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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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책의 작가 장폴 뒤부아가 방한을 했다. 북데일리 기자인 스윗도넛님의 블로그에 올려진 작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곤 부러워서 침을 줄줄~ 흘리고, 저자 사인회에 다녀와 올려둔 사진-저자와 함께 한 사진과 사인받은 책들의 사진-과 글을 보곤 서울의 특권에 살짝 삐쳐서 토요일에 도착한 뒤부아의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을 붙잡고 나도 사인회 가고 싶다고~ 싶다고~ 절규하기도 했다; 그래봐야 이미 지나갔지만;; ^ ^;;

그래서 사인회 못가는 섭섭한 마음을 그의 작품을 읽으며 달래려고 전에 <구해줘>의 1+1행사로 함께 딸려온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를 작년 가을쯤 집어들었다. 200여쪽의 작은 양장본인 이 책은 내가 소장한 최초의 뒤부아 작품이며 최초로 읽은 책인 셈이다; (책도 안 읽은 주제에 사인회 타령을 했냐고? 쿨럭;; ^ ^;;)


평온하게 또는 약간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타네씨에게 어느날 날아온 등기우편물. 자신의 삼촌이 다 허물어져가는 대저택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것을 상속받기로 결심한 다음부터 평온하기만 하던 타네씨의 일상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겪으며 파란만장한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폐허나 다름없는 대저택을 수리하기 위해 자신의 집까지 팔고 본격적으로 집수리에 뛰어든 타네씨, 어마어마한 공사비를 좀 줄이려고 비공식으로 불러들인 일꾼들이 하나같이 사고를 친다. 어쩌면 그렇게도 일꾼복도 없는 건지!!! 읽는 내내 그에게 동정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 ^;;

다양한 국적과 괴팍한 성격, 특이한 공사방식을 갖춘 여러 일꾼들. 그런 독특한 일꾼들을 상대하는 타네씨를 보며 한편으론 웃음을 다른 한 편으론 안쓰러움을 표하다 보면 어느새 책은 마지막에 다다른다. 타네씨가 각양각색의 특이한 일꾼들을 만났던 대저택 집수리 현장은 어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그리 닮아있는지. 세상의 축소판이 아닐까 싶다. 상대방에게 사기쳐서 먹고 사는 사람들과 돈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더 소중히 하는 사람들(가장 인상적이었던 에밀 아랑그 영감님처럼)처럼 말이다.


힘들었던 삶의 한 지점을 잡아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소설. 다양한 '노가다꾼'들이 펼쳐내는 예상외의 활약과 점차 그 시련들에 단련되어 가는 타네씨를 보며 그의 대저택 보수공사는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책을 읽는 동안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우리 작가 '성석제'씨가 떠오른 소설. 어디 한 번 타네씨가 농담을 잘 하는지 어떤지 만나러 가보자. ^ ^





+ 작년 11월에 쓴 리뷴데.. 왜 빼먹고 올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당;;
   4달 정도가 지나버리고 올리려니.. 얼마전을 작년으로 바꾸는 등 대략 손질해도.. 참 어색하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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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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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응? 당연히 결혼했으니 ''아내'' 아냐? 근데 뭘 새삼스레;; 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그 예사롭지 않은 뉘앙스에 혹해 책장을 펼쳐보게 된 책, <아내가 결혼했다>. 그리고 요~ 요상한 어감을 가진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몇 장만 넘기면 곧 해결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주인공 ''나''의 어지러운 심경을 한껏 드러내주는 몇 줄의 짧은 독백이 친절하게도 이 묘한 제목의 뜻을 명확하게 확정지어 주기 때문에.

- 아내가 결혼했다 .. (중략) .. 나는 그녀의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헉; 현재 내 아내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다고? ㅡㅡ? 이건 무신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이며,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인가.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는 엄연히 일부일처제라는 규범이 통용되는 나라다. (물론 비공식으론 그 룰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쟈게 많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데 어떻게 남편인 나를 두고 결혼을 할 수 있냐고;; ㅡㅡ; 그러나.. 책 속의 ''아내''라면 할 수 있고, 해낸다;; 그렇게 ''나''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이 사건이 이 책의 제목으로 결정된 거다. ''아내가 결혼했다''라고.


