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따뚜이 (한글자막)
브래드 버드 감독 / 월트디즈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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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나이 먹고 만화영화나 보러 다니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만화는 참 재밌다. 그리고 만화영화를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슈렉'이나 '라따뚜이' 같은 영화들은 아이들이 봐도 재밌겠지만, 솔직히 말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영화 속에 숨어있는 패러디와 역발상들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감화시킨다.


  픽사 애니메이션의 작품으로는 얼마 전에 '인크레더블'로 처음 접하게됐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영웅이 영웅짓(?)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설정에 영웅 가족들의 엽기적인 재능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경쟁사인 드림웍스의 '슈렉'에서 촉발된 듯 한 이 역발상 경쟁이 - 누가 원조냐를 떠나서- 어째든 이 바닥에서 풍성함과 신선함이라는 관객으로서는 흡족한 결과물을 가져온 듯하다. 이러한 역발상과 패러디를 어린이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안물어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잘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 신선함을 느끼고 이해해주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성인 관객들의 몫인 셈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소위 어른으로서 만화영화를 즐겨 보는 데 대한 변명이랄까.)


  라따뚜이 또한 그 창조적인 발상의 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유명 요리사 구스토의 지론을 존경하며 요리사의 꿈을 가진 귀여운 생쥐 레미! 식당에서 만약 생쥐가 나온다면 어떨까? 당장 입맛이 뚝 떨어져서 환불을 요구할 것이다. 파리 한 마리나 바퀴벌레 뒷 다리 하나만 보여도 기겁을 할 판에 생쥐가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니! 영화는 이러한 통념에 귀여운 반란을 꾀한다. 그리고 생쥐 레미를 통해서 우리가 꿈을 이루는 데 있어서 배경을 탓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자는 메세지를 전해준다. 


  생쥐가 말을 하고 요리를 한다고 해서 완전히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로 떨어지지 않는다. 생쥐는 인간의 말을 이해하지만 사람의 말을 하지는 못한다. 생쥐가 인간과 이야기한다면 유치해지고 말았겠지만 서로 이해는 하나 말은 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설정으로 영화는 소통의 문제까지 보여주면서 재미를 배가한다.  


  '나도 이런 생쥐하나 갖고 싶어!'라는 소망을 가지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어버렸지만 영화 보는 내내 '고놈 참!'이라는 감탄사를 되뇌었다. 자주 환경을 탓하면서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에 비하면 이 생쥐는 참 대단한 놈이다. 아무리 타산지석이라지만 이제는 생쥐한테까지 가르침을 받으니...세상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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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D] 트랜스포머
마이클 베이 감독, 타이레스 깁슨 외 출연 / 대경DVD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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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의 돈지랄이냐 CG의 혁명이냐. 이 논쟁에 있어서 나는 어느쪽일까. 반반. 정말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을만큼 영상과 기술은 화려하고 놀라웠다. 하지만, 변신로봇과 지구멸망 이야기에 몰입하기에는 나는 너무 커버렸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변신로봇에는 흥미가 없었으니까 내가 어렸었다고 해도 그다지 몰입했을 것 같지는 않다.


  샘 윗윗키과 그 가족들은 영화의 폭소탄이었고 영화 중반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웃음을 선사해주었지만, 이어지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대결과 지구멸망 스토리는 하품만 나오게 했다. 샘에게 '너도 이제 전사'라고 독려하는 미군 병사의 결의 넘치는 얼굴도, 샘의 열정도, 투혼도 모두 오버하는 것으로 느껴진 내가 오버인걸까?
 

  왜 할리우드는 이런 식일까. 이런 식의 이야기를 엄청난 물량을 동원해 블록버스터로 만들고 세계에 공급하는걸까. 미국인들이 지구 멸망을 막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인만이 지구의 위기를 느낄 수 있고, 그들만이 평화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것일까. 슈퍼맨부터 시작해서 인디펜던트데이, 아마겟돈, 트랜스포머 등 각종 SF재난 영화에서 보이는 일관된 법칙은 그들의 오만함에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상상을 하든 그것은 관객의 자유다. 영화를 보며 '아메리카에 의해 주어지는 평화'를 생각하든, '변신로봇 사고싶다'는 생각을 하든,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진화에 감탄'하든 그것은 무한한 자유라는 말이다. 하지만 한 영화를 판단할 때는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한 가지 생각에만 치우쳐 평가하는 것은 코끼리의 다리를 집고 그것이 코끼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장님의 오류만큼이나 옳지 않은 것이다. 이 영화를 '할리우드 자본의 돈지랄'이라고 평가절하하며 불매운동(?)을 펼치는 것이나 '재밌다'는 이유로 전자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은 똑같은 우를 범한 것이다. 


