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를 냈다. 총 4주 중 2주가 지나갔다.
병가의 사유는 통증보다는 질병, 질병보다는 두려움이다.
처음이 아닌 수술을 받았고, 퇴원 후 예상치 못한 재감염 때문에 금세 다시 입원을 했고, 다시 퇴원 후 사회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증상이 나타났다.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는 괜찮다고 했지만 불안했다. 증상이 있는데 괜찮다고 하니 더 불안했다. 이성복 시인이 말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던 바로 그 상황에 내가 처해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그 증상이 없어졌는지, 없어지지 않았다면 최소한 어제보다 덜해졌는지 확인했다. 퇴원 후 어느 시점부터 병가를 신청하기까지의 약 2주간은 확인할 때마다 어김없이 좌절이 결과로 따라왔다. 증상은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질 뿐이었다. 그러다 결국 나는 두려움에 무릎을 꿇었다. 아침마다 기대하고 좌절하는 일을 더이상은 감당할 수 없었다.

병가를 내기로 하고 2주간은 맡아왔던 업무들을 정리했다. 조급한 마음에 비하면 2달 같았던 2주도 가고 마침내 4주간의 휴식이 시작됐다. 그 중 지난 2주는 말 그대로 몸이 시키는대로 게으르게, 병가의 관점에서는 부지런히 쉬었다. 배고프면 먹고 잠이 오면 자고 가급적 아무런 생갇을 하지 않기 위해서 티비만 봤다. 괜히 어떤 상념을 불러올 만한 책이나 영화도 피하고 업무 메일도 보지 않았다.

증상은 휴식 1주차가 지날 때까지는 전혀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주차에 접어들면서 마침내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날도 나타났다. 하지만 이대로 낫는 건가 싶으면 다음날 다시 증상이 나타나고, 그래서 절망하면 다음날 다시 괜찮은 식으로 1주가 갔다. 그 사이 타온 약이 떨어지고, 증상은 다시 3일에 한 번 꼴로 나타나지 않아 나는 절망과 희망 사이를 끊임 없이 오락가락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주어진 1달 안에 완전히 다 낫진 못할 거라고 다시 한 번 낙담하게 됐다. 처음 병가를 낼 때만 해도 다 낫지 않으면 회사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쯤 되고 보니 영영 좋아지지도 않고 회사도 너무 오래 쉬게 되는 건 아닌가 불안해졌다. 그래서 2주 후에는 증상의 발현 혹은 완치 여부와 상관없이 일터로 돌아가기로 혼자 마음을 먹었다. 그 마음을 먹고 보니 돌아가서 맞이해야할 녹록지 않은 일과 상황들에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연휴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7일 정도에 불과한 워킹데이 동안 400통이 넘는 읽지 않은 메일들이 쌓여있었다.

그 중 중요한 메일들을 골라서 읽고 불필요한 메일들을 정리했다. 그러나 밀린 메일함을 열어보는 일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그 대가는, 불면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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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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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사진 한 장이 너무 에드워드 호퍼 작품 같아서, 새벽이라서, 알랭드보통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호퍼를 당신의 책에서 처음 알게 돼서 그냥 이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세상에,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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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책 속의 글자들이 연결된다는 것

제가 자주 사용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중 하나는 'iReadItNow'입니다. 읽은 책과 좋아하는 구절,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아서 스마트폰 사용 후부터는 꾸준히 이곳에 저의 책읽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웹과 싱크를 해두지 않은 상태로 중간에 핸드폰 업데이트를 한 번 하는 바람에 초기 데이터를 싹 날린 적이 있지만, 이제는 싱크를 해둬서 만에 하나 핸드폰을 잃어버려도 데이터는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반드시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을 읽는다'는 언제, 왜 세웠는지도 모르는 원칙을 버리고 책 여러 권을 함께 읽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유야 다양합니다. 먼 길 가는 내내 읽어야 하는데 남은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든지, 출퇴근길에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겁다든지 하면 다른 책을 집어들고 나오기도 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가끔 서평단 이벤트를 통해 받은 책은 먼저 읽어야 하니까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 다 읽은 책은 페터 회의 [콰이어트걸]입니다. 앱의 기록을 보니 지난 9월 7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어제 새벽에 다 읽었으니 무려 2달 보름이 걸린 셈입니다. 그 사이 여러 책을 읽으면서 [콰이어트걸]을 봤는데, 워낙 오래 전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도 그 정도 기간, 혹은 더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던 것 같습니다. [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는 비교적 단숨에 읽었지만 서로 닮은 점이 많은 [콰이어트걸]과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이상하게 빨리 읽어지지 않고, 천천히 읽어서 더 좋기도 했습니다.

 

각설하고, [콰이어트걸]을 읽으며 바하 '샤콘느'에도 같이 빠져 있다가 다음으로 집어든 책은 데이비드 J. 린든의 [고삐 풀린 뇌]라는 책입니다.

 

그런데 읽다가 또 괜히 저 혼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콰이어트걸]에서 돈은 아주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카스퍼가 종종 그 돈에 대해 얘기할 때 덴마크의 500 크로네짜리 지폐에 있는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언급합니다. 아마 아래의 얼굴이겠죠.

 

 

 

암튼 그 닐스 보어에 대한 이야기가 [고삐 풀린 뇌]에 떡하니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까! 두뇌, 특히 쾌감을 관장하는 영역에 대한 이야기니까 물리학자가 등장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읽어보면 닐스 보어는 물리학자로서 관련 이론을 갖고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LSD를 먹은 시험을 앞둔 한 학생의 환각 속에 등장합니다.

 

 

역시나 이런 우연이 저에게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아무것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건지 또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과 사람과 이야기와 마음들은 이렇게나 다 신기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별 것 아닌 연결들이 왠지 저를 흥분케해요.

 

오늘은 금요일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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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A692006815 이상하게 김연수 작가님 만나는 행사에는 한번도 당첨된 적이 없는데 이번엔 전원초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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