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들의 당나귀 귀 - 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
손희정 외 지음, 한국여성노동자회 외 기획 / 후마니타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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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어떤 문화 안에서 뭐가 재미있다거나 슬프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는 건 관습적인 문제거든요. 특히나 ‘웃음 코드’ 같은 건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거란 말이죠. 예컨대,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로 생각되는 어떤 사람이 뭔가를 했을 때 웃긴다˝라고 한다면, 그건 엄청난 편견 안에서 웃기는 것이고요. (중략) ‘나쁜 웃음’과 연결돼 있는 우리의 관습의 고리를 깨서 다시금 질문하게 만드는 거 (중략) 정말 중요한 작업입니다.

윤옥 / 사실 IMF 이후 남성의 지위가 ‘추락‘하는 건 여성이 남성의 몫을 빼앗아 가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의해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고 남성 노동자의 지위가 허약해졌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그걸 여자들 탓으로 돌리는 거죠. 사실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건 하지 않고요.

윤옥 / 왜 섹시 콘셉트가 이쪽으로 바뀌는 거예요?
지은 / 아무래도 더 무력한 대상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어쨌든 기존의 섹시 콘셉트란 건 좀 더 성인의 느낌이 있고, 나의 섹시함을 보여 주겠다고 하는 주체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이효리 씨의 예전 모습도 그런 느낌이었고요. 하지만 이제는 너희가 보여 주겠다고 하는 건 쾌감이 없다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테니스 스커트도 노출용이라기보다는 운동용인 것인데, 그 안의 속바지를 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거죠. 그렇게 ‘금기‘를 즐기는 것에서 쾌감을 찾는 것이 아닌가.
희정 / 대상화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대상화라는 건 상대방의 자율성과 자질을 축소시켜 보려는 태도이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대상화의 주요 내용인데요. 어떻게 보면 성적 주체로서 스스로 이야기하는 10대 여성은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너를 대상화해서 내 구미에 맞게 마음대로 소비하겠다는 심리가 더 커지는 게 아닌가 싶네요.

수경 / 이런 말 있잖아요. 미드는 경찰이 나오면 수사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진료를 한다. 일드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교훈을 주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교훈을 준다. 한드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연애하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연애한다. 그러니까 어떤 드라마에서든 또 어떤 여성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 연애 대상으로 그려진다는 거죠.

혜진 / 예컨대 가수 이효리 씨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자, 혹자들은 김제동, 주진우랑 친하게 지내다가 저렇게 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잖아요. 그런 의심은 남성 혁명가들에게는 제기되지 않죠. 식민지 시기의 저명한 남성 문학비평가 김기진은 잡지 「신여성』 1924년 11월호에 이렇게 썼어요. ˝대체로 여자라는 것은 국수주의자에게로 가면 국수주의자가 되고 공산주의자에게 가면 공산주의자가 되는 모양˝이라고요. 그런데최근 페미니스트 연구자 장영은은 김기진의 그 말을 이렇게 바꿔 써야 한다고 주장했죠. ˝여성은 민족주의자라서 민족주의자에게로 가고 사회주의자라서 사회주의자에게 간다.˝

윤옥 / 독서 모임이 정말 많았어요. 노동자문학반에서 『전태일 평전』을 읽고 토론한 기억이 나요. 노동자들에게 읽고 쓰는 일이 중요했던 건, 자신의 삶이 공론장에서 언어화되어야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건 사회 구성원의 시민권 문제와도 관련돼요. 노동운동의 실천이기 전에,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표시였던 것 같아요.

주희 / 자유주의 시스템에서 자유는 개인에게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자유를 생산하고 소비하도록 하는 통치술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섹슈얼리티의 자유로운 거래를 보장하는 것이 평등한 성적 거래로 이어진다는 것은 환상이죠. 저는 여성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에로틱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바로 성 시장의 전제 조건이자 특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을 끊임없이 성매매 산업으로 진입시키는 하부의 구조를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을 가난하게 만들고, 그 가난의 완충지대에 성매매 산업을 형성하고 있는 국가와 자본의 결탁이 더 큰 문제겠지요. 이 부분을 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일 경우에는 ‘업소 종사 여성‘이라든지, 성매매를 하고 있는 여성, 성매매 여성, 성판매 여성 등, 기술적인 용어를 선호하는편이에요.

