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 2015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예중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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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이 된 한강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때문인지, 각기 다른 작가들의 단편들이 실린 이 책 전체가 모두 겨울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작년 한 해는 특히나, 분명히 존재하는 비극 앞에서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없는 작가들의 고통이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느껴졌던 해였기 때문에 더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여기 실린 작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다. 그건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미안하고 또 미안할 수밖에 없는 두 해를 우리 같이 보냈으니까.

하지만 눈 한 송이가 녹기 위해선 눈이 내릴 때보다는 조금 더 높은 온도, 눈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함이 필요한 것을 안다는 듯이, 작가들은 뼈저린 아픔과 어찌할 수 없는 반성을 하는 가운데도 끝까지 한 줄기 따뜻함을 남겨줬다. 그것이 눈을 내리게 하는 동시에 또 내린 눈을 녹이는 힘이다.

나에겐 그리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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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책포장이 너무 예쁩니다.
버스광고 시리즈랑 마우스패드 시리즈랑 계속 이어지는 건데 전혀 질리지가 않고 참 좋아요. 볼 때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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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백수에겐 가장 보람된 날로 기록될 만합니다. 두 달 가량 보수공사로 문을 닫았던 대구 동성아트홀에 가서 영화 두 편을 내리 봤거든요. 평일 대낮에 말입니다.

 

대구 동성아트홀은 2004년에 문을 연 대구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입니다. 올초 대구에 '오오극장'이라는 곳이 생겼는데 공교롭게도 동성아트홀이 경영난으로 폐관을 선언한 것과 시기가 비슷해 저는 잠시 동성아트홀의 역할을 오오극장이 하게 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잘 몰랐던 거죠. 동성아트홀은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상업영화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들을 주로 상영하고, 오오극장은 독립영화전용관으로 독립영화만을 상영합니다. 오오극장은 객석이 55개라서 오오극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오오극장의 간판. 자세히 보시면 오오극장에서는 삼삼다방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오오극장의 한쪽 벽은 이렇습니다.

 

오오극장의 단 하나뿐인 상영관 입구.

 

삼삼다방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죽치고 있었더니 한 잔 더 주셨습니다.

 

동성아트홀은 200석 가량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위치는 예전과 같은 교동시장 부근입니다.

 

맞은편으로 보이는 곳이 교동시장이고, 사진 속 가방 든 여성분이 걸어가시는 방향으로 가면 대구역, 모자 쓴 여성분이 걸어가시는 방향으로 가면 동성로가 나오지요.

 

새롭게 리모델링된 공간입니다. 예전에는 이곳에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있어서 간단한 과자와 음료수를 팔았고 책들이 꽂힌 서가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져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저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고 좋았어요.

 

객석입니다. 아쉽게도 오늘 본 <위로공단>은 관객이 단 둘뿐이었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제작한 안국진 감독의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와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을 연달아 본 것은, 물론 극장에서 짠 시간표 때문입니다만, 실제로 이 두개 영화가 모두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성아트홀이나 오오극장 모두 단관극장이기 때문에 여러 편의 영화들을 매일매일 교차상영하고 있어요.

 

두 개의 영화는 별개의 영화지만 저는 하나의 영화로 읽었습니다. 단순히 연달아 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두 영화 모두 성실하게 노동하는 한국의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성실이 현실에서의 정당한 보상과 만족과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위로공단>에 등장하는 여성 노동자 중 한 분이 "박근혜 대통령이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감정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이가 없었다인지, 울화통이 터졌다인지, 피식 웃음이 났다인지,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고 저에게는 '울화통이 터졌다'에 가까운 느낌으로 남아있습니다만)"는 인터뷰는 특히나 두 영화의 부정할 수 없는 연결고리가 아닌가 싶어 소름이 돋을 정도였어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진심 빠진 허언에 대한 그로테스크하고 컬트적인 대답이라는 걸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감독이 박 대통령의 그 공약을 명확히 기억하고 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사는 나라가 '성실한 나라'로 바뀐 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혼자 추측해봤습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수남은, 사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성실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자발적인 성실함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너무 많았던 불행을 조금이나마 행복으로 바꿔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성실함입니다.

