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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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정하고 있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시리즈의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예약주문을 했다. 손꼽고 기다리다가 책을 받았는데 서문을 읽자마자 실망하고 말았다. 이 책에 담긴 꼭지들이 새로 쓴 글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출간되었던 내용 중에 산사에 관련된 답사기만 추렸다고 하니, 기존에 읽었던 글들도 있을 것이었다. 장정만 새로 했을 뿐이라는 생각에 뭔가 속은 느낌이 들었다.

  

    내 기억력이 그렇게 좋지 못한 탓도 있고, 미처 읽지 못했던 글들도 있어 사실 읽다보니 실망감은 잠깐이었다.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믿음직한 답사 안내자로서의 면모가 여전했다. - 물론 예전에 쓴 글이니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 기존에 어렴풋이 알았지만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던 주심포와 다포 양식의 차이, 맞배지붕과 팔작지붕의 다름을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절에 갔을 때 관음전이나 대웅전, 대적광전과 비로전의 차이를 전혀 몰랐는데 모시는 부처님에 따라 전각의 이름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너무 재미있어서 아무 절이나 가서 한 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현판말고도 불상의 수인이야기를 하다가 넘어간 부분이 있었는데, 그 내용도 배우면 절에가서 기존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는 곁다리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 책에서는 선암사 답사기에서 태고종과 조계종의 차이를, 정선의 정암사에서는 자장대사 이야기를 풀어내고, 대흥사 답사기에서는 대웅보전 현판에 얽힌 이광사와 김정희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런 곁다리 이야기가 몸이 베베 꼬일 만큼 너무 흥미롭다. 사실 내가 역사를 좋아하고 사학을 전공했던 이유도 그런 옛날 이야기에 이끌려서가 아니었던가. 언젠가 나도 그렇게 알고 누군가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고 싶다. 유홍준은 이미 알고 느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쉽고, 재미있고, 영향력 있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 참 부럽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유홍준 답사기의 매력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이번 별권이 산사순례인 만큼 산사의 배치도를 그려서 보여주어야 했다. 가람의 배치를 글로만 읽자니 그 구조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물론 사진도 있지만 사진은 전각이나 풍경을 단편적으로 담고 있을 뿐이어서 여운은 깊었지만, 그 절의 구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왕 기존의 글들을 묶어서 낼 요량이었으면 배치도라도 덧붙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든다. 더욱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책을 덮고 나니 이제 가고 싶은 여행지가 더 늘어났다. 굳이 해외를 나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도 갈 곳이 참 많다. 아내와 곳곳을 여행하고 나는 답사기를 쓰고, 아내는 여행지에 대한 그림을 그려서 같이 책을 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살면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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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3 - 7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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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한 시리즈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결말이다. 로마의 특징과 강점을 분석하는 책은 많았지만, 로마인들 속으로 들어가 로마에 대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 책은 거의 없었다. 특히,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실인 듯 허구인 듯 그 시대 로마인들의 삶을 거의 근접하게 되살린 책은 정말이지 유일하다. 콜린 매컬로는 실감 나는 재현을 통해 그 시대 로마인들의 삶이 우리네 지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천년의 시차가 있지만, 지금 시대의 이야기처럼 읽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이 책의 크나큰 장점이다.

 

   가이우스 마리우스로부터 시작한 대단원의 결말은 사실 시시하다고 할 수 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싸움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 돼버려서 아무런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 전투다운 전투 한번 없이 안토니우스는 파국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옥타비아누스는 야속하리만큼 집요하고 철저하다. 무자비한 권력의 속성일까. 아니면 로마의 혼란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결단의 표현일까. 아마 그 두 가지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씁쓸하다. 옥타비아누스의 승리가 감동적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운명적인 사랑때문일 것이다. 둘 다 죽음에 가까워지자 인간의 품격과 깊이를 보여준다. 조금만 더 어렸다면 승리자의 쾌감에 공감하면서 뿌듯하게 책을 덮었을 텐데,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작가가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일까? 이제 그런 뿌듯함은 느낄 수가 없다. 오히려 안토니우스의 패배감에 공감이 가는 건 나뿐만일까?

 

   시리즈의 마지막 권은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속도감 있게 읽힌다.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읽힐 것 같다. 로마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시기 그 과정에 대해서 살펴볼 테고, 현실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약자로 보였던 옥타비아누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안토니우스를 꺾는 과정을 유심히 볼 것이다. 그리고 오직 이야기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마음은 한없이 약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다가 뒤늦게 깨닫는 애틋한 러브스토리로 읽을 것이다. 누구나 원하는 대로 읽으면 된다. ! 또 하나, 나이 지긋한 어머님들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맞다, 자식에 올인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에 공감하며 볼 수도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그랬기 때문이다.

