사가 맞는지 의문이다. 물론, 그가 진보적인 성향을 대표하는 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회의가 들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김훈은 한국전쟁의 상흔과 이념으로 인한 갈등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세월호로 가족을 잃은 이들에 대한 슬픔과 위로를 담고 있지만, 그 어디서 진보적인 색채를 찾아낼 수 있는 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저자 스스로 촛불집회에 나가지도 않았거니와 태극기집회도 멀끄러미 바라만 봤다고 고백하는데 말이다. 물론, 광장이 뿜어내는 역사의 동력에 대해 긍정하긴 했지만 그것이 진보적인 정치감각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인지 외려 묻고 싶다. 그네들의 신문사 지하 3층 정도에 세상 만물을 진보와 보수로 재단할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상상해본다. 그 정도는 되야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것 아닐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이 책은 정치적인 논술이 아니다. 주제가 없다. 대부분 일상적인 소재다. 저자 자신도 일상적인 얘기를 중심으로 삼겠다는 기획의도가 있다고 한다. (예의 기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소재의 일면을 보면 똥, 호수공원, 오이지, 수다 등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일상적인 소재도 현학적으로 만드는 특이한 재주가 있다. 마치 의사 같이 실체를 하나하나 해부하고, 근원에 닿을 때까지 해체한 후 분석해서 다시 이어 붙이는 느낌이다. 글에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탐구에 대한 열정, 지식욕으로만 충만해 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구체적인 데이터와 숫자들에 대한 집착은 일상적인 소재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오이지를 담그는 법에 대한 글을 읽을 때면 정말, 변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김훈은 이순신에 대해서 여러 쪽에 걸쳐 이야기했는데, 특히 사실사실로 수용하는 태도가 이순신의 본령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런 모습은 김훈이 지향하는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다소 차갑고 비정해보이기까지 한다.

 

이순신이 남긴 기록에 의지해서 그의 지도력이 작동하는 모습을 헤아리건대, 그는 우선 이 모든 악조건과 그의 정치적 불운을 모두 사실로 긍정하고 있다. ‘사실에 정서를 이입시키지 않고 사실을 오직 사실로서 수용하는 태도는 그의 리더십에 한 중요한 본질을 이루는 듯하다. _ 117

 

   그의 글의 또 특징적인 부분은 생명과 힘, 근육, 원초적인 생동, 근원적인 것에 대한 동경인데 눈을 치우며’, ‘고래를 기다리며와 같은 꼭지에서 도드라진다. 남성성에 대한 동경으로 읽혀질 여지도 있는데, 이는 인간으로서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 없다는사실에 대한 김훈스러운 인정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밥벌이의 어려움에 대한 연민, 아버지와 남자로서의 삶에 대한 회한과 동정심, 쓸쓸함 이런 감정들도 강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중장년 남성들이 이 책을 주목하고 있다면 바로 이러한 감정선에 공감해서일지도 모른다.

 

주먹도끼의 손잡이에는 그 도끼로 사냥을 해서 처자식을 벌어먹이던 사내의 손바닥 체온이 남아 있다. 그는 이 손바닥으로 짐승을 때려잡고 아내를 애무했을 터이다. 주먹도끼의 손잡이는 사람의 손아귀에 닳아져서 반들반들하다. 나는 석장리박물관의 주먹도끼를 들여다보면서, 짐승의 머리를 치다가 일격이 빗나가서 짐승에게 먹힌 사내들, 하루종일 허탕치고서 배고픈 처자식들에게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내들, 비가 오고 또 눈이 와서 나가지 못하고 움막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내들을 생각했다. _ 312

 