 

제가 본 이 영화의 매력은 이런 수남의 이야기를 감독만의 개성을 살려 컬트적으로 풀었다는 데 있습니다. 정말 영화는 우울하고 절망스럽기 짝이 없지만 세상을 향해 대놓고 분노하거나 주인공이 그저 울고만 있질 않습니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본 물파스 고문을 연상시키는 고문 장면들이나 수남이 뜻하지 않게 잔인해지는 장면들이 비인간적으로 잔인한 노동자의 현실을 감독만의 방식으로, 수남을 연기한 배우 이정현만의 캐릭터로 보여줍니다.

 

세상에 저런 여자가 어딨을까 싶은 사람이 거기에 있듯이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까 싶은 일들이 실제로 한국사회를 비롯한 세계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게 다음에 봤던 <위로공단>에서 그대로 증언됩니다. <위로공단>은 인터뷰 중심의 다큐멘터리 영화거든요.

 

영화의 오프닝이나 인터뷰 중간중간 등장하는 연극 장면과 퍼포먼스들이 인터뷰에서 다 말하지 못했을 행간을 채워주고 영화의 개성을 더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의 중심은 실제 여성노동자들의 인터뷰, 증언들입니다.

 

70년대에서 시작된 여성노동자들의 검은 역사는 현재까지도 숙주만 바꿔 이어지고 있고, 심지어 해외로 수출되기까지 했습니다. 혹시라도 "일부일 뿐 능력대로, 혹은 능력 이상으로 보상받으며 일하는 여성들도 많다"라고 말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그 말을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 '여성노동자'들을 주로 다룬다고 해서 한국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이 이러하고, 남성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느끼기에 감독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도 최소한의 보상과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여성노동자들을 다루고 있으며, 가급적이면 광범위하게, 최대한 많은 경우들을 다루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지금도 그런데' '나도 그랬는데' 생각할 사람이 많을 거고 감독은 제한된 시간과 화면 안에서 가급적 많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70~80년대 방직공장부터 현재의 다산콜센터 직원들, 일부는 이들과 같이 이야기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승무원들까지 다양하게 인터뷰를 담고 있습니다. 또 구로공단을 위시한 한국 공장노동자들부터 캄보디아 프놈펜의 여성노동자들과 그들의 시위까지도 범위를 넓혔습니다.

 

올여름 캄보디아 프놈펜을 여행하면서 한국에서 온 것들을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한국의 건설사들, 한국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빵집들, 그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건 한국의 중고차들이었습니다. 주로 한국의 학원들에서 쓰던 봉고차와 2000년대 이후로는 보기 힘들었던 낡은 대형 관광버스들이었는데, 거기 써있는 한글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사용 중인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개중에는 여전히 문제가 없는 중고차도 있겠지만 한눈에 봐도 위험해보이는 차량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반갑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이상한 수출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것보다 더 나쁘고 위험한 것, '노동착취'라는 비인간적인 행태까지 수출이 되어있었습니다.

 

일을 그만두고 이제 약 100일 정도(,라고 쓰고 한번 세어보니 오늘로 정확히 백수된 지 100일이 됐네요!)가 지난 지금까지도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내가 나답고 행복할지 여전히 미로 속에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에서의 노동, 그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단면을 보고 나니 마음이 조금 더 복잡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명확하지만 그 일로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을지 자신도 없고 돈을 벌 수 없다면 그 일을 끝까지 원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는 저는, 어떻게 보면 살기 위해 노동을 잠시 멈추거나 쉬지도 못했던 노동자들에 비하면 배가 부른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 제일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영화는 가장 힘들지만 누구보다 외면받았던 계층의 노동과 그들의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해줬다는 점에서 훌륭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습니다. 핑크빛 희망으로 눈가리고 아웅하거나 함께 행동하자고 선전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그건 두 영화의 몫이 전혀 아니기도 하죠.

 

그리하여 저는 조금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볼 것인가.