 

  아들의 태도는 많은 것을 시사했고, 클레오파트라가 에페소스로 떠나기 전 이미 알았어야 할 사실에 모든 감각과 이성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녀가 가진 정력과 지략은 아들의 장래를 위한 계획에, 왕 중의 왕이자 세상의 지배자로서의 눈부시고 장려하며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한 계획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조리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 비로소 그녀는 아들이 그 어느 것도 원치 않으며 몇 차례 엄마를 찾아와 그렇게 얘기했을 때 진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저 빛나는 미래를 향한 갈망은 아무도 그런 미래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신성한 혈통과 왕실이라는 배경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청년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하에 그녀 자신이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한 그녀의 갈망이었다.

_ 136  

 

   어찌 되었든 아쉽지만 이제 끝이다. 너무 늦지 않게 이 시리즈를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간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읽으며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마지막 권을 덮게 되었지만, 심심할 때 삼국지나 초한지처럼 다시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이 책은 정말 소장각이다. 후회 없을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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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2 - 7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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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권에서 안토니우스는 본인의 오판으로 동방에서 실패를 맛보고, 옥타비아누스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를 격파하면서 권력을 안정화시키기 시작한다. 아직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지 않았지만, 안토니우스 본인이 느끼듯 행운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느끼게 되었다. 모든 실패의 원인을 행운의 상실에 두는 안토니우스의 태도는 정말이지 아쉽다. 운명에 대한 무기력함. 누가 주었는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행운에 내 운명이 걸려있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행운! 카이사르의 행운은 아주 유명했고 그 자체로 전설의 일부였지. 하지만 그는 내 이름을 유언장에서 제외시키고 옥타비아누스에게 자신의 행운을 물려주었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 조그만 버러지새끼가 어찌 여태 살아남았겠나? 놈은 카이사르의 행운을 가졌어. 그래서야! 내 행운은 사라졌는데! 사라졌다고! 그게 핵심이야, 폰테이우스. 내가 뭘 하든 불운이 나를 따라다닌다네. 그러니 내가 어찌 이 상황을 극복하겠나? 난 알아. 난 못해.”

_ 297~298(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가이우스 폰테이우스 카피토에게 한 말 중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몰락은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역시 무기력함과 나태함을 빼놓을 수 없다. 원로원에는 아직 그의 지지자가 700명이 넘게 남아있지만,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었을 무기력함과 나태함은 계속 그의 발목을 붙잡는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들 카이사리온에 의한 이집트 대제국을 꿈꾸며, 안토니우스를 이용해 먹을 뿐인데도 안토니우스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포도주를 끊고, 정신을 차리기도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그가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했던 운명의 덫에 이미 빠지고 말았다. 안토니우스와 비슷한 변변치 않은 인간인 우리는 그의 몰락을 경계하면서도 안타까운 눈으로 그저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아티쿠스는 알았다. 안토니우스가 전쟁터로 못 가게 막은 것은 아무도 없었음을. 안토니우스를 가로막은 것은 그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 바로 나태함이었다. 나태함이 언제까지고 일을 미루게 만든 것이다. 안토니우스는 세상일이 벌어지는 속도에 눈감은 사람처럼 굴었다. 마치 세상만사가 자기 기분이 내킬 때 벌어지게 되어 있다는 듯.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아 있을 때는 그가 안토니우스의 등을 떠밀어주었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이 그다지 치명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살해된 뒤에는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필리피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그 업적이 너무도 대단했던 나머지 그때부터 이 치명적인 단점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안토니우스에게 이탈리아 전역을 맡기고 마지막으로 남은 적들을 물리치느라 세상을 누비던 때처럼. 그때 안토니우스는 자기에게 주어진 그 엄청난 권한으로 무엇을 했던가? 사자 네 마리를 전차에 매달고 마법사와 무희와 광대로 행진을 벌이고 무분별한 술판을 즐겼다. ? 무슨 일이 필요해? 로마는 저절로 굴러가는데. 그는 책임이 막중한 자리에 앉아서도 그저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이란 술판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 근거도 없이 내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이니 세상만사는 내 뜻대로 되리라, 하고 믿는 듯했다. 그러고서 일이 막상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로지 남 탓을 했다.

_ 46(티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의 생각 중에서)

 

   이제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이 소설은 내가 이제껏 읽은 로마 관련 서적 중에서 가장 생생하면서도, 가장 친절한 길잡이였다. 대단원의 막을 내릴 마지막 권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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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1 - 7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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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권은 필리피 전투 이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행보를 보여준다. 자신만만한 채로 허송세월하는 안토니우스 그의 심리를 세밀하게 살펴본다면, 자신만만해서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함과 낮은 자존감에 현실을 방치하고 스스로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 와 허약하고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실하게 한 단계 한 단계 정리해나가는 옥타비아누스가 대조적이다. 마치 로마판 항우와 유방을 보는 듯하다.