   이 꼰대 같은 김훈이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정말 재수 없을 텐데, 그의 실수와 가끔씩 터져나오는 농담에서 인간미가 발휘된다. 그냥 쉽게 하면 될터인데 남의 결혼식에 주례서러 가서는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하고, 젊은이들의 키스에 헤벌쭉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씩하니 웃으며 바라보는 모습에서 김훈은 비로소 괴물을 벗어나 사람이 된다. 그의 글들은 엄한 아버지가 술을 잔뜩 드시고 와서 늘어놓는 잔소리 같지만, 그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비로소 들을 가치를 가진다. 세상에 꼰대들은 넘쳐 난다. 저마다 논리를 세워 기득권을 방어한다. 하지만 김훈의 잔소리는 건강하다. 그는 평화롭고 뜨거운 공동체를 열망할 뿐이다. ‘꼰대지만 꼰대짓을 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김훈처럼 쓰지 마라고 했다. 공감한다. 김훈처럼 쓰려고 작정하면 그 출발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사실에 집착하는 수집광이어야 하고, 누가 보던 말던 쓰고 싶은대로 쓴다. 비유도 여기저기로 이격하여 종잡을 수 없다. 이 책의 첫 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서문이 아니라 알림이다. ‘주인백으로 끝나는 이웃집 경고문 같다. 역시 김훈이다. 김훈은 김훈이기 때문에 김훈이다. 나는 김훈을 따라할 수 없다. 나는 심지어 그처럼 연필로 쓸 수도 없다. 컴퓨터로 쓰지 않으면 글을 쓰기가 어렵다. 손글씨로 쓰다보면 글자가 점점 삐뚤빼뚤해지고, 그런 글씨가 미워서 생각이 멈춘다. 그저 나는 나대로 쓸 뿐이다. 그래도 마무리는 김훈의 말을 빌리자.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_ 5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펴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출간으로, 나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 P5

결혼의 추동력은 사랑이지만,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밥을 벌어야 먹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영위는 물적 토대(material basic) 위에서만 가능하다. 물적 토대 없이도 지고지순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말도 있다는데, 그런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구태여 결혼할 필요 없다. 재물을 귀하게 여기고, 귀하게 쓰라. 재물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다. 현세적 가치를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 결혼은 사랑을 생활로 바꾸는 사업이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결혼은 부부가 스스로 확보한 물적 토대 위에 생활을 건설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결혼은 놀이가 아니다. - P82

결혼이란 오래 같이 살아서 생애를 이루는 것인데, 힘들 때도 꾸역꾸역 살아내려면 사랑보다도 연민이 더 소중한 동력이 된다. 불같은 사랑, 마그마 같은 열정은 오래 못 간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대개 이기심이 섞이게 마련이고 뜨거운 열정은 그 안에 지겨움이 들어 있어서 쉽게 물린다. 연민은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다. 연민에는 이기심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사랑이 식은 자리를 연민으로 메우면, 긴 앞날을 살아갈 수 있다. 오래 연애하다가 결혼한 부부가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연애를 오래했으면 서로 성격을 잘 알터인데,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는 말은, 이른바 사랑이 사그라진 자리에 연민이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은 단거리이고 연민은 장거리이다. 빚쟁이처럼 사랑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지 말고 서로를 가엾이 여기면서 살아라. - P83

사회 공공성의 문제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재수없는 소수(the unlucky few)로 몰아서 고립시키는 공작은 ‘안보와 경제’가 문제를 회피하는 오래된 방식인데, 세월호 참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도 어쩌다가 재수 좋아서 안 죽고 남아 있는 꼴이 되었고, 삶은 견딜 수 없이 무의미한 우연의 장난으로 느껴졌다. 쓰러진 세월호는 한국 현대사의 괴로운 자화상이다. 그 녹슨 고철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이 괴물은 고통스러운 질문과 회한을 한꺼번에 들이대고 있다. - P96

이순신이 남긴 기록에 의지해서 그의 지도력이 작동하는 모습을 헤아리건대, 그는 우선 이 모든 악조건과 그의 정치적 불운을 모두 ‘사실’로 긍정하고 있다. ‘사실’에 정서를 이입시키지 않고 ‘사실’을 오직 ‘사실’로서 수용하는 태도는 그의 리더십에 한 중요한 본질을 이루는 듯하다. - P117

이순신은 사실을 기록했을 뿐 첨삭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가 받아들이고 긍정했던 ‘사실’들은 압도적으로 열세인 군사력, 물량 부족으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부하들의 이탈과 명령 불복종, 전쟁을 지원해야 할 행정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짓밟혀야 하는 자신의 정치적 불운과 같은 시련과 역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지도자된 자질은 이 절망적인 역경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었다. 전 생애를 통해서 그의 리더십에 가장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대목은 이 전환의 국면 속에서 작동되었다. 후인이 전환의 내면을 말하는 일은 두렵다. - P123

민주적이고도 참여적이고 온정적이고 여론 수렴적인 리더십이 현대사회의 만인이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민주적 성격만으로 리더십의 내용이 모두 충족될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이순신의 생애는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준다. 리더십이란 때로는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고 회피하려는 방향과 목표를 향해 다중을 거슬러가면서 그 다중을 다시 몰고 나갈 수 있는 덕성까지를 포함해야 온전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적 위기 속에서 이 같은 리더의 자질은 국가 존망의 관건이다. - P138