박현욱의 재기발랄한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이 책은 일부일처제인 이 땅에서 자유연애와 일처다부제를 부르짖으며 그것을 과감히 행동으로 옮기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사랑하는 까닭에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원치않게도 사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남편인 ''나''의 이야기다. 자유연애주의자인 아내를 겨우 꼬드겨 아내가 내세운 몇 가지 조건(몇 가지지만 그 내용은 간단하지 않은;;)에 동의하며 결혼에 성공한 나. 아내의 마음을 잡아보고자 결혼 후 충성을 바치며 그럭저럭 평온한 결혼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남편인 내게 말한다. 고백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같이 살고 싶다, 그냥 사는게 아니라 그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살고 싶다, 그래서 남편인 당신의 허락으면 한다, 그렇지만 당신과 헤어지긴 싫다, 그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지만 여전히 당신도 사랑한다, 지금 당신과의 관계에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그냥 다같이 살면 안되는가..라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소리를. 그런게 생겨난 혼란과 방황 속에 ''아내의 현재 남편인 나''는 ''아내''와 ''아내의 또다른 남편''과의 이상한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

이 황당하고 엽기적인,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신선하고 쿨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태연스레 늘어놓는 작가 박현욱은, 기존의 결혼제도에 과감히 반기를 드는 아내를 등장시켜(남편이 아닌 아내를!)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부일처제란 사회적 가치관을 전복시킨다. 그와 함께 당혹감인지 해방감인지 모를 묘한 카타르시스를 던짐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선보인다. 일처일부란 결혼제도는 인간이 만든 것이니 그것과는 또다른 형태의 가정을 꾸릴 수 있다, 지구상에는 여전히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나라가 존재하는 만큼 일처다부제라고 안 될건 없지 않느냐..라며 꽤나 논리적으로 나를 설득하는 아내는, 보는 시각에 따라 정신이상자;;가 될 수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너무 빨리 앞서나가는 진보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아내의 그런 생각과 행동은 어느정도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여전히 기존의 관념에 익숙한 평범한 우리들에겐 충격이요, 위험한 행위로 보이는건 어쩔 수가 없다. 더구나 남자가 두 집 살림하는건 암묵적으로 용인해도(이건 드라마에서 너무나 흔한 소재가 아닌가!) 여자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절대, 죽어도 못봐주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까닭에 반대로 소설속 아내가 그런 도덕적 잣대와 사회적 관념을 가볍게 접고 자신의 생각대로 나아가는 행위를 보는 마음은 묘하게 흥분되기도 한다.



이런 가치관의 전복과 함께 이 소설이 눈에 띄는 이유는 ''단연'' 축구와의 비유 때문이다!!
작년 월드컵이 열릴 때 그 열기에 덩달아 붉은악마 두건?(수건?)을 덤으로 주는 이 책의 이벤트를 보면서 대체 아내와 축구용품과는 무슨 관련인가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축구는 이 소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가장 첫머리에서 이 글귀를 만날 수 있다.

- 인생 그 자체가 축구장에 지나지 않는다 (W.스콧)

W.스콧의 말은 맞았다. 흔히들 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말 그랬다. 주인공이 겪는 일상의 일들과 그 상황과 비슷한 상황의 축구이야기(경기나 선수나 기타등등 축구와 관계된 것은 모두!)를 같이 대비시키며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는 이 책은 축구와 인생의 상관관계를 이내 수긍하게 만들어 버렸다. 어쩜 상황마다 그리도 岵暉?예를 들어놓았는지!!! 축구에 관한 작가의 박학다식함에 놀라고 또 놀랐다! (물론 이것은,, 국대축구 외엔 축구경기를 그리 즐겨보지 않는 나의 무식함에 기인한 놀라움일 수도 있다;;) 적재적소에 둥지를 틀고 있는 축구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곧~ 인생은 축구고, 축구는 인생이 된다. 그 사각 구장안에는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처 나처럼 둔한 관객이 눈치채기도 전에 그 일들은 일어나고 사라진다. 우리 인생 속의 크고 작은 일들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빠른 호흡으로 경쾌하게 진행되는지라 한 번 잡으면 잠시 숨돌릴 타이밍 조차 잡기 힘들었던 책. 작가의 신선한 관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축구경기의 단편들이 접목된 독특한 형식의 이 소설은 간만에 만난 톡톡~튀는 청량음료 같은 한국소설이었다. 물론 책 속에서 거론되는 아내의 행동에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그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일부다처제든, 일처다부제이든 어느 것 하나 반갑지 않지만(난 일처일부제 주의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에 다양한 생각을 존중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물론 그 다양성의 인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재미난 문제작, <아내가 결혼했다>
견해의 차이는 충분히 컸으나, 그래도 그 기발함에 아주 재밌게 읽었기에 기꺼이 이 책의 손을 들어주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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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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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은 결코 할부로 오지 않아. 불행은 반드시 일시불로 오지. 그래서 항상 처리하기가 곤란한 거야. (164쪽)