주희 / 들여다봤더니, 성매매특별법이 문제 삼는 사람들 외부에, 이 산업을 계속 굴러가게 하는 요인들이 존재하고 있더라고요.
윤옥 / 그게 도대체 뭔가요?
주희 / 바로 오늘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여성들에게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드론 회사, 신용카드 회사, 제2금융권, 다양한 일수업자들, 그리고 성형외과 같은 각종 미용 산업들이죠.
희정 / 성 산업과는 무관해 보이는 산업들이네요?
주희 / 그렇죠.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아까 말한 3000만 원이여성들 몸을 타고서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는 거예요. 성매매방지법의 프레임으로 보자면 이 여성은 피해자지만, 조금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이들은 돈이 흐르는 중간 매개를 하고 있던 거죠. 그랬을 때 일부 여성이 탈성매매를 한다고 해서 성매매 산업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걸까요? 이 여성들을 매개로 이자와 수수료 등의 수익이 만들어지는 거대한 시장이 있는데요. 그런 매개자 역할로부터 빈민 여성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주희 / 그러니까 자연 상태의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여성 역시 자신이 구입한 몸을 파는 거예요.

혜영 / 원더우먼은 1950년대에 능력을 다 잃고 굉장히 종속적인 여성이 되고요. 나중에는 부티크 숍까지 열어요. 그러면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스스로를 맞추게 되는 거죠.
지혜 / 여전사와 부티크 숍 사이의 괴리는 너무 큰데요.
혜영 / 이렇게 변화된 것에는 1950년대 여성들을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려는 가부장제의 흐름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한편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있었죠. 사실 원더우먼이 레즈비언 혹은 양성애자인 건 너무 명백한데, 1950년대 이후의 시리즈에서는 그런 경향을 다 지우고 이성애자라는 것을 강조하게 되는 거죠.
희정 / 아무래도 1950년대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너진 사회질서를 기독교 교리에 근거한 이성애 핵가족 중심으로 다시 세우려고 노력했던 시기인 만큼, 성적으로 보수화되는 시기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게 원더우먼은 다시 남성과의 사적인 관계 안에 갇히게 되는 거네요.
혜영 / 그렇죠. 그렇게 1960년대가 열리는데요. 1960년대는 그렇게 보수화된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없었던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제2물결을 불러왔던 때잖아요. 그런데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의 대중문화 아이콘이 없나 둘러보는데, 정말 너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비롯해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어렸을 때 보고 자랐던 원더우먼을 떠올리게 된 거죠. 그러면서 계속 DC 코믹스에 자기네가 보고 자랐던 영웅 원더우먼을 돌려 달라고 항의 전화를 하게 되요. 그래서 결국 DC가 짜증을 내면서 원더우먼에게 슈퍼 파워를 돌려주게 됩니다.

혜영 / 대중문화에는 정말 여성의 신체적 가능성을 최대한 확장해 보여 주는 재현이 잘 없고, 대체로 ‘어머니 형상‘에만 국한되어 있으니까요. 남자들은 이렇게 슈퍼 슈퍼한 것들을 많이 보고 자라니까 가능성을 상상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겠죠.

희정 / 많은 작품들에서 엄마들이 아이를 언제 잃어버리게 되냐면,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다른 남자랑 섹스를 하거나 연애 감정이 시작될 때, 그럴 때 아이가 납치를 당하거나 사고를 당해요. 여자가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상상력이 언제나 존재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엄마의 욕망과 모성을 배치되는 것으로 놓음으로써 엄마 캐릭터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죄책감 속에서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복수를 하고, 엄마 스스로도 자멸해 버리는 방식을 택해요.
윤옥 / 그렇게 본다면 〈비밀은 없다〉는 완전히 다르네요?

태섭 / 훈육자인 어머니가 ˝게임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하는것이 여가부의 셧다운제 이미지와 겹쳐 버렸다는 거예요. 거기에 게임하고 있으면 한심하게 쳐다보는 부인이나 애인의 이미지도 ˝게임을 금지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속에 있죠. 그러다 보니 뭐랄까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특히 10대 나 20대한테서 볼 수 있는 어떤 여성 혐오적인 반감 중 상당 부분이 게임 규제와 관련되어 있는 거죠.