이 ‘애국’은 스포츠가 아니고 이념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애국’의 비장한 정조는 정치권력의 압제와 비리를 정당화하는 당파성으로 변질되면서 후세로 전승되었다. 권력은 애국의 깃발 밑으로 결집되면서 억압을 형성했고 그 대척점에서 또다른 저항적 당파성이 형성되면서 태극기의 보편성은 훼손되어갔다. ‘애국’을 생업으로 하는 세력이 등장해서 일상의 자유를 억압해가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고귀함을 역설했다. - P229

그는 연평도 포격이 시작되자 지체 없이 대한민국 정부가 준 상장을 불질렀다. 나는 그의 이 정확한 생존술을 긍정한다. 이 민첩한 생존술은 그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 겪어낸 모든 광기와 야만성,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작동되는 생물적 조건반사였다. 이 조건반사는 이념이 아니고 당파성이 아니다. 애국이 아니고 매국이 아니고 혁명이 아니고 반동이 아니다. 이것은 충성이 아니고 배신이 아니다. 총칼을 들이대면서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이념의 폭력 앞에서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훈장을 태워버리는 행위는 정직한 삶의 길이다. - P289

주먹도끼의 손잡이에는 그 도끼로 사냥을 해서 처자식을 벌어먹이던 사내의 손바닥 체온이 남아 있다. 그는 이 손바닥으로 짐승을 때려잡고 아내를 애무했을 터이다. 주먹도끼의 손잡이는 사람의 손아귀에 닳아져서 반들반들하다. 나는 석장리박물관의 주먹도끼를 들여다보면서, 짐승의 머리를 치다가 일격이 빗나가서 짐승에게 먹힌 사내들, 하루종일 허탕치고서 배고픈 처자식들에게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내들, 비가 오고 또 눈이 와서 나가지 못하고 움막집 안에 웅크리고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사내들을 생각했다. - P312

자연으로서의 시간은 다만 전개될 뿐, 그 전개의 방향에 도덕적 목표가 없고 진화의 충동이 없다. 그 진행의 궁극에 관하여 인간은 영원히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생명은 그 자비 없는 시간에 쓸리면서 시간이 가져오는 변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저 자신을 전환시키는데, 저 자신을 전환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모조리 멸종해서 그 생명을 미래에 전할 수 없다. 이 전환이 건너뛰기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고, 수백만 년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멸종들의 무덤을 딛고 서서히 이루어진다. - P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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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괴로움과 고통이 아예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연한 모습으로 일상 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눈과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행복을 마중할 수 있도록 일상을 바꿔야 한다. 더 나아가 만족과 쾌락도 중요하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일상에서 행복을 가꾸고 삶을 품격있게 다듬어 나가는 삶이야 말로 좋은 삶이다.

구구절절 좋은 말들이지만 깊게 와닿지 않았던 것은 아쉽다. 다만, 행복한 일상의 10가지 조건, 품격있는 삶의 10가지 조건들은 가끔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하기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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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3 - 후한.삼국 시대.오호십육국.위진남북조 : 군웅과 패자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3
진순신 지음, 이수경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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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사놓고 이제서야 읽는다. 책장은 빛을 바래있고, 여러 차례 읽으려고 시도했던듯 흔적이 남아있었다. 사실 삼국지 영웅들 이야기를 읽고자 후한말까지 부리나케 읽었다가 더 진도가 나가는 것은 실패했었더랬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서진(西晉) 이후의 시대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혼란의 시대라, 왕가의 자제로 태어나는 것도 이름 없는 민초로 사는 것도 괴로운 시절이었던 것 같다. 불교와 도교가 전성을 이루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남의 나라 역사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을까 감탄하며 읽었지만, 오타가 너무 많다. 처음에는 숫자를 세다가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출간 이후에라도 관심을 기울여서 지속적으로 보정하는 작업이 있었으면 한다. 이제 4권을 바로 읽게 될까? 아무래도 또 여러차례 전진과 퇴보를 계속할 듯하다.