이 책의 카피로도 쓰인 위의 말은 순.식.간.에. 지금 나에게 더이상 적절할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_-;; 안그래도 낮부터 인터넷 직거래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마음을 억누르고 이 책의 리뷰를 써내려갔다. 겨우 다 쓰고는 막 '확인' 버튼을 누르기 직전 바로 위↑의 저 문장을 더 써넣으려고 시도하던 찰나.. 도대체 뭐가 잘못 되어버렸는지 페이지가 뒤로 넘어가버렸다; -0-; 그리고 그 결과.. 당연히-_-;; 내 리뷰는 모두 날아갔다. 한 시간이 넘게 공들여 쓴 리뷰는 그렇게 순식간에 어이없이 공중분해 되어 버리고, 열을 받을대로 받은 나는 완전공감할 수 밖에 없는 윗 문장의 '일시불 불행'을 온 몸으로 뼈져리게 느끼며 앞의 리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리뷰를 써내려가고 있다. ㅡㅡ;

역시~ 불행은 할부보다는 일시불을 좋아하나 보다. 오래 전부터 나름 기대를 걸었던 일은 오늘 아침부터에 산산조각 났고, 인터넷에서 개인거래를 하기로 한 사람은 돈 문제를 앞두고 하루종일 연락두절 상태로 일관해 나를 거품물고 분개하게 만들었으며, 그래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리뷰를 써내려가던 나의 피땀어린 노력엔 아랑곳 않는 냉정하고도 멍청한 컴퓨터에 의해 내 피같은 리뷰는 눈 깜짝하기도 힘든 시간에 공중분해 되어버렸다. 이 책의 작가 김언수는 진정~ 명언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 지금 현재.. 어찌 일시불 불행을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ㅠ ㅠ;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제 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는 <캐비닛>은 온통 작가의 상상력과 유머로 넘쳐난다. 그의 상상력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으며, 순간순간 치고 빠지는 그의 유머감각에 감탄만을 보낼 뿐이다. -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 라는 서문으로 문을 연 이 책은, 쏟아지는 현란한 구라들과 어디로 돌출할지 모르는 작가의 상상력과 뜻하지 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인해 나의 상상력 그 이상을 맛볼 수 있는 책이었다.

<캐비닛>이란 제목처럼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13호 캐비닛'이다. 아니 그 캐비닛이 품고 있는 자료들 속에 살아있는 '심토머'들이다. 이 책에서 '징후를 가진 사람들'로 정의되는 '심토머(symptomer)'로는 '세상의 이런 일이'에 나오는 기인열전을 뛰어넘는 이들이 등장한다. 손가락에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남녀의 성기를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 몸의 일부에서 도마뱀의 형질을 나타내는 사람,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시간을 잃어버리는 사람 등 누가 들어도 '구라'라고 여길만한 사람들이 실제로 13호 캐비닛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캐비닛>은 이런 각각의 증상을 가진 심토머들을 만나며 풍성한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간다.

여기에서 '나'는 이런 심토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매개체의 역할에 충실을 행하며 때때로 충분한 보충설명까지 들려준다. 더불어 심토머들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내'가 어쩌다 이런 요상한 일에 엮이게 되었는지, 권박사는 누구이며 그 연구는 무엇인지에 대한 에피소드도 곁들인다. 권박사의 죽음과 함께 순식간에 '나'에게 펼쳐지는 일들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얼떨떨하게 삽시간에 진행되어 버린다. 코믹물이 갑자기 공포물로 변환되는 느낌??

