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말에는 회사친구와 도쿄에 다녀왔습니다(사람들은 '회사'에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냐고 의아해하지만 이렇게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행운이기도 하고요). 직장에서 매년 매우매우 바쁜 시기인 5월-7월을 앞두고 일본 저가항공사에서 프로모션 하는 것을 보고는 새벽에 다짜고짜 무려 반 년 뒤인 시월 비행기표를 예약해버렸습니다. 워낙 저렴해서 환불도 변경도 안 되는 티켓이었습니다. 임의로 정한 세 개의 날짜는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미래가 돼버렸고 저는 이것을 즐겼습니다. 어떤 외부의 핑계도, 또 내부의 사정도 웬만하면 이를 바꾸진 못할 테니까요.

 

오사카는 두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2년 반 전 늘 함께 다니던 대학 친구들과도 삼일을 머물며 무려 오사카, 고베, 교토, 나라를 여행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사카에 머물며 주로 교토를 조금 여유롭게 여행하기로 했습니다. '낮엔 교토, 밤엔 오사카'가 이번 여행의 테마였달까요.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늘 그렇듯 생각한대로 되지 않더군요. 전 여행 전에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아닌데, 지난 여행에서는 함께 간 친구 하나가 워낙 준비를 많이 해서 크게 어려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의 동행은 저처럼 미리 계획 세우지 않는 편이었고 저희 둘은 첫 날부터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간사이 스루 패스 3일권' 대신 '간사이 에어리어 패스 3일권'를 사고만 것이지요. 티켓을 파는 곳에는 스루 패스 대신 에어리어 패스 광고만 크게 실려 있었고 미리 알아본 스루 패스의 가격과 같았습니다. 별 의심 없이 결제하고 오사카로 가 호텔에 짐을 풀기까지는, 워낙 복잡한 일본의 지하철 시스템과 웬만하면 모국어만 쓰는 일본인들 때문에 조금 헤매긴 했으나 그럭저럭 순탄했습니다.

 

하지만 교토로 가는 전철을 타려다 저희는 저지를 당했습니다. 저희가 산 패스는 오직 JR만 자유롭게 탈 수 있는 패스였던 겁니다. JR은 우리나라의 국철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는 수 없이 고민 끝에 저희는 일정을 변경했고 첫 날 오사카를 둘러본 후 이튿날과 마지막날을 모두 교토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날 교토로 가기 위해 JR남바역에서 JR텐노지역으로 간 후 다시 JR오사카역으로 향했습니다. JR오사카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JR 노선 중에서도 서울의 2호선과 비슷한 순환선인 오사카 루프 라인을 타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것은, 그 원형의 라인 안에 든 여러 역 중에서도, 저희가 내려야 할 JR오사카역의 안내 방송만 듣지 못한 채 한 바퀴를 더 돈 것입니다. 다시 한 바퀴를 더 돌아 JR오사카역에 도착하면서도 저희는 오사카역을 지나쳤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JR오사카역이라는 안내방송이 수도 없이 나왔고, 다른 역보다 규모도 컸으며, 그래서 정차하는 시간도 길었는데, 졸지 않고 방송에 집중한 저희 두 사람 모두가 도착 안내 방송을 전혀 못 듣다니요. 그것은 JR의 저주가 분명했습니다.

 

이것은 저희가 이후 겪게 될 사건사고의 서막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제가 이렇게 여기에 관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바로 위의 첫 번째 사진에 있습니다. 24일 목요일 한국으로 돌아와 25일 금요일 출근을 하니, 신간 평가단 선정작인 [결괴 1, 2]권과 [천국에서]가 도착해있더군요. 둘 중 무엇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 [결괴 1]권을 들고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읽기 시작한 이 책에서 'JR 오사카 역'이 등장한 겁니다.