희정 / 저는 2015년에 처음 메갈리아가 등장했을 때는 지금처럼 본격적인 섬멸전 양상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소수의 여성이 목소리를 냈을 때는요. 그런데 이게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을 지나면서 여성 보편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자, 안티 페미니스들이 도대체 누구를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 거죠.
태섭 / 「남성 삶에 관한 기초연구 Il」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하나 봤는데요.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해본 거예요. 조사자 남성의 54.2퍼센트, 그리고 여성의 24.1퍼센트가 인터넷의 여성 혐오 표현을 공감한다고 했어요. 절반 이상인 거죠. 그리고 여성 혐오의 원인이 뭐냐고 물었을 때 여가부가 1위였고, 남성에 의존해 사치를 일삼는 여성, 이른바 ˝김치녀˝ ˝된장녀˝가 2위, 여성 단체와 페미니스트 때문이란 게 3위고.
운옥 / 이렇게 원인이 헛다리일 수가.
태섭 / 그런데 이 중에서 정말 웃겼던 게요. ˝남자에 의존해 사치하는여성˝을 만날 가능성이 제일 낮은 게 어쨌든 청소년층이잖아요. 그런데 이 청소년층이 해당 원인을 지목한 경우가 제일 많았어요. 그러니까 청소년들이 대체 어떻게 남자에 의존해 사치하는 여성을 만난 걸까 너무 궁금하잖아요. 문방구에서 자기 이름 걸고 뭐를 산 건지, 더치페이를 안 해줬는지 모르겠는데.

윤옥 / 소문이나 미디어로부터 본 이야기를 자기 경험담으로 인터넷에올린다는 거죠?
태섭 / 그런데 자기 경험도 아닌 경우가 많고 아는 형, 아는 동생, 내 친동생의 친구 누구 이런 식이고요. 내용도 대체로 부정확한 정보에 근거하고 있거나 이상한 내용이거든요. 이상한 이야기를 접하면 확인을 해봐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그대로 흡수하는 게죠. 그러다 보니 사치하는 여자에 대한 어떤 편견이 강화되는 거예요. 또 웃긴 게요. 남녀별 유형 집단을 쭉 늘어놓고 누가 가장 싫으냐고 물었는데, 1등이 데이트 비용을 거의 내지 않는 여자, 5점 만점에 4.29예요. 그다음 2위가 시부모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 여자, 4.04. 특히 1위는 웃긴 게 여성들도 높은 수준의 부정평가를 내렸어요. 4.03점.
희정 / 여자도 싫어하고 남자도 싫어하는데, 도대체 누가 돈을 안 내고있는 걸까요?
태섭 / 그 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나서 그렇게 사치를 많이 하고 많은 남성에게 상처를 주고 사라지는 전설의 괴도가 된 걸까요? 😀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응답자 특성이에요. 여성 혐오가 강하고 성평등 인식이 낮고 성 역할 갈등이 큰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에 비해, 삶의 만족도, 자존감, 외모 자존감이 낮았다는 거죠. 실제적인 계급보다 만족도와 자존감의 문제가 여성혐오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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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의 말처럼 우연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렇기에 193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알베르트 폰 센트죄르지Albert von Szent-Györgyi가 말했듯 발견은 누구나 보는 사실을 보는 것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의식은 있지만 소뇌나 중추신경의 손상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환자는 사고로 외계 행성에 홀로 남은 탐사 대원이 지구의 소식은 듣고 있지만 송신기 고장으로 자신의 생사를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지금은 이들을 감금증후군Locked-in syndrome으로 따로 분류하고 있다. 이제는 감금증후군처럼 몸의 반응만으로 의식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경우, 뇌 활동으로 의식 상태를 판단하고 있다.

마취 중 각성이나 감금증후군을 통해서 우리는 몸이 깨어 있는 것과 의식적 경험이 서로 분리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1년에 약 4000만 명이 수술로 일반 마취를 하는데, 그중 0.1퍼센트(약 4만 명)가 중간에 의식이 깨어나는 마취 중 각성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시건대학교 의과대학 조지 매슈어George Mashour는 인간과 동일하게 행동하지만 의식은 없는 철학적 좀비Philosophical Zombie를 본떠 이를 역좀비inverse-Zombie 상태라고 불렀다.

특히 육각수에 대해서는 지금도 소비자를 속이는 모 대학 교수가 있다. 한 뉴스 탐사 프로그램에서 허위 사실을 집중 보도했다. 그 교수는 육각수가 기억력이 탁월하여 어떤 약품의 정보를 입력시키기만 하면 그 약효가 영원히 지속된다고 주장했다. 해열진통제인 아스피린을 물에 타고 수만 배로 희석해도 그 약효는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약재의 효능을 기억시키기만 하면 물만으로 어떤 질병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나쁜 경험을 한 물은 우리에게 나쁘게 작용하지 않겠나? 욕을 들려준 물과 칭찬한 물을 식물에 주고는 성장 정도를 비교하는 바보들의 실험도 있었다.
현대인은 만성 탈수증에 시달리고 있어 하루에 물 2리터 이상 마시라는 황당한 주장도 있다. 하루 물 7~8잔 마시라는 건 영국 BBC가 6대 의학 미신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물은 목마를 때 마시면 된다. 물로 물먹이는 속임수에 속지 마시길.