-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춘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라니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182쪽)



<캐비닛>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심토머들의 이야기는 처음엔 그들만의 고민일 뿐이었다. 그런데 하나둘 듣다보니 이건 괴상한 괴물의 모습을 한 심토머들만의 아픔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민이자 아픔들이었다. 작가는 심토머라는 특이한 존재들을 통해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새 나도 심토머들을 바라보던 냉랭한 시선을 거두고 작가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고, 좌절과 체념에 함께 가슴 아파한다.

이 책은 심상찮은 서문부터 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유쾌한 유머들을 경험할 수 있다. 진실여부가 고민스러울 정도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하이테크 구라들과 스피드하게 읽혀지는 빠른 전개로 독자를 압도하는 이 작품은, 무엇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한다.

삶이 무료하고 따분한가? 그렇다면 지금 '13호 캐비닛' 속으로 들어가 보자.
화려한 총천연색 구라의 향연 속을 헤매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기분좋은 유쾌함에 감염될테니 말이다. ^ ^




- 혹시 타임머신 같은 게 발명된다면 당신이 삭제한 1998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 돌아가고 싶어요. 솔직히 1998년에서 기억나는 거라고는 홍당무 밖에 없지만.
- 무섭지 않나요?
- 무서워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절은 없어요. 그런 시절이 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행복한 기억으로 살죠. 하지만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아요. 상실과 폐허의 힘으로 말입니다.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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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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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의 오쿠다 히데오의 또다른 걸작!이라고 불리는 <남쪽으로 튀어!>
너무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공중그네>의 작가라는 후광과 책을 읽은 사람들의 강추의 압박에 힘입어, 또한 밑도끝도 없이 '남쪽으로 튀어!'라고 독자를 선동하는(?) 강렬한 제목과, 범상치 않은 눈빛에 깍두기(형님~하는 그~ 깍두기; ^ ^;)의 기운을 솔솔~ 풍기는 인상파 아저씨가 턱~하니 버티고 있는 표지 또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터라 이 책을 읽지 않고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흘러넘치는 기대감을 주체할 수 없어 책을 펼쳐든 나는 곧 급진파 무정부주의자인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의 감당못할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었다. 조용하게 강한 엄마에게도. ^ ^;


<남쪽으로 튀어>는 지로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친구 준과 헌책방에서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리기를 즐기는 평범한 초등학생인 지로에겐 전~혀 평범치 않은 아버지가 있다. 프리라이터라고는 하지만 매일 집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지로가 반항을 시도하면 어김없이 헤드락을 걸어 힘으로 제압하며, 콜라는 미제국주의의 산물이니 금지품목이라고 외쳐대는 것으로도 부족해 구청에서 나온 공무원에게 눈썹 하나 까딱않고 '국민연금을 납부하느니 차라리 국민을 관두겠다'는 말을 서슴지않고 내뱉는,, 185cm의 거구에 짙은 눈썹과 부리부리하게 큰 눈,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듯 큰 목소리를 가진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는 과거 이름을 날리던 과격파 운동권 출신이며 무정부주의자다. 공무원이나 경찰 등을 벌레보다 싫어하며 국가란 개인을 속박하는 불필요한 굴레라고 여기는 다소 위험한(?) 사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대담하고 극단적이어서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어머니는 매번 그걸 수습하느라 바쁘다.

그런 말썽쟁이 사회부적응자 백수로만 비쳐졌던 '아버지'가 점점 변신을 시도한다. 처음엔 마룻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백수에서 아들의 수학여행비를 따지는 극성스런 부모의 모습을 보이더니, 아키라 아저씨의 사건을 계기로 참고 있던 본연의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아키라 아저씨를 자기 조직의 희생양으로 삼은 좌익사람들을 향해 '집단이 되면 부르조아나 프롤레탈리아나 모두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지키기위해 안달한다'고 분노하는 아버지, 남쪽섬으로 가서 더 크게 벌어지는 거대기업과의 한 판 승부에서 기존의 모습보다 한층 화려한 액션과 멋드러진 대사로 강력한 포스를 남발하며 아버지! 오! 진정 멋지다!