 

도모야가 악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내린 곳이 JR 오사카 역이었고, 이후 절단된 채 유기된 사체가 발견되는 곳은 교토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곳의 풍경과 분위기, 작가의 장소에 대한 묘사가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습니다. 마침 오사카에 다녀온 바로 다음 날, 히라시노 게이고의 [결괴]를 읽게 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뭐 이런 생각을 떠나서 이런 우연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히라노 게이치로의 작품은 과연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했습니다. 주말 동안 읽을 요량으로 1권밖에 들고 오지 않은 저를 원망해야 했죠. 2권은 1권보다 더욱 사건의 전개에 집중하고 있어 더욱 책을 놓지 못하고 빨리 읽어내려갔습니다. 일본의 전철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얼굴들, 관광지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모습들을 떠올려보며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습니다. 마주하는 얼굴을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알 수 없을 심연. 그것이 꼭 일본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설명은 아니겠지만 일본에서 짧은 3일을 보낸 직후라 그런지 이상하게 더욱 두려운 마음이, 더욱 가깝게 들었습니다.

 

[결괴 1, 2]를 읽고 나서 신간 평가단의 두 번째 책인 김사과의 [천국에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 곳에서 저에게 유의미한 우연의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라이언 맥긴리'의 서울 전시에 친구와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기다리고 있는 저에게 책 속에 담긴 그 여섯 글자는 그냥 단순한 우연 이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의미나 연관성이나 혹은 계시(?) 같은 것을 찾아낸 것은 아닙니다.

 

마침 오사카나 교토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결괴]라는 책을 읽은 사람보다는 라이언 맥긴리의 전시를 기다리며 김사과의 신작 [천국에서]를 읽게 된 사람은 더욱 많겠지요. 그런데 연달아 이런 경험을 하고 보니, 뭔가 무언가를 찾고 싶어지는 겁니다. 이건 뭘까. 이렇게 책 속에서 내 일상의 특정 단어들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면 그냥 우연일 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런 경험은 처음이 아닙니다. 페이스북이나 다른 어떤 곳에 쓰고 지금은 잘 찾을 수 없지만, 라디오헤드의 수많은 곡들 중에 어떤 특정곡을 듣고 있는데 마침 읽고 있는 책에서 그 노래가 언급된다던지 하는 듣고 있던 음악과 읽고 있던 책이 연결되는 경험은 한 번이 아니었고요. 아직도 놀랍게 기억하고 있는 일은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를 읽을 때였습니다.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있을 때 옆에서 주무시던 엄마가 악몽을 꿔 흐느끼시는 걸 깨운 적이 있습니다. 물어보니 엄마는 제가 읽고 있던 [더 로드] 마지막 장면의 어떤 장면과 똑같은 꿈을 꿨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과연 이 우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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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은 책과 읽는 책이 또 다시 연결되고
    from hey! karma 2013-11-22 16:57 
    제가 자주 사용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중 하나는 'iReadItNow'입니다. 읽은 책과 좋아하는 구절,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아서 스마트폰 사용 후부터는 꾸준히 이곳에 저의 책읽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웹과 싱크를 해두지 않은 상태로 중간에 핸드폰 업데이트를 한 번 하는 바람에 초기 데이터를 싹 날린 적이 있지만, 이제는 싱크를 해둬서 만에 하나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데이터는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반드시 지금
 
 
 

파울로 코엘료의 [마법의 순간]과 원빈 스님의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습니다.

 

코엘료의 [마법의 순간]은 작가가 트위터에 올린 글들을 추려서 묶은 책이고 원빈 스님의 [같은 하루 다른 행복]은 스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추려서 묶은 책입니다.