유명한 가짜 학술지 중 대표적인 것이 <와셋WASET〉과 〈오믹스 OMICS>다. 한국 교수들이 많이 이용하기로 소문났다. 조사해보니 1400여 건이 넘는 논문이 이 가짜 학술지에 실렸다. 통계에 서울대교수가 가장 많았다. 교육부가 정도가 심한 교수에게는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얼마 전 과기부 장관 후보자가 이런 논문이 탄로나 낙마하기도 했었다.

우리는 음식을 몸에 좋으라고 먹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 거다. 몸에 특별히 좋은 음식은 없다.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좋고, 넘치는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게 식품이다. 사람 먹으라고 동식물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모두 천적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방어책을 갖고 있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비교적 덜 해로운 동식물을 우리의 먹거리로 선택했다. 식품마다 나름의 장단점이 다 있다.

인터넷은 종종 가짜뉴스와 비합리적인 신념을 전파하는 온상으로 비난을 받는다. 이런 비난에는 확실히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백신을 향한 불신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타고 강화될 수 있다.
인터넷 사용자는 뇌가 빠지기 쉬운 일련의 함정이나 인터넷이 만드는 강력한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악명 높은 확증편향으로 인해 사용자는 선입견에 따라 검색 결과와 사이트를 찾아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을 찾게 된다.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는 이런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우리는 아무리 이상한 신념이더라도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메아리방에 살고 있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자들은 태곳적부터 인간을 괴롭혔다. 2700년 전에 ˝죽은 자들이 일어나 산 자를 먹어치워 결국 산 자보다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한 고대 메소포타미아 토판은 되살아난 시체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는 약 300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TV 시리즈 〈워킹 데드Walking Dead>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요약한 듯하다.
각 지역의 민담을 조사해보면 되살아난 시체 이야기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망령이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은 아니다. 슬라브 계통의 흡혈귀를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영화에서처럼 망토를 걸치고 성에 사는 근사한 귀족이 아니라 부패한 몸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죽은 농부로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스 민담에 등장하는 브리콜라카스vrykolakas는 선혈로 인해 붉은 색을 띠는 송장으로 그려진다.

바이킹들은 악랄하고 몸이 부풀어 오른 드라우그Draugr를 두려워했다. 게르만 문화권에는 수의를 갉아먹은 다음 시신의 피를 빨아먹는 나흐체러nachzehrer가 있다. 또한 중국에는 콩콩 뛰어다니는 흡혈귀인 강시가 있고, 아랍어권에는 식시귀ghuil가 있다. 필리핀의 공동묘지에서는 그날 매장된 시신을 먹는다고 전해지는 칼락kalag이나 아스왕aswang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심지어 6만 2000년 전 다른 인류와 분리된 호주 원주민들도 야라마야후yara-ma-yha-who라고 불리는 흡혈귀를 두려워했다. 살아난 시체는 그저 민담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날 거라는 생각에 시체 매장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와 관련해 많은 고고학 증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에서는 거대한 쟁기의 날이 몸통을 관통하고 있는 700년 된 해골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폴란드에서는 목 위에 낫이 올려진 시체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좀비들이 움직이면 목이 잘리도록 만든 부비트랩이었다. 아일랜드에서 발견된 8세기경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좀비‘는 누구도 물지 못하게 입안에 자갈이 가득 들어 있었다. 또한 ‘베네치아의 뱀파이어‘는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커다란 벽돌이 박혀 있었다. 이외에도 시체가 살아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여러 예방책이 시행되었다. 중세 영국의 한 마을인 워람 퍼시Wharram Percy에 살던 농부들은 시체 10구를 사지와 머리를 잘라 태워버렸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중세 고고학 교수 앤드루레이놀즈Andrew Reynolds는 ˝그 주요 목적이 시체가 되돌아와 산 자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자는 동안 꿈을 꾸는 수면과 꿈을 꾸지 않는 수면이 번갈아 일어난다. 그런데 꿈을 꾸는 수면 상태로 너무 빨리 진입하거나 꿈을 꾸는 상태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빠져나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부 생리적 기능이 잠들어 있는데도 다른 기능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가령 완전한 수면마비 상태에서 눈이 떠질 수 있다. 이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포를 느낀다. 당황해 숨이 차고 수면마비 때문에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가슴을 짓누르고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 더군다나 뇌가 완전히 잠들지 않으면 꿈의 세계가 깨어 있는 삶과 겹쳐지면서 입면환각hypnagogic hallucination을 일으킨다. 이러한 환각은 직감에 틈을 일으키고, 뇌는 그 틈을 메우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위협적인 존재가 몸을 짓누르거나 목을 조르는 환영을 보게 된다. 게다가 기억은 정상적인 수면 상태에서처럼 억제되지 않으므로 당시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다.