  마이클 베이라는 걸출한 감독의 코믹하면서도 경쾌하고 화려한 이 영화를 보며 웃고 놀라워하고 하품했던 나로서는 이 글의 서두에서 말했던 두가지 평가에 모두 고개가 끄떡여진다. 7000원 주고 할 수 있는 문화생활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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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눈물 (2disc)
이누도 잇신 감독, 마츠모토 준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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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스오피스의 순위보다 훨씬 많은 인터넷에서의 관심에 처음엔 의아했다. 이 영화가 도대체 왜 인기가 있는걸까. <슈렉>만큼의 재미도, <스파이더 맨>만큼의 화려함도, <캐리비안의 해적>만큼의 스토리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유는 등장 배우들이 일본의 유명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기 때문인 것같다. 사실 그 이유를 알고 나서 약간 속은 느낌이었지만, 전혀 후회되지 않을 만큼 볼만한 영화였다. 다소 긴 러닝타임임에도 지루하지 않았고, 잔잔하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잔잔함이 갑작스럽게 엔딩으로 이어져 솔직히 당황하긴 했지만.


  네 명의 주인공 모두 예술을 하고 싶다는 꿈으로 모이지만 결국 모두 흩어져간다.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을 꿈꾸게 하고 열광하게 하는 작품들을 쏟아내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 너무나 낭만적이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모였던 네 명은 떠나고 결국 남는 것은 에이스케 뿐이다. 통속적인 만화를 그리라는 무언의 압력과 유혹을 받지만 '서정적인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을 지키기 위해 더운 여름에도 책상 앞에 앉아 고군분투한다. 


  나머지 세 명의 떠남. 나는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들 모두 역경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아 나름의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끝을 맺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에이스케를 뺀 나머지 세 명은 모두 떠나고 만다. 그들을 쫓은 것은 무엇인지. 예술로 밥먹고 살기 힘든 세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에서 예술로 밥먹고 살기 쉬웠던 시대가 얼마나 있을까. 사실 그건 이유이긴 해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유가 아니다. 결국에는 그들의 열의와 재능의 부족이다.


  입으로는 소설의 줄거리를 줄줄 읊어대지만 한 줄도 써내지 못하는 류조, 그림그리라고 공원에 내보내놨더니 짝사랑(?)에 빠진 케이, 자작곡을 써서 '전국노래자랑'에 나가보지만 무참하게 '땡'소리를 듣게 되는 쇼이치. 아, 이들을 보면서 왜 내 모습과 오버랩이 되는 걸까. 청춘은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기에 꿈을 꾸지만 '의지'와 '열정'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때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지만 어느 때는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 차이는 열정과 의지의 차이이리라.
 

  네 인물 모두 나와 동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내 모습 같기도 하고, 그것이 내 모습 같기도 했다. 다른 시대지만 20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은 같은 곳에서 만나고 있는 듯 했다. 내 자신을 아는 것이 모든 진보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해질 것은 '열정'이다. 감독이 말하는 '황색눈물'이란 마지막에 에이스케가 흘리는 무수한 '땀방울'이 아닐까. 그 땀은 '노력'과 '열정'이 아닌가.


  날씨가 덥다. 나는 땀이 많은 편이라 오가며 매일같이 땀을 흘린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땀'이다. '황색눈물'을 흘리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더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도, 이렇게 날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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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일반판 (2Disc) - 할인행사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에이치비엔터테인먼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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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성경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성경에 따르면 인간들이 한통속이 되어 신의 영역을 넘보려고 바벨탑을 세우자 신이 노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인간들의 언어를 다르게 만들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실을 모티브로 출발한다. 영화는 다소 길고, 여러 이야기들이 산만하게 펼쳐진다는 느낌을 줘서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도 준다. 하지만 끝까지 보다보면 지루하지 않거니와 각각의 이야기가 맞물려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는 각자 다른 곳에서 서로 맞물리지 않는 것처럼 제각각으로 출발하지만 결국 하나로 맞물린다. 때문에, 일본과 미국, 모로코에서 벌어지는 그 다양성이 일반성이 되고, 하나의 사실이 다양하게 변형된다. 사실 영화에서 보이는 모든 비극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 오해는 서로에 대한 이유없는 혐오와 불신에서 비롯되고, 그 불신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에서 생긴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벌어진 멕시코 출신 미이민자에 대한 과잉대응, 모로코의 한 작은 마을에서 보이는 리처드(브레드 피트)와 미국인 여행객들의 태도. 감독은 타문화와 타민족에 대한 경멸과 혐오가 소통의 부재 속에서 증폭되고 있음을 갈파한다.