-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1권 327~8쪽)


처음엔 학교 수학여행비의 비리, 그 다음엔 집단의 이기주의, 마지막엔 기업과 국가라는 거대 권력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의 투쟁은, 국가란(또는 집단이란) 개인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가, 우리들이 느끼는 행복이란 과연 진정한 행복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가란 꼭 필요한 것일까?라는 의문은 남쪽섬 이리오모테로 온 지로가족과 섬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점점 더 짙어진다. 어떤 통제나 구속없이도 자급자족하여 서로 돕고살며 행복을 느끼는 섬사람들, 그들에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섬에 들어온 기업과 그 편을 들어주는 국가는 오히려 조용한 행복을 깨는 방해자일 뿐이다.

- 도쿄에서 살 때, 아버지는 항상 "국가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었는데, 그 말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어.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법률도 무기도 필요없다고 생각해. 이것은 유치한 이상론인지도 모르지만, 여기 섬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감이 들어. 만일 지구상에 이런 섬만 존재한다면 전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2권 294쪽)

- 지로는 큰 격려를 받은 것 같았다. 자신 역시 아버지만이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배받으려 하지 않고 혼자 국가에서 튀어나와 살아가겠다니, 그건 너무 자기 멋대로인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국가가 정의라고도 할 수 없었다. 튀어나갈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배자의 생각이었다. (2권 248쪽)


<남쪽으로 튀어>는 아버지의 투쟁이 주를 이루지만 그 속엔 중학교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그 굴레를 벗어던지며 한층 성숙해지는 지로의 사춘기 성장통과, 차분한 모습과 달리 그 뒤엔 격동의 과거를 품고 있어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엄마(그 비밀들은 책의 마지막에 누나에 의해 풀린다!)의 비밀과, 젊음의 혼란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누나의 이야기가 어울어지며 한층 풍부하고 다양한 감동을 엮어낸다. 지로가족을 통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1권은 도쿄에서의 이야기가, 2권은 섬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개인적으로 2권이 훨~씬 재밌었다. 집에서 데굴거리는 아버지보다 야성의 맛을 알아 밭을 가는 아버지가 더 멋졌고, 숫자는 적지만 아이들에게 삥~을 뜯는 불량학생이 없는 아이들이 좋았고, 한가하고 조용한 섬의 느림의 미학이 즐거웠다. 이것들과는 별도로 아버지의 포스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마지막 한 판에서는 잠시 잊었던 우리의 현실을 생각했고, 권력자들에 대한 울분과 이치로의 행동에 대한 가슴 찡한 감동이 교차했다.

-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2권 245쪽)

-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고. (2권 288쪽)


<남쪽으로 튀어>의 웃음은 <공중그네>만큼 강하진 않다. 그러나 좀 더 깊어지고 진지해진 삶의 질문을 품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안 웃기냐? 절대 그렇지 않다. 아버지와 지로의 이어지는 만담, 애늙은이 무카이, 생존을 위해 비굴모드도 서슴지 않는 외국인 체류자 베니씨 등은 이 책의 강력한 웃음코드다. ('자급자족이 우리의 목표야!'라고 외치는 아버지에게 '그럼 칫솔도 만드시지, 왜?'라고 응수해 아버지를 침묵케하는 자, 바로 지로다!ㅋㅋ)

오쿠다 히데오는 <공중그네>에서도 그랬듯이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풀어내는 재주가 탁월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현대인들의 모습을 웃음으로 담아낸 <공중그네>처럼, <남쪽으로 튀어>에서도 국가와 개인이라는 진지하고 다소 쉽지않은 주제를 그만의 웃음으로 녹여낸다. 못말리는 고집쟁이 우에하라 이치로라는 특이한 캐릭터를 통해 부담없이,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게 적절한 진지함을 유지하는 그의 솜씨에 다시 한 번 감탄할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참 웃기고, 참 재미있으면서도 참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좋다. ^ ^


웃음과 감동을 멋지게 버무린 책, <남쪽으로 튀어!>
망설임없이 강추다!