심리적 성향, 주술적 사고,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탐색하는 성향 역시 감정적 스트레스에 의해 강화된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가위눌림은 전염병이 돌 때 더욱 빈번해지고,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으로 가위눌림을 탓한다.

˝완벽함은 잊어. 틈은 어디에나 있지. 그렇기 때문에 빛이 들어오는 거야.˝
-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

하지만 우리 사회에 구석구석 스며든 포스트모더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가짜 뉴스를 둘러싼 싸움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언론이 가짜 뉴스를 쏟아낸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기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트럼프가 하고 싶은 말은 정체성 정치론자들이 사회가 특권층 위주로 짜여진다고 지적하면서 주장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트럼프의 속내는 언론이 자신들이 가진 편견을 진실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메타서사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이상한 글을 남기는 것도 메타서사에 대한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전까지 이념 다툼은 황량한 벌판에서 벌어졌다. 하지만 전장이 소셜미디어로 바뀌면서 이제는 모든 룸펜이 싸움에 나서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사도 도마는 예수의 부활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공언했다. 예수가 자신의 상처를 증거로 보여주자 도마는 그 상처에 손을 넣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러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즉,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보다 더 축복을 받으므로, 이제 회의주의자들이 구원을 받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반대자들로부터 맹비난을 받는 이유는 어쩌면 그 반대자들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의심하는 대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폭로하는 도구가 되어 사실상 모든 사회 질서를 해체할 수도 있다. 즉, 사회 질서를 구축하는 의미체계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회 내부에서 창조된 것이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어떠한 사회 질서든지 쉽게 해체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정치적 메타서사(이데올로기)가 일종의 지적 구속이라고 믿었다.

비판이론가인 테어도어 아도르노Theodore Adorno와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처음에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사회 지배 의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정치적 분열이 없더라도 사회 지배는 지속된다고 결론 내렸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은 비판이론가들의 후세대인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스트post-structuralist postmodernist‘들이었다(이 용어 때문에 기가 차더라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어찌되었든 학술지는 순찰대가 아니다. 학술지의 더 큰 목적은 학자들 사이의 대화를 유도해 창의성과 혁신의 기회를 이끄는 것이다. 패션쇼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집단에서든 그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구성원들이 있는 한, 이들은 경쟁자가 위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위계질서를 부패시키고 폐쇄적 시스템을 만든다. 모든 위계가 부정직하다는 말이 아니다. 외부의 견제 세력이 없다면 부패할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위계의 바탕에는 보통 여러 전제들이 숨어 있게 되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숨은 전제들을 폭로함으로써 위계가 은밀히 부패되는 것을 막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 백인 남성 이성애자가 정말 유능하기 때문에 큰 사무실을 독차지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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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 한국문학의 정상성을 묻다
오혜진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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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화, 웹툰은 물론이고 정치적 발언까지 다양한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비평집. 시원시원하고 거침없으면서도 다른 관점들 또한 텍스트로 가져와 동의하고 반박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지난 몇 년간의 문학계 사건과 다양한 작품들을 사회적, 정치적 맥락과 함께 읽고 정리할 수 있어서 너무 재밌고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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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비평들
전치형 외 지음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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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올해 읽은 최고의 책으로 꼽고 싶다. “기계비평”이라는 영역 자체가 나에게는 무척 생소하고 신선해서, 서문을 읽을 때는 한 문장 한 문장 거의 전율을 느꼈다.

세월호,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일어난 사고 등 구체적인 사건•사고와 그 사건•사고의 축이 되는 기계의 구조, 관리와 운영의 문제 등 정치성과 경제논리를 들춰내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폭넓게 비평하는 다양한 글을 읽으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똑같은 사건과 현상을 이렇게 다르게도 해석해낼 수 있다는 것에 기분 좋게 놀랐다. 새로운 방식의 해석이 이끌어내는 또 다른 폭넓은 해석의 가능성을 맛본 것만으로도,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넘어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던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를 느꼈다.

모든 글이 다 재미있었던 건 아니다. 어떤 글은 기계비평이라는 낯선 이론의 경계에 어중간하게 걸쳐져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으나 이것 또한 아직 기계비평을 잘 몰라서, 그 영역을 너무 좁게 보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얼른 이영준의 <<기계비평>>을 읽어보고 싶다.

#워크룸프레스 #기계비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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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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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고 센스 있는 장류진 소설가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만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그녀만의 소설 세계가 있다는 게 느껴져서 즐겁게 읽었다.

#일의기쁨과슬픔 #장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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