 

우선 원래 처세술이나 잠언집 같은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저의 취향을 밝혀야겠습니다. 두 책 다 대단한 감흥은 없었습니다.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어서 큰 실망은 없었지만 지금까지의 '불호' 취향을 뒤엎을 만한 놀라운 감동이나 반전도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코엘료는 지금까지 펴내온 책들의 면면을 볼 때 오히려 트위터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글들이 평범하게 느껴졌습니다. 똑같은 삶의 지혜라도 유명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전하면 감동이 더 큰 법입니다. 게다가 코엘료는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이다보니 뭔가 그런 삶의 지혜가 빛나는 문장 속에 들어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140자라는 트위터의 글자수 제한 때문이었을까요. 다 맞는 말이긴 한데 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들이기도 했습니다. 아- 작가는 이런 것들을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하고 감탄할 만한 부분이 없어서 아쉬웠달까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원빈 스님의 책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역시 하시는 말씀이 다 옳은 말씀이기는 한데 너무 구구절절 옳은 말씀을, 너무나 평범한 문장으로 써놓으셔서 페이스북이 아닌 '책'을 읽는 독자로서의 기대는 전혀 충족되지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는 살지 마라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그 말씀들 모두 옳은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그걸 몰라서 답답한 사람들이 이 책을 주로 읽을텐데 그러한 답답한 마음이나 고민에 대해서 구체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경험을 곁들여서 쉽게 썼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작은 행복이 소중하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하고 욕심부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뭔가 그 이상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보는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책을 굳이 비교하자면, 그래도 트위터는 140자라는 제한된 글자수 내에 하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담다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가 문학작가이기 때문에, 그래도 좀 더 문학적인 향취가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아,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만 종교에세이에서 문학적 향취를 기대하는 걸까요? 종교에세이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자명한 진리를 쉬운 말로 해줄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할 뿐인 걸까요? 서로 기준이 다를 뿐이라면, 신뢰할 만한 누군가의 명쾌하고 단순한 조언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들은 그들에게 좋은 책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좀 더 경험에 근거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듣는 대신 그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느끼고 싶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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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매장 부천점 내부소개 (방문 후기를 남겨주세요)


중고책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새 책을 사서 보고 그 책은 제가 계속 보관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누울 자리가 없이 책을 쌓아두어야 해도 읽은 책을 버리거나 팔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중고서점은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서 읽었거나 다 못 읽었거나 그냥 가지고 있던 책들이 모여있는 곳이 중고서점입니다. 그래서 갓 찍어낸 새 책들만 모여있는 서점과는 또 다른 냄새가 납니다. 오래된 종이의 냄새, 그리고 그 책이 있던 장소나 그 책을 갖고 있던 사람의 냄새가 섞여 특유의 냄새를 뿜는 것이죠. 시뻘건 음식 양념을 묻히거나 커피 등의 액체류를 쏟아서 우그러진 책을 제가 사고 싶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있는 정취에는 분명 인간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새 책을 파는 서점에는 책 냄새가 더 진하고 중고책을 파는 서점에는 사람 냄새가 더 진하달까요.



직장이 있는 부천에도 중고서점이 생겼습니다. 부천역 5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한 모퉁이에 중고서점이 있습니다. 부천역의 개성이기도 한 복잡함이나 난잡함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다른 입구라 서점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새로운 장소 앞을 지나간다면 한 번쯤 돌아볼 것 같습니다.



중고서점을 다녀온 지는 꽤 됐습니다. 한 달 남짓 된 것 같습니다. 그 날 그 시각까지 알라딘 중고서점 부천점에 들어온 책은 1,799권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종이의 원료가 되는 나무로 된 입구와 마치 요술을 부려줄 것 같은 램프가 그려진 입구 앞에서 순간 맘이 설렜습니다.




서점 내부의 모습은 다른 중고서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벽면에는 유명한 작가들의 얼굴과 그들의 대표작에서 발췌한 명문장들이 씌어 있습니다. 비록 진짜 얼굴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서점에 입성하기 전에 뭔가 설렘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달까요. 멋진 예술가들은 그저 자신의 얼굴만으로도 아우라를 풍기는 법이니까요.


 

종로에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에 처음 갔을 때 신선하다는 인상을 줬던 이 안내도 그대로입니다. 분명히 못하게 하는 것들이 많은 '금지 조항'들임에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금지나 부정의 느낌보다는 부드러운 권유와 유머를 느끼게 합니다. '애완동물 입장 금지', '음식 반입 금지'와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서점에서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을 못 하게 만듭니다. 