 

 

+그런데 왜 독립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이 아니라 동성아트홀에서 두 영화를 봤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현재 동성아트홀 재개관 기념으로 오오극장과 '해피투게더'라는 이름의 교환전을 진행 중입니다. 9월 17일이 지나면 독립영화는 오오극장에서 예술영화는 동성아트홀에서 상영합니다. 물론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라는 구분이 겹치고 애매하지만 오오극장에서는 한국독립영화를 상영한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저는 오늘 할인받지 못해 정확한 금액은 알 수 없지만, 동성아트홀 카페(네이버/다음) 회원은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위로공단>을 보고 나서 실로 오랜만에 서점에 가 책을 구경하다가 서점에 없는 책을 알라딘에서 주문했습니다. 주문한 게 저녁 7시반이었는데, 9시쯤 출고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사실 내일 중에는 봐야 하는 책이라 정말 고마웠는데, 영화의 한 장면이 문득 생각이 났어요. 제가 이용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모 대형마트에서는 온라인으로 클릭만 하면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클릭만으로 주문이 완료되면 담당 직원들은 그걸 실제로 쇼핑해서 시간 안에 배송을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체되면 창고 안에 파란색-초록색-노란색-빨간색 순으로 경고등이 들어오고 그걸 바탕으로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고된 노동일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런데 알라딘 역시 책을 빨리 배송해주기 위해 아마도 밤 늦게 고생하는 분들이 계시겠지요.

 

그래서 든 생각인데, 책이 급하면 당일배송을 따로 신청하면서 동시에 빠른 배송을 위한 추가비용을 지불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 비용은 늦은 시각에 급하게 일하시는 분들에게 지급되어야겠죠. 오늘 주문한 책이 오늘 오고, 밤 늦게 주문한 책이 다음날 오면 기분이 좋기야 합니다만 그 책을 그 날 못 읽는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지는 않으니까요.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늘 몇 권씩은 남아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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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펭귄클래식 135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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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읽으면서 그 유명한 문장들이 바로 이 작품의 첫 문단이었구나 알았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첫 문단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같은 구조를 가진 역설적 표현들은 사방에서 쓰이고 있으니까요. 이 세기의 고전을 드디어 내가 읽는구나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시작은 미스터리입니다. 한 은행원의 은밀한 작전 수행, '되살아났다'라는 알 수 없는 전보. 두께가 만만치 않은 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궁금했고 재치 있는 문장들은 빛났습니다. 실제로 '되살아났다'는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이 이야기속의 모든 사건을 일으키는 모티프가 됩니다.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합니다. 프랑스혁명 당시의 프랑스 모습이 생생히 드러나있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등장인물들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끊임없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스릴러의 요소 또한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서평의 제목에 작가나 작품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막장 드라마'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막장 드라마의 특징은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 긴말하게 관련되어 있고 자극적인 설정이 난무하며 이야기는 항상 극적으로 치달아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드라마의 경우 모든 인물이 서로 비밀스럽고 특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데는 '제작비'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최소한의 등장인물로 드라마를 찍을 수 있어야 제작비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출생의 비밀' 혹은 '지나치게 얽히고설킨 가족사'가 등장해 이야기가 오로지 그 비밀이 밝혀지고 화해하는 과정에만 치중되면 사람들은 그런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물론 프랑스혁명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그 자체로 더할나위 없이 자극적이고 항상 극적인 역사적 사건이었으니까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막장 드라마 요소를 갖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의 비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너무 완벽한 여인, 그 여자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절대적인 사랑이야기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모든 이야기를 행복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는 카턴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이 등장하는 대목에 있어서는 몰입이 완전히 깨지고 말았습니다.

 

프랑스혁명이 디킨스가 묘사한대로 눈먼 폭력성을 띠고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지만 너무 그러한 측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도 불편한 부분이었습니다. [두 도시 이야기]에서의 주인공은 완벽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가족입니다. 이들의 사랑과 삶이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끊임없이 위협을 받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레 프랑스혁명의 폭력성과 무자비함에 집중하게 되죠. 자연스레 대결구도와 선악구도가 형성되고, 주인공의 행복을 바란다면 시민(폭도)들이 패배하기를 바라게 되는 상황에 놓입니다.

 

이야기의 속도감, 해학과 풍자가 가득하면서도 생생한 문장에도 불구하고 편향된 시각, 보수적인 세계관, 모범생으로만 가득한 인물들(주인공들)은 열심히 책장을 넘긴 저에게 일종의 허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인간성과 숭고한 사랑이 비현실적이라 믿는 제가 문제인 걸까요.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요, 지혜의 시절이자 어리석음의 시절이었으며, 믿음의 세월이자 회의의 세월이요,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으며,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모두 곧장 천국을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곧장 지옥으로 가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가 현재와 어찌나 닮아 있었던지, 당시의 가장 말 많은 권위자들조차 선과 악, 즉 극단적인 대조만이 허락되는 세상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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