  그렇다면, 벙어리인 치에코는 어떤 이유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가. 벙어리인 그녀는 벙어리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관계다. 이 상황은 언어가 다른 민족들끼리의 관계와 다름이 없다. 그리고 벙어리에 대한 편견 역시 타문화와 타민족에 대한 편견과 다를바 없다. 오히려 치에코의 이야기는 이 문제가 타민족끼리의 문제가 아닌 인간 서로간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대화가 서로간의 이유없는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친구들과 친해진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친해지기 전에 서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오해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난 네가 깡패인 줄 알았어. 맨날 인상쓰고 말없이 교실 뒷자리에 앉아있길래.' 이런 말에 대해 친구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니야. 난 눈이 나빠서 눈을 찌푸리지 않고는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아.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먼저 말 걸만큼 숫기가 있지도 않고.'라고 말이다. 개인과 개인간의 문제도 이런데,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간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좀 더 규모와 형태가 달라질 뿐이지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진정성만 가지고 있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오해와 불신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다.

  문제는 '일부러' 오해와 불신을 강화할 경우이다. 현재의 패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일부러 적을 만들고 증오를 키울 경우에는 방법이 없다. 사실, 어떤 집단 내부의 단결을 도모할 때는 집단 외부의 가상의 적을 만드는 것만큼 쉬운 방법이 없지 않은가. 이 영화를 보면서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는 감독의 생각이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였다.

  며칠 전에도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폴란드 이민자 한 명이 억울하게 죽었다. 백인의 백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이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 오늘도 곳곳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라'는 광고가 나부끼고, 수많은 동남아인들이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고 고되게 일하고 있다.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만 봐도 우리들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정도를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더 섹시하고 매력적인 '백인' 미녀들에 대한 신변잡기에 집중하고, 그들이 당한 억울한 사연이나 편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답하지 않는다. 남희석이 대신해서 사과하면 끝인가? 세계는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타문화와 민족에 대한 테러와 공격이 난무하고, 수많은 외국인과 부딪히며 살아야 할 지금. 이 영화는 다소 이상적임에도, 정말 필요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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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 [VCD]
한재림 감독, 오달수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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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숨은 명작이다. 개봉할 떄부터 '꼭 극장에 가서 보자' 생각했지만 결국 가서 보지는 못했다. 그 이후에도 오늘은 보자, 내일은 본다 하면서도 계속 미루다가 결국 어제 보게 됐다. 처음 드는 생각은 '이토록 재밌는 영화가 왜 흥행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제목에서부터 보여주는 유머는 영화 내내 사람을 흔들어 놓는다. 그 상황이 우습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명장면들이 숨어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주는 고단함은 그 아버지가 조폭이어도 벗어날 수 없나 보다. 40대가장 인구(송강호)는 밖에서는 '칼에 찔릴까' 두려워하면서도 벌이를 위해 조폭으로 살고 있다. 뉴스에서는 그를 '중간보스'라고 하지만 회장님의 말 한 마디에 처지가 뒤바뀌고, 다른 보스 밑에 있는 똘마니들은 인사도 하지 않는 참 애매한 위치다. 큰 돈 좀 만져서 가족들과 강남의 단독 주택에서 잘 살아보려고 열심히 일하면 오히려 조직 내의 다른 파벌의 시기로 '담김'을 당할까 걱정해야 하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을 안하면 먹고 살기조차 힘들다. 이렇게 밖에서는 이리 부대끼고 저리 치이지만, 집에서의 지위도 달라지지 않는다. 가족들은 그를 피하고, 딸은 그를 부끄러워 하고 싫어한다. 돈 벌어 오는 기계로 전락한, 가족들과 대화하기 어려운 말 뿐인 가장으로서의 아버지. 정말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일반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조폭이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송강호를 통해 고스란히 재현된다.

  제목이 말하는 우아한 세계란 무엇을 말할까. 결국 결코 아름답지 못한 아버지 인구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반어적 표현일수도 있고,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적용되는 세계. 인구는 들어가려고 하지만 들어갈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은 아닐지. 그 반어적 표현을 통해 인구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가된다. '우아한 세계'라는 반어적 표현이 가장 농축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영화 마지막에 인구가 캐나다에서 가족들이 보내온 영상을 보는 장면이다. 눈물 콧물 흘려가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울부짖는 아버지 인구의 모습. 그러면서도 걸레를 들고 와서 깨진 라면그릇을 치우는 기러기 아빠 인구의 모습. 정말 이 모습을 보며 울어야 되는가 웃어야 되는가.

  나도 언젠가 아버지가 되겠지만. 우리 아버지를 봐도, 주위를 둘러봐도. 이 사회가 아버지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과거의 권위주의적이던 아버지들이 자초한 결과일수도 있지만. 그 벌을 왜 우리 아버지들이 받아야 하는지. 유쾌하지만 결코 유쾌하지는 않은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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