계단 위에서 보는 전경은 이렇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다 똑같은 마음이겠지만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합니다. 다 내 책이 아니고 아마 죽기 전에 이 책들을 다 읽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서재에 이 책들이 다 꽂히는 기분이랄까요. 평일 오후에 갔는데도 생각보다 사람도 많았습니다.



매장안내도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참 예쁩니다.



엘리베이터 입구 위에도 문인들의 인자한 미소나 매서운 눈초리와 함께 그들의 명문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장정일이 쓴 '애서광 체크리스트' 역시 알라딘 중고서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장입니다. 기쁘게도 거의 모든 항목에 해당되는 저는 장정일과 알라딘 중고서점의 인증을 받은 애서광입니다. 이 중에 해당되지 않는 것은 '책에 낙서를 하지 못한다'인데, 저는 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이라는 것이 참 희한하게도 이렇게 진열된 책을 구경하기만 해도 책을 읽은 것 같고 책을 사기만 해도 읽은 것 같은데 정작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읽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아주 오래전 사서 읽은 책을 또 산 적도 있습니다. 사놓고 안 읽은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읽은 책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책을 읽으면서 좋은 구절이나 인상적인 부분에는 연필로 밑줄을 치고 책을 읽기 시작한 날짜와 다 읽은 날짜를 적어넣기도 합니다. 요즘은 읽은 책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도 열심히 활용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책에 일정부분 영역 표시를 하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내용도 잊고, 문장도 잊고, 심지어 내가 읽었는지조차 잊겠지만 다시 펼쳐보면 그 때 그 기억이 차르르르 넘어가는 책장 사이사이로 배어나올 테니까요.



알라딘에서 이벤트용도로 제작하는 다양한 제품들도 이렇게 진열이 돼 있습니다. 분명, 상술입니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많이 사야 주기 때문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효과적인 상술입니다. 아직 읽을 책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품들이 탐 나서 책을 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후회한 경우는 크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고 싶었던 책을 사는 거고 사두면 결국은 읽게 되고 또 만들어지는 제품들도 책이 아니지만 책 향기를 더하는 데 충실한 제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유혹 때문에 지갑이 가볍거나 읽어야 할 책이 너무 쌓여있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보던 알라딘에 오랫동안 아예 로그인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저기 두 번째 칸에 보이는 빨간 색 머그에 내린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






간 김에 필요한 책을 검색해봤습니다. 사려고 하는 책의 위치가 적힌 종이를 은행번호표처럼 뽑을 수 있지만 왠지 종이가 아깝게 느껴져서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찍었습니다. 이 날은 손홍규 작가의 책을 많이 찾아봤습니다. 손홍규 선생님에게 글 쓰기를 배우러 가는 첫 날이었거든요. 



보이는 이 곳은 유아 도서가 있는 구간입니다. 계단에서는 아이가 내려오고 계단 왼쪽에는 유모차가 놓여있습니다. 유모차에는 장바구니도 걸려 있습니다. 식구들 먹일 것을 사고 마음의 양식도 잊지 않은 어머니가 참으로 멋집니다.



여기는 계산대입니다. 



중고서점에도 베스트셀러는 있습니다.



역시 유명한 작가의 베스트셀링 제품은 중고서점에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들도 금세 다른 주인을 찾을 것 같습니다.



중고서점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씨디도 살 수 있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의 매력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책을 담아주는 비닐봉지입니다. 벽이나 천장에 그려진 작가의 얼굴들이 책을 담는 봉지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기쁘게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기형도 시인의 얼굴에 새로 산 3권의 책을 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이후 2번 더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사왔는데 두 번 다 기형도 시인의 봉지였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얼굴을 모아 한 쪽 벽을 장식해보고픈 욕심이 생겼습니다.  