더불어.. 우리도 그와 함께 남쪽으로 튀어보자! ㅎㅎㅎ




- 오늘의 농성은 틀림없이 큰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미움까지야 사지 않겠지만 동정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지로는 어디까지나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경찰과 기억에 창끝을 들이댄 사람을 통쾌하다며 재미있어 하면서도, 그것을 막상 내 일처럼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텔레비전을 지켜본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싸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고 그럴싸한 얼굴로 논평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냉소를 던지리라. 그것이 바로 아버지를 제외한 대다수의 어른들이었다. (2권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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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나가사키>는 내가 접하는 요시다 슈이치의 두 번째 소설책이다. 밝고 경쾌한 소년들의 이야기와 꽤나 어둡고 무거운 게이 커플의 이야기가 함께 실려있었던 <워터>가 그의 작품이란 건 나중에서야 알았으니, 제대로 작가를 인지하고 읽기는 이 작품이 처음인 셈이다. 파란 하늘에 노란 빨랫집게로 고정되어 있는 노란 조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상큼한 표지를 입고 있는 이 책은, 상큼한 첫인상과는 달리 가볍지도, 상큼달콤하지도 않다. 오히려 너무 담담하고, 그 가운데 쓸쓸함이 묻어난다. 제목을 히로시마 다음으로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도시 '나가사키'로 정한 것도 이런 느낌을 좀 더 강하게 하는 한 이유다.


<나가사키>는 나가사키현의 한 야쿠자의 집안의 흥망성쇠와 그속에서 성장기를 보낸 한 소년의 이야기다. 한창 세력을 넓혀가며 큰소리치던 야쿠자 미무리家도 세월의 변화에 따라 어느 순간 내리막길에 들어서게 되면서 여러가지 변화를 겪는다. 집안의 우두머리였던 외삼촌이 감옥에 들어가고, 외삼촌의 오른팔이었던 쇼고마저 자신의 앞날을 위해 떠나면서 미무리가는 급격히 쇠락의 길로 치닫게 되고 집안 곳곳에 넘쳐나던 건장한 사내들도 어느덧 하나둘 자취를 감춘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셨던 나오도 할아버지의 장례식과 함께 사라진다. 게다가 잠시 미무라가를 들른 쇼고를 따라 소년의 어머니 치즈루마저 떠나버리자 항상 넘쳐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던 미무라가에는 할머니와 소년, 그리고 소년의 동생, 이 세 사람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집안의 쇠퇴와 함께 소년에게 펼쳐지는 인생도 순탄치 않다. 어린시절 자살한 외삼촌의 유령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던 해맑았던 소년도 집안이 망하고 삶의 굴곡을 경험하면서 점점 변해간다. 감옥에서 나온 뒤 알콜중독에 폐인이 된 작은 외삼촌의 가게에 떠밀리기도 하고, 잘나가는 야쿠자 밑으로 들어간 큰외삼촌에게 이끌려 잡일을 해주기도 하던 소년은 엄마가 떠나자 학교를 자퇴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소년가장 역할을 한다. 자신을 옭죄는 지긋지긋한 삶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어 여자친구 리카와 도쿄로 떠나기로 약속하지만 그런 그에게 삶은 그리 친절하지 않다.


<나가사키>는 미무리가의 번창과 쇠락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삶이라는 거대한 굴레를 벗어나고자 발버둥치지만 결국은 그 속에서 좌절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나간다. 주인공 도, 외삼촌 분지도, 정부를 따라 떠나지만 결국 혼자되어 자식에게로 돌아오는 치즈루도 모두 쓸쓸한 모습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항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도 새로운 삶을 찾아나선 사람도 있으니 바로 의 동생 유타다. 의 시선으로 진행되던 소설은 마지막 단락, 유타가 다시 돌아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유타의 시선으로 바뀐다. 그리고 변해버린 자신의 형을 바라보는 동생의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책의 중간쯤에 이 리카와 떠나기로 결심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던 날 을 아끼던 주유소 점장이 에게 하던 말은,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런지. 조금은 서글픈 말에 설마~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그 말에 수긍하게 된다.

-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왠지 인생에서 진 것 같은 패배감이 드는데, 실제로는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말이지. (179쪽)

나가사키에 대해 잘 모르는 터라.. 나가사키의 과거와 현재를 한 야쿠자 집안의 흥망성쇠에 비춰 담아냈다는 작품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게 안타깝지만, 그것들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은 삶의 쓸쓸함 그 자체로 내게 다가왔다. 인생의 단맛보단 쓴맛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이야기가 바로 <나가사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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