유적과 부곡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처지의 패거리가 둘로 갈려서 유적이 호족을 위협하면 부곡이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실제로 싸우는 두 무리는 비슷한 신세였다. - P11

제위에 오른 이듬해 광무제는 아내인 곽씨의 외숙 유양을 모반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처형했다. 후한의 정사인 『후한서』는 당연히 광무제에게 유리하게 기록했다. 거기에 모반이라 적혀 있는데 주살의 이유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다. 한왕조 부흥이라는 점에서 보면 준황족이나 그 방계인 광무제 유수보다 황족인 진정왕 유양 쪽이 훨씬 한나라 황실 혈통에 가깝다. 더구나 광무제로서는 ‘이 사람 덕분에 천하를 얻었다‘는 일종의 빚 같은 것을 느꼈을것이다. 만일 그가 사라져 준다면 광무제도 마음이 편했을 터였다. 적미군의 간부 중에서도 번숭(樊崇)과 봉안(逢安)은 일단 용서했다가나중에 ‘모반‘이라는 죄목으로 처형했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광무제에게 위험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천하를 얻는 일이 결코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 P39

속담에 이르기를 귀(貴)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富)해지면 아내를 바꾼다 하였소. 이것이 인정(人情)이 아니겠소?

대사공이 되고 열후가 되었으니 아내를 바꾸면 어떠냐, 그것이 인정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이에 송홍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빈천의 벗은 잊어서는 안 되고, 조강의 처는 당(堂)에서 내려가게 해선 안 되는 줄 아옵니다.

가난한 시절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며, 밀기울과 쌀겨만 먹고 고생을 함께한 아내는 집에서 내쫓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광무제는 병풍 뒤에 있는 누이를 향해,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단념하는 수밖에요.
라고 말했다.

함께 오래 산 마누라를 흔히 ‘조강지처‘라고 일컫는데, 이는 송홍의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교 시대였던 후한에서 송홍 같은 사람은 요컨대 시대의 모범생이라 할 수 있겠다. - P82

귀경에 즈음해서 후임 서역도호인 임상(任尙)이 조언을 청했을 때, 반초는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는 『공자가어(孔子家語)를 인용해, 사소한 잘못에는 관대하고 대강을 파악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타일렀다. 반고가 떠난 뒤, 임상은 친구에게 "반초에게는 기묘한 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지극히 평범한 말만 해줬다"고 말했다 한다.
반초는 후임인 임상이 너무도 엄격하고 더구나 성급한 것을 걱정했던것이다. 애초에 기책을 바라는 마음가짐이 좋지 않았다. 반초의 생각대로 임상은 서역에서 민심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서역은 다시 어지러워졌고 임상은 소륵에 포위되었다. - P103

진식에게는 또 한 가지 속담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해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밤 진식의 집에 도둑이 들어 대들보 위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진식은 아들과 손자를 불러놓고 위엄 있고 엄숙한 몸가짐으로 일장 훈화를 늘어놓았다.

무릇 사람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선하지 않은 사람도 반드시 근본이 나쁜 것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습관이 되어 나쁜 짓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대들보 위에 숨어 있던 도둑은 놀라서 뛰어내려와 벌을 받겠다고 했으나, 진식은 잘 타이르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보냈다. 그 후 그가 다스리던 태구현(太도縣)에는 도둑이 끊겼다고 한다. 이 일화가 유명해져 도둑을 양상군자(梁上君子)‘라고 부르게 되었다. - P177

손권을 화나게 만든 것은 외교의 실패였고, 자기편 간부에게 불만과 공포심을 갖게 한 것은 내정의 실패였다. 엄격한 눈으로 보면 관우의 길음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 P258

예로부터 허무를 존중하는 노장사상이 번성한 것을 서진 멸망의 한 원인으로 꼽는 설이 있다. 그러나 사상이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않는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왕연 같은 사람은 고향인 낭야에서 책과 가야금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며 노장 사상에 젖어 있는 게 나았다. 명문출신이면 무조건 정부 고관이 되는 인사제도에 문제가 있었다고 할수밖에 없다.
석륵은 흙벽을 무너뜨려 왕연 일행을 깔아 죽였다. - P381

북위-서위-북주-수-당.
역사의 주류는 이렇게 흘러갔다. 이 흐름의 원인이 군대의 조직화에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북주가 주(周)‘를 국호로 선택한 것에서도 살필수 있지만, 고대의 성스러운 왕조인 주(周)에서 그 이상을 구할 마음이었다. 우리는 부견과 효문제의 과도한 이상주의에 큰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상(理想)이 전혀 없는 정권은 그 이상으로 위험하다. 위험이라기보다는 뼈대가 없어 약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제는 힘의 움직임에만 눈을 빼앗겼다. 후경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신 주살이나 파벌싸움 같은 힘의 조작에 모든 기력을 쏟아 부었다.
『주례(周禮)』에 따른 관제(官制)를 시행한 북주는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상을 내걸었다는 점이 무형(無形)의 힘이 되지는 않았을까? - P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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