세 권의 책을 산 가격이 얼마일까요? 피고름으로 작품을 쓰셨을 작가님들에게는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새 책을 사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신 이렇게 사서 읽은 책은 다시 중고서점에 내놓지 않을게요. 다른 책들은 절판이 아닌 이상 새 책으로 사서 볼게요. 손홍규 선생님은 작가 생활을 하면서 가장 씁쓸한 경험 중 하나가 사인을 해서 선물한 책이 중고서점에서 발견되는 일이라고 했는데요, 이렇게 구매한 책 중에는 다행히 그런 책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산 책 중에는 선물하는 사람이 직접 책 앞 장에 길고 짧게 편지를 썼거나 실제로 작가의 사인이 돼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편지가 씌어 있거나 저자 사인을 받은 책을 어떠한 사연으로 중고서점에 내다 파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나 이 글을 보는 분들은 그러지 않으셨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표현해봅니다.



기형도 시인의 얼굴에서 세 권을 책을 꺼내 방바닥에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역시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꺼내놓고 사진을 찍기만 해도 배가 부른 것을 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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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버킨_ Jain Birkin Sings Serge Gainsbourg via Japan

 

2013년 3월 30일 토요일 @유니버설아트센터

 

 

제인 버킨을 검색해봅니다. 세상에나! 46년생이라고 나옵니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할머니입니다. 하지만 검색결과를 보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제인 버킨은 그냥 제인 버킨. 마침 좌석도 2층이라 그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더더욱 나이를 실감할 수가 없었습니다. 키 크고 목소리 예쁘고 샹송을 잘 부르는 매력적인 젊은 여자 같습니다.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작년에 제인 버킨의 공연도 본 동행은 분명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을 거라고 합니다.


오늘의 공연은 그녀의 2번째 남편이자 딸 샤를롯 갱스부르의 아버지인 세르주 갱스부르의 곡들로만 구성됐습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트럼본, 드럼 모두 일본뮤지션으로 구성된 밴드는 이 투어를 위해 결성됐고 아마 이 밴드구성으로는 오늘 서울에서의 공연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Jain Birkin Sings Serge Gainsbourg via Japan”이라는 이름으로 갖는 마지막 공연이니까요.

 

처음.이라는 말과 마지막.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설렘과 애잔함을 줍니다. 제인 버킨이 세르주 갱스부르의 곡들만을 특별한 이 밴드의 연주로 부르는 마지막 공연을 본 것이 참 기분 좋습니다.

 

작년 악스홀에서의 공연에서는 2층까지 올라와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악수도 해줬다고 들어서 오늘 너무 예쁜 우산을 들고 객석으로 내려오는 제인 버킨을 보고 굉장히 설렜습니다. 하지만 2층까지 오기에 오늘의 공연장은 너무 크고 구조 또한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밴드를 소개할 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도, 또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특별한 만남이나 곡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할 때도, 굉장한 진심을 담아 그녀의 모든 말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노래 만큼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서툴게 한국인 크루들의 이름을 부르며 고맙다는 인사를 할 때 사실 저는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당사자들은 자기 이름이 불리는 걸 듣고 또 감동했을 것 같습니다.

 

프렌치시크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닙니다(그 말은 차라리 오늘의 서울날씨에 더 어울립니다). 그녀의 얼굴과 머리카락과 몸과 옷은 시크하지만 그녀는 시크하다기보다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라는 게, 단 두 시간 공연만 보고도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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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_ 줄리엣(Juliettttttt)


 

2013년 3월 30일 토요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극이 시작되기 전 얇은 장막 뒤로 몇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사라지고 화면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몇 문단이 뜹니다. 덕분에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리고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이 앞에 앉은 사람들의 실루엣을 부각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홍성민의 줄리엣 영문 제목에는 t가 7개입니다. 아마 2010년 처음 공연됐을 때는 5개였겠지요. 그 때는 줄리엣이 5명이었고, 지금은 7명이니까요.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홍성민 연출가는 줄리엣이 5명에서 7명이 된 이유는 공연할 무대가 넓어졌기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농담 같은 대답이었지만 연극은 공연장의 공간에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후에 50명의 줄리엣이 등장하는 줄리엣(Julie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t)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냐는 질문에도 역시 가능하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저 역시도 아마 연출가에게 공간과 제작비만 주어진다면 아마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줄리엣에 등장하는 줄리엣 7명은 모두 과거에 한국에서 공연됐던 주인공들입니다. 고전 그대로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경성시대 댄스홀을 배경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마치 춘향이 같은 모습의 고전으로도 만들어졌었나 봅니다. 그렇게 공연됐던 7개의 서로 다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7명의 줄리엣과 그녀들이 입었던 의상들을 빌려오거나 재연해 그녀들이 한꺼번에 다시 연기하게 합니다.


