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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지혜 - 삶을 관통하는 돈에 대한 사유와 통찰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4월
평점 :
돈. 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인가.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혐오', '속물', '빈부격차' 등 대부분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맞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말이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이제는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주의란 막말로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이란 얘기다.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이 아니라 돈이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도구이자 수단이라는 뜻이다. 솔직히 말해 돈이 없다면 현대 사회에서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가장 기본 요소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돈을 만든 건 우리 인간인데 우리는 그 돈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돈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97%의 대부분의 사람은 앞서 말한 것처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며 관심을 갖지 않는 반면 나머지 3% 사람만이 돈에 대해 공부한다. 그 결과 97%의 사람들이 못 가진 부를 3%의 사람들이 갖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돈이라는 녀석이 어떻게 생겨먹었고 성질은 어떠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지 말이다. 마냥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속물이다'라는 생각으로 더 이상 멀리해서는 안될 일이다. 참 아이러니한 점은 '돈 =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남들보다 더 돈을 갖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왜 돈에서만큼은 솔직해지지 못할까. 그 이유는 어쩌면 돈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돈을 저주하는 나라는 신용을 쌓지 못한 나라, 자신의 미래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나라다. 원래 목표를 장악할 가능성이 안 보일 때 연장 탓을 하는 법이다. 그리고 목표란 늘 사적 계산을 넘어선 것, 문명의 목표다. 비난해야 할 것은 그릇된 열망이지 돈이라는 매개체가 아니다.
파스칼 브뤼크네르. 소설가이면서 철학자인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 중 한 명이다. 일찍이 그는 1995년과 1997년에 프랑스의 4대 문학 상인 메디치상과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프랑스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 해왔다. 2002년에는 최우수 경제학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인문, 철학, 경제학까지 다양한 분야에까지 영향력 있는 글을 써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 부에 대한 인간의 철학적 탐구에 관한 책을 펴냈다. 그렇다. 바로 이 책 『돈의 지혜』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동안 우리는 돈에 대해 잘 알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왜 우리가 그토록 돈과 부에 열망하는지 인간의 욕망을 한 꺼풀 벗겨내어 날것 그대로의 돈에 대한 진실을 들어낸 책이다. 때론 냉철하고 심오하게, 때론 날카롭고 직설적으로 묻고 답한다. 철학적이면서도 비평가적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돈이라는 진실의 문 앞에 서게 한다. 그렇게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알았던 제대로 알았던 돈이라는 녀석을 마주하게 한다. 돈을 잘 알기 위해선 먼저 그 앞에 서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이 그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무작정 돈을 배척하기 보다 또는 무조건적인 부를 쌓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돈에 대한 본질을 먼저 알아야 한다. 바로 이점이 저자가 책을 통해 독자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은 책을 읽는 내내 생각을 떠나지 않았던 내용으로 그 전문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신중한 종의 콤플렉스
돈은 못된 주인인가, 착한 종인가? 호라티우스에게서 유래했다는 이 표현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를 위시해 수만은 이들에게 인용되었다. 이 물음은 우리의 불편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처럼, 돈은 우리를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잘 부려야 하는 고집 센 하인과도 같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맨 처음 기술한 이 역할 도치의 과정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유명해졌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상품-돈-상품이라는 고전적 순환 다음에 돈-상품-돈이라는 순환이 와서 돈 그 자체가 구매 가능한 상품과는 별개로 목적이 되어버린다고 보았다.
돈은 목적에도 가깝고 수단에도 가까운 것으로서 불확실한 위치에 놓인다. 그냥 도구라고 보기엔 너무 중요하고 가치로서의 위엄을 지니기엔 하찮다. 돈은 인간관계를 원활히 할 임무가 있지만 제 역할을 박차고 완고한 주인 노릇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돈은 언제라도 우리를 몰지각하게 만들 수 있다. 돈이 우리의 욕구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완전히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잘못을 돈에게 책임 전가하기는 쉽다. 이 악마 앞에 머리를 조아리기로 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결정이다. 사악한 영이 우리를 조정한 게 아니란 말이다. 형법상, 주식 중개인이 미친 짓을 저지른다면 그의 행위로 심판을 받아야지, 제정신이 아니었다든가 초고속 알고리즘에 피해를 입었다든가 하는 변명은 할 수 없다. 돈은 우리가 구상하지 않은 것을 명령할 수 없다. 인간이 돈을 만들어내서 참 다행이다. 돈을 욕 함으로써 자기혐오를 웬만큼 피할 수 있으니까. 인간은 자기를 뒤흔드는 모든 정념, 즉 시기, 탐욕, 인색, 육욕, 교만을 모두 돈에 뒤집어씌워 미덕으로 둔갑시킨다. 장점을 결점으로 만들기도 하고, 결점을 장점으로 만들기도 한다. 돈은 보편적 부패고 광기다. 그러나 돈 없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 더 큰 광기다.
목적으로서의 돈과 수단으로서의 돈을 구분하는 선은 아주 미세해서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이 선을 계속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소비지상주의와 광고가 하는 일이다. 필요할 때 이 선을 복원하는 것은 우리의 지성이다. 요컨대, 돈을 우리 밑에 잘 잡아두는 것은 우리 소관이다. 하지만 돈이 그렇게 바람직한 상태에 머물려면 일단 풍부해야만 한다나.
"우리가 가진 돈은 자유의 도구요, 우리가 좇는 돈은 예속의 도구다."(장 자크 루소) 이 추론은 잘못됐다. 돈을 가지려면 일단 벌어야 하고 좇아야 하지 않나? 돈이 하늘에서 만나처럼 떨어지기라도 하나? 돈은 우리 하인이지만 이 하인은 이러이러한 조건에서만 복종하겠다고 미리 선포를 한다. 키케로 같은 사람은 재물에 관심을 두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굳이 돈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큰 부자였다. 영화 「마가렛트 여사의 숨길 수 없는 비밀 Marguerite」에서 여주인공은 "돈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 돈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라고 말한다. 돈은 우리가 잊을 때만 자유가 된다. 돈은 우리를 가난에서 해방시키지만 돈의 필요성에서 해방시켜주지는 않는다.
돈에 무관심했거나 배척했던 내가 돈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떻게 하면 돈을 지금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시기에 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를 갖게 하는 책이다. 만약 나와 같은 고민에 빠져있다면 돈의 본질이 과연 무엇일지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