 

   역시나 그들의 인성, 품성에서 역사가 갈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세상의 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서 승패가 갈렸다고 봐야 한다. 바로 이번 권 86쪽에 나오는 클레오파트라의 상상이야말로 작가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빌려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안토니우스와 그의 일행 중 대다수는 시대의 요구와 그에 따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기득권을 방어하기 위해 나선 참이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이미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옥타비아누스도 자기 양아버지의 생각의 한 부분을 읽고 현실로 옮기고 있었다. 이미 게임은 시작과 동시에 끝나있었다. 그 과정은 험난할지라도 말이다.

 

  이 남자들은 밑도 끝도 없는 잔혹함을 지닌 듯했다. 카이사르가 그들 손에 죽은 것이 놀랍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조국보다 개인과 자기 가문의 특권이 더 중요했고, 그런 점에 있어서 그들은 스스로 인정하기 싫을 만큼 미트리다테스 대왕을 닮아 있었다. 가문의 원수를 망하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죽은 자들의 시체가 바닥을 덮게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클레오파트라가 보기에 그들은 아직도 작은 도시국가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그 작은 도시국가가 이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사제국이자 상업제국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더 넓은 땅을 점령했지만, 그가 죽자 그의 제국은 하늘의 연기처럼 사라졌다. 로마는 여기저기의 땅을 조금씩 점령했지만, 그 점령지들은 로마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였다. 그 개념에 내포된 더 큰 영광을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개인 차원의 갈등보다 이탈리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그녀에게 늘 말하곤 했다. 이탈리아와 로마는 동일한 존재라고. 하지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동의하지 않을 터였다.

 

_ 86(클레오파트라의 생각 중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러할까? 이미 게임의 결말은 나와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항상 번민하고 불안해하는 걸까. 그저 가치를 지키다 보면 필연적으로 승리해있는 걸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그저 담대한 희망만 있으면 되는 걸까. 어렵다.

 

   어쨌든, 로마판 초한지든, 중국판 초한지든 나는 언제나 이 세계에 끌리곤 한다. 그 다양한 영웅들의 현장 그 속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 불안 혹은 황홀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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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 근대의 절정, 혁명의 시대를 산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3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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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는 역사 속에서 몇 명의 인물들을 소환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근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증기기관과 기계를 통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시작하는 자본주의의 시작을 ‘제임스 와트’를 통해 이야기하고, 이렇게 축적된 ‘부富’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대부분의 민중들을 ‘해적’으로 상징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근대국가의 등장은 ‘표트르 대제’가, 가장 중요한 프랑스대혁명은 ‘로베스피에르’와 ‘나폴레옹’이 대표한다. 사마천의 《사기》가 그랬듯이,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고, 심지어 재미있다.


  이 책의 속도감은 상당하다. 물론 재미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허투루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간 어려운 세계사 책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찾아도 좋을 ‘대체재’인 동시에 아는 것은 많아도 하나로 꿰어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보완재’가 될 수 있는 책이다. 풍성한 그림 자료와 왕가 계보도는 시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그림에는 후한 반면에 지도를 첨부하는 데는 다소 인색해서, 일일이 구글맵스를 찾아보아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


  재미있게 쓰려다보니 ‘위악스러운’ 부분도 종종 눈에 띈다. 사실 이 점이 가장 아쉽다. 지은이는 이 책 34쪽에 사람을 오래 괴롭히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면서 고문 방법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아쉽다 못해 거북스럽기까지 하다. 저자후기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선정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고 했는데 쉽게 쓴다는 것과 저질스럽게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러고 보니 ‘쉽게 풀어 쓴다’와 ‘선정적으로 쓴다’도 전혀 다른 말이다. 이 점은 지은이가 다시 한 번 되짚어 봤으면 한다.  


증기기관이 발전해온 역사를 보다 보면, 마치 이것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가장 중요한 동력원이 되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증기기관이 나오고 나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여전히 수력과 풍력이 동력원으로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특히 물레방아가 증기기관보다 더 성능이 우수했다. 증기기관이 물레방아를 완전히 뛰어넘은 시점은 19세기 중반이다. 이때까지는 역설적이게도 물레방아를 더 잘 이용하기 위해 증기기관을 동원했다. _ 268쪽

  끝으로, 증기기관의 발명이 바로 모든 동력원을 대체하지는 못했고, 오히려 물레방아를 더 잘 돌리기 위해 증기기관이 이용되었다는 부분은 우습기도 하면서 동시에 생각할 거리도 던져줬다. 거칠지만 역시, 역사는 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생각 말이다. 모순덩어리와 폭군도 역사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사형선고를 내릴 수 없어 판사를 그만두었지만, 가장 많은 사람을 단두대로 보냈던 ‘로베스피에르’, 프랑스 혁명을 계승한다면서 스스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처럼 말이다. 횡보하면서 역사는 발전한다. 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강렬한 믿음, 타인에 대한 어느 정도의 관용,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상당 부분의 포기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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