 

배경을 서로 달리 하는 줄리엣들은 성격에서도 두드러지는 차이를 보입니다. 극에서 인물의 성격은 주로 말투나 행동, 목소리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데,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우리나라식으로 해석해 한복을 입히거나 근대를 배경으로 해 미니드레스를 입힌 3명의 줄리엣들의 개성이 두드러졌습니다. 나머지 4명은 사실 의상도, 목소리도, 성격도 비슷비슷해보였습니다만 이것은 홍성민 연출가의 의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정말 말 그대로 기존에 공연된 작품 속에서 인물들을 거의 그대로 빌려온 것이니까요.


 

관객과의 대화에서 캐릭터들이 비슷비슷해서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다시 극을 다듬는다면 좀 더 다양한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줄리엣 하나하나와 그녀들의 의상, 연기를 보는 재미가 이 극의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 매력이 다양할수록 더욱 재미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홍성민의 줄리엣은 지금 이대로도 또 어떤 부분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7명 중 4명이 입는 옷의 분위기나 성격이나 대사가 비슷했다는 것은 그만큼 원작에 충실한 해석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많이 공연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베로나이고, 이 이야기를 써서 알린 것은 영국의 세익스피어인데,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또 대부분 구전들을 정리해서 쓴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탈리아 한 마을의 이야기가 흘러흘러 영국인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이것이 세익스피어에 의해 정리되어 고전으로 남고 또 이것을 전세계 수많은 예술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하고 재공연하고 있습니다. 홍성민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만든 이유입니다.


 

이 작품은 곧 유럽에서도 공연된다고 합니다. 그 때는 한국인 배우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줄리엣들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말을 하고, 창을 하고, 일본말을 하고, 영어를 하고, 불어를 하는 줄리엣들이 동시에 나와 각자의 연기와 대사를 하면, 동시에 같은 언어의 대사를 할 때 만들어지는 소리와는 또 다른 소리들이 만들어 질 것 같습니다.


 

7명이 나오기 때문에 각 여배우들은 서로 어쩔 수 없이 경쟁을 펼칩니다. 누가 먼저 등장하고 누가 가운데에 서고 또 누가 더 예쁜 의상을 입고 누구 목소리가 더 크냐에 따라 관객의 시선이 쏠리기 때문이죠. 각자의 취향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서로 다른 대사들을 뱉고 있는데 누구 하나를 정해서 따라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습니다. 어떤 관객은 그 상태로 소리의 뭉침을 들었을 것이고, 또 어떤 관객은 그 중 특정 인물을 처음부터 따라갔을 것이고, 또 다른 관객은 매 장면마다 서로 다른 인물을 정하고 그 인물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번 공연을 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해외에서 공연된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더라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아는 언어는 듣고 나머지 언어들은 배경음으로 삼는 것이지요. 그리고 뜻은 몰라도 그 때 각 배우들은 비슷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으니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모두가 아는 것이기도 하고요.


 

원래 연극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서 배우들의 연극톤 발성이나 극적인 연기 자체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전체의 완결성이나 작품성이 대단하다는 인상은 솔직히 받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어떤 완결성이나 작품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품 같습니다. 발상 자체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배우들도 연기하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예술이라는 건 때로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발상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가치를 가집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고, 이렇게도 보여줄 수 있구나 하는 것 자체가 관객들에게는 또 다른 영감을 불어넣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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